코로나 지원금 그리고 고향

서울-박소연 xallsl@rfa.org
2021-0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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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지원금 그리고 고향 추석 연휴인 19일 오후 서울 노원구 상계중앙시장에 코로나 상생 국민지원금 사용 가능 안내문이 붙어있다.
연합

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세요. 10년 차이로 남한에 입국한 선후배가 전해드리는 남한 정착 이야기, <우리는 10년 차이>! 저는 함경북도 무산 출신으로 올해 정착 10년 차 박소연이고요, 양강도 혜산 출신으로 이제 막 한국에 정착한 이해연 씨와 함께 합니다.

 

INS : <우리는 10년 차이>, 코로나 지원금 그리고 고향

 

박소연 : 안녕하세요. 잘 지내셨어요? 바쁘죠?

이해연 : 안녕하세요. 바쁘게 지내고 있습니다. (웃음)

박소연 : 요즘 코로나 비루스 4차 유행이 장기화하며 정부에서 국민들에게 5차 재난지원금을 지급했어요. 해연 씨 받았어요?

이해연 : 저는 신기한 게 국가가 그 많은 돈을 어떻게 한 번에 지급할 수 있지? 처음엔 이해가 안 갔어요, 이러다가 나랏돈이 다 나가는 게 아닌가… 걱정도 됐고요. 지금은 감사하게 잘 쓰고 있습니다.

박소연 : 앗싸! 공짜라서 좋다는 생각보다 걱정하셨다는 말씀이세요?

이해연 : 공짜라 좋긴 했죠. (웃음) 좋으면서도 이 많은 인구를 다 주려면 얼마나 많은 돈이 필요할까 하는 걱정도 있었어요.

박소연 : 해연 씨와 저는 애국자인 것 같네요! 저도 비슷한 걱정했어요. (웃음) 좋기도 했지만… 그래서 해연 씨는 지원금 어떻게 썼어요?

이해연 : 뭐… 대형상점에서 생필품을 사고 미용실도 다녀왔습니다. 정말 요긴하게 잘 썼어요.

박소연 : 우리가 재난 지원금 이야기를 하면 북한 생각을 안 할 수가 없잖아요, 사실 재난 상황은 북한이 더 많으니까… 북한에 살면서 한 번이라도 재난지원금을 받은 적이 있던가요?

이해연 : 그런 기억이 없고 한 달 정도 쌀을 한 사람당 몇 킬로 정도 공급받은 적은 있어요.

박소연 : 그건 배급이잖아요?

이해연 : 아, 우리 때는 배급을 거의 몰라요. 받은 적이 없거든요. 90년대 초반에 사셨던 분들은 그런 말씀을 하시죠. 그래서 어느 해인가 한 달 정도 쌀 배급을 받은 적이 있는데 공짜 쌀이라고 엄청 좋아하면서 먹었습니다.

박소연 : 제가 70년대 생이거든요. 저희는 배급을 받다가 끊겨서 기억하는데 90년대 태어난 북한 주민들은 배급제도를 아예 모르겠네요. 한 달을 배급을 줬다고 고마워했다지만 그건 당연한 거예요. 원래 받아야 하는 것이잖아요.

이해연 : 그렇게 생각 못 했죠.

박소연 : 우리가 지금 받는 재난지원금도 우리가 내는 세금에서 나오는 거잖아요? 해연 씨는 온지 얼마 안 됐지만 마트 같은 상점에 가서 물 한 병을 사도 세금이 붙어있어요. 그걸 국가가 걷어서 재난 지원금 같은데 쓰는 것이고요. 북한 같은 경우 모든 주민이 국가가 필요한 일을 하고, 국가는 그 대가로 쌀을 배급해주는 거죠. 그런데 그걸 20년 동안 안 주고 있는 것이고요.

이해연 : 그렇게 몇 십 년 동안 흘러오다 보니까 주민들이 거기에 적응이 된 거죠. 그래 어쩌다 배급 한 번 공급하면 일한 대가라는 생각은 완전히 잊고 국가적 배려라고 생각합니다. 이제 북한에서 살 수 있는 길은 개인 장사밖에 없어요. 자체로 물건을 팔아 이윤을 남겨 그 돈으로 살아가는 거죠.

박소연 : 국가에서 당연히 받아야 하는 걸 너무 안 주고 있으니 가끔 주면 당의 배려라고 생각하는 거네요.

이해연 : 그렇죠. 저도 지금 생각해보니 그게 맞습니다.

박소연 : 이번 5차 재난지원금은 어디에 쓰고 싶어요?

이해연 : 추석 연휴가 길게 있으니까 그 기간 친구들과 여행을 계획하고 있는데요, 거기에 좀 쓸 수 있으면 좋겠어요.

