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순희의 성공시대] 캠코더로 세상을 담는 남자(1)

서울-김인선 kimi@rfa.org
2023.11.23
[마순희의 성공시대] 캠코더로 세상을 담는 남자(1) 허영철 감독의 현장 촬영 모습.
/사진 제공 – 허영철 감독

안녕하세요? ‘여기는 서울김인선입니다. 탈북민이 생각하는 성공은 어떤 것일까요? 이 시간에는 남한에서 살아가는 탈북민들의성공에 대한 이야기를 전해드립니다. 탈북민들의 국민 엄마, 상담사 마순희 선생과 함께 하겠습니다. 안녕하세요?

 

마순희: . 안녕하세요.

 

김인선: 나이와 상관없이 과거와는 사뭇 다른 제 2의 인생을 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귀인을 만난 인연으로 새로운 삶을 시작하는 경우가 있는가 하면, 호기심에 시작한 일이나 공부가 예상하지 못한 새로운 출발을 하기도 하죠. 하지만 새로운 기회가 시작되는 그때가 언제, 어떤 방법으로 다가올지 아무도 예측할 수 없기 때문에 자신에게 다가온 기회를 잡으려면 선택과 집중을 잘 해야 합니다. 탈북민들에게는 한국 정착이 새로운 삶, 2의 인생을 시작하는 기회라고 하잖아요?

 

마순희: 맞는 말씀입니다. 우리 탈북민들에게 있어서 대한민국 정착은 새로운, 2의 인생을 시작하는 기회가 됩니다. 누구에게나 일생을 살아오면서 자신이 살아오던 삶을 어떤 형식으로든 완전히 바꾼다는 것은 정말 쉽지 않은 일인 것 같습니다. 특히 북한 주민들에겐 더 그렇죠. 새로운 삶을 기획한다는 것은 상상에 불과하다고 생각했었습니다. 하지만 우리 탈북민들에게는 그러한 상상이 기적적으로 찾아 왔고 지금까지의 삶과 완전히 다른 제 2의 인생을 새롭게 시작하게 되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우리 탈북민들은 그동안 여러 가지 제약을 받으며 살아오느라 하고 싶어도 할 수 없었던 일들이 많았기 때문에 한국에서 기쁜 마음으로 뭐든 새롭게 시작할 수도 있고, 하나하나 자신의 꿈을 키워 나가기도 하는 것입니다. 오늘의 주인공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대한민국에 입국한 이후 탁월한 선택과 집중으로 자신이 원하는 삶을 보람차게 살아가고 있는 허영철 씨인데요. 영철 씨는 2002년에 탈북하여 같은 해에 대한민국에 입국했습니다.

 

김인선: 탈북민들은 무엇인가를 스스로 결정하고 선택하는 게 처음엔 굉장히 어렵다고들 하시잖아요. 그런데 영철 씨는 선택과 집중으로 자신이 원하는 삶을 산다는 거네요. 벌써부터 영철 씨에게 고수의 냄새가 느껴지는 것 같은데요. 허영철 씨가 했던 탁월한선택이 과연 뭘까요?

 

마순희: 자신의 의사나 선택과는 전혀 상관없이 그냥 지시에 따라 움직여야 하는 삶을 살아오던 우리 탈북민들에게 선택은 정말 쉽지 않은 거거든요. 그러다 보니 자립을 위해서 취업을 준비하는 탈북민에게 상담사들이나 기관 등에서 다양한 일자리와 채용 조건, 처우 등에 대해 설명을 해주고 최종적으로 원하는 일자리를 결정하도록 하는데 자신에게 선택하라고 하지 말고 차라리 어느 걸 하라고 북한에서처럼 직업을 배치해 주었으면 좋겠다고 이야기하는 탈북민들이 상당히 많았습니다. 하지만 허영철 씨는 달랐습니다. 그의 탁월한 선택은 2003 1월 우리 탈북민들이 한국에 처음 들어와서 누구나 다 거쳐 가는 초기정착 교육기관인 하나원에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하나원에서 영철 씨는 캠코더라고 부르는 비디오 카메라를 처음 접하게 됐는데요. 한 눈에 캠코더에 마음을 빼앗겼습니다. 영철 씨가 하나원에서 지내는 동안 타 도시로 견학을 간 적이 있는데 그때 자원봉사자들이 작은 캠코더로 탈북민들의 견학 모습을 찍었고 나중에 편집까지 해서 견학 당시 영상을 보여주었던 것입니다. 작은 카메라로 영화 같은 영상을 만들 수 있다는 것이 인상적이었던 영철 씨는 자신도 캠코더로 영상을 찍고 싶다는 막연한 꿈을 갖게 됐고 하나원을 나오자마자 캠코더부터 구입했습니다.

 

김인선: 목표가 선명한 사람일수록 선택과 집중을 쉽게 할 수 있죠. 영철 씨의 경우 비디오 카메라로 촬영하는 일을 하고 싶다는 목표가 확실한 건 좋은데, 영상 촬영은 물론 편집까지 배우려면 꽤 긴 시간 교육과 훈련이 필요하거든요. 한국 오자마자 정착하기도 바빴을 텐데 어떻게 헤쳐 나갔을까요?

