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일까지 끝내라고...?” 무리한 일정에 부실 공사 우려
2024.09.03
앵커: 오는 10월 10일까지 모든 홍수 피해 세대를 입주시키라는 북한 당국의 지시가 내려진 것으로 알려진 가운데, 평안북도 신의주에는 수해 복구에 나선 인력들의 임시 숙소가 급격히 늘어났습니다. 총동원령을 내려 복구 시한에 맞추려는 움직임으로 보이는데요.
하지만 한두 달 만에 복구를 마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기 때문에 결국, ‘보여주기식 부실 공사’를 피할 수 없을 것이란 전문가들의 지적이 제기되고 있습니다.
보도에 천소람 기자입니다.
“9월 9일 건국기념일까지 수재민들이 들어갈 수 있는 집을 마련하고, 10월 10일(노동당 창건일)까지는 모든 피해 세대를 입주시키라고 요구하고 있다.”
일본의 언론매체인 ‘아시아프레스’의 이시마루 지로 오사카 사무소 대표가 최근(8월 23일) 자유아시아방송(RFA)에 전한 내용입니다.
오는 9일 북한의 정권수립기념일(건국절)까지 채 일주일도 남지 않았지만, 수해 복구는 여전히 진행형입니다.
미국의 상업위성인 ‘플래닛랩스(Planet Labs)’가 지난 8월 31일에 촬영한 북한 평안북도 신의주 일대.
평안북도 신의주시 하단리 인근에 형성된 수해 복구 인력을 위한 임시 건물 단지. 지난 8월 18일(왼쪽)과 비교해 8월 31일(오른쪽)에는 파란색과 빨간색 지붕의 임시 건물이 많이 늘어난 것을 확인할 수 있다. /Planet Labs
홍수 피해가 발생한 지 한 달이 지났지만, 압록강은 계속 흙탕물이 흐르고 있으며 황무지로 변한 살림집과 농경지의 모습도 여전합니다.
그런 가운데 신의주시 하단리 인근에 돌격대 숙소가 늘어난 모습도 포착됐습니다.
지난달 18일에 촬영한 위성사진에는 수해 복구 인력을 위한 파란색과 빨간색 지붕의 임시 건물 단지가 하단리 인근에만 소규모로 식별됐지만, 지난달 31일에는 임시 숙소가 압록강 변을 따라 주변 지역으로 확산하며 수백 동이 생겼습니다.
북한이 기업소마다 돌격대를 조직해 수해 현장에 보내면서 총력을 기울이는 모습을 엿볼 수 있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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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들 “촉박한 공사 일정에 부실 공사 불가피”
하지만 오는 9월 9일까지 수재민들이 들어갈 새집을 마련하고, 10월 10일까지 모든 수해 세대를 입주시키라는 북한 당국의 목표는 너무 무리한 일정이라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읍니다. 당연히 부실 공사에 대한 우려도 제기되고 있습니다.
한국 농어촌공사 농어촌연구원의 김혁 선임연구원은 3일 RFA에 “새집을 건설하는 과정에서 건물이 충분히 견고해질 수 있는 시간이 필요한데, 이 과정을 1~2개월 만에 끝낸다면 부실 공사로 연결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지적했습니다.
[김혁] 인력의 문제가 아니라 부실 공사의 문제로 연결될 가능성이 너무 높습니다. 앞으로는 과거 단층집의 살림집에서 1~2층 이상의 소형 아파트 또는 다양한 유형의 살림집들을 건설할 것으로 보이는데요. 기본적으로 하수 정비부터 시작해서 터널 공사도 하고, 그 뒤에 지붕을 올리는 과정들이 있는데….
김 선임연구원에 따르면 압록강 변의 신의주 일대는 지대가 튼튼하지 않아 바닥을 견고하게 하는 작업이 선행돼야 하는데, 그렇지 않고 서둘러 공사를 진행한다면 결국, 부실 공사로 이어져 앞으로 있을 자연재해에 더욱 취약해질 수 있다는 겁니다.
