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온 트럼프] 주어진 임기 4년, 김정은과 ‘동상이몽’?
2024.11.08
앵커: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승리하면서 그의 집권 2기 대북정책에 관심이 쏠리고 있습니다. 과거 트럼프 행정부는 한반도의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돌이킬 수 없는 비핵화(CVID)’를 강조했는데요. 차기 행정부에서는 다른 접근법을 모색할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습니다.
특히 트럼프 당선인이 4년이라는 임기 안에 북핵 문제의 진전이라는 외교적 성과를 쌓기 위해 북한에 적극적인 구애를 펼칠 수 있지만, 오히려 김정은 북한 총비서에게는 다른 의도의 전략을 펼치는 시간이 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옵니다. 서혜준 기자가 보도합니다.
트럼프 행정부 2기, 새로운 대북 접근법 모색할까?
[도널드 트럼프] 나는 김정은과 잘 지내며 미사일 발사를 멈추게 했는데, 지금은 북한이 다시 도발을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제가 백악관에 돌아가면 그와 다시 잘 지낼 겁니다. 그도 저를 그리워할 걸요?
지난 7월 미국 위스콘신주 밀워키에서 열린 공화당 전당대회.
당시 대통령 후보직을 수락한 도널드 트럼프 당선인은 연설에서 “나는 북한 김정은과 잘 지냈고, 많은 핵무기를 가지고 있는 누군가와 잘 지내는 것은 좋은 일”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지난 7월 20일 미시간주에서 한 유세에서는 김 총비서에게 “뉴욕 양키스 구단의 야구를 보러 가자”라며 또 한 번 친분을 과시했습니다.
2018년과 2019년 김 총비서와 두 차례 미북 정상회담을 했던 트럼프 전 대통령이 지난 5일 재선에 성공하고 4년 만에 백악관으로 돌아갑니다.
트럼프 당선인은 첫 집권 시절 ‘최대 압박’과 ‘대화’를 병행하는 대북정책 기조를 유지하면서 이전 대통령과는 다른 방식으로 북한을 상대했습니다.
2017년에는 “북한이 미국을 위협할 경우 화염과 분노에 직면할 것”이라는 강경 발언으로 미북 간에 긴장이 최고조에 다다랐지만, 이후 김 총비서와 전례없는 정상회담을 통해 외교적 해법을 모색하는 등 양면 접근 방식이 특징이었습니다.
또 전통적인 외교 방식을 벗어나 사회관계망서비스를 이용한 일명 ‘트위터 외교’와 실무 그룹이 아닌 국가 정상이 바로 협상하는, 이른바 ‘톱다운’ 방식으로 직접 김 총비서와 정상 회담을 추진하기도 했습니다.
당시 트럼프 행정부의 대북정책은 북한의 비핵화를 목표로 강력한 대북 제재를 앞세워 북한의 핵 개발을 억제하는 전략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오는 2025년 1월 20일부터 공식적으로 출범할 트럼프 행정부 2기의 대북정책은 어떤 모습일까?
[도널드 트럼프] 미국과 북한의 관계는 굳건합니다. 좋은 관계를 유지하면 좋은 일들이 일어날 수 있습니다. 장기적으로 봤을 때 우리는 성공을 이룰 겁니다. 김 위원장과 북한은 엄청난 경제적 잠재력을 지녔다고 봅니다. 그리고 이를 제가 도울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지난 2019년 2월 베트남(윁남) 하노이에서 열린 2차 미북 정상회담.
두 정상은 대북 제재 완화와 구체적인 비핵화 조치에 관한 이견을 좁히지 못하면서 합의없이 회담을 마쳤습니다. 당시 북한은 영변 핵시설 폐기를 조건으로 일부 대북 제재 해제를 요구했지만, 미국은 더 많은 핵시설을 내놓을 것을 원하면서 타협점을 찾지 못하고 결렬된 겁니다.
