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순희의 성공시대] 첫 직업이 내 마지막 직업(1)

서울-김인선 xallsl@rfa.org
2022.04.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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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순희의 성공시대] 첫 직업이 내 마지막 직업(1) 서울 종로구 광화문광장에서 종로구청 직원과 환경미화원들이 봄맞이 대청소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안녕하세요? ‘여기는 서울김인선입니다. 탈북민이 생각하는 성공은 어떤 것일까요? 이 시간에는 남한에서 살아가는 탈북민들의성공에 대한 이야기를 전해드립니다. 탈북민들의 국민 엄마, 상담사 마순희 선생과 함께 하겠습니다. 안녕하세요?

 

마순희: . 안녕하세요.

 

김인선: 한국에서는 코로나비루스의 치명률이 0.1%대를 유지하고 있고, 감기처럼 증세가 가벼워지면서 일상 회복 단계로 가고 있는데요. 지난 주말에는 봄을 즐기려는 사람들로 어깨가 부딪칠 정도로 거리가 북적였습니다. 또 식당과 술집 영업제한이 해제되면서 코로나 이전처럼 가게들도 활기가 넘쳤는데요. 그래서 그런지 요즘 사람들도 왠지 들떠 보이고 전보다 더 활력이 느껴지더라고요.

 

마순희: 맞는 말씀입니다. 요즘엔 한강공원을 비롯해서 전국의 국립공원이나 유원지, 심지어 동네 공원까지 산책하시는 분들이 엄청 많아진 것을 실감하게 되는데요. 야외 뿐 아니라 백화점을 비롯해서 크고 작은 상점가들까지 한결 활기를 띠고 고객들로 흥성거리는 모습을 보면서 조심스럽긴 하지만 코로나 이전시대로 돌아간 것 같아서 저도 마음이 괜히 설레더라고요. 오늘의 주인공도 마찬가지인데요. 최근 더 늘어난 고객들로 할 일이 많아졌지만 오히려 일할 맛이 난다는 이경희 씨입니다. 경희 씨는 1997 3월에 탈북했고 2005년에 한국에 입국했는데요. 탈북민 초기정착 교육기관인 하나원을 나온 후부터 지금까지 광주시의 한 대형 상점가에서 환경미화원으로 17년간 근무하고 있습니다. 경희 씨는 올해 나이가 70살이거든요. 나이를 먹어서도 할 일이 있다는 것이 큰 행복이라고 말하는 분이랍니다.

 

올해 나이 70

첫 직업인 환경미화원 17년째

 

김인선: 성공시대를 통해 몇 번 언급된 적이 있는데요. 2025, 불과 3년 뒤 한국은초고령사회에 진입합니다. 전체 인구에서 65세 이상의 노인 인구가 차지하는 비율을 고령화 비율이라고 하는데요. 고령화 비율이 20%를 초과하는 경우를 초고령사회라고 말합니다. 쉽게 말해 5명 중에 1명이 노인인 셈이죠. 그래서 몇 년 전부터 건강한 노년기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과 사회적 논의가 활발해지고 있는데요. 나이가 많아도 사회적 활동을 하고 일을 하는 노인이 삶에 대한 만족도가 높다는 연구결과도 있습니다. 올해 70살이 된 경희 씨, 건강만 하시다면 아직 할 수 있는 일들이 많지 않을까요?

 

마순희: , 그렇습니다. 경희 씨는 하루 8시간 동안 대형 상가건물 청소를 하는 미화원으로 근무하는데요. 힘든 줄 모르고 일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자신의 삶에 대한 만족도도 상당히 높은 편이었는데요. 경희 씨는 70이 넘은 나이에도 젊은이들과 함께 일할 수 있는 것이 너무 다행스럽고 일하는 것이 즐겁다고 하더라고요. 근로일 수가 2년으로 제한되어 있는 계약직 형태로 시작한 일이었는데, 지금까지 17년째 계속 일하고 있다는 것만으로 충분히 만족스럽다고도 했습니다.

 

내 나이가 어때서~

왕성하게 사회 활동 중인 경희 씨

 

김인선: , 두 번 계약을 연장하는 일도 쉽지 않은데 경희 씨는 지금까지 2년 마다 하는 재계약을 9번이나 하셨네요. 그 횟수와 기간만 보더라도 그동안 얼마나 사회생활을 잘 했는지 알 것 같은데요. 정착 초기에는 어떠셨나요?

 

마순희: 우리 탈북민들 거의가 그러하듯 이경희 씨에게도 한국사회 정착이 쉬운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이경희 씨는 중국에서의 삶이 너무 힘들었기에 자신을 받아 준 고마운 대한민국에 짐이 되지 않고 자신의 힘으로 열심히 살아야겠다는 각오가 더 남달랐습니다. 사실 이경희 씨는 북한에서 남들이 부러워하는 직업, 기업소의 부기로 일했습니다. 기업소의 부기라고 하면 행정, 재정, 회계 업무를 도맡아 하는 기업의 가장 중요한 사무직인데요. 경희 씨는 잘 나가는 기업의 부기로 근무했었거든요. 하지만 한국에 와서는 그런 이력이 아무 소용이 없잖아요? 회계업무든 행정업무든 관련 자격증이 있거나 관련학과 공부를 해야 했는데요.