[김혁] 일단 그 지역 자체가 갯벌입니다. 무게가 높으면 높을수록 주저앉는데, 그걸 방지하기 위한 작업을 미리 해야 하거든요. 바닥에 콘크리트를 타설하고, 기둥을 박아 더 이상 주저앉지 않게 하는 건데, 그런 것 없이 그냥 땅에 골조 공사만 하고 거기에 올린다는 얘기거든요. 그렇게 해도 (복구까지) 한 달, 두 달을 맞추기가 어려운데 부실 공사로 하지 않으면 거의 불가능한 시간이 아닐까.
최대식 한국 토지주택연구원(LHRI) 북한연구센터장도 2일 RFA에 홍수 피해를 겪은 모든 주민에게 9월과 10월 안에 새 살림집을 공급하기는 역부족일 것으로 내다봤습니다.
[최대식] 일부 단지를 건설할 수는 있겠죠. 농촌 살림집의 경우도 두 달 만에 건설하기보다는, 제가 보면 5~6개월 정도는 걸리는 것 같거든요. 최소한 그 정도 시간이 필요합니다. 전체 수재민에게 공급할 수 있는 집을 다 짓지는 못할 것이다, 다만 일부가 완공돼서 빨리 제공했다는 소식은 들을 수 있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습니다.
안경수 한국 통일의료연구센터장도 2일 북한의 수해 복구에 대해 “무리한 일정을 설정했다”고 꼬집었습니다.
[안경수] 새롭게 단장하고 다시 수재민을 위한 단층집을 짓는 건 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겉으로는 깔끔해 보이는 곳에 다시 입주시키는 것은 일도 아닌데요. 문제는 압록강이 어마어마하게 큰 강이란 말이에요. 비가 올 때 넘치는 것은 문제도 아닌 거죠. 전혀 개선되지 않았는데 결국, 보여주기식으로 9월 9일을 기점으로 건설하는 것은 의미가 없죠.
강동완 한국 동아대학교 교수는 지난달 30일 자신의 동영상 기반 소셜미디어인 유튜브에 ‘압록강 수해 복구 현장의 모습’을 소개하면서 “곳곳에서 북한 주민이 일하고 있지만, 안전 장비는 전혀 없고, 손에 든 도구도 없다”라고 지적했습니다.
실제로 북한 당국은 수해 복구 현장에 ‘백두산영웅청년돌격대’, ‘평양시여단’ 등을 포함한 30여만 명의 청년들이 동원됐다고 선전했지만, 중국 단둥에서 촬영한 이 동영상에 따르면 수해 복구 현장에는 중장비가 거의 없고, 많은 노동자가 맨손으로 작업하고 있습니다.
이시마루 대표도 복구 현장에 돌격대들의 숙식이나 기본적인 환경 등이 갖춰지지 않은 상황에서 많은 사람이 동원돼 현지 주민이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지적하기도 했습니다.
[이시마루 지로] 지시만으로 될 게 아니지 않습니까. 당연히 재원이 있어야 하고, 여기에 투입된 사람들이 제대로 먹을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하고, 복구 작업에 필요한 준비도 필요하고, 숙소도 필요하고요. 그런 것을 충분히 준비하지 못한 상태에서 사람들을 동원했기 때문에 부작용이 생기면서 노동자, 청년동맹을 비롯해 동원된 사람들이 고생을 많이 하는 것 같습니다.
이런 가운데 평안북도의 한 주민 소식통(신변 안전을 위해 익명 요청)에 따르면 북한이 최근 수해를 입은 신의주와 의주, 혜산을 복구해 관광특구로 개발할 계획을 세운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수해 지역을 복구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더 선진화한 현대적 도시로 꾸며 외국인 관광객을 유치하려 한다는 겁니다.
하지만 수해 복구도, 관광특구 개발도 이른 시일 내에 마무리하기는 어렵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입니다.
[최대식] 북한에서 최근 대외 관광객을 유치하려는 움직임이 있었죠. (하지만) 관광특구를 조성해 실제 관광객이 오려면 시간이 더 걸리겠죠. 관광시설을 건설하려면 시간이 필요한데….
수해 복구에 관한 기본적인 역량도 갖춰지지 않은 가운데 대규모 인원 동원을 앞세워 비현실적인 일정을 제시한 북한 당국에 대해 ‘보여주기식’ 선전이란 지적은 피할 수 없어 보입니다.
RFA 자유아시아방송 천소람입니다.
에디터 노정민, 웹편집 한덕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