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9호실 리정호의 눈] “북 잇단 도발은 강력한 지도자 노림수”
2024.10.17
“안녕하십니까. 저는 북한 노동당 39호실 대흥총국 고위 관리 출신 리정호입니다”
[북한 전직 고위 관리의 경험을 바탕으로 김정은 정권과 핵심 권력층의 비밀을 파헤치고, 오늘날 북한 정책의 허와 실을 짚어보며 정치, 경제, 사회를 분석해 보는 ‘39호실 리정호의 눈’, 리정호 코리아번영개발센터(KPDC) 대표와 함께 합니다.]
“미국 대통령의 임기가 4년 또는 8년에 불과하기 때문에 해당 정부의 특성을 면밀히 분석하고 그에 맞춰 철저하게 계산된 전략을 구사합니다.”
오는 11월 5일로 예정된 미국의 대통령 선거가 얼마 남지 않은 가운데, 차기 대통령이 누가 되느냐에 따라 북한의 대미 전략도 달라질 전망입니다. 기본적으로 북한에 미국 대통령은 임기 4년에서 8년에 불과한 상대로 여긴다는 지적이 나왔는데요.
“따라서 미국의 어느 대통령이든, 자신의 임기 내에 문제를 확실히 해결할 수 있는 전략을 세워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북한의 전략에 계속 휘둘리게 됩니다.”
만약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재선에 성공하면 또 한 번의 미북 정상회담이 열릴 가능성이 예상되지만, 실질적인 북한의 변화를 끌어낼 수 없다면, 아무리 정상회담을 많이 해도 소용없다는 회의론이 제기되고 있습니다.
북에게 미국 대통령은 임기 4년짜리… 철저히 계산된 전략 구사
[기자] 리정호 대표님, 안녕하십니까? 미국 대통령 선거가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누가 대통령이 되느냐에 따라 미국의 대북 정책에도 변화가 예상되는데요. 만약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재선되면 북한과 다시 대화에 나설 것이란 관측이 많습니다. 대표님께서는 지난 2018년 첫 미북 정상회담 당시를 기억하시죠. 직접 미국 백악관 측에 조언도 하셨는데요.
[리정호] 네. 2018년 당시 김정은이 국제무대에 나와 도널드 트럼프 당시 미국 대통령과 마주 앉아 직접 대화하는 장면은 전례가 없었습니다. 그때 김정은은 무리한 핵 개발에 따른 유엔의 초강력 대북 제재 2371호로 모든 수출이 전면 금지되자, 매우 당황한 상태였죠. 당시 미북 정상회담 전에 저는 워싱턴에서 매튜 포틴저 백악관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선임 보좌관과 앨리슨 후커 한반도 담당 보좌관을 만났습니다. 저는 그들에게 “김정은은 핵무기가 그의 생존과 직결된 문제이기 때문에 절대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미국 대통령이 김정은을 만나는 것은 매우 효과적이다”라고 조언했습니다. 또 베일에 가려진 북한 지도자가 공개 석상에서 발언하면 그의 비핵화 의지에 대해 제대로 알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했죠.
그 시기 김정은에게 가장 절박한 문제는 대북 제재를 해제하는 것이었고, 이를 위해 소규모의 비핵화 조치만을 취하려 시도했던 것 같습니다. 저는 “그가 집착하는 원산갈마해안관광지구에 트럼프 타워를 지어줄 테니, 핵을 포기하는 게 어떤가"를 물어보라고 했습니다. 실제로 그렇게 물어봤는지는 모르겠지만, 트럼프 전 대통령의 독특한 외교 방식이 북한과 같은 독재국가에는 맞는 방식입니다. 북한의 외교관들과 백번 만나 대화해도 최고 지도자의 핵 정책에는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못합니다. 저는 만약 트럼프 전 대통령이 다시 당선되면 또다시 미북 정상회담이 열릴 가능성이 크다고 봅니다. 그 대화가 상징적인 만남에 그칠 것인지, 아니면 진전이 있을지는 아직 알 수 없지만, 실질적인 북한의 변화를 끌어내지 못한다면 미북 정상회담을 10번을 해도 아무런 의미가 없다고 봅니다.
[기자] 기본적으로 북한의 대미 전략은 뭔가요. 북한은 오직 미국과 협상하길 바라지 않습니까?
[리정호] 북한의 대미 전략은 체제의 안전 보장과 김정은 정권의 생존입니다. 이를 위해 북한은 강대국인 미국만을 협상 대상으로 보고 있죠. 반면, 한국은 미국의 괴뢰라고 믿고 있는 겁니다. 북한의 외교술은 ‘안개가 짙게 드리운 것처럼 적들이 우리의 의도와 내부를 들여다볼 수 없게 하면서도 실리를 챙기는’ 안개 전술입니다. 이는 제가 북한에서 김정일의 지침으로 전달받은 내용입니다. 미국은 30년 이상 북한의 안개 외교 전술에 속아 북한이 오늘날 핵무기를 갖도록 방치했습니다. 한마디로 실패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김씨 정권의 대미 전략 특징은, 미국 대통령의 임기가 4년 또는 8년에 불과하기 때문에 해당 정부의 특성을 면밀히 분석하고 그에 맞춰 철저하게 계산된 전략을 구사합니다. 따라서 미국의 어느 대통령이든, 장기 집권하는 북한 정권을 상대할 때는 자신의 임기 내에 문제를 확실히 해결할 수 있는 전략을 세워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아무리 미국이 강대국이라도 북한의 전략에 계속 휘둘리게 됩니다.
