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어진 행복에 감사하며 살자, 이정철 씨 (2)

서울-김인선 xallsl@rfa.org
2021-0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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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어진 행복에 감사하며 살자, 이정철 씨 (2) 서울의 한 아파트 공사현장 모습.
연합

안녕하세요? ‘여기는 서울김인선입니다. 탈북민이 생각하는 성공은 어떤 것일까요? 이 시간에는 남한에서 살아가는 탈북민들의성공에 대한 이야기를 전해드립니다. 탈북민들의 국민 엄마, 상담사 마순희 선생과 함께 하겠습니다. 안녕하세요?

 

마순희: . 안녕하세요.

 

김인선: 탈북민이 북한에 남아 있는 가족을 한국으로 데려오고 싶어도 저마다의 사연으로 쉽지 않은 경우도 많은데요. 한국에 입국한지 3개월 만에 브로커를 통해 가족을 데려온 사람이 있습니다. 올해 52살 된 이정철 씨인데요. 오늘은 지난 시간에 이어 정철 씨에 대한 이야기 나눠볼게요.

 

마순희: . 함경북도 출신의 이정철 씨는 한국에 먼저 정착해 있던 형님의 제안으로 탈북했는데요. 처음엔 북한에 남아있는 처와 아들 생각에 망설여졌지만 가족들 모두를 꼭 데려오겠다는 생각으로 2005, 한국땅을 밟았습니다. 정철 씨는 운 좋게도 좋은 브로커를 만났고 위험한 고비를 함께 겪으며 서로에 대한 믿음이 두터워진 사이가 됐습니다. 한국에 도착한 정철 씨는 브로커에게 아내와 아들의 탈북까지 부탁했습니다. 정철 씨가 탈북민 초기정착 교육기관인 하나원에서 지내는 3개월 동안 브로커는 정철 씨의 부탁대로 가족을 한국으로 올 수 있게 해줬고 정철 씨는 약속대로 브로커 비용을 다 셈해 주었습니다. 3개월을 사이로 가족 모두가 무사히 한국에 오게 됐기에 정철 씨는 늘 감사하는 마음으로 살았습니다. 하루 일한 만큼 돈을 받는 일용직으로 공사현장일도 했고 닭을 고아서 만든 보양음식인 삼계탕 집에서 일하며 했습니다. 이정철 씨는 하루도 쉬지 않고 열심히 일하며 한국생활의 안정을 찾아갔습니다.

 

김인선: 가족과 함께 하면서 정철 씨의 몸과 마음이 안정된 거죠. 생활이 안정되면서 집안에 좋은 일이 더 생겼잖아요?

 

마순희: 맞습니다. 한국 생활을 하면서 큰 아들과 9살 차이가 나는 둘째 아들이 태어났습니다. 기쁘기도 했지만 가장으로서 책임감도 더 커진 정철 씨는 식당 일보다 더 안정적인 회사에 입사하기로 결심했습니다. 정철 씨는 지인들의 소개로 주 5일 근무에 출퇴근 시간도 일정하게 정해져 있는 직장에 취업할 수 있었습니다. 생산직이라 일이 힘들기는 했지만 일하다가 다쳐도 회사와 사회로부터 각종 보장을 받을 수 있고 고용도 안정적인 4대보험이 적용되는 직장이라 안성맞춤이었습니다. 식당 일보다 수입도 더 좋았고 가족과 함께 할 수 있는 시간도 더 많아졌습니다. 하지만 정철 씨에게 좋은 일만 계속되지는 않았습니다. 회사에 잘 적응해서 몇 년을 근무하고 있었는데 어느 날 갑자기 예기치 못한 일로 정철 씨는 회사를 그만두게 되었습니다. 생산 현장이라 무거운 짐을 옮기는 일을 하다가 허리를 다친 겁니다.

 

김인선: 아무래도 몸을 쓰는 노동자들은 다칠 확률이 높죠. 자칫 잘못하면 사고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에 안전교육도 잘 받고 안전 장비를 잘 갖춘 후에 작업을 해야 하거든요.

 

마순희: 그러니까요. 탈북남성들만 그러는 건지, 남자들이 원래 그러는 건지 잘 모르겠지만 어지간해선 장비를 안 쓰더라고요. 정철 씨는 늘 해왔던 대로 무거운 짐을 자신의 힘으로 옮기는데 그날따라 사고가 발생했다고 합니다. 다행히 정철 씨는 척추수술도 받고 건강을 다시 회복했습니다. 하지만 정철 씨 스스로 몸을 많이 쓰는 힘든 일은 다시는 못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답니다. 정철 씨는 앞으로 어떤 일을 할 수 있을까 여러 가지로 고민하다가 화물을 운송해주는 개인 용달업을 하는 친구들을 만나게 되고 그 일이 괜찮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그래서 그동안 모았던 돈으로 1톤 트럭을 구입하여 개인 용달업을 시작했습니다.

