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길 바쁜 원산갈마관광지구, 김정은 맘대로 짓고 부수고
2024.09.27
앵커: 내년 5월 개장을 목표로 공사가 한창인 원산갈마해안관광지구에서 멀쩡한 건물을 하루 만에 철거하고 다시 짓는 정황이 위성사진에 포착됐습니다.
전문가들은 김정은 북한 총비서의 지시에 따라 건물을 철거했을 가능성을 제기하며, 경제적 효율성을 신경 쓰지 않는 그의 ‘즉흥적인 통치 스타일’을 보여주는 사례라고 지적했습니다.
또 원산 갈마 지역에 노동자들의 대규모 임시 숙소도 식별됐는데요. 인력을 집중해 공사를 급히 진행하는 것 같다는 분석도 나옵니다. 보도에 천소람 기자입니다.
야외공연장, 지었다 부쉈다 반복… 그 이유는?
미국의 상업위성인 ‘플래닛랩스(Planet Labs)’가 지난 7월부터 9월까지 촬영한 강원도 원산시 용천리의 ‘원산갈마해안관광지구’.
그중 지난 7월 10일에 촬영된 위성사진에서 원산 명사십리 바닷가 해안가에 완공된 야외음악당 모습이 보입니다.
하지만 다음 날인 7월 11일, 하루 사이에 야외음악당이 철거된 모습이 확인됐습니다. 그리고 8월 14일에는 야외음악당이 철거된 장소의 부지가 말끔히 정리됐고, 8월 31일에는 반타원형 모양이 뚜렷이 식별됩니다.
그리고 지난 9월 10일에 촬영된 위성사진에는 야외공연장 공사를 재개한 듯한 정황이 포착됐는데, 부지 주변에 건설자재가 놓여 있고, 야외공연장 건물 앞까지 공사 범위가 넓어졌습니다.
이처럼 개장도 안 한 멀쩡한 건물을 부쉈다가 다시 짓는 이유는 무엇일까.
전문가들은 김정은 북한 노동당 총비서의 지시로 건물이 철거됐을 가능성에 주목했습니다.
조한범 한국 통일연구원 석좌연구위원은 25일 자유아시아방송(RFA)에 “김 총비서가 여러 가지 건축 사업과 관련해 설계도를 직접 관장하고 있다”라며 야외음악당의 철거도 “김정은의 지시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라고 관측했습니다.
[조한범] 현지 지도를 가서 건물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현장에서 다시 허물고 지으라고 지시를 합니다. 야외 공연장이 상당히 큰 규모였고, 바로 해안에 인접해 있었습니다. 아마 김 위원장의 지시가 없다면 그 정도의 건물이 해체되고 다시 건축되기는 어렵습니다. 내년 5월까지 완공하면 결국 본격적으로 영업을 한다는 얘기인데, 거기에 맞춰서 새로운 지시가 내려왔고 그 이행 과정에서 건물이 재건축되고 있다고 볼 수 있죠.
북한 노동당 39호실의 고위 관리 출신인 리정호 ‘코리아번영개발센터’(KPDC) 대표도 24일 RFA에 김 총비서의 즉흥적인 판단 혹은 책임자를 책망하기 위해 건물을 철거했을 가능성이 크다고 설명했습니다.
[리정호] (김정은 총비서의) 즉흥적인 감정으로 (철거됐을 수 있습니다). 혹은 ‘관리자가 잘못했으니, 없애라’는 식으로 됐을 수 있습니다. 건설 현장뿐 아니라 경제를 지도하는 문제에서도 (특정 인물에 의해 추진됐던) 건 없애라 해서 없애고…. 김정은의 지시에 의해서 하지 않으면 누가 없앨 수가 없잖아요. 국가의 손실을 계산하지 않고 김정은이 없애라고 하면 무조건 없애는 거고요.
완공된 건물이 하루 아침에 없어지고 다시 건설되는 모습이 김 총비서의 ‘통치 스타일’을 그대로 보여준다는 겁니다.
[조한범] 북한에서는 경제적 효율성과 관계없이 김정은 위원장의 지시에 따라 건물이 지어지고 허물어지고 새롭게 만들어집니다. ‘김정은식 미적 감각’, ‘김정은식 운용’ 개념이 있기 때문에 여기에 안 맞으면 바로 허물고 다시 짓는 일이 반복적으로 나타납니다. 거의 완공단계에 있다고 할지라도 김 위원장의 지시대로 이행이 안 됐거나 마음에 들지 않으면 재건축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야외 공연장 정도가 다시 재건축되는 건 사실 별로 중요한 것도 아니죠.
