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는 서울] 7인의 ‘MZ’ 탈북화가 (2)
2024.08.13
안녕하세요. ‘여기는 서울’, 김인선입니다.
자신만의 방법으로 세상과 소통하는 2030, MZ 탈북 청년들이 각 분야에서 두각을 내고 있습니다. 최근 7명의 탈북 MZ 작가들이 모여 합동 전시회를 열었는데요. 전시회 제목은 ‘블러썸’. 작가들의 삶이 작품이라는 꽃으로 피어난 전시회라는 의미입니다.
<여기는 서울>에서는 ‘블러썸’ 전시회 시작을 축하하는 오프닝 리셉션 현장을 찾았습니다. 지난 시간에 이어 전해드립니다.
(현장음-전주영) 저의 작품은 관객들과 소통이라는 키워드로DMZ를 모티브로 작업을 진행했고요. 이 작품을 통해서 자신들만의 삶의 모습들 그리고 작가가 바라는 그런 의도들이 관객이 좀 더 친숙하게 다가갔으면 하는 바람에서 이번 작품을 전시하게 됐습니다.
전시회에 나선 7인의 작가 중 한 사람, 전주영 작가가 관람객들에게 자신의 작품에 대해 직접 설명합니다.
함경북도 출신의 전 작가는 DMZ 즉 비무장지대의 양면성을 화폭에 담았는데요. 멀리서 보면 자연의 모습 그대로 보존된 조용하고 잔잔한 공간이지만, 가까이 가서 보면 경계가 삼엄한 위험하고 베일에 싸인 공간이라는 겁니다.
전 작가는 작품을 멀리 떨어져 감상하며 작품 속, 숨겨진 부분을 찾아내고 또 이번 전시회가 작가와 관객이 서로의 세계관을 주고받는 기회가 되길 바란다는 말로 설명을 마칩니다.
다음 순서는 검정색 마스크를 착용하고 관람객들 앞에 선 코이 작가입니다. 신변 문제로 얼굴을 가리고 이름은 가명을 썼습니다. 신발을 소재로 한 설치 미술 작품을 선보였는데요. 작가의 설명, 직접 들어보시죠.
(현장음-코이) 안녕하세요. 코이라는 예명으로 작품 활동을 하고 있는 작가입니다. 제가 이번 7인전에 출품한 작품은 북한에 있는 친구 50명에게 안부를 전하는 메시지가 담겨 있는 신발 작품으로 한 작품 한 작품, 저의 친구에 대한 이야기가 담겨 있는 내용입니다. 작품을 감상하실 때 (신발) 안에 들어 있는 메시지를 보는 것도 또 하나의 재미 요소가 될 것 같습니다. 저는 이번 전시를 통해서 북한이탈 주민들이 이방인이나 고향이 다른 사람이 아니라 우리 곁에 함께하고 있는 친구들이라는 생각을 전달하고 싶었어요. 고향에 대한 그리움, 친구에 대한 그리움은 남북한을 떠나서 인간이라면 누구나 다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라고 저는 생각하고요. 저의 작품을 통해서 친구들에게 붙이지 못한 이 편지가 언젠가는 북한에 닫기를 함께 염원하고 남북한의 통합과 통일에 대해서 생각해 보는 계기가 되셨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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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순서로 강춘혁 작가가 소개되는데요. 강 작가는 관람객들이 보는 앞에서 그림을 그리는 라이브 드로잉으로 유명합니다. 또 북한의 실상을 세밀한 묘사를 통해 관객들에게 직관적으로 전달하는 실력이 뛰어나다는 평을 받는데요, 이번 전시에는 조금 재미있는 작품을 선보이게 됐다고 합니다.
예를 들어, ‘폴로’라는 미국의 유명 의류 상표명은 글자 하나를 지워 ‘포로’라는 글자로 대체됐고 폴로의 옷마다 왼쪽 가슴에 수놓아지는 상표의 로고 즉 ‘말을 탄 사람’은 ‘끌려가는 사람’의 이미지로 교묘하게 대체됐습니다. ‘끌려가는 사람’이란 탈북민들의 강제 북송을 의미하는 것이랍니다.
또 탄산 음료, 콜라를 대표하는 상표명 중 하나인 ‘펩시’는 ‘몹시’라는 글자로 대체됐는데요. 태극 상징이 연상되는 빨간색과 파란색으로 된 상표 그림 안에는 눈동자가 있습니다. 마치 무언가를 살피는 것처럼 말이죠. 강 작가는 자신의 작품을 이렇게 설명합니다.
(현장음-강춘혁) 언어유희가 있듯이 저는 시각적으로 풀어내는 사람이라서 시각 유희를 좀 섞어 봤습니다. 제가 좋아하는 브랜드의 로고를 응용해서 말장난이 섞여 있고요. 또 다른 한쪽에 있는 작품은 ‘자화상’인데요. 제가 호랑이띠입니다. 그러다 보니까 백두산 호랑이를 제 ‘자화’로 접목시켰고요. 멸종과 우리 세대에서의 멸족에 대한 내성, 이런 것들을 고민하면서 자화를 심어 봤습니다. 자세히 보면 재미있는 요소들이 꽤 많습니다. 저의 시각 유희 속에서, 보는 분들의 다른 시각으로 각각의 유회를 찾았으면 하는 바람으로 이번에 전시를 재미있게 구성하게 됐었습니다.
