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와 우리 생활] 남한 ‘학생인권조례’ VS 북한 ‘청년교양보장법’
2024.11.22
북한의 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북한의 현실과 앞으로 미래에 대해 함께 고민해보는 RFA 주간프 로그램 경제와 우리 생활 진행을 맡은 정영입니다. 오늘은 남한의 인권조례와 북한에서 최근 강하게 내밀고 있는 청년교양보장법에 대해서 남한의 통일연구원 정은이 연구위원과 알아보겠습니다.
기자: 연구위원님 안녕하십니까?
정은이 연구위원: 네 안녕하세요.
기자: 요즘 북한에서 청소년들의 머리단장과 옷차림 등을 가지고 강하게 단속하고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한국에도 이러한 청년들을 대상으로 하는 법이 있습니까?
정은이 연구위원: 기자님 혹시 남한의 학생 인권조례라고 들어 보신 적이 있으신가요?
기자: 네 들어보았습니다. 제가 남한에서 고등학교를 다니지 않아 잘 모르겠지만, 학생인권조례는 학생의 존엄과 가치 및 자유와 권리를 보장하기 위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정은이 연구위원: 네. 맞습니다. 학교 교육 과정에서 학생의 존엄과 가치, 자유, 권리가 보장되고 실현될 수 있도록 각 교육청에서 제정한 조례인데요. 2010년 10월 5일 경기도 교육청이 가장 먼저 공포한 이후 광주, 서울, 전북 교육청 등 7개 지역에서 이를 공포해 시행중인데요. 이 조례는 학생들의 권리와 복지를 보호하기 위해 지방자치단체에서 제정한 조례이지요. 즉, 학생들이 교육환경 내에서 기본적인 인권을 보장받고 차별이나 부당한 대우를 받지 않도록 하는 것으로 주요 내용은 학생들의 신체적, 정신적 자유를 존중하고 개인의 존엄과 가치를 인정하는 것 등의 내용이 포함되어 있지요. 즉 학생들이 학교 생활을 보다 건강하고 행복하게 영위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고 있지요. 그 말은 남한에서도 학생에 대한 단속들이 강했던 시기가 있었다는 말인데요. 물론 북한과는 비교도 안되게 강도는 약하지만, 북한은 청년들에 대한 단속이 매우 심하지 않습니까?
기자: 그렇습니다. 비교할 수 없지요. 북한이 2020년 들어 청소년들의 남한 문화 접촉을 차단하기 위한 3개의 법을 제정했는데요. 그 중 하나가 ‘청년교양보장법’입니다. 이법을 두고 “미성년자 처벌”이라는 비판이 얼마전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렸던 북한에 대한 ‘보편적인권정례검토’에서도 이런 비판이 나왔습니다. 그런데 남한의 학생인권조례는 오히려 청소년들의 자유와 인권을 보장해야 한다는 말로 들립니다.
정은이 연구위원: 북한 주민은 원래 국가에서 정해준 몇 가지 기본형태의 복장과 헤어스타일의 기준이 있는데, 여기서 조금만 이탈해도 사회주의 생활양식에 어긋나는 자본주의 스타일이라고 규정하여 단속의 대상이 되었는데요. 일단 단속에 걸리면 학교나 직장 내에서 불이익을 받지요. 혹시 기자님도 북에 계실 때 단속에 걸리시거나 불이익을 받아 보신 적이 있나요?
기자: 네 당연히 있습니다. 북한에서 학교에 등교할 때 학생들은 학급별로 줄을 서서 노래를 부르며 가야 하는데, 정문에서는 학생 규찰대들이 머리 단장과 옷을 검열합니다. 남자들의 경우, 옆머리 귀 옆의 머리칼이 조금 내려오는 것을 ‘리진트’라고 했는데, 그게 조금 길어도 가위로 자르거나, 여자들이 무릎까지 올라오는 치마를 입고 다니면 가위로 자르기도 했습니다. 최근 나오는 탈북민들을 통해 북한 소식을 들어보면 제가 있을 때와는 많이 변했습니다.
정은이 연구위원: 네 맞아요. 지금은 ‘한류’라는 문화 컨텐츠가 중국을 통해 북한으로 유입이 되면서 개인의 독특한 취향이나 특성이 겉으로 드러나기 시작하였는데, 특히, 젊은 층 사이에서 한류가 빠르게 퍼져 나갔고, 그래서 그런지 청년들이 많은 단속의 대상이 되고 있잖아요. 그런데 이것은 남한 같은 경우도 권위주의가 강했던 시절 비슷한 시기가 있었는데, 특히 제 학창시절은 정말 지금 생각하면 그때 왜 그랬나 싶을 정도로 너무 싫었고 거부감을 느꼈던 그런 기억들이 많습니다.
기자: 그럼 어떻게 수준이었습니까?
정은이 연구위원: 사실 지금 남한의 젊은 친구들이 생각하면 정말로 믿지 않을 수도 있어요. “호랑이 담배 피던 시절” 이야기라구요. 아마 지금 제 학창시절처럼 단속한다면 학생들이 다 들고 일어설 걸요? 저희 때도 학교에서 학생들이 깨끗한 외모를 유지하라는 요구가 많았는데, 그 기준이 염색이나 파마는 당연히 안되고, 귀를 뚫는 행위는 아예 상상도 못했지요. 심지어 머리를 길게 기르지도 못했어요. 2010년 경기도에서 <학생인권조례>가 시행된 이래 두발에 대한 규정이 많이 완화되었다고 하는데, 저희 때만 해도 남학생들은 머리가 귀를 덮으면 안되었고, 여학생은 벌써 귀밑 2센치, 3센치만 넘어도 규정에 어긋나는 것이었어요.
