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디오다큐, 나는 탈북자] 탈북자들이 가장 많이 당하는 사기 (2)
2024.08.15
장세율: ‘야 10년을 너 여기서 돈을 벌어봐라. 북한에 돈 보내고 너 그러다 거지꼴 난다. 너 노후 준비 어떻게 할 거야? 한 방 때리자’ 하면 확 가거든요.
노경미: 이제 몇 십 배가 오른다는 거예요. 그래 그 말에 귀가 솔깃해 가지고 했는데 지금까지도 소식이 없어요.
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이예진입니다. 탈북민들은 이제껏 귀순자, 북한이탈자, 새터민, 탈북자, 북한이탈주민 등 시대마다 다양한 호칭으로 불렸습니다. 바뀌어 온 호칭만큼이나 국가와 사회, 사람들에게 다른 대접을 받아왔죠. 30년 전까지만 해도 간첩 취급을 받던 탈북민들, 지금은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쯤 되는 국회의원에 이름을 올리고 있습니다. 그사이 탈북민들의 삶은 어떻게 바뀌었을까요? <라디오다큐 나는 탈북자>, 탈북부터 한국정착까지, 그동안 털어놓지 못했던 그들의 속얘기를 들어봅니다.
강윤철: 아 저는 2016년 5월에 한국에 입국했고요. 지금 현재 7년 차 됐습니다. 나와서 한 1년 만인가, 2년 만인가 된 것 같습니다. 그리고 또 제 아는 지인이 와가지고 이러이러한 사업이 있다 그럽니다. ‘다단계 아니야?’ 하니까 사업이래, 뿌리칠 수도 없고 해서 그럼 한번 가서 들어보자 하고 가서 들어본 겁니다. 딱 들어가자마자 ‘아 잘 왔다’ 하면서 이제부터 ‘네가 이 길로 오기 너무 잘했다. 너는 이제 완전히 부자의 길을 갈 것이다’ 하며 지금 엄청 연설하고… ‘사기치네’ 그때까지는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그 설명이 너무 귀에 쏙쏙 들어오는 겁니다. 200만원 넣어보고 망하면 말자 그래서 200을 넣기 시작했는데 거기 200이 2천 되고, 뭐 2천이 4천 되고… 넣다 보니까 그냥 한 1억 정도 넣은 것 같습니다. 내가 이번 달만 해먹고 빠지리라 생각했는데 이번 달에 딱 망한 겁니다. 막 죽고 싶더라고요.
정상적인 영업으로는 고수익이 발생할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을 많이 모아올수록, 더 많이 투자할수록 높은 배당금을 준다고 속여 투자를 유인해 처음엔 돈을 불려주는 듯 하다가 큰돈을 투자받은 뒤 잠적하는 등의 수법으로 사기행각을 벌이는 불법자금 모집업체를 흔히 다단계 사기라고 합니다. 2, 30년 전만 해도 친구, 친척, 지인들에게 속아 다단계에 투자했다가 재산을 잃는 경우도 많았는데요. 이런 사기 행각은 다양하게 변질되었고 금융, 부동산, 디지털 분야에서까지 속는 줄 모르고 속는 일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탈북자들에게 특히 자주 일어나곤 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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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경미: 우리는 동전 한 푼 없이 온 사람이잖아요. 여기 사람들은 그래도 혈육도 있고, 부모도 있고, 친척, 친구들이 있잖아요. 저는 아무것도 없어요. 놀러 가래도 갈 데도 없고 오라는 사람도 없잖아요. 그러니까 일만 한 것 같아요.
PD: 어떤 일을 하셔서 그렇게 큰 돈을 모으셨어요?
노경미: 아 저는 청소 일을 했어요. 그때 초창기에는 2011년도 그때는 뭐 한 집 하게 되면 뭐 3시간 4시간 하게 되면 3만 5천원도 주고, 3만 8천원도 주고 그래서 그때는 최고로 내 많이 벌 때 하루에 15만 원, 18만 원까지 벌었어요. 그때는 이렇게 적어놓고 할 정도로 했댔어요. 북한은 일하게 되면 사회주의다 보니 뭐 요만하나 저만하나 그저 차례지는 것이 없거든요. 크게. 근데 여긴 내가 일 일한 것만큼 차례지잖아요. 그리고 또 돈 높이가 올라가니까 행복의 높이도 올라가고 내 재산이 또 늘어나니까 그 기쁨이 2배가 행복의 높이 크면 클수록 배가 되잖아요. 그러니까 그 재미가 더 쏠쏠하더라고요.
10년 전, 노경미 씨는 이렇게 하루하루 땀 흘려 모은 돈 6만여 달러로 경기도 송산의 땅을 삽니다. 개발계획이 있어 땅값이 크게 오를 것이라는 지인의 말을 철석같이 믿었기 때문인데요. 하지만 그 땅은 실제 개발과 전혀 상관 없는 곳에 있었습니다.
노경미: 그 때가 2014년도인가 하는데 누가 날 보고 ‘야 저기가 송산 그린시티가 된다는데 세계 관광 도시로 된다며 뭐 그걸 컴퓨터로 보여주고 뭐 대단한 연설을 하더라고요. 이제 몇십 배가 오른다는 거예요. 그래 그 말에 귀가 솔깃해 가지고 했는데 지금까지도 소식이 없어요. 썩은 돈이 됐어요. 죽은 돈이죠. 결국은.