이는 2018년 6월 싱가포르에서 열린 첫 미북 정상회담에서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와 미국의 대북 안전 보장 등을 골자로 한 공동 성명에 서명한 지 불과 8개월 만이었습니다.
[마이크 폼페이오, 전 미 국무장관] 우리가 북한과의 외교에서 추구하는 궁극적인 목표는 변하지 않았으며, 한반도의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돌이킬 수 없는 비핵화(CVID)만이 미국이 받아들일 수 있는 유일한 결과입니다.
하지만 내년에 출범하는 트럼프 행정부 2기의 대북정책이 여전히 ‘완전한 비핵화’를 목표로 할지는 불투명합니다.
미국 국무부 동아태담당 수석 부차관보를 지낸 에반스 리비어 미 브루킹스연구소 수석 연구원은 지난 7일 자유아시아방송(RFA)에 “과거 트럼프 전 대통령이 추구했던 북한과의 거래조건은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며 미국의 목표가 비핵화에서 벗어날 가능성을 제기했습니다.
또 그는 “트럼프 전 대통령은 아무런 성과도 내지 못하고 결렬된 하노이 회담을 통해 김 총비서가 비핵화에 진지하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을 것”이라고 덧붙였습니다.
특히 북한이 자국을 ‘핵무기 보유국’으로 선언했기 때문에, 핵 지위를 인정받기 위해서는 ‘비핵화’보다 ‘군비 통제(arms control)’에 대한 협상에 더 관심을 가질 것이란 게 리비어 연구원의 관측입니다.
RFA의 주간 프로그램 ‘한반도 톺아보기’에 출연하는 마키노 요시히로 일본 아사히신문 외교전문기자 겸 히로시마 대학교 객원교수도 트럼프 행정부가 다시 들어서면 북한이 핵 군축 협상을 제안할 것으로 예상한 바 있습니다.
[마키노 요시히로] 북한은 트럼프 행정부가 다시 들어서면 재빨리 핵 군축 협상과 제재 해제를 요구하는 미북 간 협상을 제안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미 중앙정보국(CIA)에서 북한 정책 분석관을 지낸 이민영 미 스팀슨센터 연구원도 지난 6일 RFA에 “트럼프 행정부는 김 총비서가 미국과의 재결합을 고려할 수 있게 하려면 그에게 극적으로 다른 거래를 제안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그는 오늘날 북한의 핵미사일 발전과 북러 간 긴밀한 협력 등을 고려했을 때 ‘위험 감소(risk reduction)’나 ‘군비 통제’에 관한 대화조차도 북한이 과연 수락할지는 미지수라고 덧붙였습니다.
이는 미국이 북한에 파격적인 패를 제안하지 않는 이상 미북 대화의 물꼬를 트기는 어려울 수도 있다는 말로 풀이됩니다.
RFA의 주간 프로그램에 출연하는 북한 노동당 39호실 출신 리정호 ‘코리아번영개발센터’ 대표도 “김 총비서는 트럼프 전 대통령을 만났던 2018년과 2019년에 더는 머물러있지 않다”라며 “핵보유국임을 선언하고,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에 군대까지 파병할 만큼 강경한 입장을 보이고 있기 때문에 차기 트럼프 행정부가 북한에 대해 새로운 전략을 준비해야 한다”라고 조언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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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북핵 문제 진전으로 ‘노벨평화상’ 노릴까?
도널드 트럼프 당선인이 내년 백악관에 복귀하면 북한군 파병으로 논란을 빚고 있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종전 수순을 밟을지도 관심입니다.
실제로 트럼프 당선인은 그동안 선거 유세 과정에서 우크라이나, 러시아 대통령과의 우호적인 관계와 개인적인 친분을 과시하며 ‘24시간 이내에 전쟁을 종결할 것’을 공언해 왔기 때문입니다.
에반스 리비어 수석 연구원은 “트럼프 당선인이 우크라이나에 압력을 가해 자신의 친구인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에게 유리한 조건으로 전쟁을 종식하는지 여부에 주목해야 한다”라며 우려했습니다.