기자: 그럼 단속되면 어떤 불이익을 받았습니까?
정은이 연구위원: 그때는 생활지도부 선생님이 학교에서 가장 무서운 호랑이 선생님이었는데요. 등교시간에 학교 교문 앞에서 아주 무섭게 생긴 생활 지도부 선생님들과 학생 부원들이 서있다가 이런 학생이 발견되면 바로 단속의 대상이 되지요. 어떤 학생들은 본인 머리가 예를 들어 2센치미터를 넘지 않는다구 우기니까 심지어 어떤 선생님들은 자를 들고 학생의 머리가 귀밑 어느 정도인지 재는 선생님도 계셨어요.
기자: 네 그러니까 머리 길이를 자로 재였다는 말씀이네요. 1980년대 북한의 모습과 비슷하네요. 지금 남한의 실정으로 말하면 이것은 ‘학생 인권 침해’라고 할 정도의 수준이네요.
정은이 연구위원: 네 그래서 2010년 10월 5일 경기도 교육청에서 처음 ‘학생인권조례’, 즉 교육과정에서 학생의 인권을 보장하기 위한 조례가 나오면서 좀 완화되긴 했습니다. 어쨌든 당시 등교시간에 학생지도부 교원에게 걸리면, 교실에 들어가지 못하고 아침부터 운동장을 몇 바퀴를 돈다든지 벌을 받는 등의 불이익이 있었지요. 지금은 생각하기도 싫은 끔찍한 일인데요. 그런데 한때 대학생들도 단속의 대상이 된 적도 있는데, 혹시 기자님 한국에서도 한때 대학생들 장발을 단속했던 역사를 아시나요?
기자: 네, 저는 북한에 있을 때 남한의 대학생들이 화염병을 던지면서 시위를 하는 모습을 보면서 자랐는데, 그때 영상을 보니 한국 대학생들이 장발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사실 북한 청소년들 속에서도 머리를 길게 기르는 바람이 불기도 했었습니다.
정은이 연구위원: 한때 박정희 대통령이 유독 장발을 싫어했어요. 그래서 5.16 이후 두발 규정이 만들어졌는데, 이것은 사회적 분위기와도 관련이 있지요. 물론 1950년대에도 학생들의 머리 스타일은 까까머리가 많았는데, 그 이유는 이발비가 서민들에게는 상당히 부담이고, 또 머리에 이가 많아서 위생상 긴 머리가 곤란한 점이 많아서 그랬는데요. 1960년대는 세계적으로 청년들의 저항의 시대였지요. 특히 공산독재라든지, 베트남 전쟁을 반대하는 자유와 평화운동이 있었는데, 한국에도 유행이 되었지요. 그래서 장발도 엄격한 단속의 대상이 되었고 심지어 경찰들이 가위와 자를 들고 청년들을 잡아들이기도 했지요.
기자: 머리에 이가 많다는 이야기는 북한과 좀 비슷한 데요. 한때 북한에서는 “20호 잡이 운동”까지 벌어졌거든요. 들어보면 남한도 그런 엄격한 시절이 있었는데, 지금은 학생들의 자유와 인권을 보장해야 한다는 조례, 그러니깐 북한으로 말하면 준칙 같은 것이 제정되고 시행되고 있군요.
정은이 연구위원: 네. 맞습니다. 그런데 현재 북한은 남한의 유행에 대해 매우 엄격히 단속을 하고 있잖아요? 남한에서 이러한 이러한 문화적 통제가 막기 어려웠던 것처럼 북한도 그런 것 같아요.
기자: 청소년들은 원래 새것에 민감하고 뭔가 보면 따라하려고 하는 성질이 강한 것과도 관련이 있는 것 같습니다. 특히 사춘기를 맞는 학생들이 어른들의 지시나 말을 잘 들으려고 하지 않잖아요?
정은이 연구위원: 네 아이들이 사춘기에는 정말 교육하기가 어렵다고 말합니다. 이제는 북한에서도 단체복이 없어졌다고 할 정도로 패션이 다양해졌고, 헤어 스타일도 많이 달라졌다고 합니다. 왜냐면 중국을 통해 한국산이 북한 장마당에 들어가기 시작했고, 중국에서의 한류열풍을 마치 북한에 그대로 옮겨다 놓은 것과 같게 유행이 퍼지게 되었다고 합니다. 제가 북한 이탈주민 인터뷰를 해 보면 특히 젊은 세대는 저보다 더 많은 남한 드라마와 영화를 보았고 심지어 현재 유행하고 있는 것들을 보았더라구요. 그걸 보면서 청소년들이 누리는 그런 문화를 막을 수 없다고 생각됩니다.
기자: 오늘은 여기까지 듣고요. 다음 시간에 또 다른 새로운 내용으로 찾아뵙겠습니다. 오늘 수고 하셨습니다.
정은이 연구위원: 네 고맙습니다.
경제와 우리 생활 지금까지 도움 말씀에는 남한의 통일연구원 정은이 연구위원이었습니다. 지금까지 워싱턴에서 RFA 자유아시아방송 정영입니다. 청취자 여러분 감사합니다.
에디터 김진국, 웹편집 이경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