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는 서울-브라보 마이 라이프] 내가 나누며 얻는 것들 (2)

서울- 김인선 kimi@rfa.org
2024.05.28
[여기는 서울-브라보 마이 라이프] 내가 나누며 얻는 것들 (2) 한민족 통일여성협의회 임원진들이 서울 마포구 상암동에 위치한 아동복지시설 삼동보이스타운을 찾았다.
/ RFA PHOTO

안녕하세요. ‘여기는 서울’, 김인선입니다.

 

가족을 위한 날이 유난히 많은 5! 부모님에 대한 고마움, 자녀에 대한 사랑, 스승에 대한 존경을 표하며 의미 있는 날들을 만들어 가는 분들이 참 많았는데요. 받는 사랑보다 주는 사랑으로 5월이 더 행복하다는 분들이 있습니다.

 

민간 단체 한민족 통일여성협의회 임원진들은 해마다 5월이 되면 서울 마포구 상암동에 위치한 아동복지시설을 찾아 맛있는 점심을 대접합니다. 받는 사랑보다 주는 사랑이 더 행복하다는 분들, <여기는 서울>에서 만나봤습니다. 지난 시간에 이어 전해드립니다.

 

(현장음) 먹고 싶으면 더 얘기해. 이거 줘? / 맛있게 먹어. / 참외 몇 개 줘? / 두 개요. / 맛있게 먹어. 먹고 또 먹어~

 

지난 5 11일 토요일. 한민족 통일여성협의회 임원진들이 삼동보이스타운을 찾았습니다. 부모가 없거나 가정 해체로 부모와 함께 살지 못하는 남자아이들이 생활하는 아동 복지시설이다 보니 생필품과 함께 아이들이 좋아하는 장난감과 간식도 마련했습니다. 그리고 아이들에게 줄 맛있는 점심도 준비하는데요. 오늘은 신선한 남새를 곁들인돼지고기 삼겹살 파티입니다.

 

아이들이 원하는 만큼 배식을 해주고, 맛있게 먹으라며 인사를 건네는 사람들 속에 무산 출신의 박선희 씨도 있는데요. 선희 씨는 올해 한민족 통일여성협의회 정책연구위원으로 위촉되면서 삼동보이스타운에 처음 오게 됐다고 합니다. 2008년 한국에 입국한 선희 씨에게는 고등학생 딸이 있는데, 딸이 중학생 때 협의회에서 주는 장학금을 받으며 인연이 이어져 활동하게 됐습니다.

 

부지런히, 열심히 돕겠다고 말하는 선희 씨에게 열정이 느껴집니다. 작은 체구이지만 누구보다 바지런한 선희 씨인데요, 배식까지 봉사활동을 모두 마친 후에 그녀의 이야기를 좀 더 들어봤습니다.

 

(인터뷰-박선희) 중국에서 11년이 있었어요. 오래 있었지만 그동안 네 번 북송 됐어요. 처음 북송됐을 때는 용서해서 그냥 나오고 두 번째는 단련대 가기 전에 도망쳐서 중국에 다시 왔어요. 세 번째는 단련대 생활까지 다 하고 나왔고 네 번째 북송 때도 다시 나와서 2004 4월 초에 두만강을 또 건넜어요. 매번 다시 중국으로 간 건 아이가 원인이기도 하지만 마약과도 같았어요. 북한에서 지낼 때는 갇혀 있다는 것을 몰랐는데 두만강만 건넜는데도 눈이 튀는 거예요. 그러니까 (북송돼도) 또 도망치고 또 도망치고, 결국 한국까지 오게 된 겁니다.

 

네 번의 북송. 그 과정에서 몸도 망가지고 마음의 상처도 많았을 텐데 선희 씨는 연신 웃으며 말합니다. 무척이나 긍정적이고 밝아 보이는데, 선희 씨는 처음부터 지금의 모습은 아니었다고 하네요.

 

(인터뷰-박선희) 보기엔 멀쩡해도 여러 번 북송 됐었기에 어디가 성한 데가 없어요. 처음에는 우울증이 있어서 15층 꼭대기에서 내려 뛰고 싶은 마음까지 다 들더라고요. 몇 년 동안 그랬는데 10년 넘어가니까, 이렇게 살아가지는구나하고 마음을 많이 내려놓게 됐어요. 말투는 안 변했지만 대한민국 국민이 다 된 거예요. / (리포터) 주말인데 쉬지도 못하고 힘들진 않으세요? / (박선희) 아니에요. 제가 그런 감정을 느끼면 안 오죠. 내 마음에 우러나니까 오는 거예요. 내 마음이 안 우러나면 아무 일도 못 해요.

 

선희 씨가 봉사활동에 참여하는 이유가 딸이 장학금을 받은 것에 대한 고마움 때문인지, 정책 연구위원이라는 책임감 때문인지 궁금했는데요, 둘 다 아니라고 합니다.

 

(인터뷰-박선희) 자부심인 것 같아요. 미안하다 이런 게 아니라오면 즐겁고 너무 좋은데요. (웃음) 협회에 행사 있다면 이유 불문하고 오게 돼요.

 

자부심이 있기에 그 어떤 일정보다 봉사활동이 우선이라는 또 한 사람이 있습니다. 부천시 지회장을 맡고 있는 손춘옥 씨인데요. 춘옥 씨는 자부심만큼 책임감도 크게 느낀다고 합니다. 그만큼 할 일이 많다는 의미일까요?

