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삼 “남북정상회담 때 북 억류 동생 오길 바랐는데...”

워싱턴-노정민 nohj@rfa.org
2024.09.30
김정삼 “남북정상회담 때 북 억류 동생 오길 바랐는데...” 김정욱 선교사가 2014년에 평양에서 기자회견을 하는 모습
/연합뉴스

앵커: 북한에 4천 일 넘게 억류된 김정욱 선교사의 형 김정삼 씨는 11년 가까이 생사도 알 수 없는 동생의 귀환을 바라면서, 다시 만날 때까지 조금만 더 견뎌주기를 당부했습니다.

 

목욕할 때마다 동생이 생각난다는 김 씨는 남북 관계가 악화해 걱정이 크지만, 이럴 때일수록 피해자 가족과 정부, 국제사회가 힘을 하나로 모아야 한다고 거듭 강조했는데요.

 

노정민 기자가 워싱턴 D.C를 방문한 김정삼 씨를 자유아시아방송 스튜디오에서 만났습니다.

 

두 주 전에 만난 동생이 남한 간첩?… “그게 마지막이었어요

 

중국 단둥에서 대북 인도 지원을 하다 201310월 북한에 억류된 김정욱 선교사.  

 

이듬해인 2014227, 평양 인민문화궁전에서 열린 단 한 번의 기자회견을 끝으로 김 선교사의 행방은 11년째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김정욱] 저는 북한에 기독교 나라를 세우려면 현 정권과 정치체제를 붕괴시켜야 한다고 생각하면서 국정원의 명을 받고 그들의 지시에 따라 북쪽 사람들을 첩자로 소개하고

 

당시 그는 기자회견에서 준비된 원고를 읽다가 목이 메는 듯 잠시 멈칫하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20145, 그는 국가전복음모죄, 간첩죄, 반국가선전선동죄, 비법국경출입죄로 무기 노동교화형을 선고받았습니다.

 

김 선교사의 형인 김정삼 씨는 기자회견을 보고 동생이 북한에 억류된 사실을 알았습니다. 또 한국의 간첩이라는 혐의에 대해서는 전혀 납득할 수 없었습니다.  

 

북한 주민을 지원할 국수의 질을 높이기 위해 한국에서 공장 견학도 하고, 다음 기회에 고향에 들러 부모님도 찾아뵙겠다고 한 동생이 불과 2주 만에 남한 간첩이 돼 북한에 억류됐다는 사실을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었던 겁니다.   

 

[김정삼] 저는 (동생이) 억류됐다는 기자회견을 보고, 북한에서는 평양에 들어와 간첩으로 잡았다라고 표현했어요. 그런데 제 입장에서는 저하고 만난 지가 불과 2주밖에 안 됐는데, “북한에 와서 남한 간첩으로 잡았다라고 하니까 저는 전혀 납득이 안 됐죠. 그리고 헤어지면서 추석날이 며칠 안 남았는데, 고향에 가서 아버지를 만나 인사드리는 게 어떻겠냐라고 말했더니 동생이 이번에는 못 가고 다음에 들리겠다고 해서 그렇게 하라고 했죠. 그런 상황을 다 들었을 때 전혀 맞지 않잖아요. 한국의 간첩으로 왔다는 사람이 굳이 국수 공장에 가서 사진을 찍다니요. (동생의) 스마트폰에 다 기록이 있을 텐데, 남한의 간첩으로 왔다는 건 말이 안 되죠.

 

그의 생사 확인조차 하지 못한 지 4천 일이 넘은 가운데 아직도 김 선교사가 어디에 있는지, 어떤 상황인지는 알려지지 않고 있습니다

 

이런 가운데 자유아시아방송(RFA)은 지난 926, 워싱턴 D.C.를 방문한 김정삼 씨를 직접 만났습니다. 11년이라는 인고의 세월을 보여주듯 인터뷰 내내 그의 목소리는 차분하고 침착했지만, 동생에 대해 이야기할 때는 힘이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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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에 4천 일 넘게 억류된 김정욱 선교사의 형 김정삼 씨 /RFA Photo

 

말없이 속만 태우시던 아버지 별세동생 억류 이후 가정 다 무너져

 

[기자] 북한에 억류된 김정욱 선교사의 형님인 김정삼 씨께서 자유아시아방송 스튜디오에 나와 주셨는데요. 지난 920일로 김정욱 선교사가 북한에 억류된 지 4천 일이 됐습니다. 11년이 다 되어 가는데요. 다시 한번 동생이 북한에 억류됐다는 소식을 들었을 당시로 되돌아가 볼까요. 처음 그 소식을 들었던 그때의 상황과 심정은 어떠셨습니까?

