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는 서울-브라보 마이 라이프] 통일 발걸음 (2)

서울-김인선 kimi@rfa.org
2022.0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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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는 서울-브라보 마이 라이프] 통일 발걸음 (2) ‘통일발걸음’에 참가한 남북 대학생들이 백령도 끝섬전망대 부근에서 도보 행진을 하고 있다.(RFA 자료사진)
/RFA Photo

안녕하세요. ‘여기는 서울’, 김인선입니다.

 

남한에서 건강과 장수를 위한 걷기 열풍이 불었던 시기가 있습니다. 각종 질병을 앓고 있던 사람 중 걷기 운동을 꾸준히 한 사람들의 사망위험률이 줄었다는 전문가들의 연구결과도 한몫했는데요, 지금도 걷기 운동은 남한 사람들에게 꾸준히 사랑받고 있습니다.

 

최근 들어 남한의 기업들마다 걷기운동을 홍보용으로 활용하는 사례가 늘고 있습니다. 타치폰으로 하루 평균 걸음이 7천 걸음 혹은 1만 걸음 이상으로 기록되는 고객들에게 보험료를 할인해주는 보험사도 있고, 일정 금액을 보상해주는 금융기관, 돈처럼 쓸 수 있는 포인트를 적립해주는 기업도 있습니다. 걷기운동이 개인의 건강뿐 아니라 경제적으로도 가치가 생긴 거죠.

 

지난 718, ‘통일발걸음에 참여해서 45일간의 일정으로 하루 평균 15km를 걸은 청년들이 있습니다. 이 청년들의 걸음엔 어떤 가치가 있을까요? 참여했던 청년대원들의 이야기 속에서 알 수 있는데요. <여기는 서울> 지난주에 이어 통일발걸음에 참여한 남북청년들의 이야기 담아봅니다.

 

(rfa 2017년 통일 발걸음 영상자료) 납작한 섬 하나 있습니다. 보이십니까? / . / 우측 전방에 있습니다. 김정은이 목선을 타고 바다 밖으로 나가려고 하니까 북한 주민들이 바다에 빠져가면서까지 손 한번 잡아보려 하고 마지막까지 손을 흔들었던~~  

 

사단법인 물망초에서 주최한 통일발걸음은 2014년부터 남북 청년들을 대상으로 매해 7월에 진행됩니다. 6.25 당시 격전지와 전쟁 당시의 요충지였던 곳을 걸으며 지금의 한국이 어떤 과정을 겪으며 세워졌는지 알아가는데요. 2022년 통일발걸음은 강원도 양구를 지나 고성까지 동부전선 일대를 45일 동안 둘러봤습니다.

 

예전엔 78일 일정으로 진행됐지만 코로나 여파로 기간은 3일 줄고 80여 명이었던 참가 인원도 50명으로 줄었습니다. 변함없는 것도 있습니다. 바로 통일발걸음에 참여한 학생들의 열정입니다. 하지만 준비 없는 열정은 안전사고를 유발할 수도 있기에 늘 대비를 한다는데요. 사단법인 물망초, 이재준 과장의 설명입니다.

 

(이재준) 저희가 산악지대를 걷는 일정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무릎이 좀 안 좋은 친구가 좀 있었습니다. 그래서 저희 뒤에 따라오던 응급 차량에 그 친구를 인계하고 나머지 인원을 데리고 갔던 게 기억이 나는데요. 출발 전 체력을 올리고 오라고 사전 만남을 통해 이야기를 전하지만 연령대가 대부분 20대다 보니까 본인 체력을 믿고 왔다가 좀 아프시거나 이런 경우가 발생하기도 합니다.

 

50여 청년들의 체력이 다 다르기 때문에 일정을 무리해서 진행하지는 않습니다. 많이 걷고 오래 걷는 것이 통일발걸음의 목적은 아니니까요. 코스에 따라 이동 거리는 하루 15km가 되기도 하고 20km가 되기도 하는데요. 동부전선 일정의 첫 번째 목적지는 강원도 양구군과 화천군에 걸쳐있는 파로호입니다. 6.25전쟁 당시 용문산 전투에서 육군 1개 사단이 중공군 3개 사단의 공세를 막아내고 끝까지 쫓아가 중공군을 격파한 파로호 전투를 기념한 곳이죠.

 

첫째 날은 비교적 무난한 일정이었다면, 둘째 날은 6.25 전쟁의 격전지로 알려진 DMZ 양구 펀치볼 행군으로 묘한 긴장감이 도는 일정이었습니다. 양구군 해안면 일대가 화채 그릇처럼 생겼다고 해서 유엔군은 펀치볼이라 불렀고 지금도 그 이름 그대로 전해지는데요. 이 일대는 군인들이 목숨을 내놓고 전투를 벌였던 격전지였습니다. 지금도 군데군데 지뢰가 남아있는 곳이라 해설사의 길 안내와 전문적인 설명을 들으며 이동했는데요. 지대도 높고 진흙과 자갈투성이라 청년대원들의 기억 속에 가장 힘든 행군으로 남았습니다. 남한 청년 이동현 씨의 이야기, 직접 들어보시죠.

 

(이동현) 제가 체력적으로 자신이 있는 편은 아니지만 그래도 평균 이상은 된다고 생각했었거든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되게 힘들었어요. 하지만 같이 함께했던 분들이 좋아서 힘들지만 즐겁게 활동할 수 있었습니다. / (리포터) 포기하고 싶은 마음이 들 때가 있었나요? / (이동현) 안 들었다면 거짓말 같아요. 포기하고 싶을 때가 있긴 있었거든요. 그래도 제 앞뒤로 가시는 분들이 다들 응원도 많이 해주시고 뒤에서 열심히 밀어주고 앞에서는 당겨주고 해서 그냥 끝까지 가야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 (리포터) 4 5일 일정 중에 고비는 언제였어요? / (이동현) 아무래도 2일 차요. 강원도 양구 지역에 있는 펀치볼 지형을 산악 행군 같은 느낌으로 걸었는데 끝날 듯하면서 안 끝나고 계속 오르막 내리막이 반복됐거든요. 그때가 제일 힘들었던 것 같습니다.