[기자] 북한이 미국으로부터 정치적 성과를 얻는 것 외에 경제적 혜택을 노리는 것도 있습니까?
[리정호] 북한은 미국과의 협상에서 경제적 혜택도 분명히 노리고 있습니다. 김정은 정권은 체제 보장을 추구하는 한편, 대북 제재 완화와 지원을 통해 경제를 회복하고자 하는 목표를 가지고 있습니다. 과거 북한은 대미 협상을 통해 46억 달러의 경수로와 매해 50만 톤의 중유 지원, 그리고 수십만 톤의 식량을 지원받은 사례가 있습니다. 또 북한은 미국과의 협상을 통해 대북 제재를 해제시키고, 나아가 경제 협력을 통해 필요한 자금을 확보하려고 할 것입니다. 그 외에도 인도적 지원을 통해 식량, 에너지, 보건∙의료 등에서 기본적인 필요를 충족시키려는 계획도 세울 겁니다. 북한은 미국과의 협상이 성공적으로 진행되면, 미국뿐 아니라 한국과의 경제 협력은 물론 관광, 에너지 분야에 대한 투자도 확보하려 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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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 그런데 2019년 베트남(윁남) 하노이에서 열린 미북 정상회담에서 협상이 결렬됐습니다. 당시 영변을 내놓을 테니 대북 제재를 완화해달라고 요구한 북한에 미국은 다른 핵시설까지 내놓으라고 해서 합의가 이뤄지지 않았는데요. 이를 계기로 더는 미북 대화가 없었습니다. 일부에서는 북핵 해결을 위한 중간 단계로서 미국이 그 협상안을 받아야 했다는 지적도 있는데요. 대표님께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리정호] 2019년 하노이 미북 정상회담의 결렬은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 당시 북한의 영변 핵시설을 내놓겠다는 제안은 상당한 의미가 있었지만, 그 진정성을 믿을 수 없었고 미국은 그 이상을 원했죠. 그때 미국이 요구한 것은 영변 외에 추가적인 핵시설, 특히 비밀리에 운영하는 시설들까지 포함해서 완전한 비핵화의 첫 단계로 삼고자 한 겁니다. 미국의 입장에서는 북한이 보여주는 일부분만 가지고 제재 완화라는 큰 혜택을 제공하는 것이 위험했을 겁니다. 당시 김정은은 영변 핵시설을 내놓고 제재 해제를 시도할 만큼 초강력 대북 제재가 뼈아팠던 거죠. 그러나 실제로 그의 마음에 비핵화는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핵은 그의 생존과 체제 안전을 담보하는 강력한 무기이기 때문입니다. 또 그에게는 핵을 내놓으면 남한과의 대결에서 힘의 우위를 가질 수 없고, 한국이 쳐들어온다는 불안감이 있습니다.
일부 전문가들이 “비핵화의 중간 단계로서 당시 그 협상안을 받아들여야 했다”라고 하는 주장은 북한 지도자의 속성을 몰라서 하는 말입니다. 북한 지도자가 영구 집권하는 상황에서 영변의 낡은 핵시설을 폐기한다고 해도, 다른 지하의 핵시설은 어떻게 대처할 것이며, 또 다른 핵시설을 만들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북한의 비핵화를 위해서는 아예 돌이킬 수 없게 설비들을 모두 파괴하거나 이를 이전시키는 대담한 시도가 있어야 합니다. 사실상 검증이 가능하지 않은 중간단계는 북한의 함정에 빠지는 위험한 행위라고 생각합니다.
[기자] 다시 미국 대통령 선거로 돌아와서요. 북한도 다음 달에 있을 미국 대선을 예의주시하고 있겠죠. 민주당의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과 공화당의 트럼프 전 대통령이 워낙 박빙이기 때문에 결과를 섣불리 예측할 수 없는데요. 지금 북한은 어떤 전략을 세우고 있을 것으로 보십니까?
[리정호] 북한은 분명히 미국 대선을 면밀히 주시하고 있을 겁니다. 미국의 대북 정책은 김정은 체제의 안전을 크게 좌우하기 때문에 차기 미국 대통령이 누가 되느냐에 따라 북한의 대응도 달라질 겁니다. 현재 민주당의 해리스 부통령과 공화당의 트럼프 전 대통령의 지지율이 팽팽하기 때문에 북한은 양측의 대북 정책을 비교하며 준비할 겁니다. 김정은은 일단 트럼프 전 대통령이 되길 바라고 있을 거란 관측이 많은데요. 김정은의 입장에서는 트럼프와 직접 대화했던 경험이 있기 때문에 그가 당선될 경우 제재 완화 가능성을 다시 기대할 수 있을 겁니다. 하지만 해리스 부통령이 다음 대통령이 될 경우, 북한은 지금처럼 비핵화 진전에 따른 단계적 제재 완화를 기대해야 할 겁니다.
