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와 우리 생활] 김정은 "자식 많이 낳는게 애국" 출산율 오를까?
2024.04.05
북한의 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북한의 현실과 앞으로 미래에 대해 함께 고민해보는 RFA 주간 프로그램 ‘경제와 우리생활’ 진행을 맡은 정영 입니다. 오늘은 북한에서도 인구 감소 및 고령화 문제가 심각한 만큼 북한의 인구 정책이 어떤 방향으로 전개되고 있는지 남한의 통일연구원 정은이 연구위원과 이야기를 나눠보겠습니다.
기자: 연구위원님 한 주간 안녕하셨습니까?
정 연구위원: 네 안녕하세요.
기자: 현재 북한의 인구정책은 어떻습니까?
정은이 연구위원: 한국도 인구 감소와 고령화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 민간과 정부 차원에서 다양한 출산 장려정책을 펼치고 있잖아요? 북한도 정책의 방향성은 우리와 마찬가지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면, 북한은 가족법 개정을 통해서 혼인 연령을 남자 26세, 여자 24세로 낮추며 출산의 기회 확대를 꾀하고 있습니다.
기자: 북한에서는 원래 어려서 결혼하는 사람들에 대해서는 권장하지도 않습니다. 부모들은 자녀들이 너무 일찍 결혼하면 아이 키우느라 일도 제대로 못하고, 부모로서 준비도 제대로 하지 못한 채 결혼 생활하다 보면 실패하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런데 북한 법에 원래 남자 여자 결혼 연령이 어떻게 되어 있습니까?
정은이 연구위원: 북한의 가족법 제 9조에 따르면, 원래는 남자 30세 이상, 여성이 27세 이상으로 권장하고 있습니다. 더 주목할 점은 1983년 허용했던 낙태 수술을 10년이 지난 1993년부터는 낙태 금지령을 내리고, 이를 어기면 법적으로 처벌한다고 했습니다. 그 이외에도 다산 여성을 모성 영웅으로 선전하고, 세 자녀 이상 가정에는 식량 추가 배급, 주택 우선 배급, 13세 이하 자녀가 3명인 경우 여성 노동시간 하루 6시간으로 단축하는 등 다양한 정책을 펼치고 있습니다.
기자: 이러한 출산 장려정책은 언제부터 실시되었나요?
정은이 연구위원: 북한도 1990년대 들어서 실시된 정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 이유는 아무래도 1980년대까지는 북한도 출산 억제 정책을 펼쳤고, 이로 인해 출산율이 감소한 측면이 적지 않습니다. 또한 1990년대 중반 고난의 행군 시기 대기근으로 대규모 인구 손실이 발생하여 생산인구 증가가 필요했을 것으로 보입니다. 또한 경제가 어렵다 보니 여성들의 결혼과 출산기피 현상이 커져 출산 장려정책이 다시 힘을 얻게 된 것으로 추정됩니다.
기자: 아 1980년대에 이런 말이 있었던 기억이 납니다. “아이는 하나면 좋습니다. 둘은 많고 셋은 양심이 없습니다” 이런 말을 누가 했는지 정확치 않지만, 아마 북한에서 제일 높은 사람이 했던 말이라고 들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런데 1990년대 이후 낙태를 금지시키고, 출산을 장려하는 정책으로 바뀐 것은 고난의 행군 때 많은 인명피해가 난 것과 관련이 있다는 거군요. 이전에는 북한도 출산 억제 정책을 실시했던 적이 있지 않습니까?
정은이 연구위원: 네 맞습니다. 북한에서 출산 억제 정책은 1970년대부터 시작된 것으로 보입니다. 그 이전까지만 해도 북한은 한국전쟁 및 월남으로 인해 많은 남성 노동력이 급감하였고, 이 상황에서 김일성 정권은 인구 감소를 최대한 줄이기 위해 인구 출산장려정책을 적극적으로 추진하기에 이르렀습니다. 당시 모든 어린이들은 탁아소와 유치원에서 국가가 직접 양육한다고 하고 출산을 많이 한 여성 또는 가정에는 특별배급 또는 생활 지원을 하겠다고 했습니다. 이와 더불어 제 1차 전국 어머니 대회를 개최하여 전 인민 출산장려를 위한 선전작업을 하였고 인민 보건법 11조, 보육교양법 제 2조 등 출산을 위한 법적 조치를 단행하였습니다. 또한 이혼 억제 정책등이 이루어졌습니다. 그 결과 1953년 849만명이었던 북한 인구가 1970년 1462만명으로 높은 인구 증가율을 기록했고, 합계출산율도 최고 7.01명에 달했습니다.
