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디오다큐, 나는 탈북자] 탈북 청년 사업가의 죽음 (1)

서울-이예진 leey@rfa.org
2024.08.22
[라디오다큐, 나는 탈북자] 탈북 청년 사업가의 죽음 (1) 아산나눔재단의 청년 창업 지원 프로그램 '아산상회'가 지난 2021년 탈북민 출신 여성 제시킴이 운영하는 스타트업 '제시키친'에 2천250만원의 지원금을 전달하는 모습.
/연합뉴스

제시 킴: 제가 벌고 싶은 액수는 한 100억입니다 100억만 벌면저는 30 100억 벌든 40 100억 벌든 딱 100억 벌면 저는 손 털고 놀 거예요남북한 경제가 열린다 하면 저는 아마도 제일 인기가 많지 않을까 싶어요그 가교 역할을 해주지 않을까 싶어서 빨리 그날이 왔으면 좋겠어요.

 

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이예진입니다탈북민들은 이제껏 귀순자북한이탈자새터민탈북자북한이탈주민 등 시대마다 다양한 호칭으로 불렸습니다바뀌어 온 호칭만큼이나 국가와 사회사람들에게 다른 대접을 받아왔죠. 30년 전까지만 해도 간첩 취급을 받던 탈북민들지금은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쯤 되는 국회의원에 이름을 올리고 있습니다그사이 탈북민들의 삶은 어떻게 바뀌었을까요? <라디오다큐 나는 탈북자>, 탈북부터 한국정착까지그동안 털어놓지 못했던 그들의 속얘기를 들어봅니다.

 

PD: 일단 자기 소개를 해주는데 ‘몇 년도에 북한을 나와서 몇 년도에 중국에 있다가 한국에 몇 년도에 나와서 지금 나는 뭘 하고 있는 누구누구입니다’ 이렇게 소개하면 돼요.

제시 킴: 안녕하세요. 2011년에 고향을 떠나 2013년까지 2년간 중국에서 생활을 하다가 2014년에 대한민국 사회에 정착하여 지금 현재는 사업을 하고 있는 제시키친 대표 제시입니다.

PD: 자신이 지금까지 살아온 삶을 한마디로 표현하면?

제시 킴: 저는 도전자인 것 같아요저도 이제 영어 프로필 속에다 챌린저라고 써놨거든요그래가지고 수천 개수만 개수억 개의 계란으로 그 바위를 깰지언정 멈추지 않고 계속 나가는 것 같아요나는 도전가다도전자다.

 

도전가를 자처하며 살아온 31살 탈북청년 사업가 제시 킴. 2014년 한국 입국 후 자신이 잘하는 일을 찾은 끝에 북한에서 흔히 먹던 두부밥으로 사업을 시작했는데요그녀의 꿈은 24시간 생활필수품부터 먹거리를 판매하는 편의점에 자신의 두부밥을 진열하는 것이었습니다그만큼 그녀의 두부밥은 탈북민 뿐 아니라 남한 토박이들에게도 입소문을 타며 관심을 끌었고두부밥 만드는 법을 배우기 위해 찾는 이들도 늘었죠탈북 선배이자 사업가 박예영 씨도 그녀의 사업가 기질에 감탄을 합니다.

 

박예영: 제시가 좀 남달랐다고 제가 생각을 했던 건 남과 북의 음식 문화를 잇는다는 얘기를 했던 것 같아요그래서 북쪽에서 일명 약간 서민들이 주로 즐겨 먹었던 그런 두부밥을 또 대한민국 국민의 입맛에 맞게 조금 개량을 해서 그렇게 만들어가는 걸 보면서 저는 정말 이 친구 사업가 기질이 있구나라는 생각을 했고 프로모션하고 어디에서 어떤 권고가 있으면 다 이렇게 제출을 하고 너무 열심히 뛰어다니더라고요그래서 제가 생각하는 제시는 굉장히 활달하고 밝고 또 적극적이고 진짜 사업가다라는 생각을 했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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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시 킴제가 벌고 싶은 액수는 한 100억입니다 100억만 벌면 저는 30 100억 벌든 40 100억 벌 딱 100억 벌면 저는 손 털고 놀 거예요북한에서 왔는데 지지리 못 산다면 ‘그래 북한에서 왔으니까 못 살지근데 잘 산다면 어머 북한에서 왔는데도 정말 잘 사네’ 이건 강점이거든요그래서 남북한 경제가 열린다 하면 저는 아마도 제일 인기가 많지 않을까 싶어요그 가교 역할을 해주지 않을까 싶어서 빨리 그날이 왔으면 좋겠어요.

제시 킴 씨의 인생 목표는 꽤 구체적이었습니다열심히 일해 750만 달러를 번 뒤 남은 인생을 즐기겠다는 당찬 포부를 밝힐 정도로 자신이 넘쳤죠사실 그녀는 아주 어려서부터 이런 인생 목표와 꿈을 갖게 되었다고 하는데요.

