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여성들 고난의 행군 오늘도 계속

워싱턴-이현기 leeh@rfa.org
2021-0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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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여성들 고난의 행군 오늘도 계속 평양의 한 거리에서 여성이 두 손에 큰 포대를 들고 길을 건너고 있다.
/AP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안찬일 박사의 주간 진단’ 시간입니다. 이 시간 진행에 이현기입니다.

지난 3월 8일은 ‘국제부녀절’이었습니다. 북한 당국은 오늘 북한 사회야말로 남녀평등이 완벽하게 이룩된 사회라고 주장하고 있는데 과연 옳은 말인지, 북한 여성들은 정말로 사회적 평등을 누리며 행복하게 살고 있는지, 그러나 누가 봐도 북한 당국의 주장은 잘못된 억지라고 보여진다고 안찬일 박사가 자유아시아방송과 회견에서 밝혔습니다. 안 박사는 왜? 북한은 지난 1995년 제1차 고난의 행군이 시작된 이래 20만여 명의 여성들이 국경을 넘어 탈북하였고, 그중 2만여 명의 여성들이 한국에 정착해 살고 있다고 했습니다. 그렇다면 북한에 남겨진 1,000만 명이 넘는 여성들의 삶은 어떤지 그래서 오늘은 ‘북한 여성들의 고난의 행군은 오늘도 계속되고 있다’ 이런 제목으로 사단법인 세계북한연구센터 이사장 안찬일 박사와 함께 이야기 나눕니다.

안찬일 박사님 한 주간 잘 지내셨습니까?

안찬일: 네. 안녕하십니까! 잘 지냈습니다.

질문 1: 안 박사님도 북한에서 탈출한 탈북자의 한 사람으로 북한에 남겨진 여성들에게 인사드리는 것으로 오늘 방송을 시작하지요?

안찬일: 네. 오늘도 북한 땅에서 고생하며 살아가고 있는 1천만 명이 넘는 여성 여러분! 가슴 아프게도 여러분이 살아가고 있는 북한 땅은 삼천리 금수강산 아름답고 기름진 땅이 분명하지만, 여러분은 이 지구상에서 가장 척박한 경제환경에서 인간 이하의 고생을 하며 살고 있습니다. 21세기 오늘 지구상의 대부분 여성들이 문명의 혜택을 마음껏 누리며 살고 있지만 북한의 여성들은 하루에도 끼니를 위한 쌀을 걱정해야 하고, 또 내일은 무슨 음식으로 가족을 먹여 살려야 할까 고뇌하는 기아의 땅이 바로 북한입니다. 왜 그럴까요? 바로 북한의 정치가 잘못되고 지도자가 잘못되었기 때문입니다. 아마도 여러분께서 바깥세상을 구경할 기회가 주어진다면 그 실상의 참담함을 한 눈에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질문 2: 북한 여성들은 북한 정권 수립 초기부터 그렇게 어렵고 힘든 일을 감당하며 살아왔다고 봐야 할까요?

안찬일: 꼭 그렇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설명할 수 있습니다. 8.15광복은 북한 여성들에게도 해방의 기쁨을 가져다준 것은 분명합니다. 북한 정권이 토지개혁과 남녀평등권법령을 발표하던 1946년 당시 북한여성들도 해방의 감격을 누린 건 마찬가지였습니다. 소작농과 종놈의 자식 등 신분을 제약하던 봉건제에서 해방되었으며 자기 이름을 되찾고 노동법의 적용을 받는 등 북한 여성들은 남녀평등의 길에 들어서는 듯 했습니다. 하지만 그리 오래는 못 갔습니다. 많은 남성들이 전쟁에 나가 희생되면서 힘겨운 강제노역의 멍에가 북한 여성들의 몫이 되어버렸습니다. 한국전쟁이 끝나고 농업협동화와 천리마운동이 진행되는 ‘전투’의 나날이 시작되면서 북한 여성들은 여성의 지위를 잃어버린 채 남자와 똑같은 힘겨운 노역임무를 수행하게 되었습니다. 사실 여성 보잡이, 여성 트랙터운전수, 여성 착암공 이런 직업들은 사실 제3세계 나라 어느 곳에서도 찾아보기 어려운 여성착취 직업들이었습니다.

질문 3: 북한 여성들의 삶이 더욱 고달퍼 진 것은 고난의 행군 뒤부터였다고 하는데 어떻습니까?

