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중석의 북한생각] 선대 수령 지우기 나선 김정은
2024.07.05
북한이 본격적인 김정은 개인 우상화 작업에 나서면서 김일성과 김정일 그림자 지우기 행보를 계속하고 있습니다. 김정은이 집권을 시작한 2012년 당시만 해도 세습후계자로서 정통성 확보를 위해 김일성과 김정일의 후광을 집중 조명하면서 김씨일가 우상화작업을 꾸준히 진행하던 북한이 2-3년 전부터 김정은을 북한정권을 창출한 김일성이나 아버지 김정일을 능가하는 불세출의 영웅이라고 추켜세우고 있습니다. 북한에서 우상화의 최고 상징물이자 모든 주민과 간부들이 상시적으로 옷깃에 부착하는 김일성․김정일 초상 휘장(배지)이 최근 김정은 단독 초상 휘장으로 바뀐 사실이 확인되었습니다.
지난 5월 30일 조선중앙통신과 노동신문이 공개한 노동당 중앙위원회 제8기 제10차 전원회의 사진을 보면 참석 간부 전원이 김일성․김정일 공동 휘장 대신 김정은 얼굴이 그려진 휘장을 가슴에 달고 나왔습니다. 공식 행사에서 북한 간부들이 김정은 단독 초상 휘장을 착용한 모습이 확인된 것은 이번이 처음입니다. 초상 휘장은 북한의 대표적인 우상화 상징물로 간부들이 옷깃에 부착한 초상 휘장이 바뀌었다는 것은 김정은이 김일성과 김정일을 제치고 본격적인 우상화 대상이 되었다는 의미로 해석됩니다.
북한에서 김정은 단독 휘장이 등장한데 대해 한국 통일부 부대변인은 "경제난과 한류문화 등 외부 사조 유입으로 주민 불만이 증가하는 상황에서 내부 결속을 높이고 (김정은의) 세습통치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해 김정은 우상화를 본격화 하는 것으로 이해하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과거 김일성 초상 휘장은 집권 25년 차에 처음 등장했고 김정일 단독 초상휘장은 그의 50세 생일을 계기로 제작됐는데 김정은은 집권 10년 차에 단독 휘장의 주인공이 된 것입니다. 지난 5월에는 김정은의 대형 초상화가 평양 금수산지구 노동당 중앙간부학교 혁명사적관 외벽에 김일성·김정일의 초상화와 나란히 걸린 것이 목격되기도 했습니다.
북한은 김일성 생일인 4월 15일을 ‘태양절’로 부르면서 민족최대의 명절로 기념해왔습니다. 그런데 올해(2024년) 4월 15일 북한당국은 주민들이 신주단지처럼 모시며 요란하게 기념하던 ‘태양절’ 명칭을 삭제하고 그냥 4.15기념일로 부르도록 지시했습니다. 그동안 북한에서 김일성은 인류의 태양, 세기의 태양으로 신격화되어 왔습니다. 그런데 김일성을 상징하는 ‘태양’이라는 단어의 사용을 금지한 것입니다. 같은 하늘에 두 개의 태양이 있을 수 없으므로 현존하는 절대권력자 김정은을 김일성 대신 태양의 반열에 올리려는 의도로 풀이됩니다.
북한의 이 같은 변화는 지난 반세기 동안 김일성을 민족의 태양으로 떠받들던 북한 주민들을 혼돈스럽게 만들고 있다고 북한 현지 소식통들은 전하고 있습니다. 혁명역사교육과 사상학습을 통해 김일성을 불세출의 영웅으로 믿고 있는 주민들은 “수령님(김일성)이 있어 장군님(김정일)이 있고 장군님 있어서 원수님(김정은)이 있는 게 아니냐”면서 당국의 조치에 불만을 품고 김정은을 배은망덕한 사람으로 여긴다는 것입니다. 북한에는 여전히 김일성을 민족의 태양으로 믿고 김일성을 ‘신’ 김정일을 ‘신의 대리자’라고 생각하는 주민들이 상당수 존재한다고 탈북민들은 주장하고 있습니다.
북한을 둘러싼 대내외 사정이 어려워지고 주민들의 김씨일가에 대한 충성심이 무너지면서 4대 세습의 정당성을 확보하고 절대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김정은이 선대수령들보다 자신이 더 유능한 지도자라는 점을 부각시키고 있다고 전문가들은 분석합니다. 현지 소식통의 전언에 따르면 김정일의 생일(2월 16일)도 더 이상 ‘광명성절’이란 명칭을 사용하지 말라는 내부 지시가 있었다고 합니다. 자신만의 새 시대를 열기 위해 선대 수령들의 우상화 신화를 부정하는 행보를 보이고 있는 것입니다. 김일성, 김정일을 신격화하는 우상화 선전도 모두 거짓에 바탕을 둔 황당무계한 내용임을 잘 알고 있는 북한 선전담당 간부들이 앞으로 김정은을 어떤 방식으로 우상화 할지 궁금해집니다.
김정은은 집권하자마자 김일성이나 김정일과 달리 세습통치의 정당성을 각인시키기 위해 주민 세뇌 교육과 공포정치를 통해 자신의 권위를 강화해왔습니다. 김정은은 집권초기에 소위 백두혈통의 권위를 훼손할 수 있는 요인들을 가차없이 제거했습니다. 2013년 12월 고모부 장성택을 처형했고 2017년 2월에는 이복 형 김정남을 암살했습니다. 이밖에도 고위급 권력층들을 대상으로 처형, 오지추방, 계급 강등 등 가혹한 숙청을 통해 자신의 권력을 지켜왔습니다. 김정은이 자신의 우상화를 위해 선대 수령들과 똑같은 방식, 즉 세뇌 교육과 강압적인 우상화 선전을 시도한다면 적지 않은 반발에 부딪힐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진단하고 있습니다.
한국에서 ‘MZ세대’라고 부르는 청소년층이 북한사회에도 두텁게 형성되어 있습니다. 장마당을 통해 자본주의 시장경제를 경험하고, 남한 및 외국의 드라마나 영상매체를 접해본 북한의 청소년들이 구태의연한 세뇌교육과 우상화 선전에 동조하겠느냐고 전문가들은 반문합니다. 집권하자마자 피의 숙청을 감행하고 고위간부, 친인척을 잔혹하게 살해한 김정은을 북한주민이 과연 김일성, 김정일을 능가하는 지도자로 인정할 수 있을까요?
** 이 칼럼 내용은 저희 자유아시아방송의 편집 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
에디터 양성원, 웹편집 한덕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