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명학의 남북문학기행] 북 주민, ‘맹방’ 쿠바 문학엔 깜깜
2024.0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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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C: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도명학의 남북문학기행’ 시간입니다. 저는 진행을 맡은 미국 워싱턴의 홍알벗입니다. 오늘도 서울의 탈북 소설가 도명학 작가와 남북 문학에 대해 이야기 나눕니다. 선생님 안녕하십니까.
도명학: 네, 안녕하십니까.
MC: 오늘은 어떤 작품을 갖고 오셨나요?
도명학: 아, 오늘은 문학작품 말고, 북한과 쿠바와의 관계, 특히 문학 교류에 대해서 이야기할까 합니다.
MC: 그렇지 않아도 얼마전 한국, 그러니까 남한이 쿠바와 수교를 맺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만. 북한은 오래 전부터 쿠바와 형제처럼 지내지 않았습니까. 두 나라가 어떤 관계인지 먼저 그 배경부터 알아 볼까요? 아니, 쿠바라는 나라는 어떤 나라인지 알아보죠.
도명학: 네, 쿠바는 북한에서는 꾸바라고 하죠. 북아메리카의 카리브 제도에 있는 섬나라인데요. 미주지역에서 유일한 사회주의 국가입니다. 수도는 아바나이구요. 스페인어를 사용하는데 인구는 약1천100만명이고, 1959년에 사회주의 국가가 됐습니다. 현재 국가 주석은 미겔 디아스카넬입니다.

MC: 북한과 쿠바는 그야말로 오랜 기간동안 형제처럼 지내오지 않았습니까. 어느 정도로 친한가요?
도명학: 북한은 쿠바와 1960년에 수교를 맺었습니다. 1959년 카스트로가 혁명에 성공한지 1년 만이었습니다. 북-쿠바 관계의 절정은 김일성 시대였고 이후 쿠바가 개혁개방을 추구하면서 당대당 외교가 약화된 것은 사실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념’과 ‘전통성’을 유지하고 있었습니다. 구소련과 동구권 사회주의가 무너질 때도 쿠바가 제일 사회주의 원칙을 잘 지킨다고 상당히 호의적이었습니다.
역사적으로 보면 커스트로에 의한 쿠바 혁명 이후 양국은 냉전 시기 ‘반미’와 ‘사회주의’란 공통분모 아래 긴밀히 교류해왔습니다. 우리에게도 잘 알려진 체 게바라를 비롯해 라울 카스트로, 피델 카스트로 등 쿠바의 주요 인사들이 환대 속에 북한을 방문했으며, 또한 북한이 핵 개발로 국제사회에서 고립돼 가던 2018년에도 미겔 디아스카넬 당시 쿠바 국가평의회 의장이 평양을 찾아 김정은 총비서와 대면하기도 했습니다. 북한 역시 김정은 총비서가 올해 1월 1일 디아스카넬 대통령에게 쿠바 혁명 65주년을 축하하는 장문의 축전을 보냈습니다. 김 총비서는 축전을 통해 "사회주의 위업의 승리를 위한 공동투쟁 속에서 맺어진 두 당 두 나라 사이의 전통적이며 동지적인 친선협조 관계가 앞으로 더욱 공고 발전되리라는 확신"을 표명했습니다.
MC: 그럼, 선생님께서 느끼시는, 그리고 북한 주민들이 느끼는 쿠바는 어떤 나라였나요?
도명학: 북한 주민들에게 있어 쿠바는 아주 멀리 있지만 사회주의를 굳건히 지켜가는 유일한 나라였습니다. 소련은 붕괴되고 동유럽 사회주의 국가들도 남한과 키스를 하는 정도고 베트남도 어정쩡하고 중국은 이미 오래전에 등소평으로 인해 변질된 사회주의를 하는 사실상의 자본주의 국가, 사회주의를 배신한 국가라고 여겼지만 쿠바만은 다르다고 믿었다고 할지 아무튼 쿠바에 대해선 상당히 신뢰했습니다.
