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명학의 남북문학기행] 북한 문인, 사회적 지위 높지만 가난한 건 매한가지
2024.11.23
MC: 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남한과 북한의 문학세계를 들여다 보는 '도명학의 남북문학기행' 시간입니다. 선생님, 안녕하십니까.
도명학: 네, 안녕하십니까.
MC: 지난 주에 이어 오늘도 북한에는 없고 남한에만 있는 '문학관'에 대해서 이야기 나누겠습니다. 선생님, 오늘은 어디로 가 볼까요?
도명학: 이 시간에는, 강원도 춘천시에 있는 김유정 문학촌을 가 보겠습니다. 이곳은 소설가 김유정의 사상과 문학을 기리기 위해 생가를 복원하고 전시관도 지어 2002년에 설립한 문학촌입니다.
MC: '문학관'이 아닌 '문학촌'이라 이름을 지은 이유가 뭘까요?
도명학: 사실 저도 문학관과 문학촌의 특별한 차이를 딱히 구분하기 어렵습니다. 막연하게나마 생각되기론 문학촌이라 하면 문학 관련 건물과 시설 여럿이 마을처럼 전개돼 있는 곳이거나 작가들이 모여 거주하거나 창작실 같은 것이 여럿 있는 곳일 듯싶습니다. 이에 비해 문학관은 좀 단순하다고 할지 그저 박물관 격으로 단일 건물 혹은 한두 개 건물 정도여서 마을이라고까지 하기엔 적합지 않은 그런 곳을 이르는 말인지 모르겠습니다. 문학관과 문학촌이 이렇게 특별한 구분이 없어서 그런지 전번 시간에 이야기 나눈 황순원 문학관도 때론 황순원 문학촌으로 불립니다. 그렇지만 문학관이든 문학촌이든 작가의 사상과 생애, 문학을 기리는 곳이라는 같은 의미를 띠고 있는 만큼 명확한 굳이 명백한 기준을 두고 가릴 필요가 있을까 모르겠습니다.
MC: 김유정 문학촌은 어떤 곳인지 소개해 주시죠.
도명학: 네, 김유정 문학촌은 근대 한국 문학, 특히 단편소설에 특출한 재능을 보였고 ‘한국의 영원한 청년 작가’로 불리는 김유정 작가를 기리기 위해 김유정 생가터를 중심으로 조성되었습니다. 김유정 작가는 1908년에 태어나 1937년 너무도 젊은 나이에 결핵으로 사망할 때까지 활동한 일제 강점기 작가입니다. 강원도 춘천시는 춘천이 낳은 천재 작가 김유정을 기리기 위해 2002년에 김유정 생가, 기념전시관, 디딜방아 등을 만들어’ 김유정 문학촌’을 개관하고, 2016년에는 맞은편에 김유정 이야기집, 야외공연장, 체험방, 낭만누리 등의 시설을 추가했습니다.
지금의 생가는 김유정의 친척과 제자들의 고증에 따라 복원한 것으로 전형적인 ‘ㅁ’ 자 가옥 형태를 띠고 있슺;니다. 기념전시관은 김유정의 생애와 작품 등을 간결하게 전시하고 있고, 김유정 이야기집은 그의 작품과 삶을 입체적인 전시물과 영상물을 통해 보여줍니다. 또 야외 곳곳에는 김유정 작가의 작품을 의미하는 조형물이 설치되어 볼거리를 더해줍니다. 김유정문학촌을 나서면 실레이야기길을 걸어볼 수 있는데. 실레이야기길은 고향 마을을 배경으로 많은 글을 쓴 김유정의 작품 속에 등장하는 곳들을 엮은 걷기 코스로, 문학기행으로 좋습니다.
MC: 소설가 김유정의 대표작으로는 어떤 것들이 있나요?
도명학: 어느 작품을 딱히 대표작으로 봐야 할지 판단이 서지 않을 만큼 모든 작품들이 다 좋습니다. 김유정 작가는 .<봄·봄>, <동백꽃>, <만무방> 등 한국문학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한국 근대 명작 단편소설 여러 편을 남겼습니다.