박소연 : 해연 씨는 코로나 때문에 일상에서 어려움은 없어요?

이해연 : 첫째로 북한 가족들과 연계를 못 하는 게 제일 힘들죠. 예전에는 2-3달에 한 번씩은 연계를 했거든요. 북한이 국경경비를 강화하면서 가족과의 전화 통화가 어려워졌습니다. 그러니까 많이 그립죠. 또 남한 정착 1년 차라 여기저기 다녀보고 사람들을 만나고 배워야 하는 시기인데 그렇지 못하는 것도 아쉽고요. 코로나 때문에 많은 영향을 받죠.

박소연 : 사실 탈북민들이 이렇게 추석 같은 명절 즈음에는 북한 가족에게 돈을 보내는 사람이 많죠. 그런데 최근에는 북한에 송금을 못 하고 있어요, 해연 씨는 가족이 북한에 계시죠?

이해연 : 그렇죠. 올해 설에 가족과 연계를 했지만 그 후로는 진지하게 얘기를 못 했습니다. 북한 국경 지역에 설치된 전파탐지기에 수신자 위치가 잡히기 때문에 가족들은 손전화기를 켜놓지 못합니다. 그런데 안타까운 게 내가 먼저 전화를 할 수 없잖아요? 북한에서 먼저 전화가 와야 돈이라도 보내는 방식이라서요…

박소연 : 탈북민들 만나서 이야기를 들어보면 올해 3월부터 북한으로 송금하는 게 힘들어졌다고 하더라고요. 대부분의 탈북민이 돈을 못 보내고 있죠.

이해연 : 저는 진짜 북한이 외부에서 들어오는 송금을 왜 막는지 이해가 안 됩니다. 국가가 주민들이 살 수 있도록 보장을 해주면서 국경을 막는다면 몰라도 아무런 도움도 주지 못하면서 단속만 강화하니 답답합니다.

박소연 : 북한이 국경을 막는 데는 이유가 있죠. 탈북민들이 북한 가족에게 돈을 보내준다는 것은 경제적 여유가 있다는 증거죠, 그렇게 되면 남한을 바라보는 북한 주민들의 의식이 긍정적으로 변하게 되고…

이해연 : 그럼 환상을 가지게 되니까...

박소연 : 네, 또 북한 정권에 대한 불신이 커지기 때문에 단속을 강화하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사실 우리 라디오 방송은 한 주일 전에 녹음을 합니다. 그래서 이 방송이 나가는 시기는 추석일 거예요.

이해연 : 이번 추석 연휴는 며칠 정도 되죠?

박소연 : 5일입니다. 북한에서는 이럴 때 궁둥이 풀릴 때까지 논다고 표현하죠. (웃음)

이해연 : 5일이면 진짜 휴가처럼 느껴지네요. 저는 곧 시험이라 공부도 하겠지만 어쩌다 차려진 휴일이니까 친구들과 놀러도 가고 거기서 좋은 추억도 만들고 싶습니다. 살면서 힘들었던 피로를 여행으로 날려버리고 새로운 일상을 준비하는 계기를 만들고 싶어요.

박소연 : 제가 남한에 와서 1년 정도 생활했던 시기는 코로나가 없었어요, 눈을 뜨면 공부하고 돈을 버느냐 눈이 99자가 돼서 다녔는데… 그때 누리지 못했던 추억은 10년이 지난 뒤 돌아보니 돈 주고도 살 수 없더라고요. 많이 다니세요. 좋은 추억 많이 만들고…  

 

추석날이면 조상에게 드리는 음식을 커다란 소랭이에 담아 머리에 이고 산소로 가시면서 힘들다는 말 한마디 없으시던 어머니, 송편을 양손 가득 쥐고 산봉우리를 뛰어다니던 철없는 남동생의 모습이 눈에 선 합니다. 올 추석도 고향에 계시는 가족들과 함께 못하지만 언젠가 고향에서 추석을 보낼 수 있는 그 날을 그리며, 이 방송을 듣고 계시는 청취자 여러분 행복한 추석 보내시기 바랍니다.

 

박소연 : 오늘 방송은 여기까지고요, 다음 시간에는 해연 씨가 추석을 얼마나 알차게 보냈는지, 한 주일 동안 해연 씨의 일상에는 어떤 변화가 있었는지 얘기 들어볼게요. 감사합니다.

이해연 : 감사합니다.

 

지금까지 탈북 선후배가 나누는 남한 정착 이야기

<우리는 10년 차이> 진행에 박소연, 제작에 서울 지국이었습니다.

 

 

박소연, 에디터 이현주, 웹팀 최병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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