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알고 봐야 재밌다] 소년시대, 남한의 ‘춤 금지령’ 시초 그려
2024.03.05
[기자] 한국 드라마의 이모저모를 알려드리는 시간, “드라마 알고 봐야 재밌다” 서울에 있는 문화평론가인 중원대 김헌식 교수와 함께합니다. 이 시간 진행에 박수영입니다.
지난 시간에 이어 쿠팡플레이 자체 제작 한국 드라마 ‘소년시대’를 함께 하겠습니다. 소년시대 드라마는 학교에서 안 맞고 사는 것이 소원인 온양 찌질이 장병태가 부여로 전학 가면서 싸움꾼 장경태로 오해받는 내용입니다. 싸움에 관해선 전혀 일가견이 없던 장병태가 장경태와 이름이 비슷하기 때문에 하루아침에 싸움꾼으로 추앙받기 시작한 건데요. 그럼 오늘은 드라마가 전하고자 한 메시지와 현실을 잘 고증한 부분 살펴보겠습니다. 오늘도 김헌식 교수님 모셨습니다.
드라마 소년시대는 당시 1989년 한국의 모습을 잘 고증했다는 칭찬을 받기도 했었는데요. 특히 당대 학교 내 폭력이나 살벌한 분위기를 잘 담아냈죠. 그럼 이런 것 외에도 현실을 잘 보여준 연출에는 어떤 게 있었을까요?
[김헌식] 여러 가지 소품 등이 많이 부각됐습니다. 예를 들면 (드라마에 등장한) 파리 끈끈이는 부엌이나 식당에서 파리채를 사용하는 것이 불편하고 위험할 수 있기 때문에 파리를 잡을 때 사용했던 겁니다. 파리가 끈끈이에 잡히면 헤어날 수 없는 물건이고요. 그다음에 보리차를 끓여서 넣어놓는 델몬트 병. 델몬트는 오렌지 주스 병인데 다 먹고 나서 보리차를 끓여서 넣어놓곤 했습니다. 그리고 파란 비닐우산이 1989년에 유행했습니다. 담배는 당시 새로 나온 ‘88라이트’ 담배가 등장했습니다. 그리고 화장실이 수세식이 아니라 일일이 이제 푸는 형태의 푸세식 화장실까지도 구체적으로 고증했었습니다.
[기자] 부여 소피 마르소 다시 말해 부여에서 가장 예쁜 학생 중 한 명으로 알려진 강선화가 ‘아산백호’행세를 하고 있는 장병태에게 반하게 되는 결정적인 장면이 있는데요. 바로 부여농고와 여상 친구들 앞에서 장병태가 박남정 가수의‘ㄱㄴ춤’을 추는 장면이죠.
[양철홍/부여농고 5인방 중 리더] 틈날 때마다 연습햐. 남자는 춤을 잘 춰야 여자들이 꼬이는 법이여.
[유승호/부여농고 5인방 중 쌥쌥이] 그려!
[부여여상 학생 1] 아, 사람들이 ‘농고, 농고’ 하는 이유가 있어. 아, 나이트를 와가지고 뭔 놈의 사물놀이를 허고 있냐.
[부여여상 학생 2] 아주 장구랑 꽹과리만 쥐여 주면 봉산 탈춤 추겄어.
[윤영호/부여농고 5인방 중 쟈니윤] 야, 이쁜이. 너희들 이쁘면 다여? 이? 말이 너무 심한 거 아니여? 이?
[장병태] 박남정 아니여? 그럼 내가 한번…
[기자] 이때 박남정의 ‘널 그리며’라는 노래가 흘러나옵니다.
(박남정의 ‘널 그리며’에 맞춰 장병태가 ㄱㄴ춤을 춘다.)
[기자] 선화는 병태의 춤을 보고 더 큰 호감을 느끼게 되는데요. 박남정의 ‘널 그리며’라는 곡과 ‘ㄱㄴ춤’은 당시 파급력은 어느 정도였나요?
[김헌식] 이때만 해도‘ㄱㄴ춤’은 초∙중∙고등학교, 대학교 학생들까지 다 따라 했었습니다. 저도 따라 했던 기억이 나는데요. 당시에 전국 디스코 경연대회에서 1등을 차지한 바 있는 기교 넘치는 춤꾼이었던 박남정이 ‘아 바람이여’가 히트한 이후 두 번째 앨범에서 바로 ‘널 그리며’를 발표하게 되는데요. ‘ㄱㄴ춤’은 손을 ㄱ, ㄴ 모양으로 턱을 왔다 갔다 하면서 고개를 흔드는 건데요. 그때 당시 KBS <가요 톱 텐>의 5주 연속 1위를 차지를 해서 골든컵을 받은 노래이고, 댄스곡의 시초라고 얘기하고 있습니다. 더욱이 박남정 가수가 단순히 춤만 잘 추는 사람으로 생각했었습니다만, 작사∙작곡할 정도로 능력까지 있었고요. 또 중고등학교 학생들이 모두 따라 하니까 학부모와 학교의 춤 금지령이 내려졌었습니다. 학생들이 공부 안 하고 춤만 춘다면서 댄스 음악을 약간 평가 절하하기 시작한 시점이 바로 이 ‘널 그리며’의 ‘ㄱㄴ춤’이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기자] 그리고 장병태를 싸움꾼 ‘아산백호’로 오해한 부여농고 5인방들의 별명도 재미있는데요. 오함마, 쌥쌥이, 쟈니윤 등 다양합니다. 각자 별명과 그 별명이 붙은 이유와 뜻 설명해 주시죠.
