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는 서울] 삼계탕에 담은 탈북민들의 특별한 마음 (2)
2024.08.27
안녕하세요. ‘여기는 서울’, 김인선입니다.
이맘 때면 선선한 바람과 함께 가을이 시작된다는 느낌이 들곤 했는데요. 점점 날씨를 예측하기가 힘들어지는 것 같습니다. 기상청은 태풍 ‘산산’이 일본 열도로 북상할수록 동풍이 강해지면서 특히 서울, 경기 등 서부 지역 기온이 올라갈 것이라고 내다봤습니다.
찜통 같은 더위가 길게 이어지면서 체력적으로나 정신적으로 쉽게 지치는데요. 냉방기 없이 여름을 보내고 있는 취약계층의 경우 더 힘겨운 시간이 아닐까 싶습니다. 영양가 있는 음식으로 기력을 회복하는 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는데요. 그래서 이맘때면 삼계탕 나눔 봉사를 하는 단체들이 많습니다.
광명시에 거주하고 있는 탈북민들로 구성된 봉사단체 ‘하나향우회’에서도 매년 여름 지역 주민들을 위해 삼계탕 나눔 봉사를 하는데요. 그 봉사단원들을 <여기는 서울>에서 만났습니다. 지난 시간에 이어 하나향우회 회원들의 이야기, 전해드립니다.
(인터뷰-박정옥) 2011년 6월에 새터민 향우회로 창립됐는데 한 1년 있다가 광명시 하나향우회로 이름을 바꿨어요. 광명시에서 살고 있는 북한이탈주민들이 지역사회하고 잘 연결해서 한국에 성공적으로 잘 정착하는 것은 물론이고 나눔과 봉사를 통해서 통일 한국으로 나아가자 이런 목적으로 하나향우회를 만들게 됐어요. 하나라는 것은 ‘남과 북이 하나’ 라는 뜻이고 향우회라는 뜻은 서로 돕는 모임이라는 그런 뜻으로 만들게 되었어요.
하나향우회 박정옥 회장의 말이었습니다.
탈북민들에겐 아무 보상 없이 자발적으로 주변의 어려운 사람들을 돕는 봉사활동이 익숙하지 않다 보니 처음엔 국민 복지 향상을 위한 복지관이 주체가 되는 하나향우회에 동참하는 형태로 봉사를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1-2년 정도 봉사를 하면서 하나향우회 탈북민 단원들 모두가 자원봉사에 대한 참 의미를 알게 됐고 참여형의 봉사 말고 좀 더 적극적인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인터뷰-최순남) 금방 나왔으니까 (봉사에 대해) 몰랐었어요. 정착을 하고 살게 되니까 우리도 남을 배려해서 봉사 같은 거 해주자 해 가지고 그러면서부터 이렇게 했던 거죠. 이렇게 봉사를 나와서 하다 보면 어르신들 위주로 해서 하다 보니까 같이 이렇게 대화도 할 수 있잖아요. 그런데 나는 그게 너무 좋더라고요. 그런 게 너무 좋아서 꾸준히 하게 되는 거죠. 너무 좋아요. 일단 봉사를 하게 되니까.
지역주민들과 북한 음식을 나누며 소통을 하고 ‘동네 가꾸기’, ‘어머니 자율방범대’ 활동 등 지역사회에 기여하는 활동을 하고 있는데요. 삼계탕 봉사도 2017년부터 8년째 꾸준히 이어가는 활동 중의 하나 입니다.
(현장음) 대추 2개, 마늘 2개 이렇게? / 마늘 2 개 아니고. / 그러면? / 하나씩인데 모자라면 이걸 하나씩 넣고. / 그리고 인삼 하나 넣어야지? / 어. 너무 작은 건 2개~~
이가 불편한 어르신들도 쉽게 먹을 수 있을 만큼 잘 익은 닭을 한 김 식히면서 동시에 삼계탕 포장을 준비 중인 하나향우회 회원들! 테이블 위에 놓인 포장 용기에 인삼과 대추, 마늘을 먼저 넣는데요. 번거롭더라도 모든 사람에게 골고루 배분될 수 있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적당히 식은 닭도 한 마리씩 포장용기에 넣고 국물까지 담아 뚜껑을 덮는 것까지 일사분란하게 움직입니다. 원기를 보충하고 땀을 그치게 한다는 황기를 비롯해 다양한 약재를 넣고 닭을 푹 삶은 덕분에 국물 색깔이 진갈색을 띄는데요. 한 그릇 다 먹고 나면 기력을 금방 회복할 것 같다는 생각이 절로 들 정도입니다.
그런데 포장을 하는 손길이 너무나 조심스러운데요. 이유가 있답니다. 보기 좋은 떡이 먹기에도 좋다고 닭 모양이 흐트러지지 않게 하기 위해서죠. 어르신들을 위해 닭을 푹 익혔더니 살짝만 건드려도 살이 저절로 발라졌거든요.
아기 다루듯이 봉사자들의 손길이 조심스러운데요. 그 중에 한 분을 만나봤습니다.
