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13조치와 포전담당제의 활성화가 식량증산의 지름길

강인덕· 전 통일부장관
2021-0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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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3조치와 포전담당제의 활성화가 식량증산의 지름길 황해남도의 한 농장에서 어린이가 홍수와 태풍 피해를 입은 옥수수 밭을 돌보고 있다.
/REUTERS

당 간부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1년 중 가장 무더운 8월입니다. 다행히 금년 여름 하곡 수확은 조생옥수수나 감자 등 40만 톤 내외가 될 전망이라고 하니 듣던 중 반가운 일입니다. 이에 더하여 인민군의 전시군량미도 일부 풀었다니 당장 이 여름 안에는 부족한 대로 하루하루의 끼니는 이을 수 있게 되었다는 소식이 전해지고 있습니다. 반가운 일입니다. 그렇다고 농민들의 걱정이 말끔히 가셔진 것은 아니지요. 작년처럼 금년에도 태풍피해를 걱정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지난 7월 23일 로동신문 사설에도 지적하고 있었습니다만 “벼와 강냉이 이삭이 여물기 시작하는 8월부터 가을철 10월까지의 기간에 연이어 들어 닥칠 태풍으로 농업부문이 심한 피해를 입지 않을까? 지금 계속되는 폭염과 고온현상이 계속되며 가뭄이 닥친다면 어떻게 하나” 하는 걱정입니다.

당 간부 여러분! 더 이상 미룰 수 없이 시급한 식량문제를 검토해 봅시다. 김정은 총비서가 취임한 후 가장 먼저 추진한 국가정책 중 하나가 바로 ‘6.13조치’였습니다. ‘현실적인 요구, 협동농장원의 이해관계에 맞게 생산된 농산물의 개인분배량과 국가 수매방법을 개선함으로써 농민의 생산의욕을 발동시키겠다’는 것이 요지였습니다. 분조관리제하의 포전담당책임제 등 일련의 농업부문의 개혁을 단행하겠다고 했습니다. 이 ‘6.13조치’가 농민의 생산의욕 고취를 위한 제도변화를 의미하는 것이었다면 한편 그동안 추진했던 산발적인 농업정책을 종합적으로 체계화하는 조치로 여러분 당이 제시한 기술, 물자, 경쟁을 포괄하는 식량증산정책 그 종합판이 바로 ‘농업발전, 5대요소의 실현’이었습니다. 이 ‘5대 요소’란 무엇이었습니까? 첫째 종자와 영농기술의 개발과 보급, 둘째 비료농약과 농기계 등 농업자재생산과 그 보급, 셋째 간석지개발, 토지정리, 물길공사 등 농경지의 확대와 그 보호, 넷째 저수확지의 증산기술, 각 기관 기업소에 분양된 농경지의 증산기술보급, 가을 알곡 수확의 효율화, 다섯째 포전담당제 등 보급을 통한 식량증산경쟁의 전개와 다수확농가의 배가운동으로 생산경쟁을 적극적으로 전개한다는 것 등이었습니다.