[김헌식] 부여농고 대표 찌질이라고 할 수 있는 ‘호떡’ 조호석 씨가 있습니다. 호떡은 쫙 누른 모습의 지짐이라고 볼 수 있겠는데요. 그 안에 설탕이 들어가는데 그 모습 자체가 널찍하게 생겼기 때문에 ‘호떡’이라고 불렀던 것 같고요. 또 부여농고 5인방 중 ‘자니윤’ 윤영호가 있습니다. 그래서 ‘아산백호’ 정보를 잘못 기억해서 오해를 일으키는 인물인데 평소에는 ‘오함마’ 강대진, ‘쌥쌥이’ 유승호와 함께 당구장 뒷골목을 다니면서 힘없는 학생들의 물건을 갈취하고 그들을 위협하는데요. 외국물 먹게 생겼지만, 토종 한국인입니다. 실제 ‘자니윤’이라는 이름은 코미디언 겸 토크쇼의 진행자입니다. 미국에서는 아시아계 최초로 서서 하는 희극인 활동을 했었습니다. 그리고 부여농고 5인방 ‘오함마’ 강대진이 있는데요. 오함마는 주먹이 쇠망치 같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입니다. 부여농고의 레슬링부 선수이기도 했습니다. 처음부터 ‘아산백호’라기엔 지나치게 어설픈 병태를 수상하게 여겨서 그에게 도전장을 내밀었다가 팔꿈치에 맞아 기절하게 되면서 오해를 굳히는 일조하게 되고요. 또 부여농고 5인방에 ‘완쓰강’ 조상우가 있습니다. 건장한 운동선수 체형인데 ‘완 펀치 쓰리 강냉이’라고 해서 완쓰강으로 줄여서 불렀습니다. 5인방 중에 가장 체구가 크고요. 부여농고 5인방 ‘쌥쌥이’ 유승호는 휘날리는 장발만큼 한없이 가벼운 존재감으로 입을 잘 놀리기 때문에 이제 쌥쌥이로 이름을 붙였습니다. 또 부여농고 불량 학생 ‘짱돌’이 있었습니다. 부여농고 5인방을 따르는 학생으로 ‘빠글이’와 함께 주로 다녔습니다. 부여농고 불량 학생 ‘빠글이’는 머리가 빠글빠글하다라는 느낌을 주는 캐릭터입니다.
[기자] 당시 미국에서의 토크쇼 진행자라든지 아니면 ‘완 펀치 쓰리 강냉이’라는 유명한 말을 사용해서 쓴 걸 보면 별명으로도 당시 상황을 잘 반영한 것 같네요. 그럼 잠시 드라마의 배경음악 듣고 돌아와서 내용 계속 살펴보겠습니다.
(소년시대 OST)
[기자] 다시 드라마 얘기로 돌아와 보겠습니다. 드라마가 1990년도 아니고 1988년도 아닌 특별히 1989년을 배경으로 설정하고 있는 이유도 있다고요?
[김헌식] 이명우 감독은 1989년 충청도를 배경으로 한 이유를 밝힌 적이 있는데요. “매체를 통해서 각종 지방의 모습을 그린 작품이 많은데 경상도, 전라도에 비해서 충청도가 덜 소개돼서 재미있겠다 싶었다”라고 생각했고 “특히 1989년은 우리나라가 올림픽을 겪은 이후에 경제성장이나 사회적 변화가 굉장히 팽창일로에 있던 시기”였죠. 더구나 “각종 부동산 경제 등이 눈부시게 발전했는데, 따라오지 못했던 게 사람들의 마음속에 움직이지 않은 정서”라고 생각하는데 “한국 지도 정 가운데 있는 내륙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리면 어떨까?” 싶었다고 합니다. 특히 열혈사제라는 드라마를 할 때 충청도 사투리를 쓰는 캐릭터가 있었는데 그때부터 충청도에 대한 관심을 갖게 됐다고 합니다. 1989년은 3저 호황이라며 엄청나게 경제성장을 했던 때이거든요. 올림픽을 통해서 경제 성장을 많이 구가했음에도 불구하고 예전의 모습을 많이 가지고 있는 곳이 어떨까 해서 충청도 중에서도 부여 지역을 중심으로 다루게 됐다고 이야기했습니다.