(인터뷰-조경숙) 안녕하세요. 저는 조경숙이라고 합니다. 제가 2020년도에 코로나 때에 한국에 왔거든요. 사실 중국에 있을 때부터 봉사에 좀 관심이 있었는데 신분증이 없어서 봉사를 못 했어요. 한국에 와서 봉사에 참가하고 싶어서 지인에게 물어봤더니 하나향우회가 있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단체에) 들어오게 됐어요. 중국에 있을 때 교통사고를 많이 당해서 좀 아프긴 아픈데 아파도 조금이라도 움직이게 되면 기분도 좋아지고요. 건강에도 좋더라고요. 그래서 저랑 같은 탈북민이니까 같은 고향 사람들이잖아요. 기분이 좋아서 이렇게 자주 나오게 됐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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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경숙 씨는 함경도 무산 출신으로 1997년에 탈북을 했답니다. 중국에서만 23년을 살면서 어느 정도 안정된 생활을 했는데, 아무리 오래 살아도 신분의 보장을 받을 수 없다는 것이 경숙 씨를 힘들게 했습니다.
(인터뷰-조경숙) 교통사고를 그렇게 많이 당해도 병원에는 못 가봤어요. 병원에 가면 신분을 밝혀야 되니까요. 다리를 다쳐서 걷지 못하고 얼굴이 다 긁혀도 병원에 못 갔어요. 그저 약방에 가서 약 타다가 집에서 바르고 이러는 정도로 치료 받다 나니까 한국에 와야 되겠다 싶더라고요.
경숙 씨는 제대로 된 치료를 받아보고 싶어서 한국행을 선택했고 지금도 꾸준히 물리치료를 받고 있다는데요. 봉사활동을 할 때는 몸이 아프다는 생각이 전혀 들지 않아서 오히려 행복하다며 환하게 웃습니다.
인터뷰 중에도 잠시도 손을 놓지 않는 봉사자들 덕분에 순식간에 60개의 삼계탕 포장작업이 마무리 됐는데요. 이게 끝이 아닙니다. 포장용기를 초록색 대형 바구니에 다시 담습니다. 잠시 밖에 나갔다 온 봉사자의 말에서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는데요.
(현장음) 아이 덥다. 몇 시에 이동하려고? / 3시에 오라고 했으니까 세팅하러 나가자.
하나향우회에서 준비한 삼계탕은 어르신들과 장애인분들을 대상으로 전달되기 때문에 그분들이 오시기 편한 장소로 다시 이동을 해야 하는데요.
횡단보도를 건너 맞은 편에 있는 복지관 1층까지 이제부턴 삼계탕 배달 작업이 시작됩니다. 봉사자들은 2인 1조로 바구니를 들고 이동하는데요. 바구니 하나에 삼계탕을 담은 포장용기 10개가 들어가서 제법 무겁습니다. 하지만 봉사자들은 끝까지 힘을 내봅니다.
한국에 온 지 14년이 됐지만 하나향우회에서 봉사활동을 한 지는 이제 2년 밖에 안 됐다는 한성금 씨는 벌써 몇 번째 삼계탕을 나르는데요. 잠시 쉬어 가시라고 인터뷰를 부탁했습니다. 삼계탕 봉사가 성금 씨에게 주는 의미는 특별하다고 하는데요.
(인터뷰-한성금) 열심히 우리가 (삼계탕을) 해서 드렸더니 작년에도 너무 고마워 하시더라고요. 어르신들이 고마움을 느끼는 거고 알아주는 거죠. 서로 이야기도 오가고 너무 좋죠. 같이 우리 (북한) 사람들과 어울려서 봉사도 하고 그러니까 심적으로 기분 좋게 달라지죠. (웃음)
성금 씨는 하나향우회 활동을 하면서 지난해 어르신들께 삼계탕을 처음 대접했는데, 좋아하시는 모습을 보고 돌아가신 부모님이 생각났다고 합니다. 부모님께 뜨끈한 삼계탕 한 그릇 대접할 수만 있다면 원이 없을 것 같다는 성금 씨. 떨리는 목소리로 부모님처럼 생각하는 어르신들을 향해 인사말을 남깁니다.
(인터뷰-한성금) 어르신들이 우리가 한 보양식을 드시고 건강하게 오래오래 사셨으면 좋겠어요.
성금 씨의 인사에 다른 분들도 한마디 보태는데요.
(인터뷰 모음) 정성 들여 만든 것만큼 드시고 건강하게 한 해를 보내시고 또 내년에 또 다 건강한 모습으로 다시 왔으면 좋겠습니다. / 삼계탕 맛있게 드시라고 맛있게 드시고 올해 무더위를 이겨 내시기를 바랄게요. / 저희가 열심히 만든 삼계탕 맛있게 드시고 올해도 건강하시고 내년에 또 보려고요. (웃음) 또 보고 싶어요.
-Closing Music-
어르신들의 건강한 여름 나기를 바라는 하나향우회 회원들의 특별한 마음이 삼계탕에 녹아 있으니 얼마나 맛있을까요? 고맙다는 어르신들의 한 마디에 힘이 난다는 탈북민 봉사자들의 마음, 아마 내년에도 최고의 보양식이 차려질 것 같습니다.
<여기는 서울>, 지금까지 김인선이었습니다.
에디터: 이예진, 웹편집: 한덕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