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무여 안녕, 북·쿠 동맹의 위기] ② 2017년 “북한·쿠바, 군사적 결별 선택”

쿠바 아바나- 김진국 kimj@rfa.org
2024.04.23
[동무여 안녕, 북·쿠 동맹의 위기] ② 2017년 “북한·쿠바, 군사적 결별 선택” 과거 사탕수수 재배와 설탕공장을 재현한 럼 박물관. / Havana Club
/ RFA PHOTO

(인트로) 음악과 축제의 흥이 넘치는 혁명과 열정의 시간에 머문 나라

 

북한의 지구 반대편 태평양 너머 13천 킬로미터의 거리 만큼이나 북한과는 거리 풍경도 분위기도 다른 나라먼나라, 섬나라인 쿠바입니다.

 

(Music)

 

북 주민에게 쿠바란? 사탕 수수와 여송연

 

아바나 항구의 해변도로 앞 외국인 관광객이 빼놓지 않고 찾는 장소 중 하나가 ‘럼 박물관입니다.

 

(박물관 안내원) 박물관 견학을 시작하려면 예전 (쿠바의) 설탕 공장의 작업 신호인 종을 울려야 합니다. (종소리)  

 

 쿠바는 크리스토퍼 콜럼버스가 1492년 스페인 왕실의 후원으로 새로운 바닷길 개척에 나섰다가 아메리카 대륙을 탐험하게 된 첫 도착지입니다.

 

쿠바의 상징물 중 하나인 사탕수수도 이때 들여옵니다.

 

(박물관 안내원) 사탕수수는 원래 아프리카와 남아시아가 원산지이지만 콜롬버스가 두 번째 여행에서 쿠바로 가져왔습니다. 쿠바의 날씨와 흙은 최고의 사탕수수를 만드는 최고의 조건이었습니다.

 

북한 출신 RFA 정영 기자도 쿠바하면 떠오르는 것이 사탕수수라고 말합니다.

 

(정영) 북한 주민이 생각하는 쿠바는   사탕수수의 나라, 북한 주민들이 생각하는 쿠바의 사탕은 이제 갈색깔 흑사탕이라고 하죠. 그런 사탕에 소설책이나 여러 도서들에 쿠바 여송연을 피워 물었다이런 문장이 자주 등장하거든요. 그래서 북한 주민은 쿠바를 사탕의 나라’ ‘여송연의 나라이렇게 알고 있습니다.  

 

여송연은 담뱃잎을 썰지 않고 통째로 돌돌 말아서 만든 담배인 시가입니다.

 

설탕과 담배는 북한과 쿠바를 경제적으로 잇는 주요 거래 품목이었습니다.

 

평양 근무 전직 쿠바 외교관 설탕 무역도 없어서 못할 지경”   

 

북한과 쿠바가 서로에게 어떤 존재였는지 알아보기 위해 평양의 쿠바 대사관에서 대리 부대사를 지낸 전직 쿠바 외교관을 만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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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바나 자택에서 취재진과 만난 엔리께 몬또또씨. /RFA PHOTO  

 

(엔리께 몬또또) Mi nombre es Enrique Montoto. 내 이름은 엔드리께 몬또또입니다. 한국 친구가 도민국이라는 한국 이름을 지어주었습니다.

 

몬또또씨는 쿠바에서 4년간 한국어를 공부한 후 북한 김일성종합대학에서 2년 동안 유학했습니다.

 

이후 북한 전문가로 수 차례 평양과 아바나를 오가며 외교 현장에서 통역사로 활약했고 평양에 있는 쿠바 대사관에서 근무하기도 했습니다.

 

(몬또또)  두 번은 통역으로 평양을 방문했고 2005년부터 2009년까지 대리 부대사로 근무했습니다.

 

몬또또 씨는 쿠바와 북한의 관계는 정치적 협력에 집중되었다면서 교역은 많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기자) 북한과 쿠바의 경제적 교류는 어땠습니까?

 

(몬또또) 북한과의 교역은 별로 없었어요. 우리는 북한으로 설탕을 보내고 북한에서는 강철을 보냈습니다.

 

(기자) 요즘은 북한으로 설탕 수출을 하지 않나봐요.

 

(몬또또) 쿠바에 설탕이 없어요. 설탕 생산을 (예전만큼) 못하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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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9년 이후 쿠바에서 북한으로의 수출액 변화. /UN Comtrade  

 

유엔의 국가 무역 통계를 보면 북한과 쿠바의 교역은 1960년 대 500만 달러 이하였다가 1970년대 중반 3700만 달러까지 증가합니다.

 

1980년 대 들어 2천만 달러 수준을 유지하며 경제적 동맹 관계를 자랑했습니다.

 

북한은 쿠바에 수공구류, 전동기, 농기구 등을 수출했고 쿠바는 설탕, 니켈, 황마 등을 북한으로 보냈습니다.

 

국제사회의 제재는 두 나라의 교역에도 영향을 미쳤습니다.

 

200042천 달러로 급격하게 줄더니 가장 최근 공개된 2018년는 6400 달러로 줄었습니다. (유엔 국제무역 데이터베이스/ UN Comtrade)

 

무역이 급감한 시기에도 쿠바의 시가, 여송연은 북한과 쿠바의 경제적 관계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2016년 쿠바는 140만 달러의 담배를 북한으로 수출했습니다.

 

하지만 유엔 통계로 살펴본 북한과 쿠바의 교역은 그것이 마지막이었습니다.

