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민의 날 특집] 미국서 수선 매장 운영 탈북민 부부의 성공 비결
2024.06.20
앵커: 1980년 미국이 난민 정착 프로그램을 실시한 이래 매년 수만 명의 난민이 미국에 입국합니다. 미 이민정책 구소가 최근 발표한 바에 따르면 2024 회계연도인 2023년10월부터 2024년4월 사이 미국에 난민으로 정착한 인구는 5만 5천여 명입니다. RFA 자유아시아방송은 유엔이 정한 세계 난민의 날(6월 20일)을 맞아 16년 전 난민으로 미국에 입국해 성공적인 삶을 이룬 찰스 김, 샤론 김 탈북민 부부의 이야기를 들어 봤습니다. 취재에 진민재, 김지수 기자입니다.
[현장음] (재봉틀 소리) 네, 다 됐습니다. (고맙습니다.) 별말씀을요. (아, 그리고 이것도 좀 수선해 줄 수 있을까요?) 그럼요.
재봉틀 박는 소리가 요란한 건물 복도를 따라 매장에 들어서니 한국인에게 익숙한 성인 김 씨(Kim’s)가 적힌 간판 너머로 고객을 맞고 있는 한 남성의 목소리가 새어 나옵니다.
그리고 이 남성 뒤로 한 여성이 재봉틀 앞에 앉아 실밥을 뜯느라 한창입니다.
이들은 2008년 6월, 정확히 16년 전 미국에 탈북 난민으로 입국해 이제는 당당한 미국 시민으로 살아가고 있는 찰스 김(신변 보호를 위해 가명 요청), 샤론 김(신변 보호를 위해 가명 요청) 씨 부부입니다.
김 씨 부부를 만난 곳은 미국 버지니아 주 샬롯츠빌.
샬롯츠빌은 한국인이 많이 거주하는 북버지니아 중심에서 차로 2시간이 더 떨어진 곳에 있는 인구 약 5만 명 규모의 소도시입니다.
백인 비율이 약 70%인데 반해 동양인 비율은 겨우 7% 수준. 하루 종일 지내도 한국인 한 명 마주치기 힘들고, 한국말은 서로 이외에는 입에서 꺼낼 기회조차 없는 이곳에서 김 씨 부부는 벌써 10년째 수선 매장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외부 문물과 철저히 차단돼 있고, 더구나 반미 교육을 받으며 북한에서는 영어 알파벳 하나 배우지 못했다는 이들이 영어가 필수인 이 동네에서 어떻게 사업을 하며 10년을 살아남을 수 있었던 걸까?
남편 찰스 씨는 뒤늦게 남의 나라에서 낯선 말과 문화를 깨치고 동시에 생계까지 책임져야 하는 만큼 뭐든 몸소 부딪치며 치열하게 살았던 게 비결 아닌 비결이 됐다고 털어놨습니다.
[찰스 김] 우리가 마흔 살에 왔는데 마흔 살이면 언어 실력이 다 막혀서 안 돼요. 북한에서 미국 영어를 배우지도 못했는데 (이 나이에) 알파벳부터 배운다고 돼요? 사전! 그걸 주머니에 넣고 (일을 하려면) 광고부터 봐야 하잖아요. 영어를 알아야 광고를 보잖아요. 그래서 주머니에 써 다니면서 보고, 또 집에 가서는 사전 보고 그랬죠. 북한에서는 한국 텔레비전 많이 봤는데 요즘은 유튜브에서 영어랑 미국 영화 계속 보죠. 그리고 ESL! ESL 수업이 난민들은 무료거든요. (그 ESL 수업 듣고) 영어로 모르는 건 막 몸짓으로 하는 거죠, 뭐. 그냥 북한식으로 막 밀어붙였죠.
이러한 노력 덕분에 김 씨 부부가 운영하는 사업장은 연 매출 20~30만 달러는 거뜬히 웃도는 성공한 지역 사업장으로 자리 잡았고, 김 씨 부부의 성실한 근성과 꼼꼼한 실력은 입소문을 타고 지금도 끊임없이 고객의 발길을 끌어들이고 있습니다.
또 지난 연말에는 지역민 투표로 선정하는 ‘샬롯츠빌 내 최고 업소 150’에 뽑혀 지역 매체에 매장이 소개되기도 했습니다. 김 씨 부부의 성공 뒤에는 지역민들의 탄탄한 신뢰가 뒷받침하고 있는 겁니다.
취재 도중 마주친 단골과 건물 관리자는 김 씨 부부의 성실성을 높이 평가했습니다.
[톰/고객] 2년 전 이 지역으로 이사 왔는데 2년째 계속해 이 수선 매장을 이용하고 있습니다. 지리적으로도 편리한 게 있지만, 김 씨 부부는 굉장히 부지런하고 수선 속도도 빨라서 좋습니다. 저는 그들의 실력을 믿습니다.