MC: 선생님께서 하나를 골라 소개해 주신다면 어떤 작품을 고르시겠습니까?
도명학: 단편소설 “동백꽃”이 어떨까 합니다. 이 소설은 연극으로도 만들어졌고, 작가가 사망한 후 출간된 단편소설집 제목도 “동백꽃”으로 되어 있습니다. 워낙 유명한 소설이라서 남한에서는 모를 사람이 별로 없을 줄 압니다만 북한 청취자들을 위해 이 작품을 소개하겠습니다.
소설 “동백꽃”은 산골에 사는 사춘기 남녀의 순박한 사랑을 아주 재밌게 그린 작품입니다.
줄거리는 이렇습니다. 소작농의 아들인 '나'는 마름의 딸 점순이가 남몰래 건네주는 구운 감자를 뿌리쳤다가 미움을 사고. 화가 난 점순이가 날마다 자기네 닭을 몰고 와서 우리집 닭과 싸움을 붙이고 심지어 때리기까지 합니다, 그러자 나도 우리집 닭을 독하고 사납게 싸워 이기라고 고추장까지 먹이며 맞서 싸우게 합니다. 하지만 바라는 대로 되기는커녕 우리 집닭이 점순네 닭에게 쪼여 다 죽게 된 것을 본 나는 화가 치밀어 지게 작대기로 점순이네 닭을 때려죽입니다. 그러고는 마름인 점순이네 아버지한테 땅을 뺏기고 쫓겨날 것이 겁이 나 그만 울음을 터뜨립니다. 그런데 점순이는 자기한테 다시는 개기지 말라고 다짐 받고 나서 닭을 죽인 건 집에 이르지 않을 테니 걱정 말라고 안심시킵니다. 그러고 나서 둘은 한 몸이 되어 동백꽃 속으로 쓰러집니다.
결말은 점순이 어머니가 화가 나서 점순이를 부르는 소리를 듣고, 점순이는 산 아래로 도망가고 나는 산 위로 혼비백산하여 내빼는 것으로 나옵니다. 줄거리만 들어도 재밌는 상상이 들고 마음이 순수해지는 느낌이 드는 소설이지 않습니까. 하지만 이 소설은 결코 재미에 그치지 않는 심중한 의미가 베이스로 깔린 명작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서로 다른 계층에 속한 사춘기 남녀가 동백꽃 피는 농촌을 배경으로 하여 겪는 순수한 사랑과 갈등, 화해를 해학적으로 그림으로서 신분의 차이는 물론이고 남녀관계에 있어서도 여성은 소극적이고 수동적이라는 편견을 일거에 깨뜨린, 당시로선 파격적인 시도였습니다. 이 밖에도 작가는 구어, 비어, 속어, 방언 등을 자유롭게 구사함으로써 계층 문제를 비롯한 1930년대 농촌 생활상을 사실적으로 표현하였으며, 생동감 있고 개성 있는 인물들을 통하여 암울한 시대 상황을 유쾌하고 재치 있게 풀어냈습니다. 저는 여기서 김유정 특유의 천재성을 실감할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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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C: 김유정의 작품들이 갖고 있는 특징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도명학:김유정의 소설은 인간에 대한 훈훈한 사랑을 예술적으로 재미있게 다루고 있다는 데 묘미가 있다. 많은 사람을 한 끈에 꿸 수 있는 사랑, 그들의 마음과 마음을 서로 따뜻하게 이어주는 사랑을 우리의 전통적인 민중예술의 솜씨로 흥미롭게 그리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민중에 대한 사랑에 뿌리를 둔 민중적 성격의 문학이라고 해서, 그의 작품들이 한갓 통속적 흥미나 저급한 희극성에 매달려 있는 것은 아니다. 김유정의 소설들은 흔히 인물들의 어리석음이나 무지함이 웃음을 자아내게 하는 일면에서 그것은 바로 그들 자신의 가난하고 비참한 실제 삶과 이어져 진한 슬픔을 배어나게 하는, 말하자면 해학과 비애를 동반하는 특징을 지니고 있다
MC: 영화를 보면, 옛부터 문학인들은 가난하고 병약해서 다른 이들보다 일찍 세상을 뜨는 모습들이 많이 나오는데 말이죠. 김유정 작가도 어려서부터 몸이 허약했었다고요? 예전에는 이렇게 지병을 앓다가 요절하는 문학인들이 종종 있었나 봅니다. 왜 그랬던 걸까요?