 

제시 킴: 제가 돈을 벌어야 되겠다고 결심했던 때가 8살이었거든요. 8월이면 고향에서 이제 산딸기가 나와요이제 산딸기가 엄청 나오는데 동네 오빠가 와가지고 ‘제시야 우리 산에 딸기가 많으니까 울지 말고 딸기 따 먹으러 가자’ 이래서 딸기 뜯으러 갔는데 너무 많은 거예요딸기가 여기저기 울긋불긋 너무 많은 거예요그래서 따가지고 한 통씩 들고 왔는데너무 많으니까 엄마가 보더니 ‘제시야이걸 한번 시장에서 팔아보자’ 이래서 내가 장마당에서 쌀도 팔고 고기도 팔고 잡화도 파는 이모님들 찾아가서 ‘아줌마 나 딸기 따왔어딸기 사 먹어’ 이러고 그 아줌마들한테 이렇게 막 판매를 강매를 한 거예요그때 제가 아마 그 딸기 팔아서 한 15원을 벌었어요그 돈을 엄마가 챙긴 것이 아니라 엄마가 제 손에 꼭 쥐어주면서 ‘제시야 네가 하고 싶은 거 이 돈 가지고 다 해’ 이러는 거예요엄마가 복숭아를 되게 좋아했어요딱 마침 과일 파는 데 복숭아가 있는 거예요제가 그 복숭아를 엄마 사드렸어요그때 엄마의 모습이 너무 행복해 보이는 거예요그래서 딱 그때 든 생각이 ‘아 내가 돈을 벌면 엄마가 행복하구나’ 이런 게 너무 이렇게 훅 마음에 왔던 것 같아요지금도 너무 생생해서…그래가지고 제가 ‘아 나는 돈을 많이 벌 거야’ 결심했죠.

그렇게 어려서부터 부자를 꿈꿨던 북한 소녀 제시 킴 씨는 자연스럽게 장사를 시작했고꽤 소질이 있다는 걸 알게 됩니다.

 

제시 킴: 고난의 행군을 시작으로 북한 사회가 나아진 역사가 없어요그때부터는 정말 ‘내가 밥을 먹기 위해서는 돈을 벌어야 되겠구나이제는 이게 다르구나’ 이런 생각이 들어서 별걸 다 했던 것 같아요정말 산에 가서 고사리 뜯고산나물 뜯고약초 캐고개암 뜯고정말 이런 거 열심히 하고 나중에는 뭐 약초도 차로 만들어 판매했었고외화벌이 나무도 해가지고 이제 당시 물건들 다 제외하고도 현금 1천 달러 이상은 항상 가지고 있었던 것 같아요저희 고모는 ‘쟤는 사막에다 내려다 놔도 살아갈 애’라고맨날 이제 의식주 중에 ‘의’도 해결됐고 ‘식’도 다 해결됐고 모든 게 해결되니까 그 다음부터는 내 삶이라는 거에 대해서 돌아보게 되더라고요나는 ‘내 삶이 있는 삶을 살고 싶고여행도 다니고 자유로운 내 삶을 살고 싶다’ 왜냐하면 북한은 그 지역이 끝이잖아요제가 아무리 많이 다녀도 밖에 북한 밖을 나갈 수가 없는 거잖아요그러다 보니까 좀 더 넓은 세상에 나가고 싶다는 그런 욕망이 되게 컸던 것 같아요.

 

제시 킴 씨는 그래서 탈북을 결심했고무사히 한국에 와서 어려서부터의 꿈을 이루기 위해 차근차근 준비를 했죠.

 

제시 킴: 70~80년대 과거에 살던 사람이 갑자기 40~50년 훌쩍 뛴 미래를 오다 보니까 너무 모르잖아요언어도 모르고중학교고등학교 검정고시 보고 이제 대학교 입시 준비를 해서 학교 가서 대학 공부를 진짜 열심히 했죠대학 공부를 대학교 다니면서 하다가 그때부터 들었던 생각이 ‘내가 이 사회에서 생활하려면 이 친구들과 다른 강점이 나한테 있을 거고 이길 수 있는 무언가를 만들어야 된다’였어요그래서 1년에 내가 가장 많이 하는 게 뭔지 대신 많이 즐겁게 하는 게 뭔지 찾아봤어요월 단위주 단위일 단위로 쪼개니까 음식 관련한 일을 제일 많이 하더라고요그게 제일 즐거운 거예요.

 

자신의 재능을 빨리 알아차린 제시 킴 씨탈북민들뿐 아니라 남한 사람들에게도 자신이 만든 두부밥 인기가 높은 걸 보면서 사업을 확장시킬 계획을 세웁니다자금을 지원 받고 사업을 함께 할 동료도 구했죠그렇게 제시 킴 씨의 인생도 승승장구할 것만 같던 어느 날청천벽력 같은 소식이 전해집니다과연 그녀에겐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요? <라디오다큐나는 탈북자다음 시간에 계속됩니다.

 

에디터 이예진, 웹편집 김상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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