기자: 네 저희 또래 아이들이 있는 집에서는 한 가정에 아이들이3명에서 5명이 보통이었습니다. 오히려 3명은 작은 편이었습니다. 당시 남녀 불균형 문제도 많이 완화가 되었겠네요?
정연구위원: 네. 성비 불균형이 전쟁 직후 88.3에서 95.1로 많이 향상되었습니다.
기자: 그렇게 인구가 급증했기 떄문에 북한은 1950년대 출산 장려정책에서 1970년대 들어서는 출산억제 정책으로 바뀌었는데요, 그때가 아마 중국에서 1가구 1자녀 정책을 실시한 때와 비슷한 것 같습니다. 어떻습니까?
정 연구위원: 네. 그 때는 남한과도 비슷한 데요. 특히, 북한 경제가 점점 더 어려워져서 증가하는 인구에 대한 의식주 수요를 충족시키기 어려워졌습니다. 특히 북한은 재정의 70% 이상을 중공업에 투자를 했으니 주민 생필품을 책임지는 경공업 부분은 상당히 소홀했다는 것을 예상할 수 있는 일이니까요. 따라서 김일성 정권은 늘어난 어린이 보육을 국가가 감당하는 것에 매우 부담을 느껴 유아 보육에 대한 국가의 부담을 줄이고, 만혼을 권장하게 하여 노동력을 생산의 현장으로 끌어들이고, 기혼 여성은 가능한 출산을 제한함으로써 육아에 신경 쓰지 않도록 유도하는 정책을 펼쳤습니다. 1983년 정부가 낙태 수술을 허용한 이유 또한 이러한 경제적 배경과도 맞물린다고 할 수 있습니다.
기자: 그렇다면 김정은 시대 이후에는 더욱더 출산을 장려하는 정책으로 나가지 않습니까?
정 연구위원: 네. 2012년 북한 당국은 11월 16일을 어머니날로 공포하고 공휴일로 지정하였습니다. 또한 4차 어머니 전국 대회를 개최하면서 김정은위원장이 직접 아이들을 많이 낳아 키우는 모범적인 여성들을 칭송하며 ‘다산은 애국’이라고 강조하였습니다. 지난해 12월에 진행된 5차 어머니 대회에서는 "자식 많이 낳아 키우는 게 애국"이라며 출산을 강조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2021년 노동당 8차 당대회에서 남성 군 복무를 9~10년에서 7~8년으로 단축하여 젊은 남자들의 노동력을 산업현장에 투입하려는 의지를 보여 주었습니다. 출산 휴가도 총 8개월로 확대되었습니다.
기자: 이러한 정책들은 효과가 있나요?
정은이 연구위원: 이탈주민 인터뷰를 해보면, 합계출산율이 북한이 1.8이라고는 하지만 실제로는 한 가정에 한 명 정도 낳는 추세이고, 농촌 같은 경우도 예전만큼 많이 낳지 않는 추세라고 합니다. 다만 농촌이 도시보다 출산율이 많은 이유는 낙태 비용을 개인이 감당하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또한 이혼이 매우 어렵고 더 엄격해졌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뇌물을 바치면 가능하기 때문에 경제적 능력이 있는 여성의 경우 뇌물을 받치고서라도 이혼을 감행하고, 또한 사실혼 또한 증가추세하고 합니다. 실제로 이탈주민들을 조사해보면 “결혼했어요?”라고 물어보면 “아니 동거 했어요”라고 말하는 사람이 많았습니다. 즉, 북한도 정책적으로 아무리 억제해도 출산율 감소는 막기 어려운 것 같습니다.
기자: 오늘은 여기서 마무리하고요. 다음 시간에 또 좋은 주제로 이야기를 나눠보겠습니다. 오늘 말씀 감사합니다.
정은이 연구위원: 네 고맙습니다.
경제와 우리 생활 지금까지 도움 말씀에는 남한의 통일연구원 정은이 연구위원이었습니다. 지금까지 워싱턴에서 RFA 자유아시아방송 정영입니다. 여러분 안녕히 계십시오.
에디터 이진서, 웹팀 이경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