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유성옥 INSS 이사장 “북러조약 ‘사문화’ 위해 노력해야”
2024.07.26
앵커: 한국 국가정보원 산하 국책연구기관인 국가안보전략연구원(INSS)의 유성옥 이사장은 과거에도 ‘조소조약’이 있었지만 큰 힘은 발휘하지 못했다며 북러조약의 사실상 ‘사문화’를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밝혔습니다. 한도형 기자가 서울에서 유성옥 국가안보전략연구원(INSS) 이사장을 만나봤습니다.
[기자] 최근 북러 조약이 체결됐습니다. 다양한 북러 협력이 진행될 것으로 보이는데, 이사장님께서 가장 우려하시는 북러 협력이 무엇일지, 그 가능성은 어떻게 보시는지 여쭙습니다.
[유성옥 INSS 이사장] 지금 질문하신 것과 관련해서는 군사 기술 이전입니다. 즉 북한이 2021년 1월 8차 당대회에서 강조한 ‘5대 전략무기’를 위한 기술 이전인데요. 가장 당면해서는 북한이 군사정찰 위성, 지금 실험과 실패를 거듭하고 있죠. 군사정찰위성이 완성될 때까지 지속적으로 기술을 이전 받으려고 할 것이고요. 그 다음에 북한의 가장 큰 목표는 미국을 움직이는 것입니다. 미 본토를 직접 위협할 수 있는 ICBM, 이것도 ‘5대 전략무기’에 포함됩니다. 북한이 개발 중인 ICBM의 지구 재진입(re-entry) 기술은 아직 확보 못한 것으로 평가됩니다. 이 기술이 확보되면 워싱턴이나 뉴욕을 언제든지 공격할 수 있기 때문에 핵군축협상을 하도록 미국을 움직일 수가 있죠. 또 하나는 핵무기 탑재가 가능한 전략핵추진잠수함(SSBN) 개발입니다. 장기간 물속에서 작전이 가능하고, 기동력과 속도가 월등하기 때문에 불시에 LA 앞바다나 뉴욕, 워싱턴 근해에 출몰해 미국의 핵심부를 타격할 능력을 보여줄 수 있습니다. ‘게임 체인저’급이라고 봅니다. 다만 북한이 이를 위한 기술을 얻어내겠다고 무척 애를 쓰겠지만 러시아가 그냥 주지는 않을 것입니다. 관련 기술을 지원할 것처럼 할 수는 있겠지만, 실제 그렇게 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봅니다. 다만 절대로 안 된다는 법은 없습니다. 앞으로 국제정세와 북러관계가 어떤 상황으로 전개되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기자] 북한이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무기 지원 이상의 군사적 지원을 러시아에 제공할 가능성도 있다고 보실까요? 이 경우 북한의 이익은 무엇이 될 것으로 생각하시는지 여쭙습니다.
[유성옥 INSS 이사장] 북한 스스로 북러조약체결 직후 ‘동맹’이라는 말을 일부러 세 번이나 강조했습니다. 스스로가 동맹, 조약에 대한 강한 구속력을 부여해버렸어요. 북러조약 4조(“지체없이 자기가 보유하고 있는 모든 수단으로 군사적 및 기타원조를 제공”)에 근거하여 향후 러우전쟁에서 러시아 군인들이 많이 죽어나가게 될 경우 러시아는 ‘우리가 동맹이니 지원해달라’고 충분히 요청할 수 있다고 봅니다. 저는 이렇게 봅니다. 북한이 처음부터 전투 병력은 안 보내고 공병 위주로 보낼 것으로 말입니다. 땅굴도 파고 참호도 만들고요. 파괴된 시설에 대한 복구도 하게 할 것입니다. 우리도 과거 베트남전에 ‘비둘기 부대’라는 공병부대를 먼저 보내지 않았습니까. 북한이 지금 외화가 턱없이 부족하여 김정은의 통치자금 금고가 비어 있을 것인데, 병력을 보내면 일반 노동자가 받는 임금과 비교가 안 될 정도의 많은 비용을 받게 되지 않겠습니까? 또한 북한군은 병력 130만여 명이라고 하지만 실질적으로는 전투력이 약합니다. 전면전을 수행할 수가 없어요. 러우전쟁에 참전하면 북한군이 실전 경험을 가질 수 있다는 것입니다. 러시아와 북한의 전략적 이익이 맞아떨어질 수 있기 때문에 북한군 파병이 가능하다고 봅니다.
