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현우의 블랙北스] 서창식 쿠웨이트 대사 퇴출 막전막후
2024.10.23
안녕하세요. 류현우의 블랙북스, 진행을 맡은 목용재입니다. 지난주 방송에서는 북한 당국이 해외에 파견된 다양한 분야의 인력들에 핵개발과 관련한 자료 수집, 이른바 ‘융성자료’ 수집을 강요하고 있다는 내용 전해드렸는데요. 오늘은 북핵으로 인해 국제적 비난을 현장에서 감당하고 있는 외교관들의 고충을 들어보겠습니다. 오늘도 류현우 전 쿠웨이트 주재 북한 대사대리 나오셨습니다.
[진행자] 북한 외교관들은 북한의 핵 개발에 대한 국제사회의 비난과 비판을 온몸으로 막고 있는데요. 북핵에 대한 외교관들의 생각은 어떻습니까?
[류현우] 이것은 너무 창피한 일이라 그 어느 곳에서도 이야기하지 않았던 내용인데요. 2017년 9월 서창식 당시 쿠웨이트 주재 북한대사가 주재국 외무성 아시아담당 부상의 긴급 호출을 받았을 때였습니다. 당시 서창식 대사가 느낌이 이상하다며 저와 함께 가자고 말하더군요. 서창식 대사는 영어가 유창했지만 (쿠웨이트에서는) 대체로 아랍어를 구사하는 서기관을 데리고 다녔습니다. 북한에서는 2인 1조의 대외활동 규정이 있기 때문에 공식적인 장소에는 2명이 동행하게 됩니다. 그날 따라 대사가 제 방에 찾아와 “아랍어 통역은 동무가 맡으면 되니 자기와 함께 가자”고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이상한 생각이 들어 대사에게 무슨 일이냐고 물었습니다. 대사는 “8월 말 북한 외교관을 축소할데 대한 쿠웨이트 정부의 공식 각서를 받았을 때 느낌이 안 좋았는데 오늘 쿠웨이트 외무성 부상이 긴급 호출을 하는 것을 보니 무슨 중대 발표가 있을 것 같다”는 것이었습니다. 서 대사는 “동무와 같이 있으면 즉석에서 토의도 할 수 있지 않겠냐”라며 동행을 요청한 것이었습니다. 쿠웨이트 외무성 아시아담당 부상의 집무실에 들어가니 아시아국 부국장, 북한 담당 과장, 담당자 등이 앉아있었는데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쿠웨이트 아시아담당 부상이 서 대사가 한 달 이내로 자국을 떠나줄 것을 요구하는 각서를 서 대사에게 전달했습니다. 쿠웨이트 외무성 부상은 “쿠웨이트는 유엔의 수혜를 받은 국가로서, 또 다음해부터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비상임이사국으로 선출된 나라로서 유엔 안보리 결의를 책임 있게 이행해야 할 의무를 가지고 있다”며 “많은 고민 끝에 유엔 안보리의 지적대로 부득불 북한 대사를 추방하는 조치를 취하게 되었다”고 말했습니다. 2017년에 들어와 김정은 노동당 총비서는 핵실험, 탄도미사일 시험 등 핵개발에 올인하면서 미친듯이 폭주했습니다. 그 결과로 유엔 안보리의 포괄적인 대북제재가 연이어 발의됐고 북한은 국제무대에서 이른바 ‘왕따’로 전락했습니다.
[진행자] 당시 북한의 핵실험으로 인해 쿠웨이트 북한 대사가 퇴출됐던 현장 상황에 대해서는 처음 듣는 것 같은데요. 당시 서창식 대사의 반응은 어땠나요?