[기자] 소년시대 드라마의 이명우 감독은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최종화인 10화까지 봐야 드라마가 전하고자 하는 의미를 알 수 있다”면서 “기성세대에게 던지는 메시지”라고 했는데요. 그 메시지는 어떤 건가요?
[김헌식] (이명우 감독은) 중장년에게는 예전의 향수를 전해주고, 청년한테는 공감과 웃음을 선사할 수 있는 소박한 이야기를 선보이고 싶었다고 했습니다. 웹툰이나 웹소설 원작 드라마가 아니고 조금 어렵더라도 새로운 세계관과 뚜렷한 주제를 그려 낼 수 있는 작품에 몰두하고 싶었다는 건데요. 감독은 “소년시대는 소녀시대도 포함하고 있는데 누구나 소년시대를 거쳐왔고 지금은 어른이 됐지만 아직 마음속에는 그 시절 소년을 생각하고 있다”면서 “지금 청년들에게 나도 어제까지만 해도 저랬다는 공감을 줄 수 있는 시리즈가 없을까 생각을 많이 했다”고 합니다. 어쨌든 드라마는 웃기기도 하고 재미있기도 하면서 순수한 면모를 많이 보여주거든요. 그래서 사람들이 잃어버린 감성과 정서를 따뜻하게 회상해 볼 수 있고요. 맨 마지막에 약골이었던 주인공이 마침내 이겨나가는 과정이 있습니다. 그래서 무조건 강한 힘만 가지고 하는 것이 아니고 나름대로 불이익에 처했을 때 이겨내는 끈기와 정서 그리고 마음∙자세를 엿볼 수 있는 작품이 되겠습니다.
[기자] 장병태가 장경태에게 복수하기 위해 스스로 힘을 길러서 당당히 1대 1로 맞서는 장면이 나오는데요. 싸움꾼인 아산백호 장경태가 드라마 중반부부터 잃어버렸던 과거 기억이 돌아오면서 무소불위의 싸움꾼이자 공포의 대상이 됐습니다. 이 장경태에게 호되게 당한 병태가 가면을 쓰고 복수하기 위해 나타납니다. 그런데 이때 착용한 가면이 ‘청룡’ 가면이잖아요? 그런데 드라마 방영 종료일이 지난해 12월 22일로 2024년 청룡의 해를 불과 일주일여 앞둔 날이었습니다. 그래서 시청자들 사이에서는 청룡의 해를 노리고 가면을 제작한 것이 아니냐는 얘기가 있었는데요. 교수님은 어떻게 보시나요?
[김헌식] 장병태가 복수하기 위해서 ‘부여 흑거미’ 박지영에게 일종의 싸움 방법을 전수받게 되죠. 그러면서 조금씩 실력을 쌓게 되는데요. 장병태는 자기 본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청룡 가면을 쓰고 한 명씩 혼내주기 시작하는데요. 말씀하신 대로 12월 22일이 용의 해를 앞둔 상황이었기 때문에 ‘청룡의 해 때문이 아닐까?’ 생각할 수도 있는데요. 여기에 더해서 청룡이 갖는 의미가 있죠. 푸를 청(靑)자의 용 용(龍)자니까 청춘들을 상징하기도 하고요. 또 한국 전통 사상에서는 ‘좌청룡, 우백호’라고 합니다. 왼쪽에는 청룡, 오른쪽에 있는 백호라는 구도가 있는데요. 좌우에 서로 대결하는 형국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아산 백호에 대적할 수 있는 청룡이라는 캐릭터를 생각했을 때 청룡 가면을 등장시킨 건데요. 그렇지만 전통 사상에서는 좌청룡 우백호는 좌우에서 보좌하고 협업하는 것을 이상으로 삼았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백호와 청룡이 화해하고 서로 잘 어울려서 살아야 하는 것을 함의하지 않나’, ‘서로 적대적이라 하더라도 화해하고 상호 보완할 때 나라와 세상이 평화로운 법이다’는 것을 궁극적으로 지향하고자 하지 않았을까 개인적으로 생각해 봅니다.
[기자] 교수님, 오늘 말씀 감사합니다.
[김헌식] 네, 다음 시간에 뵙겠습니다.
[기자] 드라마 알고 봐야 재밌다, 오늘은 드라마 소년시대가 전하고자 한 메시지와 현실고증을 잘한 부분 짚어봤습니다. 다음 시간에도 드라마 소년시대와 함께하겠습니다..
워싱턴에서 RFA 자유아시아방송 박수영입니다.
에디터 이진서, 웹담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