[기자] 향후 북러 군사훈련이 진행될 가능성, 러시아군의 북한 주둔 가능성도 있다고 보시는지 여쭙습니다.
[유성옥 INSS 이사장] 상황 전개 양상에 따라서는 북러 군사훈련은 충분히 가능할 것입니다. 향후 한미연합훈련을 하게 되면 북한은 북러조약에 근거하여 이에 대한 ‘방어적 성격의 북러합동군사훈련이 불가피해졌다’고 주장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러시아군의 북한 주둔은 제가 볼 때는 쉽지 않을 것입니다. 일단 북한이 부대시설 포함, 주둔 비용을 댈 만큼의 여력이 없습니다. 식량도 부족합니다. 이를 러시아에서 공수하는 것도 쉽지 않습니다. 중국의 견제도 만만치 않을 것입니다. 다만 이 또한 한반도에서 전쟁이 발발할 가능성이 높아지는 등 상황이 급박하게 전개되면 현실화될 수도 있는 것입니다. 가령 북한군이 남침을 하는 경우 북한의 후방을 러시아군이 지킬 수도 있는 것이거든요.
[기자] 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북한의 남침 가능성에 대해 언급해주셨는데, 구체적으로 어떠한 남침 상황이 가능성 있다고 생각하시는지 말씀해주실 수 있을까요?
[유성옥 INSS 이사장] 러시아는 적극적으로 북한에 대한 동맹으로 돌아갔습니다. 러시아와의 군사동맹이 복원되면서 북한은 핵무기를 가진 군사대국인 러시아라는 확실한 ‘뒷배’를 확보하게 되었습니다. 북한으로서는 자신들의 체제가 생존할 수 있게 되고, 나아가서 남조선 혁명을 달성할 수 있는 ‘국제적 혁명역량’도 획기적으로 강화되었다고 판단할 것입니다. 잘 아시다시피 북한은 소위 ‘3대 혁명역량’이라는 것을 추구해 왔습니다. 즉 북한자체 혁명기지역량, 남조선 혁명역량, 그리고 국제적 혁명지원역량인데, 최근 들어 자신들의 국제적 혁명지원역량이 굉장히 강화되었다고 간주하는 거죠. 그래서 북한 입장에서 볼 때는 무력남침을 위한 호기라고 판단할 것입니다. 현재 지구상에는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 그리고 이스라엘-하마스 전쟁 등 이례적으로 두 개의 전쟁이 진행되고 있지 않습니까? 이들 전쟁으로도 지금 미국의 힘이 분산되는데 만약 앞으로 대만 해협에서 무력충돌이 발생하게 되면 미국은 무조건 개입한다고 선언했기 때문에 중국과의 전쟁이 불가피해지겠지요. 3차세계대전으로 갈 수 있는 위험한 상황이 되면 미국이 한반도 안보공약을 이행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라고 북한은 판단하는 거죠. 이런 상황에서 발생하는 힘의 공백을 노린다는 것이죠. 이는 북한이 오래전부터 확고하게 견지해 오고 있는 대남무력통일을 위한 변함없는 전략입니다. 그러나 당장 한다는 것은 아닙니다. 어떠한 상황이 도래하게 되더라도 한미 간에 확고한 대북 억지력, 2차 공격을 통한 대북확증파괴 능력만 있다면 북한은 감히 무력남침을 감행할 수 없을 것입니다.
[기자] 최근 중국이 북러 밀착에 대해 다소 불편해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 같은데요. 중국이 우려하는 사항이 무엇일까요. 북한은 북중러 대 한미일이라는 소위 신냉전 구도를 구축하기 원하는 것으로 보이는데, 북중러 연대에 균열이 나타날 수 있을까요?
