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는 서울] 북한이탈주민의 날, 오늘은 우리가 주인공(2)
2024.07.30
안녕하세요. ‘여기는 서울’, 김인선입니다.
축하하거나 기릴 만한 일이 있을 때, 해마다 그 날을 기억하자는 의미에서 제정하는 ‘기념일’.
이날을 통해 사람들은 각 기념일의 특별한 의미를 되새기는데요. 올해부터 남한 정부는 7월 14일을 ‘북한이탈주민의 날‘로 제정했습니다. 이날은 1997년, 남한에서 ‘북한이탈주민의 보호 및 정착지원에 관한 법률’이 첫 시행된 날이기도 합니다.
<여기는 서울>에서는 서울 동대문 디자인플라자에서 열린 북한이탈주민 기념일 제정 축하 행사장을 찾았는데요, 현장에서 만난 다양한 사람들의 이야기 지난 시간에 이어 전해드립니다.
(현장음) 북한이탈 주민의 날 슬로건은 '함께 해요. 통일 미래'였습니다. 우리 다 같이 한번 외쳐볼까요? 함께 해요! 통일 미래!! (박수소리)
청와대에서 열린 기념식 행사 중계가 끝나자 행사장 중앙 무대에서는 다양한 공연이 펼쳐집니다. 무대 옆쪽으로는 탈북민 기업 또는 단체들이 마련한 공간들이 이어져있는데요. 창업한 생산품을 선보이기도 하고 활동 내용을 전시하기도 합니다.
공연을 보는 사람들 주변으로 볼거리, 체험거리를 즐길 사람들이 자유롭게 오가는 현장인데요. 이날 가장 인기있는 것은 먹거리 공간이었습니다. 맛있는 냄새에 이끌려 길게 서있는 줄 끝에 자연스럽게 자리를 잡게 되는데요. 사람은 많고 날은 무덥지만 파는 사람도, 사는 사람도 인상 쓰는 사람 한 명 없습니다.
(현장음) 가자미식해 팝니다. 쉼떡도 있고 사탕도 있어요. 빨리 사세요. / 이거 하나 먹어보면 안 돼요? / 시식해 보세요. / 맛보시고 사 가세요.
우연히 지나다 들린 사람도 있지만 일부러 시간을 내서 행사장을 찾아온 분들도 많았습니다. 수원에서 올라왔다는 62살 박기현 씨는 아버지가 개성 분으로 실향민 2세다 보니 평소 탈북민에 대한 관심이 많았다는데요. 그의 이야기 직접 들어보시죠.
(인터뷰) 열일 제치고 참석 해야겠다 싶어서 나왔어요. 제1회 행사이니까 행사가 잘 운영이 돼서 점점 더 번창해서 보람된 생활을 누리셨으면 하는 그런 바람이죠.
박기현 씨 손에는 동그란 빵이 들려 있었는데요. 행사장 곳곳에 이 빵을 먹으면서 다니는 사람들이 제법 많았습니다. 빵 파는 곳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었는데요. 판매자의 얼굴이 낯익습니다. 한 텔레비전 방송에 고정 출연자로 등장하면서 얼굴이 알려진 탈북민 이순실 씨가 운영하는 공간인데요. 가스 불 앞에서 계속해서 빵을 구워 내느라 이마에 땀이 가득인데도 연신 싱글벙글 입니다.
(인터뷰) (리포터) 돌아다니는 사람마다 이걸 들고 뭘 먹고 있던데 이게 도대체 뭐예요? / (이순실) 쌀빵이에요. 북한에서는 잘 사는 집에서 쌀을 먹잖아요? 입쌀. 하얀 쌀. (북한에서는) 이거 우리 구경만 했지 먹어보지 못했어요. 그런데 한국에 와서는 우리 탈북민들이 잘 사니까 쌀빵을 만들어 팔아요. 이게 뭐라고 할까. 소금에다가 그냥 기름에 구워내는 빵이에요. 북한 동무들이 많이 사갔어요.
평안남도 출신의 김선미 씨도 입쌀빵을 보고 걸음을 멈춥니다. 선미 씨는 올해로 한국에 온지 14년이 됐다는데요. 지금도 고향에서 먹었던 입쌀빵 기억이 또렷합니다. 순실 씨의 입쌀빵은 모양이 같지만 맛은 조금 다르다고 하는데요. 어떤 차이가 있는 걸까요?
(인터뷰) (지금 판매하는) 이거는 고급빵이죠. 북한에서는 밀가루를 기본으로 했는데 여기서는 쌀이 들어갔잖아요. 그러니까 이 입쌀빵이 더 맛있는 거예요. 배가 부른데도 먹어보니 너무 맛있어요.
또 한쪽에는 탈북민들의 정착을 돕고 지원하는 단체도 자리했는데요. 탈북민을 대상으로 영어 교육을 진행하는 비영리 민간단체 FSI도 부스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이은구 공동대표의 말입니다.
