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명학의 남북문학기행] 월북작가 박태원, ‘기생충’ 봉준호 외조부
2024.10.12
MC: 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서울의 털북소설가 도명학 작가와 함께 남북한의 문학작품을 비교해 보는 ‘도명학의 남북문학기행’입니다. 저는 진행을 맡은 미국 워싱턴의 홍알벗입니다. 도명학 선생님 나오셨습니다. 선생님 안녕하십니까.
도명학: 네, 안녕하십니까.
MC: 오늘은 어떤 이야기를 해 볼까요?
도명학: 네, 오늘은 일제시대를 거쳐 북한에서 활동했던 박태원이라는 월북작가에 대해 이야기할까 합니다.
MC: 먼저 박태원 작가는 어떤 사람인지 소개해 주시죠.
도명학: 네, 박태원 작가는 1909년 서울에서 태어났고 1930년 단편소설 “수염”을 발표하며 본격적으로 문단에 모습을 나타냈습니다. 박태원 작가는 당시의 문인단체 “구인회”에 가입하여 활동하면서 반계몽, 반계급주의문학의 입장에서 세태풍속을 착실하게 묘사한 “소설가 구보씨의 하루”, “천변풍경” 등을 발표함으로써 작가로서의 위치를 굳혔습니다.
MC: 소설가인 박태원 작가가 원래는 시를 썼다고요?
도명학: 네, 박태원 작가는 1930년 일본 호세이대학 예과에 입학하였으나 도중에 중퇴하였지만 일본 유학 시절에 현대 예술 전반에 대한 폭넓은 경험을 쌓을 수 있었습니다. 박태원 작가는 경성고보 3학년 때인 1926년 문예지 “조선문단”에 시 “누님”이 가작으로 당선되어 문단에 등장하였습니다. 초기에는 주로 시를 썼으나, 이후 단편 “적멸』”, “수염”, “꿈” 등을 발표하면서 소설 창작에 주력하게 되고, 구인회에 가입하면서부터 예술파 작가로서의 지위를 확고하게 정립하기 시작하였습니다.
MC: 그럼, 월북은 어떻게 하게 된 건가요?
도명학: 그는 해방 후 1950년 6.25 전쟁이 발발하자 가족을 남겨둔 채 월북하였고, 북한군 종군기자로 활동했습니다. 다만 남한에서는 그가 왜 월북한 이유가 석연치 않다고 평가되고 있습니다. 물론 북한에서는 그가 월북한 이유가 미국의 식민지로 전락한 남한 현실과 이승만 정부에 침을 뱉고 북한 체제를 동경해 월북했다고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남한에 비해 자기 체제가 우월하다고 선전할 필요에 의한 주장이고, 남한에서는 박태원 작가를 이데올로기와 깊이 엮이지 않는 성향이었다고 합니다. 그는 1960년에 대하역사소설 “갑오농민전쟁” 집필에 착수했습니다. 그러나 당뇨병과 고혈압으로 시력을 잃게 되고 전신불수가 되는 시련을 겪으면서 “갑오농민전쟁” 1, 2부를 출간했습니다. 그러나 3부를 채 쓰지 못한 채 1986년 7월 10일에 사망했고 사망 후에 북한에서 재혼한 아내가 박태원의 구술을 정리하여 “갑오농민전쟁” 3부를 출하였습니다.
MC: 당시 작가의 입장 또는 의중이 가장 잘 들어가 있는 작품 하나 소개해 주시죠.
도명학: 이 시기의 박태원의 대표작 중에 하나인 「채가」에서는 일본인 와타나베에게 진 빚을 갚을 길이 막막해 전전긍긍하던 주인공 조선인 남성이 결국 솔직하게 사정을 털어놓으려 와타나베를 찾아가자, 와타나베가 조선인과 일본인은 배다른 형제라면서 통 크게 빚을 탕감해주고, 이에 감동한 주인공은 와타나베 앞에서 울면서 고개를 조아리며 서투른 발음으로 '고멩나사이'를 반복하여 외치고, 여지까지 찝찝한 마음에 미뤄 두었던 창씨개명을 기쁜 마음으로 하러 가는 것으로 결말을 맺습니다. 저는 이 작품을 만약 북한 독자들이 본다면 어떤 기분일지 궁금합니다. 아마 박태원 작가에 대한 좋은 감정이 손상될 건 뻔합니다. 이 같은 의미에서 박태원 작가를 주목해야 할 이유가 있을지 물으셨는데, 저로서는 각자의 판단에 맡길 수 없는 인물이라는 점이 그 이유라고 해두고 싶습니다. 참 난감합니다. 다 과거 우리 민족이 겪은 아픈 상처 때문이라고 생각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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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C: 그의 작품이 다른 이들의 것과 다른 특징이 있다면 그건 무엇일까요?
도명학: 저는 솔직히 박태원 작가의 작품은 당연히 북한에서 발표한 “갑오농민전쟁”이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입장인데, 물론 그가 해방 전에 쓴 작품들도 가치가 있지만 그의 문학세계는 ‘갑오농민전쟁’을 통해 최종적인 평가를 해야 할 것입니다. 그의 작품을 보면 이념과 체제에 크게 휘둘리지 않고 순수 문학에 가깝다고 할 것 같습니다. 월북 이전이나 월북 후나 일관되게 모더니즘적 요소가 짙습니다. 그가 월북작가라는 이유만 아니라면 북에서 발표한 그의 작품은 남한에서도 발표돼도 이념 선전 목적의 작품과는 거리가 멀다는 평가를 받지 않을까 싶습니다.
