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 압축파일] “트럼프, 북한 주민이 매우 좋아했어요”
2024.11.13
[코로나 대유행을 계기로 북한이 국경과 사회 통제를 한층 강화하면서 북한 주민의 삶은 더 궁핍해졌습니다. 또 북한 내부 상황을 파악하기도 매우 어려워졌는데요. 2023년 5월, 목선을 타고 탈북한 김일혁 씨가 북한에서 보고, 듣고, 경험한 생생한 북한의 실상을 전하는 ‘북 압축파일’. 그동안 알려지지 않았던 북한 내부 소식이 담긴 파일을 열어보겠습니다. 탈북민 김일혁 씨와 함께합니다.]
“사나이다운 최고의 대통령”… 북 주민 사이에 좋은 이미지
[기자] 김일혁 씨, 안녕하세요. 지난주 치러진 미국의 대통령 선거에서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당선됐습니다. 김일혁 씨는 북한에 살 때 트럼프 전 대통령을 알고 있었나요?
[김일혁] 예, 잘 알고 있었죠. (트럼프는) 북한 주민이 매우 좋아하는 대통령이었거든요. 주민들은 김정은이 좋다고 얘기하면 다 좋은 거예요. 김정은은 트럼프 전 대통령을 ‘사나이다운 대통령’으로 비유했거든요. ‘능력 있고 사나이답다’라는 표현은 공식적으로 발표한 건 아니고요. 내부적으로 그런 말이 나왔는데, 간부들의 입을 통해서 확산한 거예요. 그러니까 주민들은 ‘트럼프’ 하면 ‘사나이답고 능력 있는 미국 역사상 최고의 대통령이다’라는 이미지를 갖고 있었죠.
[기자] 북한 주민 사이에서 어떤 반응이었길래 ‘북한 주민이 좋아하는 대통령’이라고 표현하시나요?
[김일혁] 사실 저 같은 일반 서민 계층에서는 ‘트럼프 대통령’이라고 하면 소문으로 들어서 ‘좋다’라는 이미지밖에 없습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의 생활이나 행동에 대해 접할 수 있는 기회가 없기 때문이죠. 저도 북한에 있을 때 그렇게까지 깊이 있게는 모르고, 일반적인 평가나 소문 정도로 볼 때 트럼프 전 대통령이 북한에 아주 나쁘지 않고, 또 김정은이 트럼프 전 대통령을 ‘벗’ 같은 느낌으로 평가했으니까요. 트럼프 전 대통령이 정책적으로 북한을 압박하거나 김정은에 대해 나쁘게 말하는 등의 일을 직접 하지 않았으니까 그런 의미에서 트럼프 전 대통령이 좋은 이미지인 것이지, 그렇다고 도움을 줘서 좋다는 건 아닙니다.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이 집권할 당시에는 (김정은이) 미국을 굉장히 적대시하고 비난하는 식의 정치를 했거든요. 강연을 하거나 북한에서 생활총화를 할 때 항상 미국이 입에 올랐고 오바마 대통령을 비난했습니다. 그런데 오바마 대통령의 집권이 끝난 후부터, 제 기억에는 한 2~3년 정도 그렇게 미국을 헐뜯고 비난하는 소리를 별로 들어보지 못했습니다.
[기자] 북한 매체를 통해 북한 지도자와 미국 대통령의 만남을 본 당시 내부 분위기는 어땠나요?
[김일혁] 자랑거리였죠. 아무래도 북한으로서는 소국의 입장인데 대국인 미국 대통령이 김정은에게 관심을 두고 만남을 가지려는 상황들을 북한 주민에게 보여주고 계속 홍보를 하니까요. “예전에는 미국 대통령들이 북한을 적대시하는 반응을 보이고 헐뜯었는데, 지금 (트럼프) 대통령은 우리 북조선에 대해서 굉장히 좋은 평가를 하고 있고, 우리 김정은 원수님을 영리하고 남자다운 이미지로 평가하고 있다”라는 것에 대한 홍보를 많이 했죠. 그래서 미국 대통령이 김정은을 만난 뒤 평가한 것에 대해 북한 내부에서는 한동안 엄청나게 말이 돌 정도였어요. ‘반세기 동안 미국과 적대 관계였는데, 이참에 미국과 혹시 동맹국까지 되는 거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습니다.
트럼프 재임시절, 북 주민도 잘 살아… 제재 완화 기대할 듯
[기자] 트럼프 집권 1기인 2017년부터 2021년까지 미북 회담이 여러 차례 있었는데, 이 시기에 사회적으로 눈에 띄는 변화가 있었나요?