[류현우] 외무성 부상의 말을 들은 서창식 대사의 얼굴이 새빨개지기 시작했습니다. 자기가 추방당한다고 생각하니 어이없고 분했던 것입니다. 그는 “우리는 미국과 그 추종세력들이 채택한 불법무효한 결의안을 인정하지 않는다. 우리는 쿠웨이트에 돌 하나 던지지 않았고 쿠웨이트의 이익에 그 어떤 피해도, 침해도 하지 않았다. 그런데 쿠웨이트는 우리를 반대하여 외교관 추방, 대사 추방과 같은 악의적인 조치를 취하고 있다. 당신들이 유엔 안보리의 부당한 조치에 편승해 우리 국가에 대한 적대적 입장을 취했기 때문에 우리도 이에 상응한 조치를 취할 것이며 톡톡히 계산할 것이다. 우리의 핵은 우리 국가의 자주권을 수호하기 위한 보검이다. 우리는 절대로 핵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미국이 우리의 제도를 없애려고 핵으로 우리를 위협하기 때문에 우리는 부득불 우리의 생존권과 자주권을 지키기 위해 핵을 가졌다. 미국이 핵을 휘두르며 다른 나라들을 위협하던 시대는 이미 지났다”며 소리치며 열을 올렸습니다. 그런데 이 순간 쿠웨이트 외무성 부상도 격분한 것 같았습니다. 갑자기 “스톱, 스톱”하더니 대사의 말을 멈춰 세웠습니다. 그는 “우리가 당신네 나라에 선전포고를 했습니까? 아니면 당신네 사람들을 학살했습니까? 왜 그렇게 상대방에게 무례하게 대합니까? 당신들은 유엔 회원국이 아닙니까? 우리는 유엔 회원국으로서 유엔 안보리의 결의를 성실히 이행할 뿐입니다. 현재 당신들에 대한 제재 조치는 유엔 안보리에서 결의된 내용들입니다. 그러니 오늘의 문제는 유엔과 귀국과의 문제입니다. 유엔에 항소하고 유엔 안보리가 그 결의를 철회하도록 해결한다면 우리는 언제든 귀국의 대사를 환영합니다. 당신들과 가장 가까운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인 중국과 러시아마저 이 결의를 발의하는데 찬성했습니다. 그러니 우리한테 화내지 마세요”라고 이야기했습니다. 그리고 “오늘은 이만합시다. 저는 다음 일정이 있어 나가봐야 하겠습니다. 그러니 자리를 비워주십시오. 안녕히 가십시오”라며 그 자리를 마무리를 했습니다. 한마디로 이제는 통보가 끝났으니 나가라는 이야기였습니다. 결국은 2017년 6차 핵실험, ICBM(대륙간탄도미사일) 발사 이후 유엔의 연이은 대북제재 결의로 북한은 국제사회에서 완전히 고립되고 말았습니다. 그에 따른 부담감은 외교관들의 몫이 되고 말았습니다.
[진행자] 북한이 핵을 개발하는데 있어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했던 인물들도 짚고 넘어가야 할 것 같은데요. 어떤 인사들이 있는지요?
[류현우] 북한이 핵개발을 하는데 핵심적인 역할을 했던 인물은 국내적으로는 2014년 사망한 전병호 노동당 군수공업담당 비서와 홍승무 군수공업담당 제1부부장입니다. 그리고 북한 핵개발에 가장 큰 기여를 한 사람은 외국인으로서 파키스탄의 핵물리학자 압둘카디르 칸 박사가 있습니다. 북한과 파키스탄 사이에 군사적 협력관계는 1990년대 초부터 시작되었습니다. 파키스탄의 칸 박사가 1991년 처음으로 북한을 방문했고 그 이후로 13차례 방문했습니다. 물론 모두 비밀리에 방문했습니다. 1994년 당시 파키스탄 총리였던 베나지르 부토의 공식 방북, 1997년 파키스탄군 총참모장의 방북이 이뤄지면서 양국의 군사협력이 매우 활발히 진행되었습니다. 그리고 전병호 비서도 1996년 비밀리에 파키스탄을 방문했습니다. 이때 북한이 파키스탄으로부터 우라늄농축기술과 원심분리기기술을 전수받았고 파키스탄은 북한으로부터 탄도미사일 기술을 받았습니다. 북한과 파키스탄이 핵과 미사일 기술을 서로 맞바꾼 것입니다. 제가 알기로는 북한이 칸 박사로부터 원심분리기 설계도면은 물론 T1형 원심분리기 몇 십대를 견본으로 받은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사실 북한이 핵을 가진 데는 파키스탄의 책임도 크다고 할 수 있습니다. 전병호는 오랫동안 군수공업담당 비서를 하면서 북한의 핵무기 생산을 지휘한 핵심 인물이었습니다. 그리고 군수공업부 제1부부장인 홍승무는 현재 북한 핵개발을 전담해보는 총책임자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영변 핵단지와 핵시설 등 모든 핵 관련 문제는 그가 총괄해보고 있으며 관련 업무를 김정은에게 직접 보고하고 결론을 받아 집행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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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행자] 또한 핵 개발에는 막대한 자금이 소요됩니다. 어느 정도의 국가예산을 핵 개발에 쏟아 붓고 있다고 봐야 할까요?
