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명학의 남북문학기행] “북 ‘이산문학’은 적화통일 선동 수단”
2024.08.10
MC: 서울의 탈북 소설가 도명학 작가와 함께 하는 남북문학기행 시간입니다 저는 미국 워싱턴의 홍알벗입니다. 선생님 안녕하십니까.
도명학: 네, 안녕하십니까.
MC: 지난 주, 한반도의 분단 상황을 근거로 해 성립된 문학 가운데 '분단문학'을 살펴 봤는데요. 오늘은 어떤 문학에 대해 이야기 나눠 볼까요?
도명학: 네, 오늘은 '이산문학'에 대해 알아볼까 합니다.
MC: 이산문학이라고 하니까 얼핏 '이산가족'이란 말이 먼저 떠오르는데요. 이산문학이라는게 뭔가요?
도명학: 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세계에서 유일하게 분단국으로 남아있는 것이 한반도고, 또 남북 간 전쟁으로 인해 많은 이산가족이 생겨 그 비극이 지속되고 있으니까 한국인에겐 이산이란 말 자체가 몸에 깊이 박힌 파편 조각 같은 것이죠.
그런데 이산문학은 우리 한민족이 겪는 이산가족 이야기만이 아니라 세계적으로 쓰이는 보편적 문학 현상입니다. 이산문학이란 민족국가의 영토를 벗어나 이주국에 거주하는 이주자의 문학을 말합니다. 역사적으로 근대 식민주의로 인한 강제 이동과 현대의 전지구적 세계화는 자본과 노동의 이동과 유연화를 가져왔고, 결혼, 노동, 생계, 망명 등으로 타국에 가는 이주자들이 많아지면서 이산문학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습니다. 특히 21세기는 탈민족 · 초국가적 · 전지구적 상황 속에서 이주자, 여행자의 이동이 많은 시대입니다. 국경을 넘는다는 것은 타문화, 타언어, 타민족과 대면하고 접촉하게 되는 것이며, 고국을 떠나 타국에 정착한다는 것은 단일정체성이 아니라 다원성의 이중자아 혹은 이산자아로서 국민과 비국민으로서의 차별과 배제를 인식하는 것입니다. 왜냐면 국적과 지위 획득 유무에 따라 법적 · 인간적 우열이 갈라지게 되기 때문이죠. 이를 우리 민족 범위로 좁혀보면 우리만의 이산문학, 즉 코리안 디아스포라 문학인데 일반적으로 재외한인문학 혹은 해외동포문학을 말합니다. 따라서 재일, 재미, 재중, 재러작가의 작품과 해외입양인문학 그리고 국내에 유입된 외국인노동자, 결혼이주여성, 한민족 디아스포라를 주인공으로 그들의 디아스포라적 의식이나 디아스포라 현상을 다룬 국내 작가들의 작품들도 넓은 의미의 이산문학으로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에게 있어선 가장 무겁고 의미 깊고 민감하고 아픈 남북 이산가족 이야기를 내용으로 하는, 이를테면 이산가족문학일 수밖에 없습니다.
MC: 궁금한 게 있는데요. 북한에도 이산가족들이 있지 않습니까? 북한에서 이들 이산가족, 그러니까, 남한에 가족이나 친척이 있는 경우 이들을 바라보는 북한 주민들의 시선은 어떤가요?
도명학: 당연히 남이든 북이든 이산가족이 많습니다. 흔히 천만 이산가족이라고 하지 않습니까. 하지만 이제 천만이산가족이라는 말도 이산가족을 일컫는 상징적인 의미로 변해버린 상황인 것이 생존해 있는 이산가족이 상당수 줄었기 때문입니다. 분단이 올해로 79년이고 한국전쟁이 멈춘지 71년이니까 1950년에 북에서 엄마 등에 업혀 남쪽으로 내려온 아이가 70대 나이가 될 정도이니 피난길에 오를 당시 성인이었던 사람들은 많이 세상을 떠난 상황입니다.