[유성옥 INSS 이사장] 중국은 러시아, 북한과 전략적 입장이 달라요. 중국은 2001년 WTO에 가입한 이후 무역 통상은 물론이고, 반도체 등 국제 공급망과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습니다. 미중 간에도 다방면으로 전략적으로 얽혀있어서 만약 미국과 서방세계가 중국을 본격적으로 압박하게 되면 중국 경제가 버티기 어려워집니다. 중국 경제가 무너진다는 것은 바로 시진핑 체제의 안정과 직결됩니다. 또 북러 간 초밀착을 하게 되면 한미일은 그것을 군사전략적으로 활용할 수 밖에 없을 것입니다. 핵무기를 탑재한 미국의 전략자산이 한반도에 수시로 전개되고 한미연합훈련도 강화하면서 중국이 가장 싫어하는 한미일 군사협력도 구체화 되죠. 얼마 전 최초로 한미일 간 다영역 연합연습 프리덤 엣지(Freedom Edge) 훈련도 하지 않았습니까. 따라서 중국은 ‘러시아와 북한에 왜 한미일 군사협력이 강화하게 되는 빌미를 제공했느냐’고 불만을 가지게 될 것이고, 이럴 경우 중국을 북중러 진영으로부터 이탈시킬 수 있는 ‘틈새’를 만들 수 있다는 것이죠. 우리가 하기에 따라 충분히 중국을 권위주의 진영으로부터 떼어놓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기자] 북러 밀착으로 인해 안보 상황의 엄중함이 어느 때보다 커진 상황인데요. 한국이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생각하실까요?
[유성옥 INSS 이사장] 지금 한미 간에는 ‘워싱턴 선언’에 따라 핵협의그룹(NCG)을 통해 대북핵억제력을 강화하기 위한 후속 조치를 취하고 있잖아요. 또 얼마 전 나토정상회의를 계기로 개최된 한미정상회담에서는 ‘핵억제·핵작전 지침 공동성명’을 채택했습니다. 한미 간에 CNI(재래식·핵 통합) 방식의 일체형 확장억제 체제를 구축하고 있는데 일단 우리가 지켜볼 필요가 있습니다. 만약 북한이 도발할 경우 핵무기를 포함한 모든 수단을 동원하여 2차 공격이 가능하다는 점을 작전계획에 명시하게 되면 북한이 굉장한 위협을 느끼겠죠. 그리고 이를 입증해 보이기 위해 미국의 핵 전략자산이 한반도 인근에 거의 상주하게 되는 한미핵확장억제 개념으로 가게 된다면 핵무기를 한반도에 재배치하는 효과가 있습니다. 지금은 그렇게 발전되어야 한다고 봅니다.
[기자] 북러 조약 체결 이후 이전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미 전술핵 재배치, 핵 잠재력 확보, 핵무장, 나아가 ‘자체’ 핵무장 필요성도 이야기하는 것 같습니다. 이 같은 논의가 진행될 때마다 늘 함께 따라오는 것이 한미동맹과 한미관계를 어떻게 할 것이냐는 질문인데요, 이사장님께서는 이 문제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여쭙습니다.
[유성옥 INSS 이사장] 이것도 지금 우리 사회에서 다소 정리가 안 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핵무장이라고 하면 ‘자체’ 핵무장이라는 말이 꼭 붙어서 나와요. 그런데 ‘자체’라는 말이 뭡니까. 미국의 협조를 받지 않고 국제사회 신경도 안 쓰고 한다는 것을 전제로 한 게 ‘자체’ 핵무장입니다. 그렇게 되면 당연히 한미관계는 파탄 날 수밖에 없고, NPT 체제를 위반하게 되니까 국제적으로 제재를 받을 수밖에 없게 될 것입니다. 그런데 포괄적인 관점에서 핵무장이 그것밖에 없나요? 동의를 얻고 할 수 있는 겁니다. 쉬운 예로 미 전술핵무기 재배치 방안도 있지 않습니까. NPT 체제를 위반할 것도 없어요. 미국의 협조와 한미동맹 전제 아래 하는 것이 전술핵무기 재배치거든요. 만약 트럼프 정부가 들어섰는데 우리가 생각하지 못했던 전혀 안도할 수 없는 상황이 도래한다고 하면, 한미 간 충분한 대화와 협의를 통해서 전술핵무기를 재배치하는 것이 맞다고 봅니다. 