[김일혁] 눈에 띄는 사회적 변화라면 경제적으로 아주 잘 살았던 시기라고 할 수 있죠. 그러니까 코로나가 터지기 전까지는 ‘최고의 시기’라고 할 만큼 북한 주민이 잘 살았거든요. 일단 수입 품목이 활발하게 시장으로 흘러들어왔고요. 물론 중국에서 항상 들어오기는 했지만, 여느 때보다 중국에서 많은 것이 들어왔습니다. 국내 생산품이 아닌 외국과의 물물 교환이 활발한 것 같다는 느낌인 거죠. 또 그때 수출도 많이 했거든요. 국내 생산품 중에 약초나 수산물 등을 대량 수출하면서 그때 (물건) 가격이 폭등했었습니다. 엄청 올라갔었어요. 예전에 저희 어머니가 시골에 사셨는데, 돈을 벌어보려고 땅을 사서 각종 약초를 많이 재배했는데, 투자한 만큼 약초값이 크게 상승했습니다. 그러니까 수출 품목의 값이 올라서 전반적인 경제 부문에서 교역이 많이 활발해진 시기였다고 볼 수 있습니다.
[기자] 김 총비서가 당시 미국 등과 활발한 외교 활동에 집중하면서 내부 통제가 비교적 느슨해졌고, 그래서 경제적으로 다소 자유로운 상황이었다고 할 수 있을까요?
[김일혁] 제 기억으로는 2015년부터 2017년쯤까지는 좀 (경제가) 어려웠거든요. 그러다가 2018년과 2019년쯤에는 좀 여유로워진 분위기였습니다. 그래서 그때는 좀 잘 사는 것 같은 느낌이 있으니까, 주민들은 ‘경제 봉쇄를 덜 받았다’라는 인상을 받았던 겁니다. (그 후에는) 코로나 기간이라고 하면서 (국경과 사회를) 봉쇄했는데, 그전까지는 코로나라는 명분이 없었으니까 종합적으로 통제가 덜 했다고 볼 수 있죠. 코로나 때는 외부로부터 어려움을 받은 게 아니고, 김정은 정권 자체가 내부의 문을 잠가버리면서 주민들의 삶이 각박해진 겁니다.
[기자] 올해 미국 대선에서 트럼프 전 대통령이 재선에 성공했다는 것이 북한 주민에게 반가운 소식일까요?
[김일혁] 북한 주민으로서는 반가운 소식이에요. 그때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과 사이가 좋아지는 분위기였으니까 사람들은 ‘우리나라가 정말 미국의 경제적인 봉쇄로부터 해방돼서 좀 잘 살아보려나?’라며 은근 기대를 하고, 엄청나게 반가워하는 분위기였거든요. 미국 대통령이 앞으로 어떤 대북정책을 내세울지 궁금한데요. 현재는 은근히 기대하고 있을 거예요. ‘어쩌면 대북 제재를 풀고 우리가 좀 숨통이 좀 트이지 않을까’라는 기대를 하고 있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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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 과거 미북 정상회담은 ‘비핵화’에 대한 입장차로 성과 없이 끝났습니다. 북한 주민은 북한이 핵을 보유하는 것이 국가에 도움이 된다고 보나요?
[김일혁] 당연히 핵이 도움이 된다고 믿고 있죠. 젊은 세대들은 핵에 대해 별로 관심이 없는데 부모님 세대들은 ‘그래도 우리 국력이 강해야 외세로부터 침략을 당하지 않는다’라고 확실히 믿고 있거든요. 그런데 제가 북한에 살던 당시 저도 어떤 생각을 했느냐하면, ‘트럼프 대통령도 우리 북조선이 가진 핵을 비핵화할 수 없는 상황이니까 인정해주는 것 같다’라는 느낌을 받았었거든요. 그러니까 북한 주민은 어쩌면 지금도 트럼프 전 대통령이 ‘어차피 북한이 핵을 내려놓지 않을 걸 아니까, 비핵화보다는 오히려 (핵을) 인정해주지 않겠나’라는 기대도 할 것 같아요. 트럼프 당선인인 매우 노련한 사람이니까 이걸 봐주는 식으로 정치를 하지 않을까란 기대를 하고 있을 겁니다.
[기자] 네, [북 압축파일] 오늘은 탈북민 김일혁 씨와 함께 차기 대통령으로 당선된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에 대한 북한 주민의 인식에 대해 이야기 나눠봤습니다. 김일혁 씨, 오늘 말씀 고맙습니다.
RFA 자유아시아방송 서혜준입니다.
에디터 노정민, 웹편집 이경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