안찬일: 거의 확실하다고 생각합니다. 1994년 7월 8일 김일성 주석이 갑자기 사망하였습니다. 그동안 모순투성이던 북한 사회는 한꺼번에 폭발하였습니다. 육칠십년대 그나마 북한 여성들은 사회주의 사회의 맛을 어느 정도는 볼 수 있었습니다. 비록 몸은 고달팠지만, 탁아소, 유치원에 자녀들을 맡기고 노동으로 이룬 보람을 느끼며 한때나마 ‘요람기’를 거쳤다고 할까요? 어쨌든 그 시절을 아름다운 추억으로 회상하는 북한 여성들이 꽤 있는 건 사실입니다. 하지만 그 기간은 겨우 15년 정도에 불과했습니다. 김일성 주석이 쓰러지면서 가뜩이나 위태로운 사회주의 경제도 함께 무너졌습니다. 그럭저럭 돌아가던 공장 기업소들이 멈추어 서고 줄을 서던 식량 배급소는 문을 철커덕 내려 버렸습니다.
직장에 다니던 남자들은 모두 가정에 드러누워 버렸습니다. 오죽하면 남자들이 전부 직장을 잃고 놀고먹으니 ‘집 지키는 개’라고 남편들에게 ‘멍멍이’라는 별명이 붙여졌습니다. 한 가정의 운명은 여성의 가냘픈 어깨와 연약한 손에 던져졌습니다. 여성들은 힘겹게 장사거리를 이고 지고 여기저기 쫓겨 다니며 장사를 해 식구들의 입에 풀칠하는 역사적 사명을 도맡아 나서니 그 고생이 이만저만 아니었습니다.

질문 4: 참 눈물겨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때부터 북한 여성들의 대량 탈북도 이어지기 시작했을 것 같은데 그 실상도 좀 알려주시죠.

안찬일: 1990년대 고난의 행군 이전에 간헐적인 탈북이 국경에서 이루어졌지만, 대량탈북은 분명 고난의 행군이 낳은 그야말로 20세기의 <출북굽기>였습니다. 출애굽기에 빗대서 생긴 말입니다. 국경과 맞다은 함경남북도와 양강도 등은 북한 경제붕괴의 최대 피해지역이었습니다. 군수공장마저 문을 닫는 현실에서 대관절 어느 누가 나라를 버리지 않겠습니까? 국경일대의 여성들은 중국에 가서 돈을 벌어 가족을 부양하려고 홀연히 두만강과 압록강 물에 몸을 던졌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찾아간 외국은 ‘돈벌이 천국’이라기 보다 ‘인권의 사각지대‘였습니다. “나라 없는 민족은 상가집 개만도 못하다”는 속담대로 그렇게 국경을 넘은 여성들은 여기 저기 팔려가기도 하고 다시 북송돼 북한 감옥에 같이는 처참한 신세가 되었습니다. 과거 나라 없던 식민지 시절 우리 국민들이 겪었던 수난이 북한 탈북여성들에게 그대로 재현된 것입니다. 다행스럽게도 용기를 내어 대한민국으로 입국한 여성들은 오늘 여기 한국을 ‘지상락원’이라며 행복한 남녀평등의 기쁨을 마음껏 누리고 있습니다. 3만 4000명 탈북민의 7-80%가 여성인데 아마도 신께서 북한 여성들을 대신해 그들에게 ‘축복의 기쁨’을 보상해 준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질문 5: 아 그렇군요. 그렇다면 북한에서 특별히 여성들에게만 강요된 제2의 고난의 행군은 과연 언제 끝나며 또 남녀평등의 진정한 기회를 누릴 날은 언제나 올까요?

안찬일: 북한의 고난의 행군은 오늘 제3, 제4의 연속입니다. 3대 세습의 김정은 체제가 끝나지 않는 한 북한 사회, 특히 여성들이 고통과 질곡에서 벗어날 희망은 보이지 않습니다. 그런데 김정은 체제는 핵무기를 틀어쥐고 변화의 움직임 앞에 요지부동입니다. 김정은 체제는 변해야 합니다. 지금껏 순한 양처럼 살아온 북한 여성들, 그들에게도 인내의 한계는 있습니다. 우리는 순한 양처럼 76년을 살아온 1천만 북한 여성들이 진정한 자유와 해방을 찾아 일어서라고 고무추동하고 싶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오늘 방송은 여기서 마칩니다. 감사합니다.

안찬일: 네 감사합니다. 수고 많이 하셨습니다.

MUSIC

지금까지 사단법인 세계북한연구센터 이사장 안찬일 박사와 함께 이야기 나눴습니다. 진행에 RFA 이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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