한편 북한 주민들은 쿠바라고 하면 사탕수수를 먼저 떠올립니다. 지어 쿠바 사람들처럼 쌀밥 대신 설탕 가루만 먹고 살았으면 좋겠다고 말할 정도입니다. 또한 쿠바는 옛날에는 미국을 겨냥한 구소련 미사일이 실전 배치되어 있었으나 현재는 북한 미사일이 배치돼 미국을 공포에 떨게 한다는 겁니다. 물론 누군가가 퍼뜨린 헛소문일 순 있습니다만 그만큼 쿠바에 대한 신뢰감이 높다고 할 수 있습니다.
MC: 어쨌거나 그렇게 친한 사이라면 북한과 쿠바 간에 문학교류, 그러니까 작가라든지 문학작품의 교류도 활발했을 것 같은데 실제로는 어땠습니까?
도명학: 아, 정치적으론 그렇게 가까이 생각했을지라도 문학예술 분야에서 교류가 없었다고 할 정도였습니다. 쿠바라는 나라가 워낙 북한보다 작은 나라인데다 지리적으로 멀리 떨어져 있다보니 그런 것 같기도 하고, 북한 입장에선 사회주의 쿠바는 북한을 배우면 배웠지 쿠바에서 배울 건 없는 나라라는 정도로 인식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다보니 실지 북한에서 쿠바 문학예술작품을 접할 기회도 별로 없었던 것 같고 문학예술에 있어서는 또 다른 작은 사회주의 국가인 몽골의 것보다 별로 나을 것도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MC: 그럼 북한에 계실 때 쿠바 문학작품을 접하지 못하셨다는 말씀이신가요? 어떻게 그럴 수가 있죠? 명색이 형제국가인데 말이죠.
도명학: 네. 형제 국가이긴 하지만 쿠바 문학예술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었던 것이 사실입니다. 쿠바 말고도 북한은 원래 소련, 중국 작품 외에는 별로 소개하지 않았고 교류도 적었습니다. 오히려 돌스토이, 바이론, 괴테, 발자크, 스탕달, 등 서방 작가들의 고전을 가르치고 논의하면 했지 쿠바 문화예술은 거론조차 하지 않았다는 것이 맞을 것 같습니다. 물론 작가보다는 문학 연구자들 경우엔 좀 달랐을지 모르나 작가들은 쿠바 문학예술에 대해 약간 궁금해할 정도지 깊이 파볼 생각까지는 하지 않았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북한에서 활자로 된 쿠바 작품은 본 적 없습니다.

MC: 그럼, 소설이나 시 말고 다른 작품도 못 보셨다는 거네요?
도명학: 다만 쿠바 영화를 본 기억은 있습니다. 그것도 제목도 기억나지 않고 단편적인 장면들은 뇌리에 박혀 있습니다. 아마 쿠바 영화를 북한에서 두세 개 정도는 조선중앙텔레비전방송으로 방영했던 것 같습니다. 그중에 어느 영화였던지 제목이 기억나지 않지만 그 영화가 희극적이었습니다. 1959년 사회주의 혁명 성공 후 쿠바에서 농촌계몽운동을 하는 영화였는데, 국가가 농촌문화 주택을 새로 지어 농민들에게 공급합니다. 그런데 나이 많은 농민들이 새집에 이사를 하라는 데 통 말을 듣지 않습니다. 그래서 그들을 설득하려고 파견된 선전원들이 가가호호 찾아다니며 제발 새 주택에 이사를 하라고 설득합니다. 그래도 요지부동 거절하는 노인이 있습니다. 노인은 선전원이 한창 듣기 싫게 이사 가야 한다고 설득하고 돌아가는 등뒤에 대고 ‘나참 더러워서 집안에 변소가 있다니. 에이 더러워“하고 침을 뱉습니다. 그러니까 새로 지은 주택은 집안에 화장실이 있는데 노인은 그것이 너무 낯설고 집안에 화장실이 있으면 악취가 나서 어떻게 그 집에 사느냐는 편견이랄지 고정관념이랄지 하는 인식이 머릿속을 지배해 농촌 발전에 걸림돌이 되는 낡은 세대, 진보에 반하는 구 시대의 전형으로 형상됐습니다.
