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명학의 남북문학기행] 통일염원 '직녀에게' 건넨 남한 시

워싱턴-홍알벗 honga@rfa.org
2024.07.27
[도명학의 남북문학기행] 통일염원 '직녀에게' 건넨 남한 시 전북 남원시 광한루원을 찾은 관광객들이 오작교를 거닐며 경치를 감상하고 있다.
/연합뉴스

MC: 북한에 계신 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도명학의 남북문학기행’ 시간입니다. 저는 진행을 맡은 미국 워싱턴의 홍알벗입니다. 오늘도 서울의 탈북 소설가 도명학 작가와 남북문학에 대해 이야기 나눕니다. 선생님 안녕하십니까.

 

도명학: 네, 안녕하십니까.

 

MC: 선생님 이제 얼마 안 있으면 ‘한국전쟁 정전기념일’인데요 이와 연관된 문학 작품이 있을까요?

도명학: 네, 오늘 준비한 작품은 6.25전쟁과 직접적인 연관은 없지만 민족 분단과 이산가족의 아픔, 통일에 대한 절절한 그리움을 담은 한국의 문병란 시인의 “직녀에게”라는 시를 가지고 이야기하려 합니다.

 

MC: 먼저 이 시를 쓴 문병란 작가가 어떤 인물인지 소개해 주시죠.

도명학: 네, 문병란 시인은 1935년 전라남도 화순군 도곡면 원화리 출생했고. 1960년 조선대학교 국문과 졸업하였습니다. 시인은 1963년 『현대문학』에 「가로수」,「밤의 호흡」,「꽃밭」등이 추천되어 등단하였으며 전라남도 순천고등학교, 광주일고등학교, 조선대학교에서 교직 역임하였습니다. 시집으로는 『문병란 시집』 『정당성』, 『죽순밭에서』, 『땅의 연가』, 『무등산』

 

저항시인, 민중 시인으로 평가받은 시인의 시적 노선은 1973년 시집 『정당성』을 내놓은 이후 더욱 분명해졌다고 하는데. 그는 양심적인 시인으로서 홀연히 독재를 반대하는 저항 시들을 썼습니다. 이러한 그의 시 정신은 1974년 『창작과 비평』겨울호에 「겨울 산촌」,「고무신」,「살인자」등의 작품을 발표하면서부터 반체제 저항 시인으로서 알려지게 됩니다.

 

그는 민중 지향이라는 뚜렷한 시적 목표와 방향을 가졌기 때문에 그의 시어는 민중적이었고 그의 시어는 별다른 지식 없이도 한번 읽으면 금방 그 뜻을 알 수 있는 평범하고 친숙한 언어이고, 민중의 생생한 생활 속에 뿌리를 내리고 있는 건강한 언어라는 평가를 받습니다. 이러한 '쉬운 시 쓰기'는 민중 속으로 들어가는 문학의 기법이며, 지식인을 위한 모더니즘 시를 극복하는 그의 문학적 방법이었습니다.

 

이와 맥락을 같이하는 그의 민중 시는 1970년대에 내놓은 시집 『죽순밭에서』, 시문집『호롱불의 역사』, 농민시집『벼들의 속삭임』 등에 잘 나타나 있습니다. 이 중『죽순밭에서』는 1979년 당시 유신 정권이 이 시집이 "외설스럽고 민족정신을 부정했다."는 이유를 내세워 판매 금지 조치를 내리기도 했습니다. 시인은 이에 대해 25페이지에 걸쳐 그 부당함을 조목조목 따지면서 판금 조치를 철회하라는 항의서를 당국에 제출했고. 이 사건은 사회적으로 일대 파문을 일으켰습니다. 시인의 그러한 저항 의식이 오롯이 담겨진 것으로 하여 그의 시가 생명력을 오래 지닐 수 있었다고 생각됩니다. 시인은 2010년 낙동강문학상, 2009년 제1회 박인환 시문학상, 2000년 제1회 광주광역시 문화예술상 등을 수상했으며 민주교육실천협의회 국민운동본부 대표, 민족문학작가회의 이사로도 활약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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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문병란의 집' 서재 내부. 광주 동구는 문병란 시인이 1980년부터 2015년 작고하기까지 살았던 자택을 매입해 작품과 생애를 기리는 공간으로 단장해 지난 2021년 개관했다. /연합뉴스

 

MC: 계속해서 시 낭송을 들어 보시겠습니다.

                                                                                                                                              

<직녀에게> 문병란

이별이 너무 길다

슬픔이 너무 길다

채로 기다리기엔 은하수가 너무 길다

하나 오작교마저 끊어져버린

지금은 가슴과 가슴으로 노돗돌을 놓아

면도날 위라도 딛고 건너가 만나야 우리,

채로 기다리기엔 세월이 너무 길다

그대 번이고 감고 실을

밤마다 그리움 수놓아 다시 풀어야 했는가

내가 먹인 암소는 번이고 새끼를 쳤는데

그대 베는 필이나 쌓였는가

이별이 너무 길다

슬픔이 너무 길다

(이하 생략)

[출처: 유투브 채널 ‘사단법인 서은 문병란 문학연구소’] 

 

MC: 선생님께서 이 작품을 고르신 이유가 있다면 뭘까요?

도명학: 시가 상당히 마음에 들었습니다. 통속적이고 대담하기까지 해 보이는 시어들로 통일일에 대한 염원을 직녀, 또는 연인이라는 상징적 대상을 통해 의인화한 것이 마음을 더 깊숙이 자극하기에 이 시를 많은 사람들에게 특히, 북한 청취자들에게 소개하고 싶었습니다.