 

[김정삼] 처음 억류됐다는 소식은 북한에서 기자회견 하는 걸 보고 알았습니다. 마음속으로 , 큰일 났다라는 생각과 심장이 뛰는 것을 느꼈던 거죠. 요즘도 남북 관계가 어렵지만, 11년 전에도 남북 관계가 정치적으로 많이 어둡고 닫혀 있는 시기였기 때문에, 머릿속에는 ‘(동생이) 죽을 수도 있겠다, 보지 못할 수도 있겠다라는 생각이 더 강했던 거죠.

 

[기자] 그 후로 11년이라는 시간이 지났고, 지금까지 전혀 생사 확인이나 한국 정부를 통한 소식은 듣지 못하신 거죠?

 

[김정삼] . 생사 확인은 아직 못하고 있고, 한국 정부에서도 현재는 많은 관심을 가져 주시고, 저에게 위로되는 부분들을 위해 애쓰고 있지요. 그 점에 대해서는 감사하고 있습니다.

 

[기자] 11년이 결코 짧은 세월이 아닌데, 그동안 부모님이나 가족분들은 어떻게 사셨습니까?

 

[김정삼] 일단 관계 형성이 무너지는 거잖아요. 부모와 자식이 못 보고, 죽었는지 살았는지도 모르는 상황이고, 아버님도 한 1~2년 정도 있다가 요즘 ()욱이는 왜 안 오냐라며 아들에 대해 물으시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이제 올 게 왔구나싶어서 제가 그랬죠. “정욱이가 중국에서 선교하다가 북한에 잡혔다. 그래서 못 오는 거다”, 그렇게 말씀드렸죠. 그랬더니 아버님이 원래 말씀을 잘 안 하는 성격이시고, 전쟁을 치렀던 분이니까 북한에 대해서는 잘 아시죠. 입을 딱 다물고 마음속으로 가슴 아픈 것을 혼자 쓸어내리시면서 시간을 보내시다 (아들을 못 만나고) 돌아가신 거죠. 김정욱 선교사(동생)만 빈소에 못 오고, 다른 살아있는 형제들은 모이는 상황이었죠.

 

[기자] 결국, 부모님께서 돌아가실 때까지 아들을 못 만나셨군요. 애끊는 심정이었겠습니다.

 

[김정삼] 그렇죠. 부모가 아니면 잘 모르잖아요. 저도 제 자식이 있을 때는 이해되지만, 내가 자식일 때는 아버지의 마음까지는 못 들어간다고 보거든요. 그때 당시 아버지의 마음을 어떻게 다 이해하겠습니까. 또 이 일로 인해 사실 가정이 다 무너졌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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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에 장기 억류된 한국 국민 6명 /RFA 그래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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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 관계 좋을 때 동생 못 데려온 것, 서운하지 않다면 거짓말

 

[기자] 당연히 가족분들이 동생의 석방과 생사 확인을 위해서 백방으로 노력하셨을 텐데요. 특히 유엔이나 국제인권단체, 한국 정부의 노력은 어땠다고 보십니까?