MC: 영화를 본 주민들의 반응은 어땠습니까?
도명학: 그때 그 영화를 보면서 동네 사람들 모두 낄낄 웃었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북한 사람들도 그 비슷한 상황을 경험했던 거죠. 천리마운동이 한창이던 시기 중요한 과제로 내세운 것 중 하나가 농촌에서의 문화혁명이었습니다. 도시에 비해 낙후한 농촌에서는 농민들이 비과학적인 민간요법을 고집하거나 봉건시대 때 습성을 버리지 못하고 당과 정부의 지침을 대놓고 반대하진 못했지만 온갖 핑계 거리를 만들어 외면하는 현상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농촌에 한해 5호담당선전원 제도가 나왔는데 목적은 농민들을 새롭고 현대적인 문화를 받아들일 수 있도록 하는 것이었습니다. 여기서 이야기를 살짝 돌린다면 남한에서 오래전에 한 반공교육 내용 중에 북한의 5호 담당제에 대해 그것이 주민들을 감시통제하기 위해 만들어졌다고 한 부분이 있더라구요. 실은 5호 담당제는 그것이 목적이 아니고 문화적으로 낙후하면서도 인정하지 않는 농촌주민들을 계몽할 목적으로 농촌에서 공부깨나 좀 했다고 보는 학교 교사나 진료소 의사, 간호사, 농장 작업반이나 분조의 기술지도원, 농산기수 등에게 다섯 농가씩 문화계몽을 담당시킨 제도입니다. 물론 5호담당선전원이 활동 중에 반체제 성향이나 간첩행위 등을 목격하면 신고한 경우가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5호담당선전원의 기본 사명은 아니었습니다. 훗날 농촌 문화수준이 일정한 수준에 도달했다고 인정되면서 그 제도는 사라졌습니다.
다시 쿠바 얘기로 돌아온다면 당시 쿠바도 북한과 유사하게 낙후한 농촌문화를 개선하려고 북한과 같은 정책을 펼쳤던 것 같습니다.
또 하나 기억나는 쿠바 영화는 코미디었습니다. 허풍치기 좋아하는 나이 든 농민 한 명이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자기가 어느 날 사탕수수 포전 길을 가고 있는데 사탕수수밭 한가운데서 –아바나로 가자, 아바나로 가자, 하는 노래소리가 계속 들리기에 밭을 헤집고 들어가보니 누가 거기다 버렸는지 깨어진 레코드판에 사탕수수 잎사귀 끝이 바람에 쓸리면서 그 소리가 나더라고 천연덕스럽게 거짓말을 아주 인상적이고 특이한 캐릭터였습니다. 이외에도 쿠바 영화를 통해 여러 에피소드를 접하긴 했는데 작품마다 유머였습니다.
MC: 얼마 전 한국과 쿠바가 전격적으로 수교를 맺었고 쿠바 내에 한류열풍이 대단하다고 하는데요. 한-쿠바 간 문화 또는 문학 교류 가능성은 어떻게 전망하십니까?
도명학: 저는 전망이 매우 낙관적일 것이라 봅니다. 한국-쿠바 간 외교 관계가 성립된 사건 자체가 한류 덕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인 것만큼 앞으로 한국과 쿠바 간 문학예술 교류가 크게 활성 될 가능성이 높아 보입니다. 궁극적으론 한반도 자유 통일에 도움 되는 긍정적 환경이 조성될 것이라 믿고 싶습니다.
MC: 네, 오늘 준비한 내용은 여기까지입니다. 선생님, 오늘도 수고 많으셨습니다.
도명학: 네 수고 많으셨습니다.
에디터: 이진서, 웹담당: 이경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