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그리고 5분의 1

서울-박소연 xallsl@rfa.org
2021-0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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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NHCR “한국, 헌법상 탈북민 보호의무 있어” 안성의 하나원에서 탈북여성들이 걸어가고 있다.
AP

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세요. 저는 2011년 남한에 입국한 탈북민 박소연입니다. 제가 RFA 자유아시아방송에 합류한 것이 남한에 입국한 지 5개월 만이었는데요. 벌써 10년이라는 세월이 흘렀습니다. 오늘부터 방송을 통해 오손도손 얘기를 나눠볼 새로운 친구를 소개해드릴 텐데요, 저와 10년 차이로 남한에 입국한 탈북 새내기 이해연 씹니다.

 

박소연 : 안녕하세요.

이해연 : 안녕하세요. 양강도 혜산에서 왔어요. 이해연입니다.

 

10년이면 강산이 변한다는 말이 있죠, 그동안 제가 살았던 고향은 어떻게 바뀌었을지, 방송을 시작할 때 30대였던 저와 20대의 이해연 씨의 남한 정착은 어떻게 다를지...기대를 갖고 시작해 봅니다.

 

INS : <우리는 10년 차이>, 10년 그리고 5분의 1

 

이해연 : 이제 1년 조금 더 되는 것 같아요....

박소연 : 남한 정착 1년 차면 탈북 새내기라고 부릅니다. 오늘 방송국 찾아오는 길이 힘들지 않았어요?

이해연 : 솔직히 서울은 많이 와보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휴대전화로 검색하고 출발했는데, 기차가 목적지까지 가지 않고 중간에서 종착지 도착이라는 겁니다. 안 되겠다 싶어 내려서 택시를 타고 왔습니다.

박소연 : 방송국에 들어서는 해연 씨의 얼굴에서 당황한 기색이 보였어요, 저도 처음 방송국을 찾아올 때 해연 씨보다 더 심각했어요. 분명 지하철 노선을 검색하고 출발했는데 급행차를 탄 거예요, 급행차는 역전마다 서지 않고 큰 역전에만 서는데 몰랐던 거죠. 졸다가 눈을 떠보니 종착지인 김포공항역이었어요. 지나가는 사람들을 붙잡고 물어도 보다가 결국 의자에 주저앉아 울었어요, 목적지도 제대로 찾아가지 못하는데 정말 이곳에서 정착할 수 있을까 막막했죠.

이해연 : 저도 오늘 정말 당황했어요...

박소연 : 그래도 나한테 비하면 해연 씨는 꽃입니다. (웃음) 해연 씨는 하나원에서 몇 개월 있었어요?

이해연 : 3개월이요, 선배님 때는 몇 개월 생활하셨어요?

박소연 : 저도 3개월 있었죠.

이해연 : 10년 전도 지금과 같네요.

박소연 : 해연 씨가 하나원이 어떤 곳인지 먼저 좀 소개해주시면 좋을 것 같네요.

이해연 : 하나원은 남한에 갓 입국한 탈북민을 대상으로 사회 정착에 필요한 정서 안정 및 문화적 이질감 해소, 사회경제적 자립동기부여를 목표로 3개월간 사회 적응교육을 실시하는 곳입니다. 일종의 교육 기관으로 보시면 됩니다. 

박소연 : 하나원에서 생활하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게 있다면요?

이해연 : 저는 심리상담이요. 탈북민들은 오는 과정의 어려움 때문에 남한정착 초기에는 대부분 심리적으로 불안하잖아요? 상담사는 책 읽기나 걷기운동을 통해 심리적으로 안정을 찾도록 도와줬고요. 북한에 살 때는 심리에 대해 별로 신경을 쓰지 않았어요. 여기서 마음적인 것까지 생각해주니까 고마웠습니다.

박소연 : 맞아요. 저도 하나원에 있을 때 제일 많이 찾아갔던 곳이 심리상담실이었어요, 마음이 안정이 안 되니까 운전면허나 법에 대해 설명해도 하나도 머리에 들어오지 않았어요, 상담을 받으면서 내 얘기를 하고 울고... 그리고 나면 마음이 좀 차분해졌어요. 아, 그리고 그게 궁금하네요. 저희 때는 하나원에 500여 명의 탈북민이 생활했는데요, 해연 씨 때는 하나원에는 몇 명 정도 생활했나요?

이해연 : 500명이요? 와... 어떻게 생활하셨어요. 저희 기수는 80명이었는데도 많다고 했거든요. 다른 기수는 30명 정도였어요... 정말 상상이 안 가는데요. 