 

MC: 시인 문병란 작가가 이 시를 통해 말하고자 했던 것은 무엇이었을까요?

도명학: 이 시는 만남에 대한 갈망, 상실의 위기에 놓인 소중한 대상을 되찾기를 갈망, 즉 통일에 대한 갈망을 주제로 하고 있습니다. 시는 견우와 직녀 설화를 변용하여 노래한 서정시로 견우가 직녀에게 말을 건네는 형식으로 비극적인 이별을 당한 남과 북의 현실을 드러내면서 반복적인 표현을 사용하여 이별의 아픔을 극복하고자 하는 강한 의지를 토로하고 있습니다. 시인 자신이 말하기를 “‘직녀에게’라는 나의 통일 염원을 읊은 서정시라고 했습니다.

 

MC: 시를 보면, 알 듯 모를듯한 단어들이 많이 나옵니다. 예를 들면 은하수, 오작교, 그다음에 암소 뭐 이런 것들이 나오는데 이런 단어들이 각각 의미하는 것은 무엇일까요?

도명학: 네, 이 시에 쓰인 중요 시어들이 상징하는 의미를 개인적인 견해이긴 하지만 이렇게 해석할 수 있겠습니다. 우선 직녀 또는 연인으로 부르는 화자의 대화 상대는 통일을 의미하고, 은하수는 그 만남을 가로막는 장애물이자 사랑의 깊이와 성숙을 나타내는 소재라 할 수 있고 오작교는 서로의 사랑을 잇는 다리로서 동족애를 상징하며 면도날 위라도 딛고 건너가 만나야 할 우리라는 표현과 선 채로 기다리기엔 이라는 표현으로 재회에 대한 절실한 소망과 기다림의 고통을 토로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암소는 몇 번이고 새끼를 칠만큼 세월이 흘렀음에도 여전히 지속되는 분단 현실에 대한 안타까움을 나타낸 추상적 표현으로 쓰이고 있습니다. 또 사방이 막혀 버린 죽음의 땅은 직녀, 즉 통일 문제가 처한 현실, 죽음과도 같은 시련과 고통의 환경을 의미한다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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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시 남구문화원 야외공연장에서 열린 '제20회 칠석날 한마당'에서 견우와 직녀가 공연하고 있다. 2021.10.9 /연합뉴스

 

MC: 반복되는 이야기 같지만, 견우와 직녀 이야기가 한반도의 통일 그리고 한국전쟁과 어떤 연관성이 있다고 봐야 할까요?

도명학: 시에서 절절히 표출되는 분단의 고통과 슬픔, 통일에 대한 갈망은 분명 전쟁에 의한 통일이 아니라 민족 화해와 포용에 기반한 평화통일일 것입니다. 즉 약간 간접적이긴 하지만 반전 작품 범주에 넣는다 해도 이상하지 않을 듯합니다.

 

MC: 이 시는 어떤 형식으로 쓰여졌다고 할 수 있을까요? 특징이 있다면요?

도명학: 한마디로 서정적이고 전통적이고 설화적이고 참여적이고 애상적인 성격을 띠고 있습니다. 가장 주된 특징은 견우와 직녀의 전설을 바탕으로 하여, 견우 즉 화자가 직녀에게 말을 건네는 형식입니다. 이에 따라 표현들도 강렬한 호소력을 띤 어조이며 반복 수법을 통해 의미를 강조하고 있습니다.

 

MC: 북한에도 이 시처럼 남북 관계 또는 한반도 통일과 관련해서 전래 동화와 연관 지은 문학 작품이 있나요?

도명학: 네, 북한에도 통일을 주제로 한 시, 소설, 영화 등 다양한 문학 작품들이 적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 시처럼 상징적 수법, 은유적 수법을 활용하기보다는 직설적이고 선동적입니다. 예컨대 남녘땅에 계신 어머니를 그리는 시라면 동백꽃 아름다운 남녘 고향에 대한 묘사와 어릴 적 친구들과 백사장에 뛰놀던 추억 등을 그리다가 그 고향에 갈 수 없게 만든 분단의 원흉 미국에 대한 적개심과 하루빨리 남녘땅을 해방하고 그리운 어머니 품에 안기고 싶다고 절규하는 식으로 되어 있습니다.

 

MC: 마지막으로 전체적인 감상평을 부탁드립니다.

도명학: 전체적으로 만남 즉 통일에 대한 강한 의지를 담고 있습니다. 내용 중 ‘연인아’라고 부르는 점을 참고할 때 화자는 ‘견우’라고 볼 수 있습니다. 1행과 2행에서는 변주와 반복을 통해 화자가 처한 상황과 그에 따른 고통이 크다는 의미가 담겨져 있습니다. 3행과 7행에서는 소극적인 태도를 가져서는 안 된다는 의견을 피력하고 있으며, 5, 6행에서는 만남에 대한 강한 소망을 나타내고 있다. 12행과 13행에 ‘이별이 너무 길다/ 슬픔이 너무 길다’라는 작품 첫머리 시구의 반복 사용을 통해 이별의 상황으로 인한 화자의 슬픔을 강조하고 이별과 슬픔이 끝나야 할 당위성을 강조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한편 이 시는 작곡가 김형성과 민중가수 박문옥이 곡을 붙여 노래로도 불리는 작품입니다.

 

MC: 선생님 수고 많으셨습니다

도명학: 네 수고하셨습니다

 

[액트: 노래 직녀에게, 가수: 박문옥] / 출처: 가을나그네] 

 

MC: 다음 시간에 다시 찾아 뵙겠습니다. 

에디터 이진서, 웹편집 한덕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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