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디오다큐, 나는 탈북자] 탈북 청년 사업가의 죽음 (2)

서울-이예진 leey@rfa.org
2024.08.29
[라디오다큐, 나는 탈북자] 탈북 청년 사업가의 죽음 (2) 오두산 통일전망대에 설치된 북한이탈주민의 날 기념비
/연합뉴스

김강우: 한번은 아무도 없는 집에 들어가기 싫어서 아파트 아래 공원 의자에 앉아 있었는데 그렇게 잡생각하다 보니까 다음 날 아침이 되었더라고요.

김주찬: 초등학력 조차도 인정받지 못한 신분의 성인으로 딱 도착했거든요. 18살에 도착해서내가 여기서 어떻게 살아야 되지?’ 너무 막막하고 막연하고 두렵고계속 그 루저 같은 느낌이 계속 반복적으로 들고

 

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이예진입니다. 탈북민들은 이제껏 귀순자, 북한이탈자, 새터민, 탈북자, 북한이탈주민 등 시대마다 다양한 호칭으로 불렸습니다. 바뀌어 온 호칭만큼이나 국가와 사회, 사람들에게 다른 대접을 받아왔죠. 30년 전까지만 해도 간첩 취급을 받던 탈북민들, 지금은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쯤 되는 국회의원에 이름을 올리고 있습니다. 그사이 탈북민들의 삶은 어떻게 바뀌었을까요? <라디오다큐 나는 탈북자>, 탈북부터 한국정착까지, 그동안 털어놓지 못했던 그들의 속얘기를 들어봅니다.

 

박예영: 처음 제시 소식을 접했을 때는 당연히 안 믿었죠. 아이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북향민들이 여기 와서 이게 기반이 없기 때문에 뿌리가 없기 때문에 사람 인맥이라고 우리 흔히 말하는 그런 것, 그 다음에 자금적인 부분 그 다음에 어떤 판로, 이런 부분 이 모든 것들은 다 하나부터 열까지 개척을 해야 되는 부분이거든요. 대한민국이 얼마나 같은 아이템 가지고도 경쟁이 치열한데 이런 데서 살아남는다는 건 사실은 거의 불가능하다고 얘기를 할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이게 상의를 하는 파트너들이 있다고 하더라도 파트너는 파트너일 뿐인 거고, 이게 가족처럼 진짜 깊은 고민을 같이 이렇게 해주는 건 또 다른 개념이거든요. 그래서 혼자 와서 이렇게 진짜 혈혈단신으로 와가지고 한다는 거는 정말 쉽지 않다는 것들을 봤기 때문에 여러 가지 뭐 심리적이거나 여러 가지 그런 고충들이 있었겠다는 생각들을 좀 해보게 됐습니다.

 

한국돈 100, 750만 달러 번 뒤에 마음껏 인생을 즐기며 사는 게 인생 목표라고 당당하게 말하던 탈북 청년 사업가 제시 킴. 어려서부터 북한에서 장사 수완이 좋았던 그녀는 좀더 넓은 세상에서 원하는 삶을 살고 싶어 탈북을 했고 한국에 와서도 두부밥 사업으로 승승장구하고 있었죠. 하지만 20236월 어느 날, 31세의 탈북 청년 사업가 제시 킴 씨는 스스로 세상을 등졌습니다. 그녀는 왜 그런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을까요?

 

김주찬: 초등학력 조차도 인정받지 못한 신분의 성인으로 딱 도착했거든요. 18살에 도착해서 내가 여기서 어떻게 살아야 되지?’ 너무 막막하고 막연하고 두렵고… ‘출발선이 많이 다르구나그런 생각이 많이 들면서 계속 그 루저 같은 느낌이 계속 반복적으로 들고 진짜 저도 그 어려운 시기를 겪어보니까 너무 힘드니까 그냥 놓고 싶을 수 있겠다 생각을 했어요.

김강우: 저 혼자 외따로 떨어져서 이제 진짜 가까우면서도 엄청 먼 곳에 북과 남으로 갈라져서 제가 3년을 살아봤는데 그 시간이 제가 아무리 뭘 좋은 걸 먹고 뭐 얼마나 멋진 삶을 살든 간에 행복하지가 않더라고요. 그게 항상 채워줄 수 없는 어떤 공허함 같은 게 있고요. 아침에 보통 9시 반에 나가서 저녁에 10시나 11시까지 일을 했는데 일 마치고 버스 타고 집에 오면 이제 아파트에 다 불이 켜져 있는데 제 집만 불이 꺼져 있었거든요. 그때 드는 생각이 왜 나만 가족 없이 여기 와서 이러고 살고 있지하는 생각이랑 그리고 집에 들어가기 싫은 마음이랑 같이 밥 먹을 사람도 없고 그래서 한 번은 집에 들어가기 싫어서 그 공원 아파트 밑에 의자에 앉아 있었는데 그렇게 잡생각하다 보니까 다음 날 아침이 되었더라고요. 결국 지금도 계속 혼자인 것 같고 앞으로도 계속 혼자 걸어가야 될 것 같고