박소연 : 부럽습니다! 하나원에 인원이 적어야 선생님도 신경을 써주고 생활하면서 불편도 줄어드는데 500명이 함께 생활하다 보니 진짜 힘든 부분도 있었습니다. 해연 씨도 아시겠지만 하나원은 보통 3개의 기수가 함께 있잖아요? 해연 씨 때는 세 기수 모두 합해야 100명 좀 넘는다는 얘기인데 저희는 하나원에 500명 정도 또 국정원에도 대기하는 탈북민이 500명 정도 있었어요. 하나원 탈북민들이 거의 5분의 1로 줄었다는 얘긴데... 왜 이렇게 탈북민 숫자가 많이 줄어든 걸까요?

이해연 : 정세가 긴장한 탓이 크죠. 예전에는 북한 경비초소를 피해 무작정 중국으로 도강하는 주민도 있었다지만 지금은 국경경비가 많이 강화되었습니다. 우리들에게 강은 빨래하러 가는 곳이었는데 제가 오기 거의 1년부터는 철조망이 다 설치됐어요. 그것도 사람이 닿기만 해도 고압이 흐른다는 전기 철조망이라는 소문이 있고요. 이런 환경 때문에 탈북하고 싶은 사람은 너무 많은데 용기를 내지 못하는 거죠.

박소연 : 말하자면 북한국경 지역에 대한 단속이 강화되면서 탈북민이 줄어든 것인데요, 이렇게까지 강화하는 이유가 뭘까요? 코로나 때문일까요?

이해연 : 솔직히 북·중 국경을 막지 않고 가는 대로 두면 북한 주민들이 전부 남한에 올 것 같아요. 나라를 유지하려면 주민이 남아 있어야 하는데...

박소연 : 하긴 북한 양강도 혜산시가 통째로 남한 경기도에 온다는 얘기가 있죠…

이해연 : 국경에서 멀리 떨어진 북한 내륙지방에 사는 분들은 중국에 대해 잘 모르시더라고요, 그런 분들이 있다는 게 저는 놀랍긴 하지만… 국경 지역주민들은 남한에 대해 잘 알고 오고 싶어 하죠, 아 참… 안타까운 상황이에요.

박소연 : 그렇군요... 이제 우리 좀 더 솔직하게 속에 있는 얘기해 볼까요... 하나원 나와서 첫날 어떠셨어요?

이해연 : 아... 선배님도 아시겠지만 남한 사회에서 첫날은 설레고 외롭고 슬펐어요. 정부에서 배정해 준 내 집으로 들어갈 때는 설레고 기뻤어요, 하지만 문을 열고 들어서는 순간… 선배님도 아시죠? (웃음) (아무것도 없죠!) 맞아요. 아무도 없는 빈집이었어요, 반겨줄 가족이 없다는 게 슬펐습니다. 아무도 없는 집에 트렁크 2개를 들고 들어갔는데 다행히 아파트관리사무실 직원이 찾아와 가스 사용 등 필요한 부분을 설명해줬습니다. 도와주는 분들이 계시니까 낮에는 괜찮더라고요. 근데 문제는 밤이죠? (웃음) 잠이 오지 않았어요.

몸이 둥 떠 있는 느낌이 들더라고요. 기쁜 마음, 허전한 마음 다 더해져서… 그래서 아파트단지 아래 공원에서 그네를 탔어요. (웃음) 아... 이게 남한 하늘이구나 그러면서요.

박소연 : 그날은 그렇죠. 저는 아파트 아래 의자에 앉아서…

 

첫날밤 아파트 공원에서 그네를 타며 외로움과 슬픔을 달랬던 해연 씨, 10년 전 공원 의자에 앉아 슬프게 울었던 제 모습과 묘하게 닮았습니다. 하지만 시작이 반이라는 말이 있죠. 이날부터 해연 씨도 벌써 1년이 넘게 남한에서 잘 생활하고 있습니다. 앞으로 이 시간을 통해 청취자 여러분과 해연 씨의 성장하는 모습, 따라가보겠습니다.

 

박소연 : 오늘 수고 많으셨습니다. 다음 시간에 만나요. 감사합니다.

이해연 : 감사합니다.

 

지금까지 탈북 선후배가 나누는 남한정착이야기

<우리는 10년 차이> 박소연이었습니다.

진행 박소연, 에디터 이현주, 웹팀 최병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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