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 브릭스(BRICS) 가입 의사 표명, 사실인가?
2024.06.25
평결: 증거부족
지난 6월 10일 러시아 니즈니 노브고로드에서 '브릭스(BRICS)' 외무장관 회의가 열렸다. 당시 회의는 지난해 8월 정상회의에서 사우디아라비아, 아랍에미리트(UAE), 이집트, 이란, 에티오피아를 새 회원국으로 승인한 이후 처음으로 10개국 외무장관이 참여한 회의였다. '브릭스'란 브라질(Brazil), 러시아(Russia), 인도(India), 중국(China), 남아프리카공화국(South Africa) 등 5개 국가명의 영문 첫 글자를 따서 만들어진 줄임말로, 이들 국가로 구성된 이른바 '신흥 경제국 협의체'로 2006년에 발족됐다.
RFA '아시아팩트체크랩(Asia Fact Check Lab)'은 지난 5월 초부터 일부 소셜미디어와 인터넷 비공식 뉴스 매체에서 "북한이 BRICS에 가입 의사를 표명했다"는 주장이 확산하는 정황을 포착하고 사실 확인에 나섰다.
이후 이러한 주장은 기정사실로 간주되며, 일부 해외 매체에서 심층분석 기사로 재생산되는 등 SNS를 중심으로 적지 않은 관심을 받았다. 그러나 보도 내용은 신뢰성 있는 출처를 명시하지 않았고, 구체적인 증거도 부족했다.
이에 '아시아팩트체크랩'은 브릭스 회원국 외교 당국과 전문가 분석 등을 통해 팩트체크를 실시한결과, 유포된 정보는 공식적인 사실이 아닌 것으로 확인됐다. 브릭스 회원국이 RFA에 밝힌 공식 해명에 따르면 북한이 브릭스 가입 의사를 표명한 사실은 없으며, 현재 브릭스 내에서도 이와 관련된 논의가 이루어진 바 없었다.
6월 BRICS 외무장관 회의, 푸틴 방북 등 앞두고 ‘북한 BRICS 가입설’ 확산
지난 5월 9일, 사회관계망서비스 ‘엑스(X·옛 트위터)’의 ‘브릭스 뉴스(@BRICSinfo)’ 계정에 “북한이 BRICS에 가입 의사를 표명했다”는 보도문이 게재됐다. 브릭스 뉴스가 이 소식을 보도한 당일 중국 소셜미디어에서도 유사한 소문이 퍼졌지만, 이에 대한 중국 정부의 공식적인 언급 또한 전무했다.
프로필란에 “브릭스에 관한 모든 정보를 실시간으로 전한다”고 소개하고 있는 ‘브릭스 뉴스’는 당시 엑스(X) 및 텔레그램 채널을 통해 북한이 브릭스 가입 의사를 표명했다고 보도했다.
여기엔 “북한이 브릭스 가입에 관심이 있다고 밝혔다”(North Korea has expressed interest in joining BRICS)는 간결한 문구와 함께 김정은 북한 노동당 총비서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악수를 하는 사진이 함께 올라왔다.
‘브릭스 뉴스’가 해당 내용을 게재한 지 약 한 달이 지난 시점에서 해당 게시물의 조회수는 거의 50만에 육박했다. 토론과 논쟁으로 도배되다시피한 관련 댓글에서도 북한의 브릭스 가입에 대한 적지 않은 관심을 엿볼 수 있었다.
다만 문제는 매체들이 일제히 타진한 정보의 근거가 불분명하다는 것으로 출처를 명시하지 않고 단순한 주장만을 게시했기 때문이다.
최근 몇 년간 노동신문 및 조선중앙통신 등 북한 관영 매체 보도에서도 북한이 실제로 브릭스 합류 의사를 드러낸 내용은 전무한 것으로 파악된다. 아시아팩트체크랩은 해당 매체의 엑스 계정뿐만 아니라 텔레그램 뉴스 채널도 확인해 봤지만, 텔레그램에 게재된 보도 내용은 엑스의 간결한 문구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이는 ‘LN24 인터네셔널(LN24 International)’, ‘더 뉴스(The News)’, 'BGTN(BRICS Global TV Network)’ 등의 인터넷 뉴스 매체에서도 재생산됐다. 특히 LN24 인터내셔널은 ‘엑스’에 영상뉴스와 함께 게재한 게시글에서 "러시아 IMF 대표"가 북한의 브릭스 가입 의사를 언급했다고 주장했다.
다만 LN24 인터내셔널의 실제 방송 내용을 살펴본 결과, "북한이 브릭스 가입 의사를 표명했다"는 주장은 진행자가 제기한 논의 전제일 뿐이었다. 여기서 언급된 "러시아 IMF 대표"는 "브릭스가 미국 달러에 대한 대안을 제공할 준비가 되어 있다"고 언급했지만, 북한의 브릭스 가입 의사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다.
해당 정보는 브릭스 외무장관 회의뿐만 아니라, 브릭스 회원국인 러시아의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이 지난 주 24년 만에 북한을 방문해 김정은 북한 노동당 총비서와 북러 간 ‘포괄적 전략 동반자 협정’을 체결하고 향후 북러 간의 전방위적 협력 의지를 대외적으로 시사한 가운데 확산됐다.