 

[김정삼] 박근혜 정부였을 때 그 일이 있었을 거예요. 아까 말씀드렸듯이 그때는 남북 관계가 어두운 시기였으니까, 북한이 강압적으로 하면 따라갈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고, 그렇게 되겠다고 생각했죠. 그리고 정권이 바뀌면서 우리가 기대할 수 있는 단계로까지 남북 관계가 시작되더라고요. 저는 남북 정상회담이 열리기 8시간 전에,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린 유엔 인권이사회 소위원회에서 증언했는데, 그 자리에서 제가 한국에는 지금 봄이 왔는데, 남북 관계가 좋아지고 있다. 꽃이 피고 향기가 날릴 정도다. 잠시 후 8시간 후면 남북 정상이 만나니까 좋은 시간을 맞이할 것 같습니다라고 말했죠. 그리고 저뿐만 아니라 많은 국민이 기대하면서 이제 동생이 풀려나겠구나라고까지 생각했던 거죠. (한국 정부에서는) “기다리라고 해서 기다렸는데, 자꾸 묻혀가는 게 보이더라고요. 관심 밖으로 벗어나고 있는 것이 느껴지고, 그래서 우리가 이야기해도 안 되나보다라고 상황을 인식하게 되면서 그냥 지나치게 된 거죠.

 

[기자] 이전 정부에서 세 차례의 남북 정상회담을 개최한 바 있습니다. 평양에서도 정상회담을 했는데, 그때 당시 억류된 한국 국민 6명을 데려왔어야 한다는 지적도 있었습니다. 그 점에 대해서 서운한 마음은 없으십니까? 왜 못 데려왔는지에 대한 설명은 못 들으셨습니까?

 

[김정삼] 서운한 마음이 없으면 안 되죠. 있어야 당연한 거죠. 왜 못 데려왔는지에 대해서는 듣지 못했습니다. 제가 느끼기에는 이전 정부에서 나름대로 기준을 잡아 정치가 이뤄졌겠죠. 처음에는 (이 사안이) 그 안에 들어가 있는 줄 알고 기대하며 기다렸는데, 나중에 밀려났다고 판단했죠. 그런데 당시 미국 시민권자인 김동철, 김학성, 김상덕 세 명의 선교사가 북한에 억류됐을 때 제가 유엔에서 이분들의 이름을 밝히니까 2주 정도 있다 풀려났거든요. 미북 정상회담을 하기도 전에 풀려났는데, 제 동생은 오랜 시간이 지나고 정상회담을 세 번이나 해도 풀려나지 않으니까 당연히 마음이 상할 수밖에 없는 것 아니겠습니까. 기대했던 부분이 있었으니까요.


[기자] 그런데 현 정부에서는 남북 관계가 적대적 두 국가관계로 악화했습니다. 지금의 남북 관계를 보시면서 어떤 생각을 하십니까?

 

[김정삼] 지금의 남북 관계에서 김정욱 선교사를 비춰봐야겠죠. 그런데 과거 정부처럼 관계가 좋아도 제로 상태였는데, 지금 남북 관계가 막혔다고 해서 달라진 건 없거든요. 그래도 통일부에서 납북자대책반을 설치하고, 납북자와 국군 포로, 억류자 등에 대해 적극적으로 일하는 모습을 봤거든요. 그러면서 피해자 가족분들로부터 과거에 하지 못했던, 가슴이 응어리졌던 부분들이 녹아내린다라는 말을 들었습니다. 그래서 이분들이 정말 위로를 얻는구나싶고, 정부에서 뭘 하라든가, 같이 하자고 했을 때 귀를 기울이고, 내 마음을 거기에 쏟아야 하지 않나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기자] 지난 20, 김정욱 선교사의 억류 4천 일을 맞아 김영호 한국 통일부 장관이 김정욱 선교사의 석방을 촉구하기도 했는데요. 지금까지 모든 방법을 다 동원해 보셨을 텐데, 앞으로 동생을 비롯한 6명 한국인의 송환을 위해서 어떤 노력과 도움이 필요하신가요?

 

[김정삼] 지금은 북한이 워낙 닫혀 있으니까 어렵다는 것은 지금까지 경험을 통해 알죠. 그럼에도 통일부 장관께서 (억류) 4천 일에 대해 언급했지만, 북한이 이렇게 생사 확인조차도 안 해주고, 석방과 송환 자체에 아예 응하지도 않고, 북한과 한국 정부 사이에 차이가 워낙 크지만, 그럼에도 최근에 최춘길 선교사의 아들(최진영)을 일 년 만에 만났거든요. 제게는 엄청나게 큰 힘이 되죠. 지난번에는 김국기 선교사의 사모님도 만나서 셋이 함께 예배드리는 시간이 있었습니다. 그런 힘이 모이고 있고, 한국 통일부 장관이 성명을 냈듯이, 며칠 전에는 미국 국무부에서도 대변인 성명을 냈거든요. 또 유엔 인권이사회와 오는 11 7일에 보편적 정례인권검토’(UPR)가 있는데, 이런 노력을 다 하나로 모아야 하지 않나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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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018년 5월 앤드루스 공군기지에서 북한에 억류됐다 풀려난 한국계 미국인 김동철(왼쪽부터), 김학송, 김상덕 씨의 귀국을 직접 환영했다. /AP

