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명학의 남북문학기행] 탈북작가가 부러워한 황순원 ‘문학관’
2024.11.16
MC: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남한과 북한의 문학에 대해 알아보고 또 비교해 보는 이야기 나누는 ‘도명학의 남북문학기행’ 입니다. 서울에서 활동하는 탈북소설가인 도명학 작가와 이야기 나눕니다. 선생님 안녕하십니까.
도명학: 네, 안녕하십니까.
MC: 그동안 저희가 작가나 작품을 위주로 이야기를 많이 나누지 않았습니까? 그런데, 오늘은 좀 특이한 것을 준비해 오셨다고요. 어떤 건가요?
도명학: 네 한국에는 작가의 작품과 생애를 기념하는 문학관들이 전국 도처에 있는데, 이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는 것도 의미 있을 것 같아 오늘은 그 중에서 황순원 문학관에 대해 볼까 합니다.
MC: 제 고향 강원도 춘천에도 어느 한 작가의 문학관이 있는데요. 춘천의 것은 나중에 알아보도록 하고요. 먼저 ‘문학관’이라는 곳이 어떤 곳인지 설명 부탁드립니다.
도명학: 문학관은 문자 그대로 문학과 관련된 자료들을 수집, 관리, 보존, 조사, 연구, 전시, 홍보, 교육하는 시설로서 문학진흥법에 따른 문학관 자료, 인력 및 시설 등 등록 요건을 갖춘 시설을 의미합니다.
MC: 황순원 작가는 남한에서 상당히 유명한데요. 어떤 사람이었나요?
도명학: 네, 황순원 작가를 모르는 사람은 아마 한국에 없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황순원 작가는 북한에 고향을 둔 월남 작가입니다. 소설가로 많이 알려져 있는데 시도 많이 썼습니다. 황순원 작가는 1915년 3월 15일 평안남도 대동군 재경면 빙장리에서 아버지 황친영과 어머니 장찬붕 사이에서 태어났습니다. 부친은 3.1운동 때 평양 숭덕학교 교사로 재직 중ㅇ 태극기와 독립선언서를 평양 시내에 배포한 일로 옥살이를 애국자였습니다. 이 때문에 한때 일제 경찰의 눈을 감시를 피해 평안남도 강동군에서 잠시 머물다 황순원 작가가 여섯 살 되는 해 평양으로 이사하고 숭덕소학교를 다며 예체능 교육까지 따로 받으며 자랐다고 합니다. 1929년에는 평북 정주에 있던 오산중학교에 입학했습니다. 이 시기 그는 남강 이승훈을 만나게 되는데요. 이승훈은 한국의 교육자·독립운동가. 신민회 발기에 참여했고, 오산학교를 세운 인물입니다. 3.1운동 후 105인사건에 연루돼 옥고를 치르기도 한 3·1운동 민족대표 33인의 한 사람이었습니다. 또 동아일보사 사장을 역임하기도 했으며, 물산장려운동과 민립대학 설립을 추진한 이승훈과의 인연은 훗날 황순원 작가의 생애에 영향을 주었습니다. 제가 보기엔 월남 작가 중 가장 많이 알려진 작가가 황순원 작가가 아닐까 생각됩니다.
MC: 그런데,, 무엇때문에 작가들의 이름을 붙인 문학관을 지어 주는 건가요?
도명학: 단정적으로 대답을 드리기보다는 이런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흔히 작가란 남한이나 북한이나 세계 어느 나라 작가든 이름 석자 후손만대에 남기고자 글을 쓴다고 할 수 있고 작품은 곧 작가의 자식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런 인생관을 가진 작가들이기에 그의 문학활동에 대해 문학관을 세우는 것은 작가 본인에게는 물론 후배나 제자들 입장에선 굉장히 뿌듯한 일일 것입니다. 또 이것을 정부가 지원하는 것도 나라의 문화 역량 발전을 위한 것으로 국격 신장에 도움이 될 것입니다.
MC: 황순원 문학관은 어떤 곳인가요?