극히 제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북한에 있을 때 남쪽에 고향을 둔 이산가족들을 바라보는 주민들의 시각이 나쁘지는 않았던 것 같습니다. 두고 온 고향이 얼마나 그리울지 남쪽에 남은 일가친척들은 미국의 식민지 통치와 괴뢰반동정권하에서 얼마나 고통받을까 하고 동정하는 마음이 짙었던 것 같습니다. 북한 당국 자체가 적화통일 교육 차원에서 주민들을 그렇게 세뇌시킨 효과도 있었겠지만 그보다 먼저 민족애 동족애 같은 정이 원초적으로 바탕에 깔려있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다만 북한의 경제상황이 피폐해지고 특히 한류가 급격히 유입된 이후엔 남쪽에 고향을 둔 이산가족들은 혹시라도 남한 가족과 상봉하여 도움받아 잘 사는 처지로 바뀔지도 모르는 사람들로 인식하였습니다. 실지로 이산가족들이 당국 주도의 이산가족 상봉에 선정되기를 원했고 여의치 않은 사람들은 국경을 넘나드는 밀수업자, 조선족, 탈북자 등을 통해 남한 가족과 연계하려고 시도했고, 그러다 발각돼 처벌받는 사례도 있었습니다.
MC: 그리고 북한에 있는 남한 출신 이산가족들에 대한 북한 당국의 부당한 대우는 없나요?
도명학: 북한에 살고 있는 이산가족들은 제 주변에도 더러 있었기에 그들의 처지와 생각을 알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들도 고향이 남쪽이라는 것과 고향에 돌아갈 날을 학수고대하는 공통점은 있지만 처지와 지위 등에 따라 생각에 조금씩 차이는 있었습니다. 대략 세가지 부류로 나눌 수 있는데요. 첫째는 남쪽에서 남로당활동 등 좌익활동을 하다가 자진 월북했거나 인민군이 서울 함락 등 남쪽을 점령한 기회에 의용군에 입대해 싸우다가 휴전 후 북에 남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들은 북에서 남조선혁명 즉 적화통일 동력으로 특별관리 대상이었습니다. 따라서 이들은 적화통일에 대한 의지가 상당히 높은데 적화통일 실현만이 고향을 찾는 길이고 고향을 사회주의 낙원으로 전변시킬 수 있는 참된 길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두 번째 부류는 전쟁통에 어찌어찌하다가 북에 밀려가 남게 된 사람들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들도 충성도에 따라 크게 써주기는 합니다만 대개 핵심 계층에 속하지 못하는 동요 계층으로 분류돼 살았습니다. 대학 입학, 승진 등에 큰 지장은 없었던 것으로 아는데 다만 고위직이나 당, 보위부, 안전부 간부가 되기에는 제한되었습니다. 세 번째 부류는 국군포로와 남한 출신 인민군 포로, 본인 의사 없이 끌려온 납북자 등인데 이들은 경계 대상으로 많은 차별을 당할 수밖에 없는 처지였습니다.
MC: 일반적으로 이산문학이라고 하면 이주자의 삶과 정체성을 그린 문학이라고들 말하는데요. 남북한 이산가족을 다룬 작품과 지금 언급한 일반적인, 그리고 우리가 알고 있는 이산가족 관련 작품과는 어떤 차이가 있을까요?
도명학: 가장 큰 차이는 남북 이산가족을 다룬 작품들은 거의 예외 없이 좌우 이념, 한국전쟁, 통일문제와 무관하지 않다는 점일 것입니다. 두고 온 고향으로 돌아가거나 헤어진 가족 친지들을 다시 만날 날은 오로지 통일뿐임을 어느 작품이나 내포하고 있습니다. 남북 이산가족 작품에는 다른 이산문학작품 즉 세계적인 보편적 이산문학작품들과 달리 이주한 땅에서 새롭게 정착해 성공하려는 목적이나 의지를 보여주기보다 고향으로 돌아가길 일일천추 바라는 마음들을 보여주는 것이 특징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MC: 북한에도 이산문학이 존재하나요?
