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FA 인터뷰] 신혜란 서울대 교수 “탈북여성, 미래 한반도서 활약 전망”
2024.03.05
앵커: 오는 8일은 유엔이 지정한 ‘세계 여성의 날’입니다. 전 세계 여성들의 정치·경제·사회적 업적과 투쟁의 역사를 기념하는 날인데요. 신혜란 서울대학교 지리학과 교수는 향후 남북 간 왕래가 가능해지면 탈북여성 사업가들이 이른바 ‘북한 알파걸’로 활약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했습니다.
자세한 내용 이정은 기자가 들어봤습니다.
능력있는 여성을 의미하는 신조어인 ‘알파걸’.
지난 2022년부터 탈북민 출신 여성사업가들에 대한 연구를 진행해온 신혜란 서울대학교 지리학과 교수는 최근 자유아시아방송(RFA)과의 인터뷰에서 향후 남북 간 왕래가 가능한 환경이 조성된다면 탈북여성 사업가들이 이른바 ‘북한 알파걸’로 활약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했습니다.
탈북여성 사업가들 대부분은 고향에 대한 배경 지식과 한국에서 축적한 경험을 바탕으로 고향에서 사업을 하고 싶어한다는 것입니다.
신혜란 서울대학교 지리학과 교수: 제가 만나본 분들의 거의 100%가 고향에 가서 사업을 하고 싶어했습니다. 하나는 ‘그쪽의 수요를 안다 내가 파악하고 있다’, 그리고 ‘여기서 공급할 수 있는 건 이미 노하우를 가졌으니까 두 개를 결합할 수 있을 것이다’ 라고 생각하는 겁니다.
신 교수는 탈북여성 사업가들이 급변하는 한반도의 지정학적 환경 속에서 생존을 위해 북한에서 중국으로, 또 중국에서 한국으로 이동하며 다양한 경험을 축적했고 이는 한국에서 사업을 펼치는 바탕이 됐다고 분석했습니다.
그러면서 사회주의권 붕괴로부터 이어진 고난의 행군 당시, 북한 여성들이 장마당에서 비공식적인 사업으로 살 길을 모색한 것이 그 시작이었다고 분석했습니다.
신혜란 서울대학교 지리학과 교수: (고난의 행군은) 소련이 망하고 그 네트워크가 붕괴되면서 북한이 굉장히 고립되면서부터 시작됐습니다. 그 상황에서 개인들은 어떤 선택을 했을까요? 모범적인 당원들은 (지시를) 기다렸고 남자들은 직장에 가서 아무것도 받아오지 못했지만, 여자들이 장마당에 나가서 장사를 했고 나중엔 장마당이 합법화되죠. 그 장마당에서 살아남는 방법을 개척한 겁니다.
신혜란 교수는 이번 연구를 통해 탈북여성을 피해자로 보는 시각에서 벗어나 이들이 얻은 주도적 위치를 강조하고 이들이 경험과 기회를 얻는 다양한 양상을 조명하고자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다음은 일문일답.
기자: 교수님께서는 지난 2022년부터 40여 명의 탈북여성 사업가들을 만나며 연구를 진행해오셨는데요. 정치지리학자로서 이 주제를 연구하신 계기가 궁금합니다.
신혜란 교수: 제가 베트남 결혼이주 여성 연구를 한 적이 있는데 그 분들과 한국인 남편들이 베트남에 가서 사업을 하는 모습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사업가가 사업을 시작한 계기를 본다는 것이 연구자로서 굉장히 흥미로웠습니다. 탈북민 연구를 하는 가운데 베트남 결혼 이주 여성의 사업까지 연구하다 보니 사업하는 탈북민들에 대한 연구로 이어졌습니다.
기자: 곧 발표를 앞둔 ‘탈분단 지정학, 이동, 젠더의 교차성: 탈북여성사업가들의 정착과 창업과정을 사례로’ 논문에서 ‘동독 알파걸’과 같은 현상이 미래 한반도 상황에서 펼쳐질 수 있다고 예측하셨는데 동독 알파걸 현상이 정확히 무엇인가요?
신혜란 교수: 동독에서 있었다는 시스템인데, 여성들이 바쁘면 아이를 (어린이집에) 일주일이나 맡겨놓고 직장 일에 몰두하는 겁니다. 사람들은 이들을 도덕적으로 비난하기도 하고 ‘엄마 자격이 없다’고 지적하기도 했는데 세월이 지나고 나서 봤더니 재계, 정치, 학계, 문화계에 너무나 많은 동독 여성들이 탑(top; 꼭대기)의 위치에 가 있었던 겁니다. 그래서 요즘에는 그 동독 알파걸들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습니다. ‘어떻게 해서 동독 여성들은 이렇게까지 성장했는가’에 대해서요.
기자: 이와 유사하게 남북 간 왕래가 열리게 되면 이른바 ‘북한 알파걸’이 출현할 수 있다고 보시는 것인가요?
신혜란 교수: 네 그런 모습이 보일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만나본 탈북여성 사업가들의 거의 100%가 고향에 가서 사업하고 싶다고 합니다. 이유를 물어보면 두 가지인데 하나는 그쪽의 수요를 안다, 내가 파악하고 있다. 그리고 이 곳에서 사업을 하는 노하우를 이미 가졌으니 두 개를 결합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두 번째는 죄책감인 것 같습니다. 그러니까 고향에 대해서 그리움도 있고 죄책감이 있으니 (고향에서 사업을 하면) 이를 어느 정도는 보상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베트남 결혼 이주 여성이 자기 고향에 가서 사업하는 것처럼, 이미 시나리오가 있는 겁니다. 그래서 흥미로운 모습이 많이 나타날 거라고 생각합니다.