제가 우리 정부 북핵 6자회담 대표의 일원으로 참여해 느낀 것이 무엇이냐 하면, 북한이 핵을 포기할 이유가 없다는 거였어요. 북한 주민들한테는 못 먹고 못 살아도 ‘역사상 가장 평화롭게 살 수 있는 시대를 만든 게 핵무기다, 이것이 김정일(김정은)의 업적’이라고 선전할 수 있고, 대남 위협도 하고 한국을 핵 인질로 잡아 둘 수 있고, 미국에 대해서도 큰 소리칠 수 있는, 소위 ‘만능의 보검’을 북한이 포기할 이유가 없잖아요. 그래서 남북한 간에 실질적인 핵 협상이 되게 하기 위해서는 북한 핵카드를, 즉 핵무기의 배타적인 이점을 무효화시켜 버려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상쇄전략(Offset Strategy)라고 할 수 있는데, 북한이 갖고 있는 핵무기의 전략적인 인센티브를 제거해 버림으로써 대등한 입장에서 핵 협상을 할 수 있게 한다는 것입니다. 제 개인적인 견해인데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 시점까지 한시적으로 우리도 미국의 전술핵무기를 재배치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핵무장이 최종목표가 아니라 북한의 비핵화를 이끌어 내기 위해, 한반도의 평화와 국제비확산(NPT)체제를 지키기 위해 ‘조건부 핵무장’을 ‘징검다리’로 삼는 전략입니다. 이렇게 되면 남북이 동등한 조건에서 동시에 핵을 폐기하면서 북한에게는 핵 폐기의 대가로 체제보장, 경제지원, 미북수교 등 별도의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방식의 협상이 가능할 것입니다. 한미동맹과 우리의 핵무장은 상호배치되는 관계가 아니라 병립될 수 있는 사안임을 우리가 입증해 보여야 합니다.
[기자] 한미동맹을 굳건하게 유지하고 미국의 동의를 얻은 상태에서 진행하는 전술핵 재배치, 핵 잠재력 확보 방안 등의 필요성에는 동의하신다는 것이군요. 그런데 미국을 어떻게 설득할 수 있을까요?
[유성옥 INSS 이사장] 1991년 ‘한반도 비핵화 공동선언’을 채택하는 과정에서 제가 핵 협상에 실무적으로 참여했습니다. 1991년 냉전체제가 본격 붕괴되면서 냉전 시기에 한반도에 가져다 놓았던 미국의 전술핵무기가 필요 없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그 핵무기들을 모두 철수하고 1991년 한국 내 ‘핵부재 선언’을 하게 된 것입니다. 이와 함께 거의 같은 시기에 남북한이 서로 ‘핵실험을 안 하겠다, 핵무기를 제조·보유·배치·사용도 하지 않겠다, 핵재처리 시설과 우라늄 농축 시설도 갖지 않겠다’고 합의하면서 같은 해 ‘한반도 비핵화 공동선언’을 채택한 것이지요. ‘한반도 비핵화’라는 것이 그때부터 쭉 하나의 시대정신처럼 된 거예요. 그런데 실상 북한은 은밀하게 핵무기를 개발하기 위해 반대의 길로 갔던 것입니다. 북한은 지금 최소 30개, 최대 60개 정도의 핵무기를 이미 보유했고 앞으로는 기하급수적으로 핵탄두가 늘어날 것으로 보입니다. 거기에다 이번에 체결된 북러조약을 통해 러시아까지도 사실상 북한을 핵보유국으로 인정하면서 ‘유사시 모든 수단을 동원하여 북한을 지원하겠다’고 약속한 거예요. 이는 한반도 안보지형이 완전히 바뀌고 있다는 의미입니다. 그런데 탈냉전 이후 30여 년 동안 적용되어왔던 안보논리를 지금도 그대로 적용하려고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이제는 변화된 정세에 맞게 새로운 안보논리가 필요한 때입니다. 미국으로서는 지정학적으로 중국, 러시아 등에 가장 가까이 있는 한반도라는 전략적 요충지에 전술핵무기든 전략핵무기든 이들을 견제할 수 있는 강력한 수단을 배치하는 것이 대외 전략측면에서도 매우 유리합니다. 이런 것들에 대한 한미 간 공감대를 이끌어 낼 수 있다면 충분히 미국을 설득할 수 있을 것입니다. 따라서 그 가능성을 처음부터 닫아놓으면 안 됩니다. 확고한 한미협력을 바탕으로 미국을 설득할 수 있는 외교역량을 구비해 나가야 합니다.
