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9호실 리정호의 눈] “북 간부들도 시장 애용... 김정은만 반대”

워싱턴-노정민 nohj@rfa.org
2024.12.11
[39호실 리정호의 눈] “북 간부들도 시장 애용... 김정은만 반대” 북한 개성시 골목길에서 과일과 채소 등을 파는 북한 주민들
/ AFP

안녕하십니까. 저는 북한 노동당 39호실 대흥총국 고위 관리 출신 리정호입니다

[북한 전직 고위 관리의 경험을 바탕으로 김정은 정권과 핵심 권력층의 비밀을 파헤치고, 오늘날 북한 정책의 허와 실을 짚어보며 정치, 경제, 사회를 분석해 보는 ‘39호실 리정호의 눈’, 리정호 코리아번영개발센터(KPDC) 대표와 함께 합니다.] 

 

시장에 대한 김정은의 본심은 철저히 반시장적입니다. 그는 국가 형편이 어려워 어쩔 없이 장마당 운영을 허용했지만, 시장의 확산이 체제 붕괴를 초래할 수 있다고 믿고 있습니다.”

 

북한의 고위 관리들도 자주 찾는 시장. 북한 전역에 500여 개의 시장이 확산했음에도 북한 지도부는 늘 시장이 못마땅했습니다. 시장을 만들자고 제안한 것도 장성택 전 노동당 행정부장이라고 하는데요.

 

이러한 조치는 결국, 주민들의 삶을 더욱 고통스럽게 뿐만 아니라, 장마당을 통해 재정을 보충하던 지방 정부에도 손해를 끼칩니다.”

 

지금도 김정은 정권의 반시장정책이 계속되는 가운데, 국가가 시장을 대체할 만큼 충분한 식량과 상품을 공급하지 못한다면, 북한에서 시장은 결코 사라질 수 없다는 지적입니다.  

 

중앙당 고위 관리들도 시장 자주 애용

 

[기자] 리정호 대표님. 안녕하십니까. 자유아시아방송(RFA) 심층보도팀에서 위축되는 북한 시장에 관한 특집을 보도했습니다. 대표님께 드리고 싶은 첫 질문은, 북한의 고위 관리들도 시장에 자주 가는지요. 대표님도 북한에 계실 때 시장에 가보셨습니까?  

 

[리정호] 네. 역시 북한에 있을 때 평양의 통일거리 장마당과 중구역 장마당을 여러 번 방문했고, 제 아내도 한 달에 몇 번씩 장마당에 다녀오곤 했습니다. 사실 북한에서는 김정은 일가를 제외하고, 모든 가정이 다 장마당을 이용한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제가 노동당 부위원장과 노동당 39호실장, 내각의 상, 중앙기관 책임자들의 집을 방문했을 때도, 그들 역시 장마당에서 구매한 야채와 생선 등으로 식탁을 차렸습니다. 고급 주류나 신선한 식품은 외화 상점에서 구입하기도 했지만, 기본적인 식재료는 대부분 장마당에 의존했습니다.

 

한 예로 중앙당 간부들은 매주 쌀과 야채, 돼지고기나 닭고기 1kg, 달걀, 식용유 등을 공급받는데, 그 양이 충분치 않습니다. 고기를 받지 못하는 주간도 있고, 대부분 가정은 공급받은 물자를 2~3일 만에 소진합니다. 지인도 고기를 받아 오면, 가족 다섯 명이 한 번에 다 먹고 일주일 또는 2주를 기다려야 고기를 먹을 수 있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필요한 물품은 장마당에서 보충해야만 하는 거죠. 결국, 장마당은 김정은 일가를 제외한 모든 사람의 생계와 직결된 생존의 공간입니다.

 

[기자] 북한의 고위 관리들도 애용하는 시장에 대해 통제를 강화하는 김정은 정권의 진짜 속마음은 뭘까요?

 

[리정호] 시장에 대한 김정은의 본심은 철저히 반시장적입니다. 그는 국가 형편이 어려워 어쩔 수 없이 장마당 운영을 허용했지만, 시장의 확산이 체제 붕괴를 초래할 수 있다고 믿고 있습니다.

