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디오다큐, 나는 탈북자] 북한에서 들고 온 단 하나의 물건 (2)
2024.09.12
김주찬: 99년도 이 사진에서 대한민국에 와 있는 사람은 저 포함해서 둘밖에 없네요. 나머지는 여전히 북한에 있거나 북송되어서 죽었거나… 저는 여기 와 있는 제 지금 입장이 딱 그런 느낌이거든요. 아주 소수의 살아남은 조난자들… 친구들 목숨에 빚진 것 같고 그냥 선물처럼 얻어진 삶 같은 거예요.
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이예진입니다. 탈북민들은 이제껏 귀순자, 북한이탈자, 새터민, 탈북자, 북한이탈주민 등 시대마다 다양한 호칭으로 불렸습니다. 바뀌어 온 호칭만큼이나 국가와 사회, 사람들에게 다른 대접을 받아왔죠. 30년 전까지만 해도 간첩 취급을 받던 탈북민들, 지금은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쯤 되는 국회의원에 이름을 올리고 있습니다. 그사이 탈북민들의 삶은 어떻게 바뀌었을까요? <라디오다큐 나는 탈북자>, 탈북부터 한국정착까지, 그동안 털어놓지 못했던 그들의 속얘기를 들어봅니다.
장세율: 다만 얼마라도 진짜 북한에 좀 가기를 바라죠. 그래도 한번 가서 전단이든 뭐든 이렇게 보내고 나면 이상하게 그 날은 잠이 잘 와요. 마음도 편하고… 형제들, 이제 뭐 살아서 만나겠는지는 모르겠지만 내 친구들, 그 친구들이 ‘그래 넌 뭘 했냐? 내가 이렇게 그래도 너하고 함께 뭐를 하려다가 내가 지금 죽을 곳으로 들어갔는데 넌 뭘 했냐?’ 하면 나는 그래도 답변이 있어야 되잖아요. 말을 해야 되잖아요. ‘내 코가 석자라 나는 그래서 좀 먹고 사는데 바빴어. 미안해’ 뭐 이런 얘기 하겠어요? 그 친구들하고 함께 추구했던 어떤 자유라는 이거를 위해서 이 일은 계속 해야 된다고 생각을 해요.
2008년 한국 입국 후 대북 구호와 정보 유입 활동을 계속해 온 장세율 씨. 그가 북한의 인권 개선과 민주화를 위해 앞장서는 이유는 단 하나입니다. 북한에 남아 있는 가족과 친구들에게 부끄러운 삶을 살지 않기 위해서죠.
<관련 기사>
[라디오다큐, 나는 탈북자] 북한에서 들고 온 단 하나의 물건 (1)
[라디오다큐, 나는 탈북자] 탈북 청년 사업가의 죽음 (2)
김주찬: 99년도라고 날짜가 여기 적혀 있어요. 그러니까 98년도에 탈북해서 99년도에 중국에 있는 처소에서 그때 초창기에 친구들과 함께 생활할 때 사진이에요. 99년도 이 사진에서 대한민국에 와 있는 사람은 저 포함해서 둘밖에 없네요. 나머지는 여전히 북한에 있거나 북송되어서 죽었거나…
두 차례 북송 끝에 1998년 탈북에 성공한 김주찬 씨는 25년 전 한국에 정착하기 전에 찍은 사진을 아직도 소중하게 간직하고 있습니다. 당시 10대 또래 8명과 찍은 사진은 탈북민 취업과 청소년 교육 등 탈북민의 안정된 삶을 위해 힘을 쏟고 있는 지금의 주찬 씨를 있게 한 원천이라고 하는데요.
김주찬: 저는 여기 와 있는 제 지금 입장이 딱 그런 느낌이거든요. 아주 소수의 살아남은 조난자들… 친구들 목숨에 빚진 것 같고 그냥 선물처럼 얻어진 삶 같은 거예요. 얼어 죽든, 굶어 죽든 어떻게든 죽었어야 되는데 그때 그때 도움을 줘서 살아남았잖아요. 그러니까 그냥 ‘내가 할 수 있는 무엇이든지 누군가를 위해서 도움이 되는 삶을 살아야겠다’ 그런 결심을 하고 살게 되는 것 같아요.
김은주: 이제 제가 2012년도에 이 책을 썼어요. 프랑스 외신 기자랑 같이 쓴 책인데 그때 이 책을 쓴 게 되게 감사한 것 같아요. 왜냐하면 대한민국에 와서 10년 넘게, 15년 넘게 지내다 보니까 내가 겪었던 기억들도 희미해지더라고요. 근데 한국 정착 5년 정도 됐을 때 이 책을 그나마 써서 많은 것들을 내가 기억하고, 여기에 기록을 할 수 있었던 것 같아서… 사실 탈북민들이 ‘과거에 얽매어 살지 말자’ 하는데 맞는 말인 것 같아요. 근데 과거를 잊고 살아도 결코 안 된다고 저는 생각을 하거든요.
주찬 씨도, 은주 씨도 악몽 같던 탈북 과정을 거쳤습니다. 하지만 잊지 않기로 맹세했습니다. 이들은 과거에 얽매어 고통스러운 현재를 살아서도 안 되지만, 과거를 잊지 않아야 탈북민과 북한 주민 모두 더 나은 내일, 더 나은 미래를 살아낼 수 있다고 믿습니다.
김명희: 북한을 떠나서 막 여기 오기 전까지는 세상에서 제가 가장 불쌍한 사람인 줄 알았어요. ‘나는 뭐 때문에 북한에서 태어나서 내가 이런 고통을 겪어야 되나’ 그런데 한국에 와 보니까 이렇게 인권 탄압을 받는 그런 국가들도 많고, 또 전쟁을 하는 국가들도 많고 나는 이미 지나온 거거든요. 헤쳐 왔잖아요. 근데 그게 얼마나 힘들고, 얼마나 비참하고 그런 건지를 잘 아니까 ‘젊은 친구들이 정말 그 과정을 거쳐오면서 잘 성장할 수 있는 그런 롤모델이 되고, 그런 기반을 다져주는 사람이 돼야겠다’ 그게 제 삶의 의미인 것 같아요. 대한민국에서 살아가는 의미, 지금 제가 열심히 사는 의미.
조현정: ‘탈북민은 이방인이지만 용감한 사람들이다. 용기 있는 사람들이다’ 전 그렇게 얘기하고 싶네요.
2024년, 명희 씨와 현정 씨처럼 한국에서 ‘용기 있는 이방인’으로 새로운 삶을 살아가고 있는 탈북자는 모두 3만4천여 명. 귀순자, 북한이탈자, 새터민, 탈북자, 탈북민, 북한이탈주민이 아닌 그저 일반 국민으로 인식되는 날까지 그들의 용기 있는 행동은 계속될 것 같습니다. 이제껏 털어놓지 못했던 탈북자들의 속이야기를 담은 <라디오다큐, 나는 탈북자> 여기서 마칩니다. 감사합니다.
에디터 이예진, 웹편집 김상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