PD: 얼마나 투자하셨어요?
노경미: 그때 거기에 돈을 넣는 건 아마 한 7, 8천 만원 된 것 같아요. 땅을 샀죠. 그래 법적인 서류 그런 거 다 부동산에서 다 해줬잖아요. 그러니까 거기서 그 큰 돈이 나올 줄을 생각하고 했지. 근데 이제는 있잖아요. 뭐 나중에라도 나오면 좋겠지만 내가 도둑 맞았다 생각하자, 나오면 좋고 그래서 이렇게 큰 마음먹으니까 또 이제는 그거 더 생각 안 하게 되더라고요.
PD: 그때는요?
노경미: 그때는 뭐 속이 부질부질… 막 생각하면 그 아주머니가 그냥 괘씸하지 뭐. 나한테 사기쳤으니까… 근데 뭐 서류는 또 가지고 있으라는데 뭐 그 종잇장 가지고 뭐해요? 내한테는 정말 그렇게 큰 돈이잖아요. 다 털어가지고 그때 샀댔는데… 사실은 있잖아요. 내가 돈 많이 벌어가지고… 우리 딸이 솔직히 말하면 나보다 건강치 못해요. 딸이 북한에 나가서 엄청 고생 많이 했잖아요. 그래서 큰소리 치면서 내가 정말 내 딸한테 뭘 좀 크게 해주려고 마음먹었댔어요. 막 울었어요. 내가 또 막 울었어요.
북한에서 교수 생활을 하다 한국 드라마를 본 것이 발각돼 강제노역을 하던 중 탈북한 장세율 겨레얼통일연대 대표는 탈북민들이 다단계 사기 등에 쉽게 빠지는 이유가 있다고 말합니다.
장세율: 우리가 한 4년 전인가 아내랑 놀음 삼아 ‘우리가 그래도 북한에 좀 돈을 얼마 보냈냐? 한번 보자’ 이렇게 해서 보니까 거의 7만달러 되더라고요. 대부분의 탈북민들이 북한에 남겨진 가족이 있습니다. 자식들도 있고, 그리고 또 자기 엄마 아빠도 있고, 자기 형제들도 있고, 그래 그거에 대한 어떤 경제적 부담이 상당히 크거든요. 탈북자들이 한국에서 제일 많이 당하는 게 이제 돈에 대한 사기예요. 사실 다단계에 제일 먼저 뛰어드는 것도 이제 우리 탈북민들이고, 진짜 범죄 사건 보이스피싱과 같은 그러니까 중국 애들도 이런 어떤 돈에 대한 집착, 조급성, 이거를 이용해서 이제 탈북자들에게 쉽게 돈을 벌 수 있는 거죠. ‘야 10년을 너 여기서 돈을 벌어봐라. 북한에 돈 보내고 너 그러다 거지꼴 난다. 너 노후 준비 어떻게 할 거야? 한 방 때리자’ 하면 확 가거든요.
사기를 당하고 한때 죽음까지 생각했던 강윤철 씨는 더 열심히 사는 것으로 위기를 극복하고, 지금은 택배 배달 일을 하며 일한 만큼 버는 것의 소중함을 깨달았다고 하는데요.
강윤철: 대한민국에 진짜 잘 살려고 왔는데, 이게 그 한순간에 내 욕심 때문에 일이 망하다 보니까 아 죽어야 되나… 확 죽으려고도 막 그 한강 다리까지 찾아가서 생각해보면 ‘내가 죽으면 지금 금방 난 3개월짜리 딸과 와이프는 어떻게 되지? 이거 내 더 이상은 어디 내려갈 데 없고 진짜 여기서 일어서면 내가 이기는 거다. 진짜 정착 잘하는 게 내가 여기서 물러서면 더 갈 데 없다. 그냥 다시 북한 가 죽어야 되는 수밖에 없다. 한번 악 써보자’ 개인 차를 가지고 이렇게 택배 물건 실어 가지고 이렇게 택배도 하고, 또 다른 회사에 가서 야간에 가서 또 이렇게 테이프 감는 일도 하고, 2잡, 3잡하면서 했는데 몇 년 전에 그 대출은 다 깨끗하게 갚았습니다. 대한민국에 와서 정말 큰 진짜 수업, 인간 수업을 했죠. 공짜라는 게 세상에 없다 하는 걸 진짜 그때 진짜 뼈저리게 느꼈습니다.
자본주의 사회, 아무런 위험을 부담하지 않고서 짧은 기간에 높은 수익을 올리는 것이 가능할까요? 물론 가능합니다. 하지만 겨우 1, 2%의 가능성 때문에 가진 전부를 잃을 수도 있습니다. 탈북민들이 처음 느낀 자본주의의 쓴 맛, 그리고 그 다음엔 무엇이 기다리고 있을까요? <라디오다큐, 나는 탈북자> 다음 시간에 계속됩니다.
에디터 이예진, 웹편집 김상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