MC: 보니까, 박태원 작가는 북한의 로동신문 기자 생활도 했는데 그렇다면 그의 작품에도 북한 당국의 사상을 찬양하거나 지도자를 추켜 세우는 작품들을 주로 썼을것 같은데 어떻습니까?
도명학: 네, 충분히 그렇게 짐작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박태원 작가의 작품들은 사실 월북 이전이나 월북 이후나 이데올로기보다는 문장 그 자체의 예술성을 중시하고, 새로운 소설적 기법을 시도하는 한편, 인물의 내면 의식 묘사를 중시하는 등 강한 실험정신을 보여준 작가입니다. 물론 북한 지도자와 체제를 추켜세우는 글도 쓸 수밖에 없지만, 사람들에게 크게 각인될 만한 글은 없었던 것 같습니다. 또 건강 문제 때문에도 장편소설 “갑오농민전쟁” 도 간신히 써내고 있었던 그로선 그 외 다른 글을 쓸 여력도 없었고, 북한 당국도 그에게 바라는 것은 생전에 “갑오농민전쟁”만이라도 완성해주는 것 한 가지 외 다른 것을 기대할 수 없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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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C: 그의 작품을 남한 독자들이 본다면 불편한 느낌을 받지는 않을까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도명학: 제 생각엔 불편할 것이 있다면 어떤 점일까 싶습니다. 저는 남북한 독자 모두에게 공감이 갈만한 작품이 박태원 작가의 작품이라고 생각됩니다.
MC: 북한에서는 그를 어떻게 평가하나요?
도명학: 그가 직접적으로 북한 체제와 독재자를 찬양한 공적은 미미하지만 북한 당국, 특히 김정일은 그에게 각별한 관심을 돌렸습니다. 그 때문에 북한 사람들에게 더욱 널리 알려졌습니다. 그가 사망한 지 퍽이나 오랜데도 북한 당국은 여전히 그를 내세우고 있는데, 작년에도 노동신문은 '전세대 당원들은 이렇게 살며 투쟁하였다' 기사에서 "박태원 선생은 조선로동당원의 불굴의 투지가 어떤 기적을 낳는가를 실천으로 보여준 참된 당원 작가였다"고 소개했습니다. 신문은 박태원 작가가 현대 의학으로부터 '완전 실명' 선고를 받았을 때 장편소설 '갑오농민전쟁' 창작에 돌입했다면서 "앞 못 보는 작가가 쓰는 소설의 한줄 한줄은 잉크로써가 아니라 심장의 피로써 씌여진 것이라고 해야 할 것"이라고 평가했습니다. 신문은 또 박태원 작가가 1977년 갑오농민전쟁 1부를 발표했을 때 당에서 국기훈장 제1급을 수여하고 '고급 전축'까지 보내줬으며, 2년 뒤 그가 일흔번째 생일을 맞을 때도 다시 같은 훈장을 줬다고 했습니다. 사망한 후에도 박태원 작가는 애국열사릉에 안치되었을 정도로 우대 받는 인물이 되었습니다.
MC: 남한에서는 박태원 작가와 그의 작품에 대해 어떤 평가를 내리고 있나요?
도명학: 앞에서 잠간 언급했지만 남한에서는 박태원 작가의 작품은 모더니즘 성향이 짙고 공산주의 사상과 거리가 멀고 예술적으로 뛰어나다는 평가가 주를 이루고 있습니다.
MC: 그의 작품 중에 남한 독자가 읽고 감동받을만한 작품이 있을까요? 소개 좀 해 주시죠.
도명학: “구보씨의 하루”를 비롯해 해방 전에 쓴 작품들도 좋고, 특히 마지막 작품인 대하소설 ‘갑오농민전쟁’을 추천하고 싶습니다. 시간상 관계로 다 이야기할 순 없지만 이 소설은 갑오농민전쟁이 발생하게 된 동기부터 시작해 결말에 이르기까지 당대 인물들의 심리를 깊이 파들었습니다. 짜임새도 아주 좋고, 특히 역사적 사실에 충실하면서도 예술적으로 잘 엮어냈습니다.
MC: 박태원 작가의 둘째 딸은 당시 아버지를 따라 북한으로 가지 않았죠? 그렇게 남한에 남아 결혼을 해서 낳은 아들, 그러니까 박태원 작가의 외손주가 전세계적으로 유명한 영화감독이라죠?
도명학: 예, 맞습니다. 저도 얼마 전에야 알았는데, 세계 영화계에 히트를 친 한국영화 “기생충”을 만든 봉준호 감독이 박태원 작가의 외손주라니 놀랍기도 하고, 한편으론 역시 유전자는 속일 수 없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외할아버지를 한 번도 본 적 없는데 말입니다.
MC: 오늘 준비한 도명학의 남북문학기행은 여기까집니다. 선생님, 오늘도 수고 많으셨습니다.
도명학: 네, 수고하셨습니다.
MC: 청취자 여러분 고맙습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에디터: 이진서, 웹편집 이경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