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위축되는 북한 시장] ① “장사 안돼 매대 접어요”

워싱턴-서혜준 seoh@rfa.org
2024.12.04
[특집: 위축되는 북한 시장] ① “장사 안돼 매대 접어요” 2019년 2월 27일과 2024년 2월 29일에 촬영한 북한 평양 천리마 거리. 길거리 상점과 인파로 북적이던 과거와 달리 지금은 이곳에서 시장 활동이 중단됐다.
/ Google Earth, 이미지 제작 - Jacob Bogle

앵커: 북한 전역에 500여 개가 있는 것으로 알려진 시장은 주민의 생계를 책임지는 삶의 터전이지만, 오늘날 당국의 강력한 단속과 통제로 크게 위축된 모습입니다. 시장 운영 시간과 거래 품목, 유통까지도 제한하면서 김정은 정권이 시장 활동의 주도권을 움켜쥐려는 의도가 엿보이는데요. 주민들은 “장사가 안돼 못 살겠다”라며 토로하고 있습니다.

 

위성사진에서 일부 길거리 시장이 사라진 것이 확인되는가 하면, 공식 시장에서도 빈 매대가 늘어나는 등 위축된 시장의 모습을 곳곳에서 찾아볼 수 있는데요. [RFA 특집, 위축되는 북한 시장] 첫 번째 순서로 서혜준 기자가 북한 시장의 현주소를 살펴봤습니다.

 

인파 북적이던 평양, 원산 길거리 시장, 코로나 이후 자취 감춰

 

2019년 2월 27일에 촬영한 구글 어스의 위성사진에 나타난 평양 인근의 한 비공식 시장.

 

도로 양쪽에 흰 천막을 친 상점들이 길게 늘어서 있고, 물건을 사고파는 사람들로 북적입니다. 

 

평양 인근 천리마 거리에 조성된 이곳에서 시장 활동이 처음 뚜렷하게 관찰된 때는 2015년부터입니다.

 

하지만 2024년 2월 29일에 촬영한 위성 사진에는 모든 상점이 철거됐고, 사람으로 북적이던 거리에는 아무도 보이지 않습니다. 미국의 상업위성인 ‘플래닛랩스’로 확인해 보니 지난 11월까지도 이곳의 시장 활동은 재개되지 않았습니다.

 

과거 시장 활동이 활발했던 강원도 원산시의 한 길거리 시장의 상황도 마찬가지였습니다.

 

2019년 12월에 촬영한 위성사진에는 도로 양쪽으로 늘어선 상점과 인파로 북적였지만, 2024년 3월에는 주택 건물이 들어섰을 뿐, 시장의 흔적을 찾아볼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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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12월 5일과 2024년 3월 26일 촬영한 북한 강원도 원산시의 시장 거리. 2019년 당시 길게 늘어선 상점과 사람들로 북적였던 거리가 올해는 텅 비어 있다. /Google Earth, 이미지 제작 - Jacob Bogle

 

미국의 민간위성 분석가 제이콥 보글은 최근(11월 21일) 자유아시아방송(RFA)에 “플래닛랩스와 구글어스의 위성 사진을 분석한 결과, 올해 강원도 원산시의 거리 시장과 평안북도 의주군의 덕룡노동자구 시장, 평안남도 은산군 학산구 시장 등이 폐쇄됐다”라고 밝혔습니다.

 

또 황해북도 서흥군 신막읍의 경우, 아직 시장 활동이 이어지고 있지만, 2020년부터 규모가 줄어들었다고 그는 덧붙였습니다.

 

이처럼 코로나 대유행을 기점으로 국가가 공식 또는 비공식 시장에 대한 단속과 통제를 강화하고, 시장의 운영 시간과 거래 품목, 유통 방식 등을 제한하면서 시장 활동이 위축된 모습을 곳곳에서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하루에 3시간만 장사 허용... 자리 경쟁도 치열

 

RFA가 접촉한 북한 평안북도 신의주의 현지 소식통에 따르면, 당국이 정한 시장 운영 시간은 하루에 3시간에 불과합니다.

 

여름철에는 오후 4시부터 7시까지, 11월부터 시작되는 겨울철에는 오후 3시부터 6시까지인데, 떡이나 빵 같은 음식 장사의 경우 상하기 전에 판매해야 하기 때문에 운영 시간을 철저히 지키는 것은 아니라고 소식통은 덧붙였습니다. 

 

또 시장 운영 시간을 제한한 데는 주민들이 살림집과 도로 건설 등 각종 과제와 지원 사업에 동원돼야 하는 이유도 있습니다.

 

일본의 언론 매체인 ‘아시아프레스’ 오사카 사무소의 이시마루 지로 대표는 최근(11월 26일) RFA에 “양강도와 함경북도의 일부 지역에서는 농사가 바빠지는 4월부터 여름철까지 시장 운영 시간이 짧고, 수확 시기가 끝난 후에는 더 길다”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시장 운영 시간이 이전보다 짧아졌음을 피부로 느낀다는 것이 이시마루 대표의 설명입니다.

 

[이시마루 지로] 김정일 시대에 비해 시장 운영 시간 자체가 줄어들었다고 느낍니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계속 (장사)해 왔던 시기가 있었는데, 2018~2019년부터 농촌 동원을 가야 할 시기에는 4~5시부터 저녁때만 장사를 한다든지, 그런 제한들이 더 많아진 것 같습니다.