[류현우] 네. 핵개발과 관련된 자금은 김정은이 직접 관할하고 있습니다. 제가 시리아에서 외교관으로 근무할 때 시리아에는 노동당 군수공업부 산하 광업개발총회사와 23지도국(전 창광은행) 대표부 일꾼들도 상주하고 있었습니다. 특히 은행 쪽 업무를 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자기들이 버는 외화는 모조리 핵개발에 쓰이는데 어느 분야에 어느 정도의 자금이 들어가는지 구체적인 내용은 모른다고 합니다. 벌어들인 외화는 모두 군수공업부문 은행, 즉 23지도국을 통해 김정은에게 올라가고 그 돈을 김정은이 직접 핵 프로그램에 할당한다고 합니다. 군수공업 부문에 쓰이는 돈은 군수부문 외화벌이 기관들에서 보장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핵프로그램 자체는 김정은이 직접 관장하고 있습니다.
[진행자] 이런 배경에서 북한은 그동안 치밀하게 핵보유를 위한 행보를 보여왔던 것인데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비핵화협상 때마다 북한에 비핵화 의지가 있었다고 주장하는 인사들이 상당히 많습니다. 정말 북한이 협상이 진행될 때에는 비핵화 의지가 있었다고 봐야할까요?
[류현우] 문재인 전 대통령이 2021년 1월 신년 기자회견에서 김정은의 비핵화 의지가 여전히 확고하다고 언급한 적이 있습니다. 2018년에도 문재인 전 대통령은 김정은의 비핵화 의지가 확고하다는 이야기를 했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위에서 이야기했던 것처럼 북한은 핵보유를 헌법화했습니다. 핵보유를 국가의 최고법인 헌법에 명시했다는 것은 비핵화는 없다는 의미입니다. 그러니 이제는 북한의 의도가 명명백백하게 다 드러났습니다. 1993년부터 현재까지 30년이 넘는 장구한 기간 미북 사이에 수많은 비핵화 회담이 있었습니다. 기자님도 온 세계를 기만한 2008년 북한의 원자로 냉각탑 폭파 쇼를 아실 겁니다. 이때 북한은 미국이 테러지원국 명단에서 삭제해 주는 대가로 냉각탑을 폭파했습니다. 이 쇼를 보고 미국까지 북한이 진짜 비핵화를 하는 줄 알고 깜빡 속았습니다. 이때 냉각탑 폭파 쇼를 한 것은 북한이 이미 강선을 비롯한 여러 곳에 우라늄 농축시설을 확보한 상태였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리고 2018년, 2019년 미북 정상회담을 앞두고 외신 기자들까지 초청해 풍계리 핵실험장을 폭파하는 쇼도 벌였지요. 그러나 결과는 어떻게 되었습니까. 보다시피 북한은 자칭 ‘핵보유국’을 법제화했습니다. 2018년 6월 싱가포르 회담, 2019년 2월 하노이 회담 때 북한 외교관들도 깜빡 속았습니다. 위에서도 말씀드렸지만 세습 독재 체제의 운명이 걸려있는데 북한이 핵을 왜 내놓겠습니까.
[진행자] 결국 북한의 세습 독재 체제가 이어지는 한 비핵화는 없을 것이라는 말씀이시네요. 대사님 오늘 말씀도 잘 들었습니다. 류현우의 블랙북스, 류현우 전 쿠웨이트 주재 북한 대사대리와 함께 했습니다. 감사합니다.
에디터 양성원, 웹편집 김상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