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명학의 남북문학기행] 북한주민이 모르는 잡지 '통일문학'
2024.08.17
MC: 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서울의 탈북 소설가 도명학 작가와 함께 남북한의 문학에 관해 알아보는 '도명학의 남북문학기행' 시간입니다. 오늘은 분단된 한반도 상황에서 발생한 문학장르 가운데, 분단문학과 이산문학에 이어 세번째인 '통일문학'에 대해 이야기 나눕니다. 저는 진행을 맡은 미국 워싱턴의 홍알벗입니다. 도명학 선생님 나오셨습니다. 선생님, 안녕하십니까
도명학: 네, 안녕하십니까.
MC: 먼저 '통일문학'이란 말이 등장한게 얼마 안 된 것으로 알고 있는데요. 언제부터 통일문학이란 용어가 사용되었고, 또 그 배경은 어떻게 되나요?
도명학: 제가 통일문학이라는 용어를 처음 접한 것은 북한에 있을 때인데, 당시 2000년 6.15남북공동선언 발표가 있고 나서 남북교류가 활발해지면서입니다.
MC: 그렇다면 '통일문학'은 어떻게 정의 내릴 수 있을까요?
도명학: 제가 감히 통일문학을 뭐라고 정의할 수 있는 처지는 아닌 것 같습니다만 짧은 생각으로 말씀드릴 수 있다면 분단문학, 이산문학 탈북문학 등 분단된 한반도 상황을 담은 문학 모두를 아우르는 문학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라는 생각이 듭니다. 왜냐면 분단문학이든 이산문학이든 탈북문학이든 모두가 던지는 최종 메시지는 통일로 귀결됩니다. 다만 통일문학만의 특징은 통일의 당위성을 좀 더 공세적으로 강조하고, 남북 간 교류 협력 등을 소재로 한 작품이 많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MC: 결국 통일문학이 추구하는 건 뭔가요?
도명학: 남북 문학 교류 협력 등을 문화적 이질감 해소, 동질성 회복 등을 통해 궁극적으론 문학이 통일에 기여하는 것입니다.
MC: '통일문학'이란 잡지가 있죠? 이건 어떤 성격의 잡지였나요?
도명학: 그러고 나서 “통일문학”이라는 잡지가 나왔습니다. 하지만 그런 잡지가 나왔다는 사실 자체를 북한사람들이 몰랐습니다. 아마 남한에 있는 탈북민 3만 4천명 모두에게 물어봐도 그런 책을 본적 있다는 대답을 할 수 있는 사람이 몇 명이나 있을지 모르겠네요. 북한에 종이사정이 긴장해 많은 부수를 찍어내지 못하는 사정도 있었겠지만 일반에 공개하지 않았습니다. 도서관에 가도 없었습니다. 비공개 도서로 일반에 배부하지도 판매하지도 않았기 때문입니다. 작가, 기자, 등 특정부문 종사자들만 볼 수 있었습니다. 그렇다고 그 부문 사람들이 전부 다 본것도 아닙니다. 부수가 그렇게 적었습니다.
이 통일문학이라는 것에 대한 이해가 북한은 우리가 보통 생각하는 것 과 차이가 있습니다. 북한에서의 통일문학은 곧 “연방제통일문학”이라고 하는 것이 맞습니다. 민족화해, 교류, 평화통일, 이 모든 것이 연방제통일이라는 범주 안에서만 해석되는 것이 북한입니다. 더 나아가 북한에서의 통일문학은 적화통일문학입니다. 왜냐면 북에서 말하는 연방제 통일은 남과 북의 제도와 이념을 그대로 두고 하는 통일이라곤 하지만 핵심내용에 있어서는 김일성 김정일의 권위를 가지고 실현해야 하는 통일입니다. 다시 말하자면 사회주의적 북한인민이든, 자본주의적 남한국민이든 모두 김일성을 시조로, 김정일을 향도의 구심점으로 떠받드 는 국가가 통일국가를 만들겠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북에서 출간된 통일문학 잡지에 실린 작품들을 보면 느낄 수 있습니다. 물론 거기엔 북한체제를 찬성하거나 김일성, 김정일을 우상화하는 내용은 없습니다. 그러나 남한작가들이 기고했다는 작품들을 보면 전부 자본주의 사회에서 사는 주인공의 슬픔, 좌절감, 불만 등이 주를 이룹니다. 나아가 남한의 군부정권시대 를 비난하거나 미국의 식민지예속국가에 사는 사람들의 무력감, 비굴함, 사대주의 근성, 등과 미국의 부당한 내정간섭 같은 것들을 소재로 삼고 있습니다. 자기들 체제에 대한 노골적인 선전을 하지 않는 대신 남한체제를 교묘하게 비판하는 잡지가 바로 통일문학이었습니다.
MC: 선생님께서는 이 잡지를 처음 보시고 어떤 느낌을 받으셨습니까?
도명학: 낯설면서도 구미가 당겼습니다. 특히 남한 작가들의 작품이 실렸기에 더 그랬습니다. 뭐라 표현할 수 없을 만큼 흥분되고, 아무튼 엄청 반가웠습니다. 기대감도 그만큼 높았기에 지루한 느낌 없이 첫 페이지부터 마지막 페이지까지 아마 한 번도 쉬지 않고 단숨에 읽었던 것 같습니다.