 

목욕할 때마다 동생 생각나… “정욱아, 좀 더 참고 견뎌주렴

 

[기자] 지금 동생과 관련해 가장 걱정되는 것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김정삼] 가장 걱정되는 건 생사 확인이지 않습니까. RFA 방송도 듣고, 북한에 대한 정보를 들으면서 그 나라가 어떤 나라인지는 알잖아요. 제가 직접 보지는 못했지만, 탈북민의 증언을 들었을 때 ‘(동생의) 목숨이 상당히 위험하지 않나싶고, 북한에 억류됐다 풀려난 임현수 목사나 미국에 있는 김학성 선교사를 만나 죽을 고비를 넘기며 너무나 힘든 시간을 보낸 이야기를 들어보면 상상하기가 힘들죠.

 

[기자] 만약 동생이 무사히 돌아온다면, 동생을 다시 만난다면 가장 먼저 하고 싶은 말이나 하고 싶은 일이 있을까요?

 

[김정삼] 일단 만나면 말을 먼저 해야겠죠. 감사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어요. 상상하기 힘든 일들, 동생이 밝히고 싶지 않은 아픔의 고통이 있었을 텐데, 여기까지 살아 돌아와 다시 만날 수 있는, 그런 기도 응답에 대한 감사의 표현이 제일 먼저 나가지 않겠나라는 생각이 들고요. 그다음에 지금 하고 싶은 게 뭐냐’, ‘먹고 싶은 게 뭐냐를 묻고 싶어요. 형으로서 그것부터 해주고 싶습니다. 그리고 평상시에 밥도 중요하지만, 목욕할 때마다 동생이 생각나더라고요. ‘그래도 나는 시원하게, 때로는 따뜻하게 목욕을 하는데 동생을 못하지 않나라는 생각이 자주 떠올라요. 그럴 때는 목욕하다 말고 기도합니다.

 

[기자] 마지막으로 동생이 듣고 있다면 하고 싶은 말씀을 동생에게 전해보시면 어떨까요? 이 방송을 통해 동생에게 편지를 보내신다면요?

 

[김정삼] 정욱아. 어릴 때 때로는 성격 차이로 다투고 싸우기도 했는데, 지금 형이 동생을 생각했을 때, 어두운 북한에서 고통의 시간을 인내하며 견디고 있는데 너무나 힘들겠지만, 북한이 올바른 길로 택해서 나올 때까지, 미래와 희망으로 나올 때까지 좀 더 견뎌주고, 또 나를 포함해 많은 분이 기도하고, 언론과 각 국가, 유엔에서도 이렇게 힘을 모으고 있으니까 좀 더 힘을 내고 만나는 그날까지 견뎌주면 고맙겠다. 그러니까 조금만 더 참고, 만날 때까지 기다리겠다.

 

[기자] 하루빨리 동생 김정욱 선교사를 포함해 6명의 한국 국민이 무사히 가족의 품으로 돌아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오늘 나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지금까지 북한에 4천 일 넘게 억류된 한국인 김정욱 선교사의 형님, 김정삼 씨와 이야기 나눠봤습니다.

 

김정욱 선교사 외에 김국기, 최춘길 선교사와 탈북민 고현철, 김원호, 함진우 등 또 다른 5명도 10년 가까이 북한에 강제 억류돼 있습니다.

 

한국 통일부는 물론, 미국 국무부와 캐나다 외교부는 북한 당국에 부당하게 억류한 한국인들을 즉각적이고 무조건 석방해 송환할 것을 촉구했습니다.

 

RFA 자유아시아방송 노정민입니다.

 

에디터 박봉현, 웹편집 한덕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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