또 이를 통해 러시아가 더는 북한군이 필요없게 되면, 그 대가로 민감한 군사 기술을 북한에 넘겨줄 필요성을 덜어내려 할 것이라는 게 그의 설명입니다.
그러면서 리비어 수석 연구원은 “외교 무대의 중심에 서 있는 것을 좋아하는 트럼프 당선인이 자신을 ‘평화를 추구하는 사람’으로 묘사하기 위해 북한 지도자와의 대화를 되살리려 할 수 있다”고 관측했습니다.
만약 트럼프 당선인이 차기 행정부에서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과 중동 분쟁을 해결하고, 북핵 문제 해결에 일부 진전을 보인다면, ‘노벨평화상’까지 노려볼 수 있는 외교적 자산이 될 수 있기 때문에 더 적극적으로 미북 대화를 추진할 가능성도 엿보입니다.
실제로 트럼프 당선인은 과거 북한과의 핵전쟁을 억제하고 평화를 조성했다는 이유와 2020년 8월에 체결된 ‘아브라함 협정’(이스라엘과 아랍에미리트 사이에 맺어진 협정)에 대한 공로로 2019년부터 2021년까지 3년 연속 노벨평화상 후보에 올랐지만, 수상하지는 못했습니다.
이에 대해 리정호 대표는 트럼프 당선인이 북한의 비핵화와는 무관하게 자신의 단적인 성과만을 중시해 온 것처럼 김 총비서도 임기 4년에 불과한 트럼프 행정부를 어떻게 이용할지에 대한 전략을 세울 것이라고 내다봤습니다.
[리정호] 김정은 정권은 미국 대통령을 임기 4년짜리로 보고 있기 때문에 그 기간 내에 트럼프 당선인을 어떻게 이용할 것인지에 대한 전략을 세울 겁니다. 어찌 보면 4년이라는 시간은 짧습니다. 제가 하고 싶은 조언은, 트럼프 당선인이 앞으로 4년 임기 내에 북한의 비핵화와 인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명확하고 실행 가능한 전략을 수립하고 이를 행동으로 보여야 한다는 겁니다.
이런 가운데 미 헤리티지재단이 2023년 공개한 ‘프로젝트 2025’ 보고서는 트럼프 행정부 2기에서 가장 주목해야 할 5개 국가 중 하나로 북한을 꼽았습니다.
차기 보수 정부에 대한 정책 제언집으로 알려진 이 보고서는 ‘사회주의와의 전쟁’을 내세우며, “북한이 미국이나 동맹국을 위협할 수 있는 사실상의 핵보유국으로 남는 것을 허용할 수 없다”고 명시했지만, 트럼프 당선인은 이 보고서가 자신과는 무관한 내용이라며 거리를 둔 바 있습니다.
하지만 이 보고서의 작성자 중 한 명인 카이론 스키너 전 미 국무부 정책기획국장은 북한의 비핵화를 미 대북정책의 최우선 순위에 둬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카이론 스키너] 북한 비핵화는 지금 당장 이뤄지지 않더라도 항상 미국 대북정책의 최우선 순위로 있어야 합니다.
김 총비서에 대한 친분을 과시했던 트럼프 당선인이 백악관으로 복귀함에 따라 북한도 새로운 기회를 모색할 수 있게 됐습니다.
또 4년밖에 주어지지 않은 임기 동안 트럼프 당선인은 자신의 외교적 자산을 쌓기 위해 더욱 적극적으로 북한에 구애를 펼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북한 주민의 인권은 외면받을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됩니다.
내년부터 다시 상대하게 될 트럼프 행정부와 김정은 정권. 서로 우위를 점하려는 둘 사이의 치열한 기싸움과 외교 전쟁도 다시 시작될 전망입니다.
RFA 자유아시아방송 서혜준입니다.
에디터 노정민, 웹편집 이경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