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러 간 ‘무기 대 석유’ 거래한 북 선박 회사 버젓이 활동
2024.10.29
앵커: 해상에서 북한 선박의 제재 위반 의심 활동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지난 5월 영국이 북러 간의 불법 거래를 이유로 제재 대상에 포함한 북한 회사의 선박이 약 100일 간의 ‘암흑 활동’을 끝내고 북한 남포항에 모습을 드러냈는데요. 국제사회의 주의 깊은 감시가 요구되고 있습니다.
보도에 한덕인 기자입니다.
해상에서 여러 의심스러운 활동을 보이다 지난 7월 갑자기 사라진 북한 선박 ‘백양산’ 호.
이스라엘 해운정보업체인 ‘윈드워드’(Windward)에 따르면 ‘백양산’ 호(IMO 9020534)는 최근 100일 간의 ‘암흑 활동'을 종료하고 북한 해역에서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암흑 활동’(Dark Activity)이란 선박이 AIS, 즉 선박자동식별장치의 신호를 꺼두거나 전송하지 않는 상태에서 항해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유엔 대북 제재위원회에 따르면 선박이 자동식별장치를 비활성화하거나 신호 전송을 중단하는 행위는 의도적으로 자신의 위치를 감추거나 이동 경로를 은폐하려는 시도로 볼 수 있습니다.
‘윈드워드’에 따르면 ‘백양산’ 호는 지난 7월 17일부터 10월 26일까지 약 100일 동안 선박자동식별장치를 비활성화한 채 운항한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백양산’ 호는 북한의 ‘백양산 해운’(Paekyangsan Shipping Co. Ltd · IMO 6029462)에서 관리하는 두 척의 선박 중 하나인 일반 화물선으로, 과거에도 흘수(무게에 따라 선박이 물에 잠기는 깊이)의 변화와 정박지 변경, 그리고 선박 위치 상실 기록 등 여러 차례 의심스러운 움직임을 보여왔습니다.
지난 7월 16일 한국과 중국의 배타적경제수역(EEZ)을 반복적으로 오갔던 ‘백양산’호는 비정상적인 정박 움직임을 보였고, 해상에서 갑작스러운 흘수 변경이 감지되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7월 17일부터 10월 26일까지 약 3개월간 신호가 꺼지면서 ‘암흑 활동’이 의심됐던 ‘백양산’ 호가 다시 북한 남포항에서 신호가 잡힌 겁니다. 그 사이 이 선박의 불법 활동과 제재 회피 시도의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습니다.
특히 이 선박을 소유한 ‘백양산 해운’은 영국 정부가 지난 5월, 북한과 러시아 간 불법적인 ‘무기 대 석유’ 거래를 겨냥해 제재 명단에 포함한 바 있습니다.
당시 영국 외무부는 “‘백양산 해운’이 소유한 또 다른 유조선 ‘백양산 1’ 호(IMO 9129653)가 러시아와 석유 제품 이전을 통해 북한의 군사 프로그램을 촉진했다”라며, “‘백양산 해운’의 활동이 북러 간 불법 거래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라고 지적하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백양산 해운’은 제재 조치에 따라 자산 동결 대상이지만, 자유아시아방송(RFA)이 추적해 본 결과 ‘백양산1’ 호는 지난 8월 8일 서해에서 위치가 확인된 뒤로 지금까지 행방이 파악되지 않고 있습니다.
이 밖에도 지난 6월 중순 북한 해역에서 ‘암흑 활동’을 시작해 약 4개월 동안 선박자동식별장치를 껐던 북한 화물선 ‘철봉산’호(IMO 8713457)도 지난 26일 중국 해역에서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윈드워드’에 따르면 이날 ‘철봉산’ 호에 대해 여러 차례 화물 경고와 제재 경고가 발령됐습니다. 그럼에도 이 선박은 신호를 끄고 8시간 동안 다시 자취를 감췄는데, 다음날(27일) 신호가 다시 잡혔을 때는 5m였던 흘수가 3m아래로 떨어져, 해상에서 선박 간 환적 방식으로 무언가를 옮겨 실었을 가능성이 제기됐습니다.
그리고 ‘철봉산’호는 또다시 중국 해역에서 ‘암흑활동'을 재개했습니다.
또 지난달 24일 한국 울릉도 북동쪽으로 약 200km 떨어진 지점에서 선박자동식별장치 신호를 끄고 돌연 자취를 감췄던 북한 선박 ‘SP’호(IMO 8829555)도 지난 25일 한 달 만에 다시 신호를 켜고 위치를 드러냈습니다.
뿐만 아니라 유엔 안전보장이사회가 대북 제재 선박 목록에 올린 북한 국적 유조선 ‘천마산’ 호도 지난 10월 중순 러시아 보스토니치항에 입항한 것으로 확인됐는데, 이후 위치가 사라졌다가 지난 28일 중국 배타적경제수역에 진입한 모습이 확인됐습니다. 국제사회의 대북 제재를 받는 선박임에도 러시아 항구에 입항한 것은 북한이 제재를 회피하는 또 다른 증거로 볼 수 있다는 지적입니다.
이처럼 과거에 제재 위반 지목을 받았던 북한 선박들이 남포항에서 출발해 중국 해역과 러시아 인근 바다에서 목격되는 사례가 늘고 있습니다. 특히 남포항은 과거 유엔에 의해 무기 밀수와 연관된 장소로 지목된 바 있으며, 최근 유류 저장고의 증설과 함께 유류 밀수의 가능성을 의심받는 곳입니다.
‘윈드워드’는 이런 움직임을 보인 선박들은 대부분 소형 또는 중형 화물선으로, 북한의 배타적경제수역(EEZ) 내에서만 운항하고 있지만, 일부 선박은 유엔 제재를 받은 기업과 연계해 밀수 또는 다른 불법 활동의 잠재적 위험을 높이고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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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FA 자유아시아방송 한덕인입니다.
에디터 노정민, 웹편집 김상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