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순희의 성공시대] 김치 장인이 된 체조선수(1)

서울-김인선 kimi@rfa.org
2024.02.01
[마순희의 성공시대] 김치 장인이 된 체조선수(1) 청주의 한 김치공장에서 종업원들이 일을 하고 있다.
/REUTERS

안녕하세요? ‘여기는 서울김인선입니다. 탈북민이 생각하는 성공은 어떤 것일까요? 이 시간에는 남한에서 살아가는 탈북민들의성공에 대한 이야기를 전해드립니다. 탈북민들의 국민 엄마, 상담사 마순희 선생과 함께 하겠습니다. 안녕하세요?

 

마순희: . 안녕하세요.

 

김인선: . 요즘 한국 라면의 인기가 대단합니다. K-, K-드라마 등 한국 문화가 세계 시장을 누비면서 한국 라면도 흥행에 동참하고 있는데요. 지난해 한국의 라면 수출액은 최초로 10억 달러를 넘어섰고 4년 만에 약 2배 증가했다고 해요. 라면 뿐 아니라 김치와 장류의 인기도 높아지고 있고요. 라면에 김치는 환상의 궁합이라는 걸 전 세계 사람들도 알아가고 있는 것 같은데요. 김치 하면 또 탈북민을 빼놓을 수 없잖아요. 북한식 김치로 사업을 하는 분도 계시고요.

 

마순희: , 맞습니다. 김치 하면 김장전투가 가장 먼저 생각나는데요. 북한에서도 제가 살던 고향에서는 김치를 반철 농사라 부르는데요. 10월부터 이듬해 4-5월까지는 김치가 반찬의 전부라고 할 정도였기 때문입니다. 배추김치, 깍두기, 채김치, 갓김치, 무잎다리 김치 등 집집마다 고유한 맛을 자랑하면서 식구 수마다 한 독 정도씩은 다 김치를 담갔으니까 우리 탈북민들에게는 김치가 필수 식품이고 누구나 담글 줄 아는 익숙한 음식인 거죠. 그래서인지 한국에 온 탈북민들 중에는 김치로 사업을 시작한 분들도 여럿입니다. 오늘의 주인공도 김치와 관련된 탈북민 중 한 사람이라 할 수 있습니다. 1997년 북한을 탈북하여 중국을 거쳐 2007년에 한국에 입국해 여러 직업을 경험하다가 김치공장의 공장장으로 정착 성공을 이루신 강영미 씨입니다.

 

김인선: 남한이나 북한 모두 집집마다 전해져 오는 김치 맛은 좀 다르죠. 강영미 씨의 김치 맛은 어땠을지 궁금한데요.

 

마순희: 영미 씨의 김치는 시원하면서도 감칠맛이 난다고 할까요? 보통 북쪽에서는 김치 담글 때 대파를 안 넣는데 영미 씨 고향에서는 대파를 넣었고요. 결혼생활을 하게 된 청진시가 바닷가이다 보니 싱싱한 해산물이 들어간 함경도 김치까지 고루 접했다고 합니다. 나중에 중국에 가서는 자신의 손맛을 살린 김치공장을 8년 정도 직접 운영까지 했으니 영미 씨와 김치와의 인연은 무척 깊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김치와의 인연은 한국에 와서도 계속됐습니다. 우리 탈북민들이 한국에 정착하면서 가장 먼저 찾아보는 것이 자신이 북한이나 중국에서 해 왔거나 잘 할 수 있는 일이 한국에도 있는지를 찾아보고 시작하는 경우가 많거든요. 영미 씨 역시 한국에 정착하면서 다양한 일자리 경험을 통해 역시 자신이 잘 할 수 있는 일은 파악(아는 것)이 있고 경험도 많은 김치사업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던 것입니다.

 

김인선: 맞습니다. 식당 일, 청소 일부터 시작해서 컴퓨터를 배우고 다양한 자격증을 취득하고 또 뒤늦은 공부를 하면서 자신이 정말 하고 싶은 일을 찾아가는 탈북민들이 많은데요. 그 시간이 오래 걸릴수록 원하는 직업을 찾기도 전에 포기하는 경우도 생기죠. 영미 씨는 얼마나 오래, 어떤 시행착오들을 겪었을까요?

 

마순희: . 영미 씨는 비교적 빨리 하고 싶은 일을 찾았습니다. 한국에 정착한지 1년 정도 지나서 찾았으니까요. 강영미 씨는 탈북민 초기정착 교육기관인 하나원을 나와서부터 적극적으로 일자리를 찾기 시작했는데요. 정착 도우미 분들의 소개로 미싱을 하는 봉제공장에 취직했습니다.

 

김인선: 탈북 여성분들 중에는 손재주가 좋은 분들이 많더라고요. 재봉 일에 능숙한 분들도 많고요. 봉제공장에 곧바로 취직이 됐다면, 영미 씨의 실력도 꽤 좋았던 걸까요?