 

시장관리소의 검열도 코로나 대유행 이후 한층 강화했습니다.

 

양강도의 현지 소식통은 매일 두 번씩 관리소 근무자들이 시장을 돌면서 판매원이 45세 이상 여성인지, 판매증을 소유하고 있는지 등을 확인한다고 밝혔습니다. 

 

2023년 목선을 타고 탈북한 김일혁 씨도 RFA에 “시장관리소에는 시장 담당 보안원과 기찰대, 관리 소장, 당 비서 등 약 40명이 소속돼 있다”며 “시장관리소가 관리 감독과 통제를 하면서 자릿세를 걷는데, 매출이 잘 나오는 자리는 웃돈을 주는 사례도 허다했다”라고 회상했습니다.

 

먹고 살기 위한 자리 경쟁이 치열했다는 겁니다.

 

[김일혁] 어느 자리에 부지 면적을 알려주고, ‘어떤 품목을 팔 것이며, 매대 명칭은 이렇게 하겠다라고 보고하고, 허가를 내주면 자릿세를 냅니다. 품목에 따라 차이가 있는데 자릿세는 일 년 치를 내고 사용하는 사람이 있고, 영구적으로 자리를 쓰겠다는 사람도 있는데, 시장관리소에서는 아무래도 웃돈을 많이 내는 쪽에 자리를 재판매하기도 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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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시장의 현주소. /RFA 그래픽

 

국가에 등록된 품목만 판매 가능”... 당국의 주도권 움켜쥐기

 

시장에서 판매할 수 있는 품목과 유통 방식 등도 철저히 제한됐습니다.

 

요즘 시장에서는 수산물과 의류, 그릇, 중고 전자제품, 생필품 등 다양한 물건이 거래되고 있는데, 북한 당국이 2023년부터 시장에서 식량 판매를 금지하면서 쌀이나 콩, 옥수수 등은 공식적으로 양곡판매소에서만 구매가 가능합니다.

 

또 시장에서 수입품 거래도 단속 대상이 되면서 백화점, 종합 상점과 같은 국영상점에서만 사고팔 수 있게 됐습니다. 

 

이시마루 대표는 “기본적으로 국가에 등록되지 않은 상품들은 판매가 금지됐다”라고 말했는데, 이는 국가 주도의 유통 체계를 강화하고, 계획 경제를 복원하려는 움직임으로 해석됩니다.

 

[이시마루 지로] 상인들이 어딘가에서 물건을 사와야 되지 않습니까. 그런데 그 출처가 불분명한 것은 (판매가) 안 되고, 출처를 시장관리소에 등록하면 그건 판매가 가능하다고 해요. 그러니까품목별로 통제한다라고 하기보다는국가에 등록해야 한다는 게 핵심이라고 봅니다.

 

이시마루 대표에 따르면 과거 상인들은 중국에서 수입한 물건을, 무역업자를 통해 도매로 받거나 공장에서 직접 물건을 유통해 판매했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국가가 국영 상점에서 거래하는 것만 허용하면서 상인들의 시장 활동을 제한했다고 그는 꼬집었습니다.

 

결국, 시장 운영 시간의 제한, 유통과 판매의 통제 등으로 이윤을 남길 수 없는 많은 북한 주민이 더는 버티지 못하고 장사를 포기하는 상황에 내몰리고 있습니다.

 

신의주의 현지 소식통은 RFA에 “시장에서 빈 매대가 점점 늘어나고 있는데, 그만큼 주민들의 생활이 어려워졌다는 것을 의미한다”라고 말했고, 양강도의 소식통은 “과거에는 장사를 할 수 있도록 국가가 보장해 줬는데, 지금은 나이와 시간 등을 제한해 장사하기 매우 힘들어졌다”라며 “왜 주민들을 어렵게 하는지, 힘들어 못 살겠다”라는 반응이 많다고  전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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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9월 북한 양강도 혜산시 장마당. / 연합뉴스

 

시장 개수에 큰 변화 없지만, 장사 포기하는 주민 늘어

 

북한에는 전국적으로 약 500개의 시장이 분포돼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실제 위성 사진으로 살펴본 북한 전역 시장의 개수는 크게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RFA는 제이콥 보글과 함께 위성사진으로 오늘날 북한의 공식 시장과 비공식 시장을 합쳐 488개를 추적했고, 이 중 79개 도시에 있는 138개의 시장을 살펴봤습니다. 보글에 따르면 138개의 시장 중 단 세 곳만 문을 닫았는데, 전체적으로 북한 시장이 대폭 감소한 것은 아니라는 게 그의 설명입니다.

 

이와 관련해 북한 양강도와 함경북도의 현지 소식통은 “당에서 각 지역에 조성한 시장을 폐쇄하면 주민 폭동이 일어날 것을 인지하고 있기 때문에 그 개수는 줄지 않았다”라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시장이 일반 주민의 생계를 유지할 수 있는 중요한 삶의 터전임에도 “예전 같지 않은 돈벌이에 개인 장사를 포기하는 사람이 늘었다”라는 게 소식통들의 설명입니다.

 

결국, 북한 주민의 시장 의존도가 커지면서 체제 안정에 대한 불안함을 느낀 김정은 정권이 시장 거래의 주도권을 되찾기 위해 단속과 통제를 앞세우는 것이 오늘날 북한 시장의 현주소입니다.  

 

RFA 자유아시아방송 서혜준입니다.

 

에디터 노정민, 웹편집 이경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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