 

이런 과정에 대한 고민을 할 새도 없이 경희 씨는 지금의 미화원 일을 시작하게 됐습니다. 많은 탈북민들이 한국에 오면 북한에서 했던 일보다 나은 일을 하고 싶어 하는데 경희 씨는 조금 다른 선택을 한 거죠. 아마도 군대에 있는 아들 걱정 때문이 아니었을까 짐작해 봅니다. 경희 씨는 어떤 마음가짐을 갖고 어떤 자세로 일하는가에 따라 남한에서의 삶이 달라진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경희 씨는 하나원을 나오면서부터 처음부터 새롭게 시작해야한다는 마음으로 할 수 있는 일부터 찾았습니다. 전라도 광주에 거주지를 배정받고 한국생활을 시작한 지 20여 일쯤 됐을 때, 탈북민들의 지역정착을 도와주는 한 봉사단체(적십자) 회원분이 대형 상가건물 환경미화원으로 일자리를 연결해 주었습니다. 그렇게 시작한 일이 지금까지 17년 동안 이어졌으니 정말 대단하다는 말이 절로 나오더라고요.

 

북한에서 잘 나갔던 경희 씨

북한 군대에 있는 아들 생각에

직업 따지지 않아

 

김인선: 한국에 오자마자 기술 등을 익히지 않고 할 수 있는 일이 청소나 식당 일이라 이런 일부터 시작하는 탈북민들이 많은 게 사실인데요. 시간이 지나면서 대학 공부도 하고 기술자격증도 따면서 많은 탈북민이 적성에 맞는 다른 일을 찾아 가잖아요. 처음 시작한 일을 이렇게 오래 하시는 분은 처음 본 것 같아요.

 

마순희: 맞습니다. 자격 요건만 갖추면 보다 안정적이고 대우가 좋은 여건에서 일을 할 수 있고 선택할 수 있는 직업도 훨씬 다양해진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뒤늦게 공부를 시작하는 탈북민도 많거든요. 게다가 탈북민들이 한국 조직문화에 익숙하지 않다 보니 함께 일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갈등이 생기는데요. 사람 관계에서 생겨난 문제를 풀지 못해 수시로 직장을 옮기는 경우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런 시간들은 탈북민이 한국에서 안정된 정착생활을 하기까지 반드시 거쳐야 하는 과정이라고 생각합니다. 수많은 시행착오를 거친 후에 자신에게 맞는 일을 찾고 자리를 잡아가는 거니까요. 사실 이경희 씨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몸을 움직여서 하는 단순한 청소 일이기에 성실하기만 하면 될 것 같았지만 의외로 정신적 스트레스가 만만치 않았다고 합니다. 경희 씨의 높은 북한식 말투를 동료들이 이해하지 못 하다 보니 사소한 일도 다툼으로 이어졌기 때문입니다. 경희 씨가 몸을 아끼지 않고 맡은 구간을 신속하고 깔끔하게, 책임성을 가지고 청소하는 것조차 동료들은 달가워하지 않았고 눈치놀음을 하게 될 때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진심은 어디를 가나 통하는 법입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경희 씨의 진실하고 성실한 태도를 동료들은 물론 회사 담당자들도 이해해 주었습니다. 덕분에 경희 씨는 일하는 것이 한결 보람차고 뿌듯했다고 합니다.

 

2년 계약직을 17년 간

계속 할 수 있었던 노하우

 

하지만 주로 새벽이나 밤에 일을 하거나 많은 사람들이 이용하는 건물 곳곳을 청소하는 일이다 보니 육체적으로 고단합니다. 오랜 기간 일한다고 급여가 많이 올라가는 것도 아니고요. 그래서 금방 그만두는 사람들도 있는데요. 경희 씨의 경우 주어진 환경에 맞추어 살아야겠다는 마음으로 다른 직장으로 옮기지 않고 동료들 간의 마찰 등 직면한 문제들을 풀어나갔습니다. 그렇게 경희 씨는 한 직장에서 묵묵히 환경미화원 일을 해낸 겁니다.

 

김인선: 그냥 해 내는 정도가 아니라 한국에 입국한 이후부터 지금까지 무려 17년이에요. 환경미화원에 대한 인식이 많이 좋아졌다고는 하지만 청소관련 일을 하다 보니 여전히 힘들고 어려운 일이라는 인식이 남아 있는데 경희 씨는 정말 한결 같으신데요. 비결이 뭘까요? 북한에서 고급인력이라고 할 수 있는 잘나가는 기업소의 회계 업무 일을 했던 경희 씨가 과거의 자신을 버리고 한국에서 잘 살아가기까지의 이야기를 들으면 알 수 있을 것 같은데요. 그 이야기는 다음 시간에 들어볼게요. 마순희의 성공시대, 오늘은 여기서 인사드립니다. 함께 해주신 마순희 선생님, 감사합니다.

 

마순희: . 감사합니다.

 

김인선: 여기는 서울. 지금까지 김인선이었습니다.

 

기자 김인선, 에디터 이예진, 웹팀 김상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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