당 간부 여러분! 이 종합적이고 체계적인 ‘농업발전 5대요소’는 2019년 말 때 공식화되어 2020년부터 농업현장에서 적용되었습니다. 과연 어떤 성과를 거두었습니까? 이 ‘5대 요소’를 적용시키자마자 작년 대홍수와 태풍으로 그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고 주장할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자력갱생 원칙이 경제발전의 기본원칙이라 하더라도 이 농업발전의 5대요소는 충분히 실시할 수 있는 문제였습니다. 특히 포전담당책임제나 농산물의 개인분배량과 국가수매방법의 변화는 자력갱생을 강조하면 할수록 더욱 확대, 강화 시켜야 할 요소입니다. 그 이유를 본 방송자는 70여 년 전 한국전쟁당시를 회상하며 특집 편집한 로동신문 7월 24일자 ‘조선중앙통신사 상보-위대한 자력갱생사에 길이 빛날 전승시대의 전설적 위훈’을 보면서 더욱 확신했습니다. 로동신문 2면과 3면 전지에 게재된 “조국해방전쟁시기 후방인물들의 간고분투, 견인불발의 영웅적 투쟁에 대하여” 이 항목의 중간 기사 ‘전쟁승리를 식량 증산으로 담보한 애국자들’의 부분을 읽어 보면서 여러분이 먼저 당시의 북한 농민들의 입장을 알아야 하지 않을까,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1950년 김일성의 6.25남침으로 시작된 한국전쟁 당시는 북한 농민들은 자유롭게 농가별로 자기 토지에서 농사를 짓던 시기입니다. 집단 농장에 통합되지 않았던 시대입니다. 따라서 농민들이 생산한 알곡을 국가수매라는 이유로 몽땅 탈취해가던 시기가 아니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당시만 해도 흥남질소비료공장에서 생산된 비료가 북한 농촌에 충분히 돌아가던 시기입니다. 이런 시대였기 때문에 농민들은 자신이 노력한 만큼 소득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이런 시기였기 때문에 농민 개개인이 분발한다면 알곡생산을 늘릴 수 있었습니다. 이 특집기사 속에 이런 말이 있습니다. “1950년도 알곡생산은 전쟁 전 최고 수확 년도인 1948년 생산수준을 훨씬 뛰어넘었으며, 1951년에 비해 1952년에는 총 파종 면적은 102%, 알곡 총 수획고는 113%로 늘어났다. 1952년 11월초 평원군의 8명의 농민들은 어려운 조건에서도 벼 정보당 8톤 이상을 생산하고 알곡 50가마니를 수령님께 전선 원호미로 올렸다”

시간관계로 ‘조선중앙통신사 생보’를 더 이상 인용하지 않겠습니다만 어떻게 전시에 북한 농민은 정보당 8톤의 알곡 생산을 달성하여 수십 가마니를 전선 지원미로 바칠 수 있었는가? 그 이유는 그만큼 농민들의 생산의욕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 생산의욕의 원천은 무엇인가? 그것은 내 땅에서 내 손으로 지은 생산물은 내 것이 되던 시대였기 때문입니다.

지금 북한 협동농장에서 정보당 8톤은 생산합니까? 겨우 그 절반인 4톤~4.5톤이 아닙니까?

당 간부 여러분! 남한 농촌은 이미 현대적 과학기술로 일반적인 영농, 목축, 양식업을 수행하고 있습니다. 남한에서는 여러분 당이 제시한 ‘농업발전 5대요소’를 1980년대에 실시하기 시작하여 지금 과학적 영농이 일반화, 보편화 되었습니다.

당 간부 여러분! 왜 여러분 당이 그처럼 강조하는 식량의 자급자족이 안 되는가? 그 이유는 농민의 생산의욕이 침체되고 영농에 필요한 비료, 농기계, 농기구 등 각종 자재공급이 안 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당이 계속 하여 핵개발과 미사일개발에 자금을 쏟아 붓는 한 경제발전은 원천적으로 정체될 수밖에 없습니다. 더구나 국제적인 제재가 계속되어 외화사정이 어려워지다 보니 이제는 장마당의 돈주를 터는데 그치지 않고 인민대중의 호주머니를 털고 있습니다. 그러니 무슨 여력으로 5대요소를 발전시킬 수 있겠습니까? 얼마 안 있어 태풍이 들어 닥칠 것입니다. 미국의 유명한 ‘우두웰 기후연구소’는 이런 기후변화로 인한 재해, 폭염, 가뭄, 홍수, 폭우, 태풍 등이 더욱 거세져 영변, 평양, 황해도 일대에 큰 피해를 끼칠 것이라고 경고하고 있습니다. 더 이상 귀중한 예산을 무모한 핵미사일 개발에 퍼붓지 말고 ‘인민대중제1주의’를 구현하기 위해 특히 시급한 식량증산을 위해 농업발전 5대요소 실현에 투입해야 합니다. 말로만 전당, 전국이 농업전선을 백방으로 지원하자고 떠들지 말고 농업과 농촌에 대규모 투자로 실질적 ‘5대요소 실현’에 나서야 할 것입니다. 이 길만이 바로 김정은 정권과 로동당을 나락에서 구하는 길이고 생존할 수 있는 방법임을 강조합니다.

** 이 칼럼내용은 저희 자유아시아방송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에디터: 오중석, 웹팀: 김상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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