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마당 돋보기] 외면 당하는 중국산 김장 재료
2024.11.08
안녕하세요? 이예진입니다. 고양이 뿔 빼고 모든 게 다 있다는 북한의 장마당, 그런 장마당에서 파는 물건 하나만 봐도 북한 경제의 과거와 현재, 미래를 엿볼 수 있다고 하는데요. 북한에만 있는 물건부터 북한에도 있지만 그 의미가 다른 물건까지, 고양이 뿔 빼고 장마당에 있는 모든 물건을 들여다 봅니다. <장마당 돋보기>, 북한 경제 전문가 손혜민 기자와 함께 합니다. 안녕하세요?
손혜민 기자: 안녕하세요?
진행자: 날씨가 쌀쌀해지면서 한국에선 김장할 채비가 시작됐는데요. 올여름 폭염과 폭우로 배춧값이 비싸져 주부들 걱정이 큽니다. 한국 정부는 비축한 농수산물을 푸는 등 김장 재료 수급 안정에 만전을 기하고 있는 상황인데요. 손 기자, 이미 김장을 담그기 시작한 북한에서도 김장 물가가 많이 올랐을 것 같은데 어떻습니까?
손혜민 기자: 북한에서도 배추와 무 값이 많이 올랐습니다. 작년에만 해도 장마당에서 가장 좋은 배추라도 1킬로 가격이 북한 돈 3천원(0.15달러) 정도 했거든요. 그런데 올해는 배추 1킬로에 평균 5천원(0.25달러)까지 올랐습니다. 한국에서는 폭염과 폭우로 배추 가격이 비싸졌지만, 북한의 경우는 환율 상승의 영향으로 평가됩니다. 이달 초 북한에서 시장 환율이 1달러에 2만원대를 기록하면서 식량과 물가가 오르기 시작하여 배추나 무 등 김장재료 가격이 덩달아 오른 것입니다.
물론 한국처럼 북한도 폭염의 영향에서 벗어나지 못합니다. 그렇지만 한국보다 북한의 평균 날씨는 덥지 않습니다. 함북도나 양강도 등 북쪽지역은 평균 온도가 더 내려갑니다. 보통 김장 배추는 8월 말에 배추씨를 뿌려 10월말에 수확하기 때문에 폭염의 피해는 크게 없었다고 합니다. 큰물 피해도 신의주를 비롯한 국경지역을 제외한 지역은 크게 없어 농사도 비교적 잘되었다고 말하는 것으로 보아 배추 농사도 잘된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김장재료 가격이 상승한 것은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인해 북러 관계가 밀착되면서 북중 무역이 경색된 영향을 꼽을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해 북한 무역의 80% 이상을 차지하고 있는 중국과의 수출입 무역거래가 코로나 이전으로 회복되지 못하면서 북한으로 유입되는 달러가 적은데요. 내수로 유통되는 달러가 급감하니 환율이 상승한 겁니다. 특히 지난 4월부터 공장 노동자의 월급이 전반적으로 20배 인상되며 국돈 유통량이 20배로 늘어나 달러를 파는 사람보다 사들이는 사람이 더 많아지다 보니 환율 상승을 부추겼고 이것이 배춧값 상승으로 이어진 겁니다. 그래서 북한 주민들은 김장용 양념 재료는 가격이 싼 중국산을 산다고 합니다.
진행자: 김장 양념 말고는 북한 내 재료로 유통이 되고 있다는 건데요. 한국에선 강원 대관령이나 경북 서안동, 전남 해남 등 주산지에서 유통된 배추가 인기가 많은데요. 북한에선 아무래도 지역간 유통에 한계가 있겠죠?
손혜민 기자: 북한에서 배추나 무는 지역 간 유통될 필요가 없습니다. 북한 경제는 시, 군 단위로 형성되어 있고, 각 시, 군에는 공장과 농촌이 균형적으로 배치되어 있거든요. 대도시라고 해도 인구에 맞게 농촌이 배치되어 배추나 무 생산이 가능하다는 말입니다. 해당 지역 농장이나 개인 텃밭에서 재배되는 건데요. 문제는 장마당에 판매하는 주체가 누구인가 하는 겁니다. 2010년대 중반만 해도 장마당에는 개인이 재배한 배추가 훨씬 많았는데, 지금은 농장에서도 운영 자금을 마련해야 하므로 장마당 판매용 김장 배추나 무 등을 재배하고 있다고 합니다. 개인이 재배한 배추나 무처럼 싱싱하고 맛있다고 하더라고요. 장마당 상품이니 농장도 이제는 정성을 들이나 봅니다.