[기자] 김정은이라는 개인의 심리, 성격, 특질에 대해 어떻게 분석하고 계신지 궁금합니다.
[유성옥 INSS 이사장] 잘 아시다시피 북한 체제는 신격화된 1인이 지배하는 유일지배체제 입니다. 따라서 김정은이 어떤 사람이냐는 것은 굉장히 중요합니다. 제가 보기에 김정은은 굉장히 변칙을 즐기는 성향을 갖고 있습니다. 매우 무모하고 위험한 인물입니다. 또한 교활하고 잔인합니다. 현영철은 북한 인민무력부장을 했던 핵심 인물인데, 회의 중 졸았다는 이유로 공개처형을 당했습니다. 그 정도로 성정이 굉장히 포악하죠. 그런데 김정은이 막무가내의 비합리적인 리더는 아니라고 봅니다. 김정은을 미치광이로만 보게 되면 북한은 전혀 예측되지 않습니다. 김정은도 합리적인 측면이 있습니다. 독재자로서 그 무엇보다도 자신의 안위를 가장 우선시 할 수 있는 정도의 합리적인 판단을 하는 인물입니다. 따라서 함부로 무모한 전쟁을 감행하지는 못합니다. 전쟁을 일으키면 하루아침에 자신이 누리고 있는 모든 걸 빼앗긴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지요.
[기자] 김정은 북한 정권이 계속해서 안정적으로 유지될 것으로 보시는지 여쭙습니다.
[유성옥 INSS 이사장] 지금 북한 내에는 극도의 억압과 통제와 처벌의 기제라는 것이 작동하고 있죠. 그런데 왜 문제가 되느냐 하면 이런 것으로 북한체제를 물리적으로는 통제 가능하겠지만 주민과 권력엘리트의 마음을 장악하지는 못하죠. 따라서 만약 이 통제 기제가 고장이 생기게 되면 그 틈을 뚫고 엄청난 저항 에너지가 분출될 거예요. 얼마 전 리일규 전 쿠바 주재 북한대사관 참사도 탈북했습니다만, 만약 북한 내부에도 재외 북한 외교관들처럼 통제와 감시가 이완되는 빈틈이 보인다면 대량 탈북이 발생할 수 있을 것입니다. 대량탈북이 안 될 경우에는 이는 곧 북한 김정은 정권에 대한 직접적인 저항으로도 이어질 수가 있겠죠. 지금 북한 내부에서는 억압과 인권유린이 극심한 만큼 자유와 진리, 외부세계에 대한 동경과 갈증이 매우 강하게 분출되고 있다고 판단됩니다. 그것을 촉진했던 게 한류거든요. 그걸 막을 수 없어요. 자유와 진실이라고 하는 것, 이것은 누구도 막지 못해요. 하늘이 인간에게 태어날 때부터 부여한 권리이기 때문이지요.
[기자] 김정은 총비서의 건강에 문제가 있다는 분석도 종종 제기됩니다. 혹시 김정은 총비서가 일찍 사망할 경우 후계구도가 어떻게 진행될 것으로 예상하실까요?
[유성옥 INSS 이사장] 집안 내력도 있어서 김정은 총비서가 본인 건강을 많이 걱정할 겁니다. 저는 김정은 유고 대비를 지금 북한 내부적으로 하고 있다고 봅니다. 당 핵심지도부에서 조용원 당 조직비서를 중심으로 매우 치밀하게 준비하고 있다고 판단됩니다. 김정은의 갑작스런 유고 시 일단 김여정 중심으로 위기관리 비상 체제가 임시적으로 운영될 가능성이 높을 것으로 보이는데, 권력의 속성 상 본인이 원하지 않더라도 추종자들에 의해서 상황이 전개되기도 합니다. 가령 ‘김여정이 계속 못할 게 있느냐 이대로 가자’는 세력이 있을 수 있고요. ‘백투혈통을 이어 가려면 아들이 후계자가 되어야 한다’, 아니면 ‘김정은이 가장 총애한 김주애가 되어야 한다’는 주장이 맞서게 될 수도 있습니다. 이렇게 되면 후계자 문제를 둘러싸고 양쪽 세력 간 치열한 권력 싸움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북한체제의 특성상 누가 후계자가 되느냐 하는 문제는 죽고 사는 문제로 발전될 것입니다. 엄청난 권력 투쟁과 내분으로 이어질 것이고, 이런 과정에서 북한 정권이 조기에 붕괴될 가능성도 있다고 전망됩니다.