도명학: 글쎄요, 저도 추상적인 생각을 말할 수밖에 없는데, 속담에 이런 말이 있더라구요. 나무꾼이 산에 가면 곧게 자란 나무부터 찍지 쓸모없이 구불구불한 나무는 먼저 베지 않는다고, 아닌 게 아니라 저도 살면서 머리 좋고 재주 있는 사람들이 일찍 죽는 경우를 종종 목격했습니다. 또 “다재다병”이라는 말도 있죠. 물론 확률적으로 그렇다는 거겠지, 실지론 오래 장수하는 천재적 인재들도 있는 걸요, 인간의 생로병사에 대해 누가 장담할 수 있겠습니까.
MC: 북한에서는 작가를 위한 문학관을 지어 준다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라고 하셨는데요. 북한에서 문학인들의 사회적 지위는 어떤가요? 보수는 충분히 받으면서 일하고 있나요?
도명학: 북한 작가들의 사회적 지위는 높다고 할 수 있습니다. 북한에서 작가는 단순히 문화인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체제 선전일꾼이기 때문입니다. 작가의 운명과 활동 등 모든 것에 관해선 노동당 선전선동부 소관이고 우대도 당간부에 준합니다. 참고로 어느 사회주의 국가도 북한처럼 작가가 당중앙위원회 내지 최고지도자에게 직보선, 즉 복잡한 단계 없이 직접 무엇을 보고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가진 적 없고, 작가동맹이 당에 직속된 나라는 없었습니다. 작가동맹 자체가 정치단체입니다. 하지만 물질적인 우대 제도는 어느 나라와도 비교할 수 없을만큼 잘 구비돼 있지만 경제난으로 전혀 작동하지 않는 무용지물이 된지 오랩니다. 사회적 지위는 있으나 권력이 없는 작가는 뇌물도 생길 위치가 아니어서 그저 굶는 문인, 옛날 조선시대 같으면 벼슬도 없고 재산도 없는 양반에 불과한 처지입니다. 물론 김일성상 계관인, 노력영웅 칭호를 받은 극소수 작가들은 예외이긴 합니다.
MC: 궁금한게 있습니다, 선생님.
도명학: 그게 뭔가요?
MC: 드라마 같은 걸 보면, 유명한 소설가나 시인, 특히 소설가들은 문하생을 두고 산다는데 말이죠. 그 문하생이라는게 뭐고, 누가 문하생이 될 수 있나요?
도명학: 문하생이란 어느 작가가 자신의 수제자쯤으로 받아들여 직접 가르치는 작가지망생을 의미하는 것 같습니다. 북한에는 문하생이라는 용어가 없어서 저로선 이 정도로만 이해하고 있습니다. 다만 문하생이라는 표현은 없지만 제도적으로 작가지망생에 대한 개별작가 담당제라는 것이 있습니다. 실력 있는 중견작가들이 거의 의무적으로 작가지망생 몇 명씩 개별 담당하여 육성하도록 하는데, 효과는 있습니다. 제자 선택은 당국이 관여하지 않고 작가에게 재량권이 있습니다. 저 역시 청년 시절 개별담당제 수혜자였고 아둔한 저를 가르치느라 속태우신 스승의 은혜를 잊을 수 없습니다.
MC: '도명학의 남북문학기행' 오늘은 여기까집니다. 선생님 수고 많으셨습니다.
도명학: 네, 수고하셨습니다.
MC: 저희는 다음 주에 뵙겠습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에디터: 이진서, 웹편집 이경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