도명학: 황순원 문학관은 제가 남한에 온 후 처음으로 가본 문학관이라서 특별히 기억된 곳입니다. 황순원 문학관은 경기도 양평군에 있습니다. 특이한 것은 대한민국 문학관들은 대개 작가의 고향에 있는데 황순원 문학관은 고향이 아닌 곳에 있다는 것입니다. 작가의 고향이 평안도 지방인데 분단 상황이니만큼 그가 주로 머물며 창작활동을 했던 고장인 경기도 양평군에 그를 기념하는 문학관을 지은 것 같습니다
황순원 문학관은 인구 1,000만 명 되는 서울에서 자가용으로 불과 40분 가량 갈 수 있는 가까운 거리에 있어 관광객들이 많이 찾는 곳입니다. 그만큼 황순원 작가가 한국문학 발전에 기여한 몫이 크다고 할 수 있습니다. 특히 그가 남한 출신이 아닌 북한 출신 월남 작가로서 거침 없고 소신에 당당한 작가, 그러면서도 독실한 기독교 신자였다는 것 등 개성이 작가적 생명이라고 할 수 있는 작가 본연의 삶을 의연하게 살아온 것이 황순원 작가이니만큼 그것을 기념하려는 의로도 세워진 것이 황순원 문학관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러나 한 가지 덧붙인다면 황순원 문학관이 다른 문학관들과 차이가 있는 것은 황순원 문학관에는 소나기 마을 체험이라는 것이 있는 데, 맑게 개인 여름 하늘에도 인공 소나기를 만들어 관광객들에게 퍼부어 황순원 작가의 대표 작품으로 알려진 단편소설 “소나기” 속의 장면을 직접 느껴보는 경험을 제공하는 독특한 곳입니다.
MC: 북한에도 문학관 또는 문학관과 비슷한 곳이 있나요?
도명학: 북한에는 문학관이라는 말 자체가 없습니다. 문학관을 세운다면 대개 개별적 작가의 작품과 생애를 전시하는 문학박물관이 될 건데, 이는 김일성 시대부터 이어온 당의 유일사상확립의 10대 원칙에 위배되는 것으로 개별적 인사에 대한 숭배심을 종파주의라고 엄중하게 보는 북한 당국의 입장에선 가뜩이나 자유주의 성향이 강하고 반골 기질이 농후한 작가들을 내세우는 문학관 같은 시설을 생각할 수 없을 것입니다.
MC: 북한의 작가들이 남한의 문학관을 직접 와서 본다면 뭐라고들 할까요?
도명학: 북한에 있을 때 소련 등 동유럽을 다녀온 선배 작가님의 얘기를 들은 기억이 있습니다. 그때 그분이 말하기를 조선에서는 아무리 재능있는 작가라고 해도 죽으면 그만이지만 외국에서는 고향에 기념비, 기념관, 동상 같은 것도 세워 준다고 했습니다. 그 말을 듣고 생각이 참 많아지더군요. 아마 북한 작가들이 남한에 와서 문학관들을 돌아본다면 오로지 독재자를 위한 박물관과 사적관밖에 없는 북한 체제에 대한 회의감을 크게 느끼게 될 것입니다.
MC: 작가의 입장에서 볼 때 문학관은 있어야 할까요, 아니면 없어도 될까요?
도명학: 저는 있어야 한다고 봅니다. 문학관은 필요합니다. 솔직하게 말한다면 남한에 와서 처음에 문학기행을 간다니까 이게 무슨 의미가 있다고 시간 낭비하는가 하는 생각이 없지 않아 들었는데 막상 가보고 나니 너무 좋아서 얼른 자리를 뜨기 싫더군요. 그때 아, 작가의 육체적 생명은 떠나도 영혼은 이렇게 살아서 산 사람들과 함께 하는 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고 보면 문학관이라는 용어 자체를 알지 못하는 북한 작가들이 참 불쌍합니다.
MC: 선생님께서 문학관을 짓게 된다면 어떻게 지으시겠습니까?
도명학: 저 같은 무명작가가 문학관 지을 생각을 한다는 건 좀 주제 넘는 생각인 것 같고, 혹시라도 훗날 유명해진다면 사후에 후배 작가, 동료 작가들에 의해 지어질 순 있겠죠. 어떤 형태의 집을 짓고 운영 방식이 어떨지도 살아 있는 사람들 몫이겠죠. 다만 제 이름으로 된 문학관이 생겨도 거기에 전시할 자료가 별로 있을 것 같지 않습니다.
MC: 문학관의 역할 중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시는 것이 있다면 그게 뭘까요?
도명학: 문학관의 역할은 세 가지로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첫 번째는 작가의 생애와 작품을 기리는 역할일 것이고 두 번째는 문학관을 통한 다양한 문학 관련 프로그램들을 운영함으로서 교육 장소로 활용되고, 세 번째는 관광 자원으로 활용됩니다. 오늘 얘기한 황순원 문학관이 대표적 사례인데, 특히 그곳에는 황순원 작가의 대표작인 소설 “소나기”에 등장하는 소나기 마을을 현장에 재현해 놓음으로써 여름에는 관광객들이 인공 비까지 맞아보게 하여 소설 속 장면을 생동하게 체험할 수 있게 꾸려져 많은 관광객들이 찾고 있습니다.
MC: 도명학의 남북문학기행, 오늘 순서는 여기까지입니다. 선생님, 수고 많으셨습니다.
도명학: 네, 수고하셨습니다.
MC: 청취자 여러분 고맙습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에디터: 이진서, 웹편집 이경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