MC: 이 잡지가 북한 작가들의 문학작품 집필에 어느 정도 영향을 미쳤나요? 작가들의 반응은 어땠나요?
도명학: 글쎄요, 제 생각엔 북한 작가들의 창작에 도움이 된 점이 있다고는 생각되지 않습니다. 도움이 되었다면 남한 작품 비슷한 느낌이 깃든 작품이 나왔을 텐데 그렇지는 않았습니다. 물론 저부터도 그렇고 남한 작가들의 작품을 읽고 난 북한 작가들의 반응은 좋았습니다. 나도 이런 작품 쓰라면 잘 써볼 자신 있는데, 할 뿐이었죠. 정말로 썼다간 큰일 나니까 그저 속앓이만 했죠.
MC: 얼마 전 김정은 총비서가 앞으로 통일은 생각지도 말라'는 취지의 발언을 한 것과 더불어 다시 남한을 주적으로 여겨야 한다고 말해 통일의 희망이 점점 약해지는 것 같은데요? 이러한 분위기가 통일문학 분야에도 영향을 미칠까요? 그렇다면 어떤 식으로 변할까요?
도명학: 아직은 더 지켜봐야 할 시점인 것 같습니다. 김정은의 반통일 행보가 오히려 남한에서는 그게 무슨 허튼 소리냐, 통일을 반대하다니 하는 반발심을 유발한 것 같습니다. 통일문학도 당연히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지만 아직 이렇다 할 변화나 움직임은 감지되지 않습니다.
MC: 통일문학이라고 할 수 있는 대표적인 작품 하나 소개해 주시겠습니까?
도명학: 최인훈 작가의 소설 ‘광장’을 추천드리고 싶습니다. 굉장히 읽을 가치가 있는 작품이라고 봅니다. 시간상 이야기가 길어질 것 같아 줄거리나 내용 개괄은 생략하고 말씀 드리면 최인훈 작가는 북한 출신으로 남한에 내려온 분이기 때문에 저도 공감되는 바는 큰 범위에서 같습니다. 남이나 북이나 어떤 이유에서든 분단으로 인해 오천년을 내려오며 함께 하던 모든 것이 절단 나고 그로 인해 서로를 반목질시하게 된만큼 정치 경제 군사 문화 등 모든 것이 정상적일 수 없다는 것에 대해선 부인할 수 없는데, 이러한 작가의 이런 체험과 메시지가 잘 반영 되어 있는 기념비적 작품입니다.
MC: 이 소설의 작가는 무엇을 말하려 했던 걸까요?
도명학: 최인훈 작가는 소설 “광장”을 통해 중립 사회가 되는 통일을 소망했습니다. 저 역시 그랬으면 좋겠지만 현실적으로 그것이 가능할지에 대해서는 회의적입니다. 강대국들의 전략적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는 한반도는 지정학적 위치와 지위로 봐도 그렇고 남북이 너무나 극과 극의 이념으로 굳어진 상황입니다. 최근 김정은의 노골적인 통일 지우기 행보가 두드러지면서 한국 정부는 그에 맞서 공개적으로 자유민주주의 체제 기반의 자유통일 지향을 공개적으로 천명하고 있습니다. 이는 한반도의 통일이 최인훈 작가의 소망대로가 아니라 그것이 평화적 방식이든 전쟁에 의한 방식이든 어느 한쪽 이념과 체제를 선택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말해줍니다. 이게 한반도가 처한 숙명이라고 인정한 바탕 위에서 통일을 논하는 것이 순리에 맞는 대처라고 생각됩니다. 그래서 아쉬운 것은 통일문학을 지향하는 남한 작가들 중에 이점을 간과한 채 통일문학 작품이라고 일컫는 작품들을 쓰고 있는 점입니다. 매우 비현실적이고 몽상가적인 통일 그림 그리기가 아닐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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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C: 급변하는 한반도 정세 속에서 '통일문학'이 가야 할 길은 무엇인지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도명학: 네, 통일문학은 남북 문인들이 함께 만들어 가야 할 뉴코리아 문학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다만 북한 체제 특성상 남북의 문인들이 함께 무엇을 하기가 거의나 불가능한데, 더욱이 김정은 정권이 통일 지우기에 나선 상황에서는 아무것도 할 수 있는 것이 없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통일문학 자체를 포기할 수는 없습니다. 그것은 남한 작가들이 김정은의 통일 지우기에 본의 아니게 동참하는 아이러니한 모습이 될 것입니다. 따라서 현실에 맞는 방식의 통일문학의 길을 가야 한다고 봅니다. 통일문학 작품들이 북한 인권 문제를 조명하면서 북한의 자유화 민주화를 전제로 한 통일의 당위성을 역설하는 방향에서 창작돼야 마땅합니다. 이렇게 주장하면 그건 반공 문학이지 그게 무슨 통일문학이냐고 반박할 순 있습니다만 최근 달라진 시대 상황 때문이지 결코 반공 문학과 일치한 것은 아닙니다. 다른 점에 대해선 많은 설명이 필요할 것 같아 시간상 생략하려고 합니다.
MC: 네, 선생님 오늘도 수고 많으셨습니다.
도명학: 네, 수고하셨습니다.
MC: 늦은 시간 함께 해주신 청취자 여러분, 고맙습니다.
에디터 이진서, 웹편집 한덕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