도명학: 네, 이산문학이라는 용어는 사용하지 않지만 이산의 아픔과 비극을 내용으로 한 작품들은 꽤 있습니다.
MC: 남과 북의 이산문학 관련 작품들을 좀 비교해 주시죠.
도명학: 남한에서 창작된 이산문학작품들은 순수하게 이산의 아픔과 비극 재회에 대한 갈망 같은 것이 주를 이루는데 비해 북한에서 창작된 이산가족 이야기들은 전부 북한 주도의 적화통일을 선동하는 방향에서 그립니다. 고향을 떠나야만 했던 아픔, 남아있는 가족 친척의 불행이 모든 것이 미국놈 탓이고 남반부를 해방하지 못한 탓이니 하루빨리 전쟁준비에 박차를 가해 미군을 몰아내야 한다는 결론이 북한 이산가족 작품들이 추구하는 최종 결론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MC: 남한의 이산문학 작품 가운데 북한 주민들에게 읽어보라고 추천해 주시고 싶은 책이 있다면?
도명학: 네, 전 시간에 분단문학 이야기를 할 때 추천했던 이문열의 소설 “아우와의 만남” 과 박완서의 “그해 겨울은 따뜻했네” 그리고 “장진호에서 온 아이”를 추천하고 싶습니다. 세 작품 모두 전쟁과 이산가족, 그리고 남한 실향민의 자녀들 이야기들이 아주 진솔하고 실감나게 담겨진 작품들입니다. 또 영화로는 “국제시장”, “만남의 광장” 등을 추천하고 싶습니다.
MC: 왜 이 작품을 추천하고 싶으신가요?
도명학: 북한에서 쓰여진 대남정치선동적인 작품들에 비해 남한의 작품들이 훨씬 순수하고 생동감, 현실감 있게 쓰여졌기 때문에 그것을 통해 기존에 가지고 있던 남한에 대한 인식, 통일에 대한 인식, 헤어진 가족의 처지에 대한 굴절된 인식이 제자리로 돌아서는데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MC: 남한 독자들에게 추천하고 싶으신 작품이 있다면 어떤 책이고 또 이유는 뭘까요?
도명학: 남한 독자에게 따로 추천하고 싶은 작품은 없습니다. 이산가족은 남이나 북이나 다 같은 처지니까 굳이 남한 이산가족 따로 북한 이산가족 따로 추천할 필요 없이 이산가족작품들 모두 남북 구분 없이 보편적인 작품들이라고 생각되기에 앞에서 북한 독자들에게 추천한 도서들을 남한 독자들, 특히 젊은 세대들에게도 추천하고 싶습니다. 좋기는 북한에서 창작된 이산가족작품들도 보면 좋은데 전부 적화통일 선동이 교묘하게 가미된 것이라서 추천할만한 것을 찾기 곤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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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C: 앞으로 이산가족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탈북민의 입장에서 한말씀 해 주시죠.
도명학: 이산가족들이 전부 고령이고 2세들도 나이가 적지 않습니다. 이제는 3세들 시대라고 할 수 있는데 이들부터는 이산의 아픔이 무엇인지 느낌이 둔감하다고 할 수 있죠. 그래서 이산가족 1세, 2세들이 더 늦어지기 전에 3세, 4세를 잘 가르쳤으면 좋겠고, 한편으론 근래에 생긴 새로운 실향민이고 이산가족인 탈북자들과 연계하여 당대에 이루지 못한 귀향의 꿈을 탈북자들에 의해 실현될 수 있도록 적극 지원하길 바랍니다.
MC; 한반도 분단상황을 다룬 작품 가운데 오늘은 그 두번째 시간, 이산문학에 대해 도명학 선생님과 이야기 나눴습니다. 늦은 시간까지 힘께 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선생님 수고 많으셨습니다.
도명학: 네, 감사합니다.
(에디터 이진서, 웹편집 한덕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