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명학의 남북문학기행] 남한 가요에 스민 북한 배고픔

워싱턴-홍알벗 honga@rfa.org
2024.03.02
[도명학의 남북문학기행] 남한 가요에 스민 북한 배고픔 2011년 9월 30일, 황해남도 해주의 한 병원에서 여름 홍수와 태풍으로 피해를 입은 영양실조에 걸린 아이에게 북한 여성이 손을 얹고 있다.
/Reuters

MC: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도명학의 남북문학기행입니다. 저는 진행을 맡은 미국 워싱턴의 홍알벗입니다. 오늘도 서울의 탈북 소설가 도명학 작가와 함께 남북 문학작품에 대해 이야기 나눕니다. 도명학 선생님 안녕하십니까.

 

도명학: , 안녕하십니까.

 

MC: 오늘 소개해 주실 작품은 뭔가요?

 

도명학: 네 오늘도 노래 한 곡 준비했는데 한국 가수 진성의 “보릿고개”입니다.

 

MC: 그럼 먼저 노래부터 들어 보시겠습니다.

 

보릿고개 / 진성

 

아야 뛰지 마라 배 꺼질라 가슴 시린 보릿 고갯길

주린 배 잡고 물 한 바가지 배 채우시던

그 세월을 어찌 사셨소

초근목피에 그 시절 바람결에 지워져 갈 때

어머님 설움 잊고 살았던 한 많은 보릿고개여

풀피리 꺾어 불던 슬픈 곡조는

어머님의 한숨이었소

 

MC: 이 노래의 가사를 요약한다면 어떤 내용의 노래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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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11년 수해와 태풍으로 집을 잃은 수재민의 식재료. /REUTERS

 

도명학: 배고팠던 옛 시절, 그러니까 지금은 한국이 먹을 것이 넘쳐나 사람들이 다이어트에 열광하는 수준으로 잘 살지만 배고팠던 시절의 아픈 기억들이 남아있습니다. 특히 그 시절 어린 자녀들의 작은 배마저 채워줄 수 없어 애간장을 태우던 어머니들의 한숨과 고생을 추억하며 위로 드리는 자식의 마음을 담은 노래입니다.

 

MC: 보릿고개하면 북한 뿐만 아니라 남한에서도 정말 어려웠던 시기를 가리키는 말이잖습니까. 하지만 이제 남한에는 보릿고개란 말이 없어졌는데 북한은 어떻습니까?

 

도명학: 한때 북한에서도 보릿고개라는 말을 쓰곤 했습니다. 그런데 보릿고개라면 말 그대로 춘궁기, 그러니까 아직 보리 수확을 하기 전 제일 먹을 것이 없을 때를 가리키는 말인데, 북한은 그 시기를 특정하는 것이 무의미해졌습니다. 왜냐면 식량난이 보릿고개 시기만이 아니라 온 한해 계속되기 때문입니다. 농사가 하도 안되니까 봄, 여름, 가을, 겨울 다 보릿고개인 셈입니다. 가을에 조금 낫다곤 하지만 그건 농촌에서지 도시 주민들에겐 시장 곡물 가격이 약간 떨어지는 정도 영향이 있을 뿐 배고픔은 면하지 못합니다. 그래선지 보릿고개라는 말을 거의 쓰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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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10월 8일, 북한 농부가 북한 동부 해안 도시인 원산 외곡의 고속도로를 따라 걷고 있다. /AP

 

MC: 선생님께서도 북한에 계실 때 보릿고개를 겪으셨나요? 당시 상황을 좀 설명해 주시죠.

 

도명학: 방금 말씀 드렸지만 사계절 모두가 보릿고개가 되고 말았고, 특히 도시에서 산 저에겐 춘궁기가 의미 없었습니다. 옛날부터도 도시 주민들의 경우 식량 배급에 의존해 살았기 때문에 보릿고개는 매달 반복됐다고 할 수 있습니다. 식량배급을 어떻게 했는가 하면 직업에 따라 한달 분씩 주는 곳과, 보름 분씩 주는 곳이 있었습니다. 한달 분씩 주는 직장은 주로 안전부, 보위부, 군대 등이었습니다. 다른 직장들은 거의 다 보름분씩 줍니다. 직장에서 배급표를 한달에 두 번 주죠. 그걸 상순배급표, 하순배급표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먹다 보면 보름 분 배급량이 꼭 2~3일 정도 모자랍니다. 죽을 쒀 먹으며 다음 배급 날을 기다리곤 했습니다. 조절을 잘못하면 다른 집에서 꿔먹고 배급 타면 갚아주고 그러면 또 모자라서 다시 꿔먹는 악순환이 계속되는 집들이 있는데 그런 집 주부들을 세간살이 못하는 여자라고 했습니다. 그 배급마저도 주지 못하게 되면서 1990년대 수백만명이 아사했습니다. 그 시기엔 보릿고개라기보다 풒고개라고 하는 것이 맞을 것 같습니다. 보리는 고사하고 겨울이 빨리 지나 눈이 녹고 산에 풀이 돋아나기를 기다렸으니까요. 풀만 나오면 아무 풀이나 다 뜯어먹는 판이었습니다. 단오 전 풀은 뭐나 다 먹을 수 있다고 했죠. 저는 풀까지 뜯어먹진 않았으나 사흘 정도 굶어본 건 몇 번 되는데 그때마다 운 좋게 돈이든 쌀이든 생겨서 살아나곤 했지만 배고픔이 얼마나 비참하고 서러운지는 겪어보지 않곤 다 모릅니다.