(인터뷰) 제가 아까 기념식 시작 장면을 봤는데 저희가 아는 탈북민들도 초대를 받으셨더라고요. 그런데 울고 계시는 걸 보고 ‘자유의 국가에 와서 수고했고 환영한다’라는 그런 한마디가 꼭 필요했던 게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들었고 저도 울컥했어요.탈북민들을 공식적으로 축하해 주는 날이 만들어져 기쁘고 또 저희와 같은 많은 한국 사람들이 탈북민들의 정착을 위해 함께 노력을 하고 있으니까 힘을 내서 같이 잘 살아봤으면 좋겠어요.
함경북도 온성 출신의 김노엘 씨는 탈북민을 구출하고 북한 실상을 알리는 국제기구 LINK에서 활동 중인데요. 노엘 씨는 단체가 아닌 개인적 관심으로 이날 행사장을 찾았습니다.
(인터뷰) 다양한 프로그램이 진행이 된다고 해서 어떤 게 있는지 궁금하기도 했고 또 많은 탈북인 분들이 운영하는 회사라든가 식당이라든가 여러 가지 종목들이 나온다고 해서 구경하고 싶기도 했고 혹시나 아는 사람들이 있지 않을까라는 기쁜 마음에 오게 됐어요.
하지만 노엘 씨는 ‘북한이탈주민의 날’ 지정이 마냥 좋기만 하진 않다는데 어떤 의미일까요?
(인터뷰) ‘대한민국의 날’이 있는 건 아니다 보니까 왜 ‘북한이탈주민을 위한 날’이 있는지에 대해서는 모든 사람이 한번 생각해 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그 배경이라든가 앞으로 지향하는 바는 충분히 공감하지만 이게 어떤 특별성을 띄면 안 된다는 생각이 개인적으로 있어서요. 그런데 많은 사람들한테 이렇게 뭔가 소개하고 또 알리고 공감대를 마련하는 건 필요하다고 생각해서 그냥 응원하고 지지하고 싶다라는 마음도 있고요. 같은 고향 사람들끼리 이런 자리를 통해서 연결되면 참 좋겠다는 기대도 있습니다.
탈북민이, 같은 민족이 살고 있는 남한에 정착하고 이들의 정착을 돕는 일은 어쩌면 기념일이 필요하지 않은 당연한 일이라는 말이었습니다.
행사장에는 반가운 얼굴도 보입니다. 오전에 열린 청와대 공식 기념식에서 공로상을 받은 마순희 선생인데요. 기념식이 끝나고 바로 축하 행사장을 찾았습니다. 꾸준히 탈북민들의 정착을 돕고 봉사한 그 노력을 인정받은 것인데요. 탈북민을 대표해 받은 것이라며 모두에게 공을 돌립니다.
(인터뷰-마순희) 우리가 좀 분발하고 더 열심히 살아야 되겠다는 마음을 갖게 됐어요. 정말 어제 저녁에 잠을 잘 못 잤거든요. 너무 설레고 대통령님을 이렇게 가까이서 뵙고 악수하고 이런 기회가 언제 있었겠어요 꿈도 못 꾸는 현실이었거든요. 그리고 탈북민들이 그동안에 전국 각지에서 모든 분야에서 얼마나 많은 일들을 해왔었어요. 근데 저처럼 많이 부족한 사람이 이런 상을 받아서 그분들한테 미안하기도 하고 더 열심히 살라는 격려의 격려로 받아들이겠습니다.
‘북한이탈주민의 날’이 주는 가장 큰 의미는 정부가 이런 날을 지정했다는 것 자체라고 현장에서 만난 많은 탈북민들은 말합니다. 그리고 그 동안의 고생과 노력, 새로운 땅에서 갖게 된 희망과 꿈에 대한 응원으로 받아들였습니다.
(인터뷰-한정선) 우리도 날 수 있다. 우리도 할 수 있다. 드디어 북한 이탈 주민의 날이 제정됐다. 그리고 우리가 우리만의 날을 경축할 수 있는 그런 날이 지정됐다는 게 너무 감격스러운 날이라서 감사했습니다. 너무 좋았습니다.
-Closing Music
앞으로 매년 7월 14일은 3만 4천명의 탈북민 모두가 주인공이 되는 날이 될 겁니다. 이날이 북한에 계시는 청취자들께도 희망의 메시지가 되길 바래봅니다.
북한이탈주민의 날 기념식에서 남북 청소년들의 합창을 선보였는데요. 노래 제목이 ‘자유롭고 평화로운 통일 한반도’입니다. 그 노래 전해드리면서 인사드립니다.
<여기는 서울>, 지금까지 김인선이었습니다.
에디터 이현주, 웹편집 김상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