[기자] 또 한 가지 궁금한 것은요. 북한이 핵 시설을 공개하거나 미사일 도발을 할 때마다 이는 미국을 압박하는 메시지가 담겨 있다는 분석이 많습니다. 정말 북한이 미국을 의식하고 압박하기 위해서 그러는 건가요?
[리정호] 저는 김정은이 핵 시설을 공개하거나 미사일 도발을 하는 것이 미국을 압박하는 메시지라고 주장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라고 생각합니다. 세계 최대의 군사 강국인 미국이 왜 북한의 미사일 도발에 압박을 받겠습니까. 김정은의 이런 행보는 국내용 성격이 강하고, 자신이 위대한 지도자라는 이미지를 대내외에 선전하면서 체제 안정을 구축하려는 시도로 보입니다. 왜냐하면 북한 내부에서는 항상 핵실험을 하거나 대륙간탄도미사일을 시험 발사하면 미국을 비롯한 전 세계가 어떻게 평가했는지를 자랑하고 국내에서도 그런 선전을 하니까요. 반면, 미국이 북한의 핵과 미사일 도발에 반응하는 이유는 대량살상무기의 확산을 막고 국제사회의 핵 비확산 체제를 유지하는 데 목적이 있는 대응 차원이지, 압박을 받기 때문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핵 군축 협상은 북한에 끌려다니는 비현실적 방안”
[기자] 이제 북한은 미국과 비핵화 협상을 하기보다 핵 군축 협상에 나서길 원한다는 관측이 있습니다. 그것이 더 현실적이라는 거죠. 결국, 북한이 핵을 보유했다는 것을 인정하고, 이를 동결 하거나 줄이려는 협상이 필요하다는 건데, 북한이 바라는 대로 될까요. 그렇다고 해서 북한이 달라진다고 할 수는 없지 않겠습니까?
[리정호] 북한이 비핵화보다 핵 군축 협상을 선호한다는 관측은 그들의 전략적 계산에 기초한 것입니다. 핵보유국으로 인정받으려는 북한에 핵 군축 협상은 그 목적을 공식화하는 방법 중 하나이기 때문에 비핵화보다는 핵 동결이나 감축 협상이 더 좋은 선택일 겁니다. 하지만 미국이 북한의 핵 보유를 공식 인정하고 핵 군축 협상을 시작하는 것은 매우 복잡한 문제입니다. 이는 동북아시아의 안보를 위협하고, 한국에는 핵무기 개발의 명분과 유혹이 될 수 있으며, 비확산 체제를 약화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또 북한이 과거에도 협상을 통해 이익을 취한 뒤 약속을 어긴 전례가 많기 때문에, 핵 군축 협상이 그들을 근본적으로 바꿀 것이라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북한이 핵을 얼마나 투명하게 감축할 지도 불확실하기 때문에 이것 또한 북한에 끌려다니는 비현실적 방안입니다.
[기자] 마지막으로 과거 김정일 국방위원장 시절에는 미국의 민간단체와 학자들이 북한을 오가며 민간교류를 많이 했던 것을 기억합니다. 이를 통해 미북 대화의 물꼬를 트기도 했는데요. 김정은 총비서가 집권한 이후 지금은 사실상 미국인의 여행부터 민간 교류까지 다 막힌 상황입니다. 미국과 민간 교류만이라도 유지했던 과거와 지금을 비교했을 때, 대표님께서 가장 아쉽거나 우려되는 부분이 있을까요?
[리정호] 김정은 집권 이후 미국과의 민간 교류는 사실상 완전히 차단됐습니다. 이는 김정은 정권이 체제의 불안정성을 의식하면서 외부와의 접촉을 극도로 제한한 것이 주요 요인입니다. 과거의 민간 교류는 북한 내부에 대한 정보 접근과 인도적 지원을 가능하게 했죠, 그런데 김정은 정권이 외부와의 접촉을 철저히 막으면서 북한은 점점 더 외부 세계와 단절된 채로 남아 있습니다. 결국, 미북 간에 정상적인 교류가 이어지려면 북한이 폐쇄적인 체제를 변화시켜 개방하고, 미국과 국교를 수립해 양국 국민들이 자유롭게 왕래하는 제도를 안착시켜야 가능할 것으로 생각됩니다.
[기자] 네, 지금까지 북한 노동당 39호실 고위 관리 출신인 리정호 코리아번영개발센터 대표와 함께 ‘오는 11월에 있을 미국 대통령 선거에 대한 북한의 전략과 속내’에 대해 짚어봤습니다. 리정호 대표님, 오늘 말씀 고맙습니다.
RFA 자유아시아방송 노정민입니다.
웹편집 김상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