김혁 한국 농어촌공사 농어촌연구원 선임연구원도 24일 RFA에 경관 훼손, 비효율적인 건물 위치, 건물 확장 등의 이유로 야외음악당을 철거했을 수 있지만, “중요한 것은 건물을 새로 짓는 비용보다 정치적 상징성이 높다고 판단되면 없애는 것”이 김정은 정권의 통치 방식이라고 꼬집었습니다.
김 선임연구원은 새로 건설되고 있는 구조물이 어떤 형태일지 아직 알 수 없지만, 야외음악당 앞에도 건설 공사가 진행 중이기 때문에 이와 관련된 건물을 짓고 있는 것 같다고 덧붙였습니다.
[김혁] 중심에 있는 중앙 건물 앞이 썰렁하잖아요. 야외 공연장 자체가 반 돔 형태로 되어 있습니다. 원래 처음 건설했던 구조와 다르게 중심이 일부가 들어가 있어요. 앞에 연결된 본관을 가릴 만한 건물이 올라올 것 같지는 않고요. 기본적으로 저층 형태의 본관에서 충분히 예쁘게 보일 수 있는 무엇인가가 만들어지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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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규모 인력 동원… “급하게 공사 진행하는 듯”
위성사진에 따르면 원산갈마해안관광지구의 고층 호텔과 건물 외관은 대부분 완공된 것으로 보이지만, 돔형공연장과 야외 물놀이장은 여전히 공사가 진행 중인 것으로 파악됩니다.
특히 거북 모형의 돔형공연장의 경우 지난 6월부터 파란색 자재가 반 이상 덮여있었는데, 8월 17일부터 자재가 걷히기 시작하더니, 9월 10일의 위성사진에서는 완전히 없어진 모습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최대식 한국 토지주택연구원(LHRI) 북한연구센터장은 지난 24일 RFA에 “돔형공연장의 파란색 자재는 지붕공사를 위해 천막을 씌운 것처럼 보인다”고 해석했습니다.
김 선임연구원도 아직 공사가 진행 중이기 때문에 태풍이 심한 6~8월, 철제를 보호하기 위해 임시 자재를 올려놓았을 가능성도 제기했습니다.
[김혁] 제가 봤을 때 이거 지붕 아니에요. 임시로 뭔가 씌워놓은 것 같습니다. 지금 돔 형태의 지붕 철제가 노출돼 있잖아요. 그러면 태풍에 굉장히 취약하단 말이죠. 염도에도 그렇고. 그래서 임시로 올려놓은 게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어요.
또 갈마반도 남단에 조성된 물놀이장은 지난 7월까지는 공사가 중단된 상태에서, 수영장과 워터슬라이드장(물미끄럼틀)은 부지만 갖춰 놓았고, 흐르는 물의 유수 풀장은 꽃잎 모양의 형태만 갖춰져 있었는데, 지난 9월 10일에 촬영한 위성사진에는 바닥재를 마감하고 물놀이장 부지가 정돈돼 있는 모습이 포착됐습니다. 본격적으로 공사에 속도를 내는 것으로 보입니다.
원산갈마해안관광지구는 2020년 4월 김일성 생일을 기념해 완공을 목표로 2014년에 건설을 시작했지만, 대북 제재로 건축, 설비 물자 조달에 차질을 빚었고, 코로나19로 해외 관광객 방문이 불가능해지면서 계속 지연돼 왔습니다.
한편, 명사십리 해안가에서 약 1km 떨어진 지점에는 건설 노동자들의 임시 숙소로 추정되는 건물 수십 동이 모여있는 모습도 위성사진에 포착됐습니다.
김혁 선임연구원은 “공사 규모에 비해 건설 인력들의 임시 숙소가 많이 보이고 있다”라며 원산 갈마 일대에 인력을 집중해 공사를 급하게 진행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습니다.
[김혁] 일대에 건설 인력이 많이 들어와 있습니다. 굉장히 많은 공사를 진행할 예정이라는 얘긴데, 그동안 밀렸던 부분들과 개보수 공사를 하는 게 아닐까 생각이 들기도 하고요. 개보수 공사라고 하기에는 사람 인력이 너무 많습니다. 외관상으로는 마무리가 다 됐죠. 내부적으로는 얼마나 안 됐는지 (예상되는 부분입니다). 인력이 집중됐고, 문제는 급하게 진행이 되는 게 아닌가라는 생각이 듭니다.
지난 7월 16일, 김 총비서가 원산 갈마지구를 방문해 내년 5월까지 공사를 마칠 것을 지시했지만, 내부 공사만으로도 공사 일정이 빠듯한 가운데 멀쩡한 건물을 부수고 다시 짓는 모습을 보이고 있어, 과연 목표한 날에 개장할 수 있을지 주목됩니다.
RFA 자유아시아방송 천소람입니다.
에디터 노정민, 웹편집 김상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