김정일과 김정은이 지난 30여 년간 단 한 번도 장마당을 방문하지 않았다는 사실만 봐도 그들의 속내를 엿볼 수 있습니다. 북한 정권이 시군마다 장마당 건물을 세운 것도 주민들의 편리보다는 무질서와 자본주의적 요소를 차단하기 위해섭니다.

 

과거에 김정일은 이런 말을 했습니다. “상품은 국가가 생산하는데, 개인들이 그 상품을 빼돌려 이익을 본다”고 말입니다. 그러면서 시장 단속을 강화하라고 지시했고, 매해 한국 상품과 드라마, 영화를 통제하라는 방침을 내렸습니다. 그래서 2003장성택 노동당 행정부장은 이를 해결하기 위해 장마당 건물을 짓고, 안에서만 장사할 수 있게 하자고 김정일을 설득했습니다. 그 결과, 통일거리 장마당이 시범적으로 건립됐고, 전국 200여 개 시군에도 장마당 건물들이 들어서게 된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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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대유행 이후 폐쇄된 평안남도 은산군 학산구 시장. 2020년 9월에 촬영한 위성사진에 식별된 시장 건물이(왼쪽) 2024년 6월에는 철거돼 사라진 것이 확인된다. / Google Earth, 분석 – Jacob Bogle

 

[기자] 그렇다면 북한에서 개인이 국가에 법적으로 등록만 하면, 시장 활동을 자유롭게 할 수 있는 겁니까?  

 

[리정호] 그 말은 사실과 다릅니다. 북한 장마당에서는 아무나 장사할 수 없습니다. 45세 이하 여성은 물론 교원이나 의사 등 대학 교육을 받은 사람이나 남성들은 장사를 할 수 없고요. 그렇다고 이들에게 배급이 제공되는 것도 아닙니다. 장사는 오직 시장 안에서만 허용되지만, 규제와 정치적 통제가 심해 돈을 벌기 어려운 구조이고요. 시장 밖에서 하는 장사는 모두 불법으로 간주합니다. 북한 당국의 시장 통제는 자본주의 요소를 막기 위한 정치 사상적 통제에 기반합니다. 때문에 안전원과 보위원들의 감시가 심하고요. 한국 또는 외국 상품이나 드라마, 공장 생산품 등 통제 품목만 수백 가지에 달합니다. 특히 60여 가지에 달하는 기초 생활품은 국가가 정한 가격대로 판매해야 하기 때문에 많은 사람이 “이렇게 장사해서는 남는 것이 없다”라고 하소연합니다.

 

상인들의 자릿세지방 정부 재정에 큰 도움

 

[기자] 김정일 시대부터 김정은 시대까지 북한에서 확인된 시장만 500여 개에 달하면서 한편으로는, 북한 당국이 시장을 장려하는 것 아니냐는 관측도 있었습니다. 실제로 최근 위성사진을 보면, 북한 당국이 단속과 통제를 강화하는 중에도 시장의 개수는 크게 줄지 않았거든요. 이것은 어떻게 해석할 수 있을까요?

 

[리정호] 네, 북한에서는 2003년부터 각 시군에 자리 잡은 장마당의 수가 약 250~ 300개를 유지했습니다. 북한에 약 200개의 시군이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평균적으로 각 군에 하나씩 시장이 존재했다고 볼 수 있죠. 특히 평양, 청진, 함흥, 신의주처럼 대도시에는 구역마다 여러 개의 장마당이 운영됐습니다.

  

그런데 2010년부터는 상황이 바뀌었습니다. 당시 장성택 국방위원회 부위원장이 김정일의 위임을 받고 경제 개발 정책을 주도하면서 4년간 개혁의 바람이 불기 시작했습니다. 이 시기에 수출이 3배로 증가하고 외화 유입이 활발해지면서, 시장의 규모도 자연스럽게 커졌죠. 무역과 외화벌이를 담당하는 일꾼들뿐만 아니라 공장기업소의 간부들까지 중국에 나갈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개인의 손에 외화가 들어가면서 소비가 폭발적으로 증가했죠.

