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노동당 간부들에게] 시리아 알아사드 몰락에서 교훈 얻어야
2024.12.25
당 간부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지난 12월 8일 중동의 독재국가 중 하나인 시리아에서 아버지와 아들, 2대에 걸쳐 53년 동안 악정을 계속했던 바샤르 알아사드 대통령 정부가 반정부군에 의해 무너졌습니다. 알아사드 대통령은 가족을 데리고 러시아 모스크바로 망명했습니다. 시리아의 수도 다마스쿠스를 점령한 반정부군 레반트-시리아해방기구(HTS)의 지도자 아부 모하메드 알줄라니는 이렇게 선언했습니다. “시리아에서 억압받던 이들의 자유와 존엄이 회복되었다. 알아사드 치하의 시리아는 이란의 탐욕을 위한 강제농장이었다. 오늘의 승리로 고통 받던 모든 이들이 해방되었다”
당 간부 여러분! 우리는 최근 30~40년 동안 역사를 통해서 반민주적, 반인민적, 반윤리적 악정을 폈던 각국 최고지도자가 인민의 저항에 의해 권좌에서 쫓겨나던 사건을 여러 차례 목도했습니다. 1956년에는 과거 소련 공산당의 수령이자 국제공산주의운동의 위대한 지도자로 추앙받았던 스탈린의 시체를, 집권 30여 년 동안 저질렀던 독재정치를 이유로 당의 결의에 의해 모스크바 붉은광장 레닌의 묘에서 끌어내는 사건을 보았습니다. 1989년에는 루마니아 공산당의 수령이었던 차우셰스쿠가 군중대회에서 자신의 위대성을 떠들다가, 순식간에 대회에 참석했던 수만의 군중이 벌떼처럼 일어나 반발하자 놀라서 도망치더니, 루마니아 국군에 의해 체포되어 군사재판에 회부되었고 일주일만에 부부가 함께 처형된 사건도 목도했습니다. 2011년 중동에서 ‘아랍의 봄’ 민주화운동이 노도처럼 번질 때 리비아의 카다피 대통령은 인민대중의 규탄을 피해 도망가다가 반정부군에 체포되어 처형당했습니다.
당 간부 여러분! 시리아의 독재자 알아사드도 1971년부터 30년간 시리아를 통치했던 그의 부친 하페즈 알아사드가 사망한 2000년, 그는 권력을 승계하여 정치 경제 개혁을 단행하여 시리아 인민의 자유민주주의와 경제적 발전을 위한 정책을 약속했지만 그후 언제 그랬냐는 식으로 모든 약속을 뒤엎고 독재체제를 구축했습니다. 그러자 이에 저항하는 인민의 정치항쟁이 일어났고 급기야는 무장투쟁으로 발전했습니다. 특히 2011년 ‘아랍의 봄’ 시기에 그는 민주화 기류를 억제하기 위한, 전대미문의 강압 정책을 자행했습니다. 시위 군중에 대해 무차별 총격으로 많은 희생자를 내는가 하면 수만 명을 체포, 구금했습니다.
그는 체포한, 반 알아사드 군사들을 Y자형의 2개 감옥에 구금하고 2011년부터 2015년 간에 매주 50여 명씩 처형했다고 합니다. 이런 만행을 자행했으니 인민의 저항은 더욱 거세질 수밖에 없었지요. 그러자 알아사드는 다마스쿠스 근교 구타지구의 반정부군 집결지에 사린 독가스, 염소 독가스 등의 화학탄을 발사하여 500여 명의 무고한 양민을 독살했습니다. 이런 만행은 국제사회가 제1차 세계대전 이후 국제협약으로 금지한 전쟁범죄를 저지른 것입니다. 이에 격분한 자유세계 특히 미국, 영국, 프랑스가 연합하여 2018년 4월, 시리아의 그 화학무기 생산시설을 폭격, 제거했습니다. 이를 계기로 반정부군에 대한 각국의 지원이 늘어났고 그래서 이에 대응해야 할 알아사드도 외국 지원을 요청할 수밖에 없게 된 것입니다. 알아사드 대통령은 러시아에 군사지원을 요청했습니다. 그 대가로 알아사드 정권은 러시아군의 시리아 주둔과 군비행장과 군항을 제공했습니다. 이로 인해 러시아로부터 각종 재래식 무기인 탱크와 장갑차 심지어 MIG-29기 같은 100여 대의 작전 전투기 등 여러 첨단무기도 지원받았습니다.