 

가족 없이 낯선 땅에 혼자 와서 불 꺼진 집에 들어가는 발걸음이 무거웠다고 말하는 대학생 김강우 씨. 그리고 또래 남한 토박이들에 비해 뒤쳐지는 느낌에 패배자 같았다는 김주찬 씨. 분명 집도 새로 생기고, 배불리 잘 먹고, 배움의 기회도 늘고북한에 비해 탈북민들의 삶은 훨씬 윤택해졌지만 자꾸만 힘들다는 생각이 드는 이유가 뭘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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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세율: 맨 처음에 왔을 때는 우리 탈북민들이 한 5년 정도는 북한과 자기를 비교하거든요. 뭐 고생고생 일을 해도 쌀 20kg으로 살지도 못하는데 여기에서는 정말 자기가 노력을 하면 그에 따르는 보수가 따르고 내가 그래서 북한에서 오길 잘했다. 북한의 도당 책임비서 그러니까 여기는 도지사라고 그러잖아요. 그러니까 도지사보다도 내가 낫구나 뭐 이런 생각, 그런 어떤 자부심을 가집니다. 그런데 이게 점차 한국 생활의 정착이 길어지면서 달라지는 거죠. 그래서 한 5년 정도 지나면 자기와 한국 사람을 비교합니다. 뭐 집세부터 해서 보험부터 해가지고 자녀 교육부터 정부에서 그렇게 지원을 한다고 그래도 실생활은 바닥이거든요. 북한에서도 야 이것보다 더 어려운 상황에서 더 살았지 않냐그러면 그 친구들은 그건 북한이잖아, 북한이었잖아이러거든요. 맞아요. 북한이었거든요. 그러니까 결국 분리가 되는 겁니다. 한국 사회에 들어왔지만 한국 사회 성원이 아닌 다른 성원으로 사는 거예요. 탈북민 사회 성원으로 사는 겁니다. 그렇게 되면서 이제 점점 상대적인 박탈감을 느끼고 이러면서 이제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경우가 생깁니다.

 

탈북민 생활 전반을 지원하는 공공기관 남북하나재단이 2022년 탈북민 2200여 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탈북민의 자살 충동 경험 비율은 2021 13.3%, 2022년에는 11.9% 2022년 남한 국민의 자살 충동 경험 비율인 5.7%보다 두 배 이상 높았습니다. 탈북민이 자살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던 가장 큰 이유로는 신체적·정신적 질환, 장애때문이라는 응답이 32.7%로 가장 높았고, 뒤를 이어 경제적 어려움22.4%, ‘외로움과 고독12.8%를 차지했습니다.

 

박예영: 그런 생각이 들 때 가장 가까운 친구든 아니든 간에 아는 사람은 있을 거란 말이죠. ‘나 좀 많이 힘든데 밥 좀 한번 사줘라라든지 내 얘기 좀 들어달라이 말 한마디만 좀 하면 대한민국에서 어쨌든 먹고 살고 다 자기 삶이 바쁘기 때문에 미처 돌아보지 못하는 건 있지만 그런 신호를 한 번만 보내면 분명히 손 잡아주고 함께할 사람들은 있다.

조현정: 저희 아들 친구가 고독사로 사망을 했어요. 작년에 25살짜리가 그래서 참 오랫동안 마음이 아팠어요. ‘왜 그랬을까? 친구들에게 좀 도와달라고 전화 한 통화만 좀 하지. 왜 그랬을까, 왜 그랬을까이제 그런 안타까움들이 고향을 떠나서 죽을 고비를 수없이 겪으면서 이 땅까지 왔잖아요. ‘함께 우리가 이 땅에서 조금 행복했으면 좋겠다. 그리고 언제 통일이 될 지는 모르겠지만 다들 고향으로 한번쯤은 돌아가보고 싶은 마음을 가지고 있으니까 우리 같이 용기를 내서 이 사회에서 좀 더 당당한 일원으로 살았으면 좋겠다그런 얘기를 해주고 싶어요.

 

탈북 선배들은 탈북민들의 더 나은 삶을 위한 국가적 대책도 아직은 더 필요한 상황이지만, 힘들 때 누구에게든 손 내밀 줄 아는 용기만 있어도 세상은 살만하다고 말합니다. 그렇다면 정착 초기, 적응을 잘 하지 못해 느끼는 정신적 압박과 정착 5년쯤 느끼는 상대적 박탈감을 잘 견뎌낸 탈북자들의 삶은 어떻게 달라져 있을까요? <라디오다큐, 나는 탈북자> 다음 시간에 계속됩니다.

 

에디터 이예진, 웹편집 한덕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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