 

그러다 보니 기존 장마당은 확장 공사를 진행했고, 새로운 장마당이 속속 생겨나면서 그때 500여 개로 늘어난 거죠. 사실 북한 규모를 보면, 그것도 많은 것은 아닙니다. 북한 정권이 시장을 통제하는 데도 시장의 수가 크게 줄지 않는 이유는, 시장을 장려한다기보다 현상을 유지하려는 것으로 보입니다. 시장을 무리하게 줄였다가는 주민들의 생활에 직접적인 타격을 줄 수 있고, 이는 체제에 대한 불만으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또 시장의 외형은 유지한다 해도, 점포가 축소하거나 철거된 경우는 위성 사진으로 파악하기 어렵습니다.

 

[기자] 상인들이 시장에서 장사할 때 내는 자릿세가 있지 않습니까. 또 상인들에게 징수하는 납부금이 김정은 정권에는 큰 수입이 될 거란 분석도 있습니다. 그래서 국가 재정 때문에라도 시장을 완전히 없애지 못할 것이란 관측도 있는데요. 정말 재정에 큰 도움이 되나요?  

 

[리정호] 상인들이 시장에서 내는 자릿세와 납부금은 북한 정권의 재정에 실질적으로 큰 도움이 된다고 봅니다. 장마당에서 징수한 자금은 주로 지방 정부에 필요한 재정으로 사용되는데 예를 들어, 전쟁 노병에 대한 보조금 지급, 교사와 의료진의 월급, 지역 내 긴급 재난 발생 시 지원금 등으로 활용됩니다. 이는 중앙 정부의 재정 부담을 줄이고 지방 정부의 운영에 도움이 되는 거죠.

 

하지만 제가 아는 한 북한 고위 관리는 사실상 내화(북한 돈)에 거의 관심을 두지 않습니다. 북한 원화는 가치가 불안정하고, 구매력이 낮아 주민들조차 신뢰하지 않죠. 그럼에도 지방 정부 입장에서는 시장을 폐쇄하면 운영 자금이 부족해지고, 정부 기능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에 시장을 유지하는 것이 훨씬 유리합니다. 현실적으로 시장은 주민들의 생존 수단일 뿐만 아니라, 정권이 최소한의 경제 기능을 유지할 수 있도록 하는 중요한 요소인 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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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 2009년 화폐개혁 당시 시장을 열흘 이상 폐쇄한 적이 있었는데, 당시에 매우 혼란스러웠다고 들었습니다. 어떤 상황이었습니까?   

 

[리정호] 당시 북한은 화폐 개혁의 후폭풍을 잠재우기 위해 극단적인 조치를 내렸습니다. 201011일부터 11일까지, 장마당을 전면 폐쇄하고 모든 장사 행위를 금지했습니다. 하지만, 이 조치는 불에 기름을 붓는 격이었습니다. 화폐개혁으로 모든 돈을 빼앗긴 주민들은 생계가 막막해졌고, 대혼란이 일어났죠. 시장이 폐쇄되자 암시장에서는 하룻밤 사이 식량값이 몇 배로 폭등했고, 그때 분노한 사람들은 정부에 대고 “장마당을 폐쇄하면, 우리는 대체 어떻게 살아가란 말인가”라고 외쳤죠. 당시 북한 당국은 장마당 폐쇄의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는데요. “그동안 국가가 식량과 상품을 제대로 공급하지 못해 장마당을 임시로 허용한 것일 뿐이다. 이제부터는 국영 상점에서 식량을 판매할 것이다.”라고 말입니다. 하지만 국가가 약속한 ‘국영 상점의 식량 공급’은 허울뿐이었고, 주민들의 삶은 벼랑 끝으로 내몰렸습니다. 결국 장마당 폐쇄 조치는 11일 만에 실패하고 원상 복구됐습니다.  