[찰리 루이스] 2015년부터 부부를 봐 왔는데, 정말 열심히 일합니다. 그래서 그런지 고객들도 늘 만족하고 돌아갑니다. 김 씨 부부를 보면 정말 성공적인 인생을 살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들 삶의 이야기는 대단합니다.
찰스 씨는 오늘의 이 여유를 맛보기까지 남들보다 밤잠 설치며 두세 배로 일하며 단계적으로 정착했던 과정을 회상했습니다.
[찰스 김] 우리 부부 둘이 밤에 조금 자고 각각 하루에 두세 개씩 일을 했죠. 저는 대학 식당에서도 일하고 자동차 수리, 남의 집 잔디 깎기 같은 그런 일을 했죠. 아내도 대학 청소나 병원 침상 정리, 그리고 (이 수선 매장을 직접 운영하려고) 수선 매장 세 군데를 다 돌면서 그렇게 일했어요. 그 당시 2008년에 아내는 3~4천 달러 벌고, 저는 2,500~3,000달러 정도 벌었어요.
한창 일할 때는 하루 14시간, 심지어 24시간 일을 한 적도 있다는 찰스 김 씨. 그 호락호락하지 않은 정착 과정을 거치며 찰스 씨는 힘겨움을 어떻게 해소했을까? 의외의 답이 돌아왔습니다.
[찰스 김] 힘들다고 생각하면 더 힘들고, 항상 저희는 북한하고 비교하거든요? 북한에 사는 것보다 못 해야 ‘아이 괜히 탈북했다.’ 하는 거지. 아무리 제가 중국 베트남 캄보디아 다 있어 봤지만 아무리 그래도 북한보다 나쁜 데는 없어요. 왜냐면 자유가 있잖아요. 왔다 갔다 하면서 말할 권리, 돌아다닐 권리 다 있잖아요. 북한은 말할 권리 없고, 돌아다닐 권리가 없어요. 사생활이 없잖아요. 북한보다 나쁜 데는 없어요. 북한보다 나았으면 되는 거 아니에요? 그럼, 성공 아니에요?
특히 남편 찰스 씨는 지난 2년 전부터 재태크, 즉 그동안 벌어 놓은 자산으로 금융 투자도 시작했습니다. 2년 새 수익률 500%. 그동안 사고팔며 배웠던 산 경험을 밑천 삼아 이제 주변에 조언까지 거드는 자신감도 생겼습니다.
[찰스 김] 2022년부터 투자했거든요. 그때 한 주에 127~130달러에 모두 4천 주 샀는데, 엊그저께 처음으로 1,204달러에 분할했어요. 10대 1로 분할했으니까 1,400달러까지 또 올랐어요. 투자로 많이 벌었어요. (수익이) 약 500% 올랐어요. 이게 제일 효자예요. 제일 잘 올라가요. 그리고 이건 ETF(상장 지수 펀드)인데 많이 타격도 안 받고 제일 좋은 거예요. 1년에 약 10~20% 정도 성장하는데 (투자 가치로는) 이게 제일 좋아요. 돈을 벌고 안 벌고 떠나서 (자본주의 방식을 배워가는 게) 이게 재미있어요.
북한에 있었으면 생각지도 못하는 일들을 하나하나 해나가는 남모르는 재미를 누리며 산다는 김 씨 부부. 찰스 김 씨는 취재 내내 성공이라는 말을 수없이 되뇌었습니다. 과연 그들에게 성공이란 무엇일까?
[찰스 김] 이민하고 난민하고 차이가 달라요. (저 같은 탈북) 난민은 정치적 박해 같은 이 모든 게 불편한 나라에서 살다 왔으니까 어쨌든 잘 먹고, 잘 살고, 편안하고 원래 있던 북한에서보다 나은 삶을 위해서 그 목표를 가지고 사는 거죠. (저는) 제일 가깝게 북한에서 살던 것보다 잘 살고, 중국에서 살던 것보다 잘 살고 그러면 성공한 거예요. 그것보다 못 살고 그것보다 고달프다고 하면 그건 (난민으로서) 성공 못 한 거예요. (저는 정말) 북한과 중국에서 살던 것보다 잘 살면 성공한 거예요. 0.1밀리라도 (더 나아진) 차이가 있으면 성공한 겁니다.
어느새 16년. 찰스 김 씨와 샤론 김 씨 부부는 과거 ‘갈 곳 없는 탈북 난민’에서 이제 ‘잘 정착해 성공한 미국 시민’ 으로서 삶을 누리고 있습니다.
에디터 박정우 웹팀 한덕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