기자: 한반도 및 그 주변의 지정학적 변동과 탈북여성 개인의 삶은 어떤 관련이 있습니까?
신혜란 교수: (고난의 행군은) 소련이 망하고 그 네트워크가 붕괴되면서, 북한이 굉장히 고립되면서부터 시작했습니다. 그 상황에서 개인들은 어떤 선택을 했을까요? 모범적인 당원들은 (지시를) 기다렸고 남자들은 직장에 가서 아무것도 못 받아왔지만, 여자들은 장마당에 나가서 장사를 했고 나중엔 장마당이 합법화되죠. 그 장마당에서 살아남을 방법을 개척한 겁니다.
이분들은 주어진 상황, 주어진 지정학적인 조건, 특히 북한이 그 영향을 많이 받을 때에 청년 시기를 보냈고 거기서 대단한 결심을 한 게 아니라 ‘내가 중국 가서 일주일만 있다가 돈 좀 벌어와서 우리 가족이 잘 살게 해야겠다’고 결정한 겁니다. 또 중국에서는 농촌 총각들이 너무 많으니까 그 사람들한테서 돈을 받아 북한이나 다른 아시아 국가에서 오는 여성들을 팔아 넘기는 브로커가 양산이 됐던 거죠. 마침 그 지점에 이 여성분들이 또 있었던 거예요.
그것이 또 하나의 계기가 돼서 한국으로 오게 됐는데, 한국에서도 탈북민을 대상으로 한 혜택이 계속 변화되어 왔습니다. 이분들이 취직을 하고 나서 억양 때문에 어려움을 겪을 때, 그 당시는 한국 사회가 창업을 굉장히 장려할 때였습니다. 탈북민들의 창업을 지원해 주는 것뿐 아니라 중소규모 사업을 지원해주는 수많은 지원금이 나왔거든요. 그러니까 이분들이 그렇게 크지는 않지만 지원금을 어느 정도라도 받아서 사업을 시작하고 유지할 수 있는 자금이 되었던 것입니다.
기자: 교수님께서 보시는 탈북여성들의 강점은 무엇입니까?
신혜란 교수: 탈북여성들 이야기 들어보면 전업주부였던 분들이 굉장히 많습니다. 그러니까 명목상으로는 전업주부인데 장마당 활동을 하셨던 겁니다. 근데 그 전업주부라는 것이 한국의 전업주부와 굉장히 다른 것이, 여성단체 활동으로 너무 바쁜 겁니다. 돈을 안 받았다 뿐이지 이 사람들에게는 직장이 있는 거나 마찬가지였던 것이죠. 그러니까 공적인 이야기를 하는 것, 회의를 하는 것, 앞에 나가서 이야기를 하는 것, 자기가 할 말을 조리 있게 힘을 주어서 하는 것에 굉장히 단련돼 있습니다. 그런 것이 사회생활하는 데는 많이 작용을 합니다. 일단 진입장벽을 뚫고 나면 그런 면이 굉장히 큰 이점으로 작용할 겁니다.
기자: 반대로 탈북여성들이 한국의 사회생활에서 익숙하지 못한 부분이 있다면 무엇입니까?
신혜란 교수: 탈북여성들이 공적인 활동에는 많이 단련됐지만 이웃이 별로 없고, 내가 혼자 감당해야 하고, 외로움을 느낄 때 이것을 이겨내는 능력은 한국 사람을 따라가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한국 사람들은 경쟁도 경험하고, 외로움과 단절도 겪고, 물자가 풍부한 상황에서 오는 혼란까지 극복하고 강해져 왔습니다. 한국 사람들은 상대적으로 공적인 역할을 강요 당하면서 단련되지는 않았지만 개인적으로 감수해야 했던 것이 많았던 겁니다. 한국의 가파른 경제성장은 공짜로 주어진 것이 아니었으니까요. 그 과정을 개인들이 모두 감내해야 했던 겁니다. 그런 면에서는 사안을 더 입체적으로 보는 것이 좋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기자: 북한이 신형 코로나 사태를 계기로 주민들의 장마당 활동을 통제하고 탈북도 강하게 단속하고 있습니다. 앞으로는 어떤 상황이 펼쳐질 것으로 예상하십니까?
신혜란 교수: 제가 느끼기에는 탈북이 완전히 멈추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탈북을 이미 하신 분들이 중국에도 있고 러시아에도 많습니다. 중국에선 안면 인식 기술이 너무 발달해서 가짜 신분증을 사용하거나 숨어 사는 것이 언제까지 통용될지 잘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중국 내 탈북민들이) 점차적으로 한국으로 오는 길이 열릴 것이라고 봅니다.
기자: 탈북여성, 그리고 탈북여성 사업가들에 대한 연구가 한국 사회에 의미하는 것은 무엇일까요?
신혜란 교수: 21세기 들어 이동과 이주가 빈번해졌는데, 한국 사람들이 선주민으로서 이주민을 받아들인다고만 생각하면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자신이 오히려 이주민이 되는 상황도 너무나 많을 거고요. 내가 선주민인 줄 알았는데 이주민처럼 되는 상황도 많다는 것이죠. 그러니까 탈북민들을 단지 피해자로만 본다거나, 한국을 마치 꿈의 땅인 것으로 여기면서 탈북민들을 불쌍히 여기고 그들이 빨리 우리처럼 되기를 기다리는 모습이 아닌, 동등하게 보는 시각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지금처럼 이동과 이주가 흔한 상황에서는 이런 태도가 상식이 되어야 건전한 사회가 될 것으로 봅니다.
에디터 홍승욱, 웹팀 김상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