강춘혁 작가, 본인을 투영시켰다는 호랑이 자화상은 관람객들의 뜨거운 호응을 얻었는데요. 호랑이의 이마에 있는 검은 줄무늬는 잘 들여다보면 한자로 북녘을 뜻하는 ‘북’ 자입니다. 그 옆에 걸린 호랑이 두 마리가 힘차게 달리는 그림 속 호랑이 무늬에는 한자로 ‘남’과 ‘북’이 한 글자씩 숨어있습니다.
(현장음) (관람객) 대단하다~ 잠깐만, 이건 먹으로 어떻게 그린 거예요? 이건 종이입니까? / (강춘혁) 네. 종이입니다. 판넬에 종이를 댄 거고요. 배경은 먹물을 분사, 뿌려서 하나하나 털을 묘사했어요. / (관람객) 우와! 세필이 대단한데요. 눈이 살아 있다… 이건 뭘 의미해요? / (강춘혁) 아, 이거는 제 ‘자화’의 호랑이를 묘사한 건데요. 계속 찾고 있는 겁니다. / (관람객) 뭘 찾는 거예요? / (강춘혁) 글쎄요. 답은 찾아가겠죠. 답을 찾을 때까지…
작가가 직접 자신의 작품을 설명하는 ‘작가 도슨트’ 시간은 모두 끝났지만 관람객들의 질문은 좀처럼 끝나지 않습니다. 그중 유독 한 작품 한 작품을 정성껏 살피는 분이 있어서 다가가 봤습니다. 올해 80살, 유창종 님인데요. 코이 작가와 특별한 인연이 있어서 오늘 참석하게 됐다고 합니다.
(인터뷰-유창종) 작가 중의 한 사람이 특별한 인연이 있어요. 결혼식 때 내가 아버지가 돼서 손을 잡고 들어갔거든요. 정신적인 딸이나 마찬가지여서 전시회를 보고 응원하고 격려하기 위해서 (왔어요.) 작가 7명 모두가 공통점이 있잖아요. 탈북민이고 MZ세대의 미술 작가들이고요. 한국에 와서 이 아름다운 예술 활동을 하면서 자신의 잠재적인 능력을 펼쳐볼 수 있는 이런 전시회가 너무 아름답고 와서 작품을 꼭 보고 싶었어요. 나름대로 자기들이 그림을 그리는 방향과 의미를 조그맣게 다 써놓고 또 작품 제목에도 그림을 그리는 취지를 남겨 놨는데 깊은 의미가 있는 것 같아서 제목 하나하나도 눈여겨 보고 있습니다.
작품을 사진과 영상으로 기록하는 관람객이 있습니다. 그런데 작품 설명을 하는 도슨트를 제일 처음 진행했던 안충국 작가에게만 시선이 집중돼 있습니다.
(인터뷰-이주현) 인천에서 온 이주현입니다. 저희 남편, 안충국 작가님의 초대를 받고 왔습니다. (전시회) 열릴 때마다 초대는 받았는데 바빠서 못 왔었고 오늘이 처음… 직접 보니까 너무 멋있고 너무 뿌듯했어요. 이렇게 와서 이런 좋은 공간에 전시할 수 있어서 감사하고 또 앞으로 많은 새로 오는 탈북 청소년 친구들이 이렇게 멋있게 그림 활동을 할 수 있으면 좋을 것 같아요.
주현 씨 역시 같은 탈북민이기에 오늘 이 자리가 더 벅차게 느껴진다고 합니다. 주현 씨는 남편을 비롯한 7인의 작가 모두가 각자의 작품을 통해 자신이 겪은 아픔과 어려움을 극복하고 예술로 성장하고 꽃 피운 모습을 보여줄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하다며 환하게 웃습니다.
전시회장에는 개인적인 친분으로 참석한 사람들도 있지만, 함께 작업을 하면서 인연을 맺은 사람들도 많았는데요. 박정희 씨도 그 중 한 사람입니다.
(인터뷰-박정희) 저는 남북하나재단에서 15년 차 근무하고 있고요. 문화, 생활 업무를 총괄하고 있습니다. 오늘 여기 전시돼 있는 작가들이 저희 남북통합 콘텐츠 창작 공모 사업에 선정된 작가들이 있어서 왔습니다. 저는 이 7인의 작품을 그냥 탈북 작가들의 작품이라고 보기보다는 이분들이, 이 그림을 그릴 때 마음 심정 그거를 조금 이해하면서 보셨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작품 활동을 떠나서 저는 창작 활동은 어려움을 겪지 않고서는 좋은 작품이 나오지 않는다고 생각하거든요. 작품 활동은 본인들이 어려움을 이겨내고 극복하는 과정의 결과이기에 작품 활동을 계속한다면 꼭 그 마음이 전달될 것이다, 많은 사람들에게 전달이 될 것이라 생각합니다.
-Closing Music-
7인 7색의 탈북 MZ 작가들의 삶이 그림으로, 사진으로 그리고 설치 미술로 꽃 피웠던 자리, 꽃피기 위해 치열했고 어떤 꽃보다 아름다웠던 그들의 작품과 삶을 응원하며 <여기는 서울>, 지금까지 김인선이었습니다.
에디터: 이현주, 웹편집: 한덕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