 

해변 절경지에 전시된 미그 21 전투기와 북한의 사연

 

아바나 북쪽 바다 건너편은 미국 플로리다 주입니다.

 

서울에서 평양 거리인 약 200킬로미터보다 가깝습니다.

 

아바나 시민의 휴식처인 말레꼰 해변에서 140킬로미터 거리에 미국 플로리다 주의 마이애미 키웨스트(Key West) 섬이 있습니다.

 

바로 이 가까운 거리 때문에 쿠바는 세계3차대전의 발화점이 될 수도 있었습니다.

 

미소 핵전쟁의 일촉 측발의 순간이었던 1962년 쿠바 미사일 위기입니다.

 

소련과 미국의 군사 대립이 극에 달했던 냉전시절 소련이 쿠바에 미국 본토를 사거리에 두는 핵미사일을 배치합니다. 하지만 핵전쟁 확률 99% 위기는 외교로 극적으로 해소됩니다.

 

그 위기감은 아바나의 아름다운 말레꼰 해변도로의 한편에 전쟁기념공원로 남아 유명 관광지가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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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2 미사일위기 당시 무기들이 전시된 전쟁공원. /RFA PHOTO

이곳엔 북한과 관련된 무기도 있습니다.

 

산 살바도르 요새 옆 해변이 한눈에 보이는 언덕 위 잔디 밭에 1960년대 전투기와 미사일, 대공포들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이규상 기자) 이 비행기가 북한의 주력기종이죠.

 

쿠바가 소련의 지원으로 도입한 미그 21 전투기입니다.

 

미그 21 전투기는 북한과 쿠바의 군사 교류에도 등장합니다.

 

지난 20137월 쿠바에서 파나마 운하를 지나던 북한 선적 화물선 청천강호가 파나마 정부에 나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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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바나 전쟁공원에 전시된 미그 21 전투기. /RFA PHOTO

 

미그 21전투기 2, 미그기 엔진 15, 지대공 미사일시스템 2기 등 약 24톤의 화물을 선적하고 있었습니다.

 

유엔은 이 병기가 북한을 향했다면서 북한 관련 무기 수출입을 금지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대북결의 위반으로 규정했습니다.  

 

사회주의 참호동지는 왜 군사적 관계를 중단했을까?

 

북한과 쿠바의 군사 교류를 가장 가까이에서 목격한 전직 쿠바 고위 군 관계자는 세상에 알려진 것과 실상은 거리가 있다고 합니다.

 

빠벨 김씨와 만난 곳은 아바나의 유명 식당으로 쿠바에서 촬영한 한국 드라마의 주인공들이 식사한 장소로 세계 한류팬들의 많이 잦는 곳입니다.

 

(빠벨 김) 30년 동안 쿠바 군에 있었습니다. 한인 3세입니다.

 

쿠바 군 변호사로 근무하면서 2015년 북한 군 고위관계자가 쿠바를 방문했을 때 쿠바 군 대표로 의전을 담당했습니다.    

 

(빠벨 김) 군에 있을 때 북한 고위 군인이 쿠바를 방문할 때 쿠바 군의 통역 등 상대 역할을 했습니다. 그래서 제 말투가 북한말같다는 이야기를 듣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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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바 군 법무관을 지낸 빠벨/Pavel 김씨. / RFA PHOTO

 

1990년 대까지 무기와 군사 기술 교류, 공동 군사 훈련을 했던 쿠바와 북한의 군사적 교류는 국제 사회의 제재와 경제적 어려움으로 존재감을 잃어 갔습니다.

 

김 씨는 북한과 쿠바의 군사 교류나 협력은 중단된 상태로 봐야 한다고 단언합니다.

 

(빠벨 김) 쿠바 정부는 북한의 핵개발에 반대한다는 국제사회의 뜻과 같습니다. 쿠바와 북한의 군사 관계는 2017년에 중단되었습니다. 그 이후로 북한 군 인사의 쿠바 방문도 완전히 끊겼습니다.  

 

쿠바는 2017년 북한과 군사 교류를 끊고 새로운 협력자와 손을 잡습니다.

 

한국 자주국방 네트워크의 이일우 사무총장은 2018년부터 중국과 쿠바의 군사 교류가 활발해졌다고 설명합니다.

 

(이일우) 북한이 쿠바와 교류를 끊은 시점에 중국이 들어왔습니다. 중국 인민 무장 경찰이라는 준군사 조직이 쿠바에 들어가서 시위집압과 시가전 등 특수 군사 작전을 쿠바군에 가르치는 교관단 역할을 수행했습니다. 쿠바 입장에서는 북한보다는 중국한테 받아내거나 배울 게 더 많기 때문에 북한과의 군사 협력을 접고 중국과의 관계를 강화한 것으로 보입니다.

 

쿠바 정부는 북한과의 군사적 협력을 중국과 손잡으며 중단했고 경제도 북한 대신 한국과 거리를 좁혀가며 국교수립을 택했습니다.

 

경제와 군사 분야의 관계가 희미해진 북한과 쿠바

하지만 여전히 두 나라의 우정이 힘을 발휘하는 분야가 있습니다.

 

외교전쟁의 참호 속에서 서로를 의지하는 든든한 동지의 모습이 그것입니다.

  

RFA 특별기획 <동무여 안녕, 북한-쿠바 동맹의 위기> 2편을 마칩니다.

지금까지 제작, 진행에 자유아시아방송 김진국입니다.  

 

에디터 이진서,  웹팀 김상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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