 

(인터뷰-손춘옥) 19년도부터 지금까지 쭉 일하고 있습니다. 통일 사업을 위해서 협회에서 운영하는 통일 글짓기 대회, 통일 포럼에 (탈북민들) 참가도 시키고 저희 (부천시) 지회에서도 자그마한 활동을 하고 있어요. 그리고 많지는 않지만 한민족 통일여성협의회에서 해마다 탈북민 자녀들에게 대학생, 고등학생, 초등학생으로 나눠서 장학금 사업을 지원하고 있는데 그 추천 사업에도 참가하고 있습니다.

 

일이 많은 건 아니지만 춘옥 씨는 자신이 하는 일에 막중한 책임감을 느낀다는데요. 그 책임감 때문에 오늘 봉사활동에도 빠질 수가 없었답니다. 안색도 좋지 않은 춘옥 씨의 모습은 누가 봐도 몸 상태가 나빠 보였는데요. 주변에서 좀 쉬라고 만류해도 점심 준비에 끝까지 참여합니다. 맡은 역할을 다 해낸 후에야 잠시 한 켠에 앉아 쉬는 춘옥 씨인데요. 그녀의 이야기를 좀 더 들어봤습니다.

 

(인터뷰-손춘옥) 어제부터 많이 아팠는데 약속한 일이기 때문에 그리고 또 아이들을 위한 일이니까 그래서 왔습니다. 책임감이 느껴지니까 이렇게 아파도 와야 되죠. 또 제가 약속한 부분이기 때문에.. 약속은 지키라고 있는 거니까요.

 

약속과 책임감은 춘옥 씨가 살아가는 데 원동력이 된다고 합니다. 건강 상태는 처음부터 좋지 않았기에 오늘 몸 상태가 안 좋은 건 큰 문제가 안 된다고 하는데요. 춘옥 씨에게는 어떤 사연이 있는 걸까요?

 

(인터뷰-손춘옥) 2008년도에 (한국에) 왔어요. 한국에 나올 때 건강 상태가 많이 안 좋았어요. 옆에서 보고고생하고 와서 얼마 못 살고 죽겠구나할 정도로요. 한국 들어올 때 간경화로 복수가 차서 임산부보다 배가 더 컸으니까그때는 너무 건강이 안 좋으니까 걸어 다닐 수가 없었어요. 그래서 계속 집에 있었죠. 한국에 들어와서 2008년부터 3년 동안은 거의 병원 생활, 병원에서 살다시피 했는데 가만 생각해 보니까 119 불러서 달마다 병원 갔더라고요. 건강이 안 좋기 때문에 저는 욕심은 아직까지도 없어요. 그래도 여기서 직책이 있으니 해보자고 이렇게 노력하는 거지.

 

몸 상태가 말이 아니었지만 병원에 다니면서 건강이 조금씩 호전됐고 춘옥 씨는 본인이 할 수 있는 일에 참여하기 시작했답니다. 하지만 2014년에 다시 간경화가 재발했고 간 이식을 해야 하는 상황이 됐습니다.

 

(인터뷰-손춘옥) 그렇다고 지나가는 사람 보고 토끼 간도 아니고.. ‘나에게 간 좀 주세요할 수는 없잖아요. 그러니까 일체 활동을 안 했어요. 병원 약만 먹고 계속 안정하고 있으니까 좀 호전되는 것 같더라고요. 그다음부터 또 움직일 만하니까 일하는데 19년도에 한민족 여성협의회에 들어오라고 권하더라고요. 인권 활동 하는데, 통일을 위한 일이라면 하지 싶어서 그때부터 계속 같이 일했죠. 통일은 언제 될지는 모르지만 고향에 가서 통일을 위해서 뭐 했냐 하면 대답할 거리는 있어야 될 거 아니에요. 형제들한테도 제가 아프다 보니 돈도 보내주지 못하고 이러고 있는데.. 그래도 그런 거는 못해도 내가 할 수 있는 거는 내 선에서 해야 하잖아. 그래서 나서게 돼요.

-Closing Music-

 

북쪽의 형제들을 위해, 얼굴은 모르지만 같은 고향 사람들인 북한 주민들을 위해 춘옥 씨가 할 수 있는 일을 찾아 하는 것인데요. 많은 탈북민들이 한국에 와서 자신을 위한 삶을 살기 시작하는데 춘옥 씨는 그런 욕심이 없는 걸까요? 나를 위해서 살고 싶다는 생각이 안 드는지 물었더니 춘옥 씨는 이렇게 말합니다.

 

(인터뷰-손춘옥) 뭐 이렇게 사는 것도 다 나를 위해서 사는 거 아니에요? 난 그렇게 생각해요. 그걸 남을 위해서 산다고 생각하면 못 살죠. 내가 말할 권리, 내가 무슨 모든 것을 주관할 권리를 가진 그 자체가 자유라고 생각해요.

어떤 삶이 자신을 위해서 사는 것일까요? 춘옥 씨의 건강이 더 이상 악화되지 않고 마음을 나누는 삶을 이어갈 수 있기를 바래봅니다. <여기는 서울> 지금까지 김인선이었습니다.

 

에디터 이현주, 웹팀 한덕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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