 

마순희: 맞습니다. 영철 씨는 영상을 향한 꿈이 컸지만 우선 대한민국에서 정착하는 것이 시급한 현실이었습니다. 탈북민 초기정착 교육기관인 하나원을 나와 부산에 거주지를 배정받고 정착을 시작하였는데 처음에는 하루 단위로 근로계약을 하고 보수를 받는 일용직 근로자로 건설현장에서 막노동 일을 했습니다. 영철 씨는 낮에 육체적으로 힘든 일이 많은 공사장에서 일하면서도 밤이면 카메라 관련 서적을 펼치며 독학으로 캠코더를 알아갔습니다. 아무리 힘들고 지친 날에도 밤마다 캠코더를 공부하노라면 힘든 생각보다 하나씩 배워간다는 성취감에 피곤한 줄도 몰랐습니다.

그러나 일용직으로 하는 공사장 일은 계속 고용이 보장되지 않기에 영철 씨는 한 가지라도 기술을 배워야겠다는 생각을 했고 자동차 정비 기술 학원에 등록했습니다. 북한에서 운전병으로 군 생활을 했었기에 자동차에 자신감이 있었습니다. 6개월 간의 교육이 끝난 후 영철 씨는 정비 관련 자격증을 2개나 취득했습니다. 자신감이 생긴 영철 씨는 취업을 하려고 정비업체에 찾아 갔다가 좌절을 경험했습니다. 정비소 사장님이자격증이 있는 사람보다 지금 당장 정비소에서 일할 수 있는 기술자가 필요하다며 거절했기 때문입니다. 정비소 사장님의 말을 듣고 영철 씨는이게 바로 자본주의구나라는 생각과 함께 앞으로는 현장에서 바로 발휘할 수 있는 기술을 익혀야 되겠다고 결심했습니다. 주중에는 기술을 익히고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주말과 야간에는 막노동을 했지만 영철 씨는 힘들다는 생각도, 세상이 원망스럽다는 생각도 들지 않았습니다.

 

김인선: 능력을 갖춘 만큼 대접 받는 게 자본주의 사회라는 것에 적응해 나가기 시작했나 보네요.

 

마순희: 맞습니다. 영철 씨는 불평불만은커녕 기술이 없어도 할 수 있는 일이 있고 나만 노력하면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이 사회가 살만한 곳이라는 생각 밖엔 없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허영철 씨는 신문에 실린 영상 교육 광고를 보게 되었습니다. 6개월 과정의 영상 교육인데, 교육 장소가 서울 강남구에 위치해 있었습니다. 하나원에서부터 영상을 배우겠다고 결심했던 영철 씨였습니다. 그는 오직 영상을 배우겠다는 일념 하나로 부산에서 무작정 서울로 올라왔습니다.

 

김인선: 원했던 만큼 얼마나 열심히 교육을 받았을지 예상이 되는데요. 영철 씨의 집은 부산이고, 교육장소는 서울이라 걱정되네요. 영철 씨가 교육과정을 무사히 잘 마칠 수 있었을까요?

 

마순희: 사실 주거지가 부산인데 서울에 와서 공부한다는 것이 많이 힘들 것 같다는 생각을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허영철 씨는 생각이 달랐습니다. 처음에는 서울에 있는 숙박업소에서 며칠 지내기도 했지만 휴게 시설과 목욕 시설을 갖춘 찜질방에 한번 가 보고서는 생각을 달리하게 되었습니다. 24시간 더운물이 나오고 잠도 잘 수 있는 시설이 잘 되어 있는 찜질방을 두고 굳이 비싼 숙박시설을 찾을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6개월 교육을 마칠 때까지 영철 씨는 거의 찜질방에서 지내다시피 했다고 합니다. 조용히 숙면을 취할 수 있는 수면실은 공부하기에도 안성맞춤이었습니다. 불리한 환경도 자신에게 유리한 환경으로 바꿀 정도로 영철 씨는 항상 모든 것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였습니다. 40이 넘은 나이에 시작한 영상 교육이 쉽지는 않았지만 영철 씨는 오히려 하나하나 배워 나가면서 희열을 느꼈다고 합니다.

 

20-30대 교육생들 속에 40대의 교육생은 영철 씨 한 사람이었습니다. 영철 씨를 지도하던 교수님도 처음에는 과연 얼마나 버티어 낼까 걱정을 했다고 하는데요. 나중에는 그의 집념과 학구열에 두 손을 들었다고 감탄을 했습니다. 사실 영상물 편집의 모든 기능들이 영어로 되어 있어서 그것을 습득하는 것은 영철 씨에게 정말 쉽지 않은 일이었습니다. , , ㄷ에 해당하는 알파벳조차 몰랐기에 영철 씨는 기계와 자판의 알파벳으로 된 기호와 기능들을 무작정 외우고 눌러 보기를 수천 번 하면서 기능을 익혀 나갔습니다.

 

김인선: 그런 과정을 거쳐 지금은 영상 카메라를 전문적으로 다루는 일을 하고 계신 거잖아요. 노력한 만큼 좋은 결과를 낼 수 있다는 걸 자신의 삶으로 보여주는 허영철 씨인데요. 그의 못다한 이야기는 다음 시간에 들어볼게요. 마순희의 성공시대, 오늘은 여기서 인사드립니다. 함께 해주신 마순희 선생님, 감사합니다.

 

마순희: . 감사합니다.

 

김인선: 여기는 서울. 지금까지 김인선이었습니다.

 

에디터 이예진  웹팀 이경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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