[기자] 김주애가 많은 주목을 받는 상황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실까요? 또 김주애를 김정은 총비서의 후계자로 판단하고 계신 지 여쭙습니다.
[유성옥 INSS 이사장] 아직은 김주애가 후계자라고 단언하기는 이릅니다. 현재 공개된 여러 정황으로 볼 때 가능성이 높다는 것일 뿐입니다. 그런데 만약 숨겨둔 김정은의 아들, 그것도 ‘멀쩡한’ 친아들이 있다면 당연히 그 아들이 후계가가 되겠지요. 그래야 4대, 5대를 김 씨 백두혈통에 의한 독재 세습왕조가 계속될 수가 있으니까요. 그런데 ‘마땅찮은 아들’이라도 없는 경우라면 ‘똘똘한 딸’을 생각할 수 밖에 없을 것입니다. 북한은 내부적으로는 이미 후계자를 내정했고 치밀하게 준비하고 있다고 봅니다. 김주애가 아니면 숨겨둔 아들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아직까지 김정은에게 ‘제대로 된 아들이 있다’는 신뢰할 만한 첩보가 파악되고 있지 않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후계체제가 매우 은밀하게 진행된다는 점 때문이기도 하겠습니다. 후계문제를 둘러싸고 북한당국이 보여주는 일련의 ‘퍼포먼스’가 북한의 기만책일 가능성도 있습니다. 북한에 있어서 후계자 문제는 체제의 생존이 걸린 매우 엄중한 사안이기 때문에 그만큼 여러 변수를 염두에 두고 대비해야 합니다. 우리로서는 만약 김주애가 승계했을 경우에 ‘북한체제 내에 어떤 돌발사태가 발생할 수 있을 것인지, 김여정하고 권력투쟁이 전개될 것인지, 이 경우 후계 문제를 둘러싸고 치열한 권력 싸움이 발생할 소지는 있는지, 이런 과정에서 북한체제가 갑자기 붕괴되고 통일의 가능성이 있는지’ 등에 관심과 역량을 보다 집중해야 할 것입니다. 북한이 보이는 형태는 후계자 문제의 본질을 감추기 위한, 일종의 ‘엄호사격’의 성격일 수 있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됩니다. 김정은의 대내외용 상징조작이자, 심리전일 수도 있기 때문에 기만책 등 모든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후계자 문제를 주시해야 합니다.
[기자] 마지막으로 한국 외교 안보 관계자 및 전문가들이 북러조약 체결 등 어려워지는 대외 환경을 어떠한 마음가짐으로 대해야 한다고 생각하시는지 말씀 부탁드립니다.
[유성옥 INSS 이사장] 제가 국책연구소 이사장으로 일해 오면서 이런 이야기를 많이 합니다. 이번 북러조약 체결을 흔히 ‘안보 위기’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우리가 대응전략을 잘 수립하고 치밀하게 대처해 나간다면 오히려 전화위복의 기회가 될 수 있습니다. 1961년 소련과 북한 간 조약이 맺어졌습니다. ‘조소 우호협조 및 상호원조에 관한 조약’이라고 합니다. 이번 북러조약과 같이 자동 군사개입조항도 있습니다. 그런데 실제로는 러시아가 북한을 도운 것이 별로 없습니다. 사실상 사문화됐습니다. 러시아가 한국의 전략적 가치를 무시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이번에도 그렇게 해야 합니다. 그것이 제대로 된 국가전략입니다. 절대로 무력감이나 결정론에 빠져서도 안 됩니다. 창조적이고 적극적인 마음가짐으로 역사를, 우리의 국운을 개척해 나가는 것이 필요합니다.
[기자] 지금까지 한국 국가정보원 산하 국책연구기관 국가안보전략연구원(INSS)의 유성옥 이사장과 이야기 나누었습니다. 서울에서 RFA 자유아시아방송 한도형입니다.
*인터뷰 내용은 국가안보전략연구원의 공식 입장이 아닌 유 이사장의 개인 견해임을 밝혀둡니다.
에디터 목용재, 웹편집 김상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