 

식당에서 일하거나 또 회사에 다니는 것과는 달리 자신의 차로 자유롭게 활동할 수 있고 업무일정을 마음대로 잡을 수 있어서 정철 씨는 예전보다 지내기 편한 면도 있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처음에 거래처를 확보하는 것이 쉽지 않았습니다. 거래처에서 넘겨준 물건을 싣고 배송지까지 운전만 하면 되는 일로 얼핏 보면 쉬워 보이지만 고정적이지 않고 매번 운송해야 하는 물품도 달랐습니다. 정철 씨는 처음부터 의뢰하는 한 건, 한 건의 업무에 최선을 다하여 성의껏 임했고 고객과의 약속은 어떤 일이 있어도 반드시 지키면서 신의를 지켜 나갔습니다. 그러다 보니 시간이 지날수록 단골도 늘어나고 사업도 안정적으로 자리 잡혀 나가고 있다고 합니다.

 

김인선: 몸을 많이 쓰지는 않지만 운전을 오래 하면 허리에 무리가 올 수 있거든요. 정철 씨 몸 상태를 고려할 때 괜찮을까 염려되는데요?

 

마순희: 역시 예리하시네요. 운전하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고 합니다. 정철 씨는 다쳤던 허리로 무리하게 장시간 운전을 하다 보면 통증이 느껴졌고 그때마다 아내 몰래 파스를 붙이거나 허리보호대를 하며 견뎠습니다. 원래 정철 씨의 아내도 일을 했었는데 둘째 출산 후에 건강이 안 좋아서 경제활동을 못 하게 됐다고 합니다. 정철 씨 아내는 늘 혼자 애쓰는 정철 씨를 보면서 미안해하고 걱정하면서 조금이라도 가정에 보탬이 되려고 짬짬이 시간제 부업을 하고 있었기에 정철 씨가 더 통증을 참았던 것 같습니다. 무엇보다 매일 장거리 운전을 하는 것도 아니고 운행한 거리가 멀수록 보수가 올라가기 때문에 정철 씨는 견딜 수 있었다고 합니다.

 

김인선: 화물차를 이용해서 개인 사업을 하는 분들은 일을 한 만큼 버니까 밤샘 운전하는 분들도 계시더라고요. 허리통증까지 참으면서 일한 정철 씨, 요즘은 어떻게 지내고 계실까요?

 

마순희: 수입이 일정하지 않다는 단점이 있지만 정철 씨의 경제사정은 괜찮은 편입니다. 집도 좀 넓은 곳으로 이사를 했고 아내와 두 아들과 함께 크게 걱정하지 않고 살고 있으니까요. 또 트럭을 구입할 때에도 한 푼이라도 대출, 그러니까 은행에 돈을 빌리는 것을 생각해보지 않았다는 정철 씨입니다. 영업을 하거나 사업을 하는 분들은 물론, 일반적으로 집을 살 때도 부족한 돈은 은행에서 적은 이자로 돈을 빌리는 경우가 많잖아요. 그래서 사람들은 정철 씨가 참 대단하다고 말한다고 합니다. 하지만 정철 씨는 이런 이야기를 합니다. 지금까지 배운 것, 할 줄 아는 것이 운전직이라 이 일을 하고는 있지만 회사에 다니며 꼬박꼬박 월급을 받는 것이 더 나을 것 같다고 말입니다.

 

김인선: 회사에서 꼬박꼬박 월급 받던 직장인들이 자기 사업하겠다고 회사 때려치우고 나와서 제일 많이 하는 말이 바로 그 말이라고 하거든요. 정철 씨도 남한사람 다 되셨네요.

 

마순희: 그렇죠. 그런 말을 하면서도 정철 씨는 또 하루를 열심히 살아내고 있으니까요. 그리고 시간만 되면 다른 사람들을 돕는 봉사활동에도 열성적으로 참여하고 있습니다. 정철 씨는 자신이 잘 정착할 수 있게 된 데에는 먼저 사회에 나온 탈북 선배들의 도움이 많았다고 하더라고요. 어려울 때마다 서로 마음을 나누며 조언도 해 주고 친목도 도모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항상 고맙게 생각하고 있고 자신도 후에 나온 탈북후배들과 어려운 이웃들을 위해 도울 수 있는 일이라면 늘 발 벗고 나선다는 정철 씨입니다.

 

이정철 씨가 한국에 온 지도 올해로 16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습니다. 큰아들은 고등학교를 졸업했고 작은 아들은 올해 13, 초등학교 6학년입니다. 두 아들이 건강하게 자라는 것만으로 만족하며 산다는 정철 씨인데요. 안타깝게도 금년 3월에 척추디스크가 다시 발병해 재수술을 받고 지금은 안정을 취하고 있는 중입니다. 정철 씨는 앞으로 운전 일을 정리하고 다른 일을 해 볼까 생각 중이라고 하더라고요. 고등학교를 졸업한 큰 아들과 함께 가족이 함께 할 수 있는 장사를 준비할 것 같은데 어떤 일을 하든지 지금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앞으로도 변함없이 더 나은 내일을 위해 힘차게 달리시기를 응원하겠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건강관리에 더 힘써서 하루 빨리 완쾌하시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김인선: 다른 사람의 행복만 커 보이고 정작 자신의 행복을 모르는 경우가 많은데요. 정철 씨처럼 늘 감사한 마음으로 살아가면 좋겠습니다. 앞으로 하게 될 새로운 사업도 성공하시길 바랄게요. 마순희의 성공시대, 오늘은 여기서 인사드립니다. 함께 해주신 마순희 선생님, 감사합니다.

 

마순희: . 감사합니다.

 

김인선: 여기는 서울. 지금까지 김인선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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