 

마순희: 영미 씨는 북한에서 한 번도 미싱을 다루어 본 적이 없는 완전 초보였습니다. 탈북여성들 대부분이 바느질 기계인 미싱을 잘 다룬다고 생각하는 분들이 꽤 많은데요. 실제로는 그렇지 않습니다. 미싱, 그러니까 재봉틀이 가정마다 있었던 것도 아니고, 특히 자신의 직업을 가지고 있었던 여성들은 미싱을 할 시간도, 필요도 없었습니다. 옷이 기성복으로 나오는 경우도 많고 또 양복점이 많이 있어서 필요하면 천을 사서 양복점에서 옷을 짓는 것이 일반적이기도 했으니까요. 전업주부들인 경우에 가정에서 재봉틀로 부업을 하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워낙 재봉틀 가격이 높은 편이라 구매하기도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대부분은 미싱을 하지 않게 되는데요. 영미 씨는 북한에서 리듬체조 코치였습니다. 미싱과는 거리가 먼 사람이었죠.

 

전문 체육인으로 살아왔던 영미 씨가 북한을 떠날 수밖에 없었던 것은 고난의 행군 때문이었습니다. 영미 씨는 평안남도의 대도시에서 태어나 여섯 살 유치원 시절부터 예술체조로 이름을 날린 인재였습니다. 11살 무렵 인재를 모집하러 왔던 중앙체육학원의 인재모집으로 전문체육인 생활을 시작했는데요. 학원을 졸업한 후에는 전문 리듬체조 코치로 27세 때까지는 화려한 사회생활을 이어 나갔습니다. 혼기를 꽉 채운 딸을 둔 가정이 모두 그러하듯 여기저기서 혼사 말이 들어왔고 그 중에서 영미 씨가 택한 사람은 언니의 소개로 알게 된 함경북도에서 군사복무를 하던 제대군인 청년이었습니다.

 

영미 씨는 남편을 따라 함경북도로 거주지를 옮겼고 평범한 가정주부의 삶을 살았습니다. 사랑하는 아들도 태어났습니다. 당시에는 경제적 기반이 거의 없는 상태에서 10년 군사복무를 마치고 나온 제대군인들이 많았고 살아가기 위해 여러 가지 불법적인 돈벌이들에 눈길을 돌리는 사람들도 많았습니다. 영미 씨의 남편도 국경지대로 오가는달리기라는 장사꾼들의 정보를 알게 되었다는데요. 자신은 직장에 매인 몸이라 할 수 없으니 영미 씨가 그 일을 했으면 하는 의향을 숨기지 않았다고 합니다. 영미 씨는 당시 다섯 살 밖에 안 된 어린 아들을 키우고 있었지만 가정형편을 외면할 수 없었기에 지인들과 함께 그 일을 시작했습니다.

 

김인선: 영미 씨 남편이 권한 그 일이 기대했던 결과를 안겨줄 수 있었을까요?

 

마순희: 영미 씨 부부의 기대였을 뿐이었습니다. 일을 시작한 지 얼마 안 됐을 때 큰 기대를 안고 영미 씨는 무산으로 갔습니다. 하지만 그곳에서 큰돈을 벌어 보기도 전에 사기를 당했고, 영미 씨는 빈손으로 집에 돌아갈 수 없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때 함께 갔던 친구들이 중국에 가서 한 달만 담배 따기를 하면 하려던 일보다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다는 말을 했고, 영미 씨는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중국에 들어갔습니다. 그런데 그 일이 가족과의 영영 생이별로 이어졌습니다. 거의 모든 탈북여성들이 그러하듯 돈을 벌기는커녕 인신매매로 팔려간 것입니다.

 

김인선: 어린 아들과 남편을 둔 평범한 엄마의 삶이 하루아침에 뒤바뀌었으니 얼마나 황망스러웠을까요. 중국에서의 삶은 견딜만 했을까요?

 

마순희: 누가 그러더군요. 콧구멍이 두 개라 숨 쉬고 산다고 말이죠. 몹시 답답하고 기가 참을 해학적으로 표현한 이 말이 영미 씨의 마음이었습니다. 견딜만 해서 견딘 것이 아니라 살아남기 위해서 견뎌냈습니다. 중국에서는 장가를 갈 엄두조차 못 내고 있던 중국인 남편과의 강제적인 가정생활을 강요당했지만 영미 씨는 자신의 불행과 맞섰습니다. 중국말을 악착같이 배웠고 농촌에 흔한 배추와 무로 김치공장을 해 볼 결심도 했습니다. 대부분 중국에서 한족들이 먹는 김치는 그냥 소금으로만 절여서 만든쏸차이뿐이었는데, 영미 씨는 여러 가지 양념으로 버무린 김치를 만들었고 그 김치를 맛 본 사람들은 환호했습니다. 그 모습을 본 영미 씨는 김치를 만들어서 팔면 되겠다는 생각을 했고 행동으로 옮겼습니다. 큰 돈을 들이지 않고도 김치공장을 차렸고 거의 8년 동안 돈도 적지 않게 벌었습니다.

 

김인선: 그만큼 경제적인 어려움은 없었겠지만 불안정한 신분 문제가 걱정입니다. 그래서 김치공장이 너무 잘 되는 것도 염려스러울 것 같은데요. 못 다한 영미 씨의 중국 생활과 그 이후의 이야기는 다음 시간에 들어보겠습니다. 마순희의 성공시대, 오늘은 여기서 인사드릴게요. 함께 해주신 마순희 선생님, 감사합니다.

 

마순희: . 감사합니다.

 

김인선: 여기는 서울. 지금까지 김인선이었습니다.

 

에디터 이예진웹팀 김상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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