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연호의 모바일 북한] 북한 과학기술보급실의 현대화 비용
2024.0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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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모바일 북한’김연호입니다. 오늘의 주제는‘북한 과학기술보급실의 현대화 비용’입니다.
북한에 과학기술보급실이 도입된 지 벌써20년 정도 됐지만 아직도 제대로 정착하지 못하고 있나 봅니다. 대규모 공장과 기업소는 중앙에서 일찍부터 관심을 갖고 지켜봤고 자체적으로 자금여유도 있을테니까 과학기술보급실을 제대로 차려 놓을 수 있을 겁니다. 오래된 컴퓨터나 모니터를 새 것으로 교체할 수 있는 자금 여유도 있겠죠. 하지만 지방으로 갈수록 사정이 어렵다 보니까 과학기술보급실을 형식적으로만 갖춰 놓고 제대로 활용하지 않는 곳들이 많나 봅니다.
무엇보다 과학기술보급실의 장비와 시설 비용이 문제입니다. 한국의 북한 전문 매체 ‘데일리 NK’에 따르면, 함경북도 경원군에서 군당 위원회가 이달 초 단위별 과학기술보급실의 운영실태를 검열했는데, 여기서 지적받은 단위들이 과학기술보급실 현대화 사업을 시작했습니다. 현대화 사업이라는 게 결국 장비와 시설을 새 것으로 바꾸라는 얘기인데, 그러려면 당연히 자금이 필요합니다. 컴퓨터를 새로 더 사거나 오랜 된 컴퓨터를 새 컴퓨터로 교체해야 할테니까요.
어느 공장은 과학기술보급실에 컴퓨터가 몇 대밖에 없다는 사실이 지적됐습니다. 그래서 공장 당위원회가 컴퓨터 10대를 보충하기로 결정하고 각 세포에40만 원씩 자발적으로 바치라고 지시했다고 합니다. 어떻게 자발적인 기부를 지시할 수 있습니까? 말이 안됩니다. 알아서 갖다 바치라는 뜻일텐데요, 40만 원을 할당받은 각 세포는 당원들에게 충성심을 발휘해 양심껏 돈을 내라고 호소했다고 합니다. 당의 눈밖에 나지 않으려면 알아서 돈을 내라는 뜻이죠. 공장 직맹과 청년동맹 위원회에도 비슷한 지시가 내려졌다고 합니다.
근로자들 입장에서는 짬시간이나 근무가 끝난 뒤에도 쉬지 못하고 과학기술보급실에서 학습하라는 지시가 싫을 수 있는데, 여기에 컴퓨터 구입비용까지 내라고 하면 불만이 쌓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동안 과학기술보급실이 정상적으로 운영되고 근로자들이 경쟁적으로 이곳을 찾았다면, 근로자들 스스로 컴퓨터 구입비용을 내려고 했을지 모릅니다. 하지만 이 공장에서는 과학기술보급실에 가도 특별히 배울만한 과학기술 지식을 찾을 수 없고, 전기도 제대로 들어오지 않아서 필요할 때 컴퓨터를 쓸 수 없다는 불만이 제기되었다고 합니다.
중앙에서는 전국의 공장, 기업소에 과학기술보급실을 만들어 놓으면 공장 일꾼들과 근로자들이 선진 과학기술을 빨리 배워서 생산과 경영이 획기적으로 발전할 것이라고 판단했을 겁니다. 중앙에서 말단까지 물이 흐르듯 과학기술 지식을 보급해서 전민과학기술인재화를 이루겠다는 목표가 바로 이것이죠. 과학기술전당을 중심으로 2016년부터 이런 사업이 전개됐습니다.
하지만 지방의 작은 공장, 기업소의 입장에서는 생산과 경영이 먼저 정상적으로 이뤄져야 과학기술 지식을 습득하려는 욕심이 생기지 않겠냐고 반문할 수 있습니다. 어느 쪽이 선행되어야 하냐는 질문이 나올 수 있습니다. 물론 과학기술보급실도 정상적으로 운영하고 생산과 경영도 정상적으로 이뤄지면 가장 좋겠죠. 그런데 이걸 모두 각 단위에 맡기고 필요한 자금도 알아서 마련하라고 하면 누가 좋아할까요?
아프리카의 많은 나라들도 비슷한 고민을 했습니다. 지방에 사는 주민들은 정보통신 기술을 마음껏 이용할 수 있는 시설과 장비가 크게 부족했습니다. 민간 사업자들은 장사가 안되는 산간 마을이나 농촌지역에는 관심을 두지 않았습니다. 그러다 국제기구와 해외의 지원을 받아 지방에 북한으로 치면 미래원 같은 시설을 세웠습니다. 정부가 마음을 먹고 예산을 투입하기도 했죠. 정부는 자금지원을 하지 않고, 단위별로 알아서 자금을 마련하라고 하면, 근로자와 주민들은 지칠 수밖에 없습니다.
오늘은 여기까지입니다. 청취자 여러분, 다음 시간까지 안녕히 계십시오.
에디터 박정우, 웹팀 김상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