올해 브릭스 정상회의는 10월 22일부터 24일까지 러시아 카잔에서 열릴 예정이다.
북한의 BRICS 참여가 암호화폐 시장에도 영향?
이밖에도 일부 암호화폐 전문 매체에서도 해당 사안을 적극 다루는 모습이 눈길을 끌었다.
암호화폐 관련 뉴스를 다루는 '크립토DNES(CryptoDNES)' 사이트에서도 지난달 11일 'BRICS: 북한이 동맹에 합류할 수도 있다'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북한이 브릭스에 가입 의사를 전했다는 것을 기정사실로 하며 이에 대한 분석을 실었다. 매체는 북한이 브릭스에 매력을 느끼는 이유는 “경제적 동맹을 강화하고 북한이 직면하고 있는 강력한 제재를 피할 수 있는 기회이기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또 “브릭스에 가입하면 중앙은행 디지털 통화를 중심으로 하는 결제 시스템을 포함한 대체 결제 시스템에 대한 접근이 제공돼 서구 강대국이 통제하는 SWIFT(국제은행간통신협회) 네트워크에 대한 의존도가 줄어들 수 있기 때문에, 이러한 달러화 축소 전략은 세계 무대에서 더 큰 자율성과 합법성을 달성하려는 북한의 목표와 일치한다”고 평가했다.
기자는 해당 매체에 어떤 출처와 정보를 토대로 북한이 브릭스에 가입 의사 표명을 했다는 내용의 기사를 작성했는지 문의했다.
이에 매체 측은 “’왓쳐.구루(watcher.guru)’, ‘코인트리뷴(cointribune)’, ‘크립토랭크(cryptorank)’와 같은 복수의 웹사이트에서 정보를 얻었다”고 답변했다. 또한 “‘브릭스 글로벌 텔레비전 네트워크(BGTN)’가 이에 관한 기사를 게시한 것을 보았다”며 이들 내용을 참조할 것을 권했다. 그러나 언급된 매체들의 보도 내용 중에는 구체적인 북한의 의사 표명 출처를 명시한 곳이 없었다.
남아프리카공화국 주미 대사관 “북한의 BRICS 가입은 사실 무근”
여러 조사 결과, 북한의 ‘브릭스’ 가입 의사 표명에 대한 주장은 여전히 신뢰할 만한 출처나 증거가 부족한 것으로 판단됐다. 따라서 추가적인 공식 발표나 신뢰할 만한 소스의 확인이 필요했다. ‘아시아팩트체크랩’은 북한이 ‘브릭스’ 가맹 의사를 공식적으로 밝힌 여부를 알아보기 위해 중국, 러시아, 인도, 남아프리카공화국, 브라질 등 기존 브릭스 회원국 대사관에 사실 확인을 요청했다. 이에 대한 공식 답변을 제공한 곳은 남아프리카공화국 대사관이 유일했다.
남아프리카공화국 대사관은 지난 6월 5일 RFA 아시아팩트체크랩의 북한의 브릭스 가입 의사 공식 표명 여부에 대한 질의에 “그간 북한이 브릭스에 가입 의사를 공식적으로 표명한 적은 없다”고 밝혔다.
이스마일 에사우(Ismail Esau) 남아공 대사관 대사대리는 이날 RFA에, “브릭스는 절대적 합의로 운영된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남아프리카공화국은 이러한 결정이 브릭스 내에서 논의될 경우 합의에 따를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현재 브릭스 내에서 북한의 가입에 대한 논의가 없다”며 최근 북한이 브릭스 가입 의사를 표명했다는 주장은 사실이 아니라고 반박했다. (“I herewith would like to acknowledge receipt of your correspondences regarding reports that North Korea (NK) has expressed interest in joining BRICS. In response to your enquiry, there is no official expression of such an interest from NK. Secondly, BRICS works on absolute consensus, SA will join consensus on such a decision, if this ever comes to a discussion in BRICS. For now, there is no such discussion on NK.”)
전문가들 “북한의 브릭스 가입은 왠지 어색해”
마키노 요시히로 일본 히로시마 대학교 객원교수 겸 아사히신문 외교전문기자는 최근 ‘아시아팩트체크랩’에 "북한은 매우 자주적이며 브릭스 내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할 수 없을 것”이라고 밝혔다. 역사적, 정치적 맥락으로 볼 때도 북한이 다자간 협력체에 참여하는 것은 가능성이 낮다는 것이다.
마키노 교수는 북한이 ‘브릭스’란 협의체를 미국에 대항하는 세력이라는 틀 속에 이들의 활동을 지지할 여지는 많지만, 현실적으로 북한이 여기에 가입을 노리고 있다고 보기는 무리라고 진단했다.
결론:
RFA ‘아시아팩트체크랩’의 조사 결과, 최근까지 BRICS 내에서 북한의 가입에 대한 논의는 이루어지지 않았으며, 북한 측에서도 이러한 요청을 공식적으로 한 적이 없었다. 언론 보도에서는 신뢰할 만한 소식통을 인용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남아프리카공화국도 이를 부인했기 때문에 '북한이 BRICS 가입을 의향한다'는 소문을 뒷받침할 증거는 없다.
에디터: 박정우, Asia Fact Check Lab(亞洲事實查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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