 

통일발걸음은 조별로 이동했습니다. 1조를 선두로 4조까지 조별로 두, 세 명씩 짝을 이뤄 줄지어 걷는 거죠. 그늘 한 점 없는 뜨거운 뙤약볕 아래 구불구불한 길을 걷거나 고지에 있는 좁은 산길을 통과해야 하기에 그냥 걷는 것도 쉽지 않습니다. 걸어야 하는 거리도 만만치 않고요. 하루 평균 15km를 걸으려면 쉬지 않고 꼬박 4시간을 걸어야 했는데요. 일상에서 매일 대중교통을 타고 이동하는 남한 사람들에게는 쉽지 않은 일입니다. 청년들은 걸으면서 같은 조원끼리 많이 친해질 수 있었다고 합니다. 탈북청년대원 김수현 씨의 말입니다.

 

(김수현) 처음 걷기 시작할 때까지만 해도 많이 안 친한 상태라 서로 말이 없어요. 그런데 좀 걷다 보니까 힘들고 지치고 지루하기도 하니까 옆에 친구한테 어디서 왔는지, 누군지, 학생인지 아니면 직장인인지 이런 대화를 하면서 얘기를 했던 것 같아요. 나중에는 동네 친구보다 더 친한 느낌이고 대화를 쉬지 않는 분들도 봤어요. 너무 친해져서요. / (리포터) 걷기도 힘들텐데 그렇게 할 얘기가 많았을까요? / (김수현) 저 같은 경우는 취업해야 되는 상황이라 취업 또는 기업 정보 이런 것에 대해서 얘기를 나눴어요. 옆에 친구랑 공감대가 형성되고 그 주제 하나로 이런저런 얘기를 계속했던 것 같아요. 몸은 계속 걷고 있지만 얘기를 계속해서 힘든 건 잊어버리고 걸을 수 있어 좋았습니다.

 

청춘들의 연애 이야기부터 학업 이야기, 취업 이야기까지 대화의 주제는 다양했고 그 이야기를 통해 서로를 조금씩 알게 됐답니다. 함께 걸은 거리만큼 남북 청년들의 마음의 거리가 좁혀졌다고 할까요? 공통된 관심사로 이제는 친한 친구가 됐고 통일발걸음을 마친 뒤에도 연락하며 지낸답니다.

 

(김수현) 모두 다 축구를 좋아해요. 그 중 한 사람은 북한에서 온 친구고, 다른 친구는 남한 친구에요. 저를 포함해서 세 명 다 축구 영상을 즐겨 보고 있더라고요. 그런 관심사들이 겹쳐서 통일발걸음이 끝난 후 서울에 와서도 계속 연락을 주고받고 일상을 공유하고 있습니다.

 

통일발걸음을 통해 남북청년들이 얻게 된 또 한 가지! 3일차 일정이었던 전투 전적비를 둘러보며 6.25전쟁에 있어 몰랐던 부분을 알게 되고 통일에 대해 좀 더 깊이 있는 생각을 갖게 됐다는 겁니다. 남한 청년 이동현 씨의 말입니다.

 

(이동현) 제가 개인적으로 제일 기억에 남는 코스는 도솔산 전투 전적비였습니다. 군 복무 했을 때 정신 교육으로만 들었던 곳을 현장에 가보니까 뭔가 몸소 느끼는 게 달랐거든요. 제가 좀 새롭게 알았다고 생각 드는 곳은 필리핀군 전투 전적비였습니다. 한국전쟁 당시에 유엔군을 비롯해 많은 국가에서 도움을 줬다는 것은 알고 있었는데, 저는 그 당시 미국이나 유럽 등에서 주로 도움을 줬다고 생각했었거든요. 그런데 그 외에 필리핀이라는 나라가 도움을 줬었다는 것을 이번 기회에 처음 알게 되었습니다.

 

한국전쟁 당시 전투 격전지였던 곳을 둘러본 남북 청년들은 서로의 출신은 달라도 평화와 통일에 대한 같은 염원을 가집니다. 동현 씨의 얘기, 좀 더 들어보시죠.

 

(이동현) 통일이라는 게 되게 먼 미래에 있을 법한 이야기라고만 생각했고 저희 세대 때는 이루기 힘들겠다는 생각했었어요. 하지만 통일발걸음을 통해 많은 분들을 만나고 이야기도 나눠보고 함께 배우다 보니까 통일은 준비하면 이루어질 수 있고 생각보다 가까이 있을 수도 있겠다는 인식의 변화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조원 중에 탈북하신 제일 큰 형님이 계신데, 그분의 집에 가서 여러 이야기를 나눴어요. 그 형님께서 사람들의 인연이 참 소중한 인연이니까 우리 인연은 오래 갔으면 좋겠다고 말씀해주셨는데 저희 조원뿐 아니라 통일발걸음의 인연들이 오래오래 갔으면 좋겠습니다.

 

-Closing Music –

 

남북청년들의 발걸음엔 ‘함께라는 가치가 담겨있었던 것 같습니다. 통일발걸음의 여정을 북한 청년들도 함께 할 수 있는 날을 기대하며 <여기는 서울> 지금까지 김인선이었습니다.

 

기자 김인선, 에디터 이현주, 웹팀 김상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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