 

김정은 정권, 아무리 통제 강화해도 시장 절대 없애지 못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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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12월 23일 북한 평양 주민이 차례로 생선을 배급받고 있다. / AP

 

[기자] 코로나 대유행을 계기로 북한이 시장 운영 시간, 판매 품목, 유통 구조 등에서 단속과 통제를 강화했습니다. 국가가 허용한 것 외에는 팔지도, 유통하지도 말라는 건데요. 그러다 보니 장사를 접은 사람들이 늘고 있고, 시장은 활력을 잃었습니다. 김정은 정권이 이런 정책을 시행하는 이유와 파장을 어떻게 진단하십니까?

 

[리정호] 북한이 코로나 대유행을 계기로 시장에 대한 단속과 통제를 강화한 것은 김씨 정권이 오랫동안 유지해 온 반시장 정책의 연장선입니다. 시장 운영 시간, 판매 품목, 유통 구조에 대한 통제는 시장이 처음 생겨났을 때부터 존재했죠. 제가 통일거리 장마당을 방문했을 때도 공장에서 생산된 물품이나 군수 물자, 한국산 상품은 판매를 금지한다는 공지서가 벽에 붙어 있었습니다. 운영 시간도 제한됐고, 농촌 동원 기간이나 외국 정상이 북한을 방문했을 때도 장마당을 일시적으로 폐쇄했습니다.  

 

아마도 코로나 대유행 이후 이런 통제는 더욱 강화한 것으로 보이는데요. 그것은 김정은이 자신만의 경제 실험을 하는 것과 연관됐을 수 있습니다. 그는 국가의 질서와 통제 기능을 강화하겠다면서 시장적 요소를 차단하고 중앙 집권적 계획 경제를 강화하고 있습니다. 그는 장마당의 기능을 축소하거나 없애야 국영 상점과 국영 은행의 기능이 높아진다고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기자] 마지막으로 하나만 더 질문드리겠습니다. 김정은의 반시장 정책이 어느 정도 성과를 보이고 있다는 평가도 있습니다. 장사를 그만둔 사람들이 그나마 배급 또는 임금을 주는 직장으로 돌아가고 있다는 건데요. 개인 경제 활동 대신 집단 조직 생활로 유도하려는 김정은 정권의 정책이 작동한다는 거죠. 이에 대한 대표님의 분석과 전망은 무엇인가요?

 

[리정호] 저는 북한 주민이 장사를 그만두고 직장으로 돌아가면서 김정은 정권의 정책이 효과를 보였다는 해석에는 동의하지 않습니다. 제 경험에 따르면, 이는 강압적인 정책의 결과일 뿐 어떠한 유인 효과가 나타난 것이 절대 아닙니다. 주민들이 직장에 나가더라도 배급을 제대로 받기 어렵고, 공장 역시 정상적으로 운영되지 않습니다. 위성사진만 보더라도 북한 곳곳이 정전 상태임을 알 수 있습니다. 전기와 원자재가 부족한 상황에서 공장들이 제대로 돌아갈 수 없고, 직장으로 돌아간 대부분 주민은 사회적 과제나 학습에 동원되며 생산적인 활동은 거의 하지 못합니다. 이러한 조치는 결국, 주민들의 삶을 더욱 고통스럽게 할 뿐만 아니라, 장마당을 통해 재정을 보충하던 지방 정부에도 손해를 끼친다고 생각합니다. 김정은 정권이 아무리 시장을 통제한다 해도 국가가 시장을 대체할 만큼의 식량과 상품을 공급하지 못한다면, 주민들의 삶은 개선되지 않을 것이고, 시장도 절대 사라지지 않을 것으로 전망합니다.

 

[기자] . 지금까지 북한 노동당 39호실 고위 관리 출신인 리정호 코리아번영개발센터 대표와 함께 김정은 정권의 시장 통제와 단속의 배경, 그리고 북한 사회와 경제에 미칠 영향에 대해 짚어봤습니다. 리정호 대표님, 오늘 말씀 고맙습니다.

 

RFA 자유아시아방송 노정민입니다.

에디터 박정우, 웹편집 이경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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