김장용 배추는 품종에 따라 가격이 다양한데요. 배추 품종은 대청방, 중청방, 소청방으로 분류되는데, 평안남도 장마당에서 대청방 1킬로 가격은 2,500원, 중청방 1킬로 가격은 3,500원이지만, 소청방 1킬로 가격은 5천원으로 가격이 비쌉니다. 소청방 배추가 맛있긴 하지만 너무 비싸니 가난한 사람들은 대청방이나 중청방 배추로 김장을 하고요. 그것마저 사기 힘든 주민들은 논밭에서 배추 시라지(시래기)를 주워 김장을 담그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반면 장마당에서 판매하는 김장용 양념 재료는 중국산이 상당이 많다고 있습니다. 북한 농장이든 개인 텃밭이든 배추나 무를 재배하는 량보다 고추와 마늘을 재배하는 량이 훨씬 적기 때문에 중국산이 수입되는 것인데요. 가격을 본다면, 북한산 고춧가루 1킬로 가격은 내화 5만원(2.5달러), 중국산 고춧가루 1킬로 가격은 2만 5천원(1.25달러)으로 두배나 차이 납니다. 마늘도 같은데요. 북한산 마늘 1킬로에 2만 5천원이라면 중국산 마늘 1킬로는 7천원으로 확인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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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행자: 한국에서도 상대적으로 저렴한 중국산 고춧가루나 마늘, 배추 등이 많이 들어오지만 맛이나 질이 떨어져 전반적으로 선호하지는 않는 편인데요. 장마당에서 팔리는 중국산 김장 재료에 대한 북한에서의 평가는 어떻습니까?
손혜민 기자: 북한에서도 중국산 고춧가루나 마늘은 맛이나 품질에서 선호되지 않는데요. 양념 재료뿐 아니라 식품은 전반적으로 북한산이 좋은 것으로 인식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식용유, 돼지고기, 오리고기, 소고기 등은 북한산이 비쌉니다. 2000년대만 해도 북한사람들은 식품이든 옷이든 수입산이라면 무조건 고급이라는 인식이 팽배했는데요. 2010년대 김정은 정부가 출범하면서 경공업 부문에서 많은 변화가 일어나 수입산보다 국산이 좋다는 인식으로 바뀌었죠. 즉석국수라고 부르는 라면을 비롯하여 담배가 중국산을 시장에서 밀어낸 것이 대표적입니다.
마찬가지로 김장용 고춧가루와 마늘도 북한산이 좋기 때문에 가격도 비싼 겁니다. 북한산 마늘은 향기가 진해 양념에 넣으면 맛있거든요. 고춧가루도 북한산은 빨갛고 맵지만, 중국산은 시뻘겋고 덜 매워 북한산과 수입산 양념 재료 중에 어느 것을 사용하냐에 따라 김장 맛도 달라진다고 하더라고요. 하지만 돈이 없는 주민들은 가격이 싼 중국산 고춧가루와 마늘로 김장을 하고, 이마저 살 수 없는 주민들은 이삭으로 주워 온 배추 시라지를 소금에 절여 하얀 김치를 하고 있습니다.
진행자: 한국에선 원산지 표기가 의무라 대형 마트든 재래시장이든 원산지를 속이면 처벌을 받습니다. 고기나 수산물, 농산물 등 대부분 한국산 제품이 비싸면서 선호도가 훨씬 높기 때문에 중국산이 한국산으로 둔갑하는 일도 있는데요. 북한에서도 중국산보다 북한산을 더 선호한다면 이런 원산지 표기가 중요할 것 같은데, 장마당에서 원산지 표기나 확인은 어떻게 합니까?
손혜민 기자: 결론부터 말씀드린다면 아직 원산지에 대한 개념은 희박합니다. 물론 북한에서 생산된 사탕이나 과자, 빵, 담배 등 포장지에 생산지 전화번호와 상품 원재료가 기입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빵의 원료인 밀가루나 설탕 등에 대한 원산지를 표기한 식품은 찾아보기 힘듭니다. 모든 것을 북한 스스로 생산했다고 선전해야 하기 때문인데요.
이렇게 포장된 식품도 원산지가 없는데, 배추나 무 등 김장용 재료는 말할 것도 없겠죠. 평양 백화점이나 지방도시 상점에서도 배추나 무를 판매할 때 보면 대부분 비포장 상태로 판매하는데요. 한국처럼 소비자의 권리를 보호해주고 있는 소비자센터가 운영되지 못하는 제도적 문제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소비자들이 상품을 구매할 때 북한산인지 중국산인지 눈으로 보고 판단해야 하는데요. 북한산 고춧가루에 중국산 고춧가루를 절반이나 섞어 놓고 국산으로 비싸게 팔다가 구매자와 판매자 간 다툼이 일어나는 경우가 정말 많습니다.
최근 김정은 정부는 가짜 상품이나 가짜 상표가 유통되어 인민경제 질서가 혼란되는 현상을 바로 잡는다며 정보식별부호관리법(2021)과 상표법(2022)등을 발표하였는데요. 수입 상품과 식료품, 의약품, 화장품 같이 사람의 생명, 건강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상품에 정보를 식별하는 정보를 의무적으로 표기하라는 것입니다. 하지만 주민들의 생명과 건강보다는 기업과 기관, 주민 통제에 초점을 맞춘 제도라는 한계가 있습니다.
진행자: 대체 언제쯤 북한에서 국민을 위한 진짜 법이 만들어질지 의문이네요. 함께해 주신 손혜민 기자 감사합니다. <장마당 돋보기> 지금까지 이예진이었습니다.
에디터 양성원, 웹편집 이경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