그는 러시아뿐만 아니라 이란에도 지원을 요청했습니다. 이란의 경우 시리아에 거점을 두고 이스라엘과 싸우고 있는 헤즈볼라 무장군을 지원하기 위해 최강정예부대인 혁명수비군까지 파견했습니다. 러시아와 이란으로부터 군사지원, 경제지원을 확보한 알아사드 대통령은 몇 년 동안 반정부군과의 전투를 계속할 수가 있었습니다. 그러니 인민대중의 고통이 오죽하겠습니까? 유엔난민기구는 시리아 인구의 25%에 해당하는 500만여 명이 튀르키예, 요르단, 레바논으로 피난했다고 발표했고 그후 2024년 현재, 유럽 각국으로 들어온 난민까지 합하면 600만의 시리아 피난민이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러시아의 입장이 곤란하게 되었습니다. 바로 우크라이나에 대한 침공 때문이었습니다. 1주일 내에 우크라이나를 제압할 수 있다고 호언했던 푸틴 대통령은 2년이 넘도록 제압은 고사하고 70여만의 러시아 병력을 잃었습니다. 급해맞은 푸틴 대통령은 시리아에 용병 파견을 요청했고 알아사드는 4만 명의 용병을 러시아에 파견하기로 했습니다. 그런데 이런 푸틴-알아사드의 군사협력에도 불구하고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은 2년 10개월이 지난 지금까지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금년 6월 푸틴 대통령과 여러분 당 김정은 간에 합의 하에 여러분 당도 1만 2천여 명의 용병을 러시아에 보내게 됐지만 러시아와 우크라이나간 전쟁은 여전히 교착상태에 있습니다. 문제는 이런 상황이 된 러시아가 더 이상 시리아를 지원할 능력이 없게 되었다는 사실입니다. 시리아의 정부군이 4만이나 러시아에 용병으로 파견했으니 알아사드 대통령이 지난 20년 가까이 대치하면서 진압하지 못했던 반정부군의 공세를 어떻게 막을 수 있었겠습니까? 이 군사적 공백을 노린 반정부군의 공세는 지난 달부터 급격히 강화되었습니다. 11월 29일 반정부군은 시리아 북부의 대도시 알레포를 점령했고 12월 5일에는 하마시를, 12월 8일에는 홈스시와 수도 다마스쿠스로 진입, 점령했습니다. 이로서 부자 세습으로 53년간 시리아의 독재자로 군림했던 알아사드는 세습 독재정권을 더 이상 유지하지 못하고 무너지게 됐고 러시아 모스크바로 도망쳤습니다.
당 간부 여러분! 평양 만수대에 세운 저 높은 김일성, 김정일의 동상을 본떠서 다마스쿠스를 비롯한 시리아 곳곳에서 세웠던 그들의 동상이 인민대중의 밧줄에 목이 걸려 소리 내며 무너지는 장면을 보며 해방의 기쁨을 소리 높이 외치며 만끽하는 다마스쿠스시 시민들… 이런 역사적 심판에 대해 당 간부 여러분은 그 엄중함을 느껴야 합니다. 인민을 위한 정치, 인민대중의 안녕과 평화, 경제적 풍요를 위한 정치는 지금 여러분 당의 독재정치가 아님을, 시리아 알아사드의 몰락을 보면서 다시 한번 깨닫기를 권고합니다.
** 이 칼럼 내용은 저희 자유아시아방송의 편집 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
에디터 양성원, 웹편집 이경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