 

MC: 어느 가정이든 보면 아버지보다는 어머니가 상대적으로 먹을거리를 구하기 위해 더 맘고생을 하셨던 것 같은데 말이죠. 어머니들은 왜 그러셨던 걸까요?

 

도명학: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자녀들 밥그릇을 직접 담당하는 건 어머니들이죠. 밥주걱을 잡는 건 어머닌데 자녀들이 배고파 울면 그 심정이 어떻겠습니까. 물론 아버지들도 마음 아프지만 아버지들은 그래도 밖에 나가 돌 수도 있고 직접 밥주걱을 잡는 것이 아니니 좀 덜하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그러나 치맛자락 잡고 밥 달라 칭얼대는 아이들과 늘 붙어 있는 어머니는 어디 도망갈 곳도 없고, 먹을 것이 좀 생겨도 아이들 먹이다 보면 본인은 굶고 돌아서 물 한 사발로 주린 배를 달래는 것이 어머니들이죠. 죄책감마저 들더군요.

 

MC: 노래가사 중 가장 감동을 받으신 부분은 어디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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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8월 12일 북한 평양 인근 온천군 마을의 전경. /Reuters

 

도명학: , 저는 이 노래 가사 중에 아이야 뛰지 말아, 배 꺼질라’, 이 구절과 물 한바가지배 채우시던 그 세월을 어찌 사셨소?’ 이 구절이 정말 내 이야기 같아 가슴 저리더군요. 아닌 게 아니라 제가 배고파 수돗물 마시고 주릴 배를 달랜 적이 많습니다. 그 심정을 겪어본 사람만 알죠. 남한테 물 마시고 주린 배를 달랬다고 말하기도 창피하고, 말하지 못하니 더욱 서러웠습니다. 그리고 아이야 뛰지 말아 배 꺼질라 소리는 저의 할머니가 자주 하던 얘깁니다. 앞에서 얘기 했듯 배급쌀이 거의 떨어지면 죽을 쒀 먹어야 하는데 죽을 먹은 손자들이 멋 모르고 뛰놀면 할머니는 저러다 배 꺼질가봐 걱정됐던 거죠. 1990년대 대량아사가 발생하던 시기 제가 잠시 머물던 함경북도 길주군의 한 주민 집에서 그런 얘기를 듣곤 했습니다. 대충 끼니를 때운 그 집 아이들이 밖에 나가 또래 친구들과 마구 뛰어노는 것을 보고 뛰지 말라고 그러다 배 꺼진다고 만류하고, 또 어린 꼬마가 떼를 쓰면서 울면 그만 울어라, 그러다 배고파진다며 달래던 모습이 눈에 선합니다.

 

MC: 북한주민들이 이 노래를 듣는다면 어떤 반응을 보일까요?

 

도명학: 당연히 노래 가사 내용과 어쩌면 우리 생활이 이렇게 똑같을까 하는 생각이 들 것입니다. 그런데 별로 위로는 안 될 것 같습니다. 이 노래가 오히려 더 배고프고 슬픈 느낌을 줄 것 같습니다. 솔직히 이 노래가 현재는 배가 고프지 않을 만큼 처지가 바뀌었을 때 배고팠던 지난날을 돌아볼 때 과거에 대한 위로를 느낄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MC: 전체적인 감상평을 부탁드립니다.

 

도명학: 전체적인 감상평을 얘기한다면 이 노래는 이미 배고픔이 과거가 된 후에라야 슬픈 추억에 대한 위로가 되는 노래로 들릴 것 같습니다. 다행히도 대한민국은 배고픈 시대가 지났고 지금은 오히려 될수록 적게 먹으려 하는 다이어트에 열광하는 시대입니다. 흔이 하는 이런 말이 있습니다. 오늘은 비록 고생스럽더라도 이 모든 것을 이겨내고 훗날 오늘을 옛말 할 때가 있을 거다. 아닌 게 아니라 한국이 누리는 현재의 풍요가 그 시점이 아니겠습니까. 이미 지난 얘기니까 노래할 수 있는 거지 현재도 배가 고프다면 가뜩이나 힘든 상황에 이 노래가 목구멍에서 쉽게 터져 나오겠습니까. 그래서 저는 이 노래를 들을 때면 배고프던 보릿고개가 옛말이 되어 버린 현재의 한국 상황이 얼마나 다행스럽고 감사한지 새삼스럽게 느껴보게 됩니다. 물론 북한에서 배를 곯던 추억도 함께 위로가 되는 것이구요. 한편으론 이 노래가 먼 훗날에도 한국의 옛 보릿고개를 상상해볼 수 있게 하는 역사 기록 중 한가지가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MC: , 도명학의 남북문학기행, 오늘 준비한 내용은 여기까지입니다. 선생님, 오늘도 수고 많으셨습니다.

 

도명학: , 수고하셨습니다.


MC: 끝까지 함께 해 주신 청취자 여러분 고맙습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

 

에디터: 이진서, 웹담당: 이경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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