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 압축파일] “금 캐서 월 1만 5천 달러도 벌어봤어요”
2024.07.18
[코로나 대유행을 계기로 북한이 국경과 사회 통제를 한층 강화하면서 북한 주민의 삶은 더 궁핍해졌습니다. 또 북한 내부 상황을 파악하기도 매우 어려워졌는데요. 2023년 5월, 목선을 타고 탈북한 김일혁 씨가 북한에서 보고, 듣고, 경험한 생생한 북한의 실상을 전하는 ‘북 압축파일’. 그동안 알려지지 않았던 북한 내부 소식이 담긴 파일을 열어보겠습니다. 탈북민 김일혁 씨와 함께합니다.]
국가 상납금으로 금 바치다 금광업에 뛰어들어
[기자] 김일혁 씨 안녕하세요. 북 압축파일, 첫 방송인데요. 먼저 청취자 분들께 자기 소개와 인사 부탁드립니다.
[김일혁] 안녕하세요. 황해남도 강령군에서 2023년 5월 7일, 저를 포함한 일가족 9명이 함께 목선을 타고 서해상 야반탈출을 진행해 2시간 만에 대한민국에 입국했습니다. 현재는 대한민국에 잘 정착했고, 아주 행복하게 살고 있습니다.
[기자] 네, 다시 한번 반갑습니다. 김일혁 씨는 북한 황해남도 39호실 소속으로 금을 채취하는 노동자였다고 하셨는데요. 그후 금광업을 통해 많은 돈을 벌기도 했고요. 금을 채취하게 된 계기가 있으세요?
[김일혁] 2008년에 제가 처음으로 직장생활을 시작했을 때, 기업소 내에서 ‘충성금’이 당 자금으로 들어갔는데요. 충성금으로 한 달에 금 0.3g을 받치는 게 과제였어요. 그거는 누구나 해야 하는 과제거든요. 금 0.3g을 만들기 위해서 어떤 사람은 금을 캐는 곳에서 받는 수당을 (돈이나 식량이 아닌) 금으로 받아 바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요. 저희 아버님이 북한에서 부자였거든요. 그래서 경제적으로 걱정이 없는 편이었어서 제가 작업자들로부터 금을 샀습니다. 금을 사서 한 달에 0.3g을 바치면 제 과제는 끝났어요. 몇 개월 정도는 그렇게 하다가 나중에는 ‘내가 금을 캐보면 좋겠다’라는 생각이 든 거예요. 한창 전성기 때는 제가 ‘기지장’이었습니다. 한국에서는 사장과 같은 개념이죠. 금광업을 할 때 수입이 아주 괜찮았어요. 물론 북한 내부에서는 금값이 비싸지 않은 편이거든요. 많은 양의 금을 캐낼 때를 기준으로 하면, 상납금 외에 떨어지는 마진율이 더 높았어요. 근데 잘 안 나올 때는 겨우 상납금을 바치고 나면 남는 게 거의 없었어요.
[기자] 그런데 북한에서 개인적으로 금광업은 어떻게 시작하실 수 있었던 건가요?
[김일혁] 제가 처음 시작한 일은 사금을 캐는 거였습니다. 사금이라는 게 금이 매장돼 있는 땅을 5 ~ 10m 정도를 파면 그 바닥에 금맥이 있거든요. 그 금맥의 흙을 포크레인(굴착기)으로 퍼내서 사별기 위에 놓고 양수기로 쏘면 (그 흙이) 사별기를 거쳐 내려오면서 금은 가라앉고 모래는 굴러내려가거든요. 그걸 사금이라고 해요. 처음에는 친구들을 조성해 금이 나오는 장소에 가서, 그곳의 담당 보안원이나 보위지도원, 그리고 리당비서나 관리원장에게 뇌물을 주고 ‘여기서 우리가 금을 캐겠다’고 한 거죠. 월에 미화 100달러를 ‘현화 한 장’이라고 이야기하는데, 한 장씩 드리겠다고 했고요. 사금은 그런 식으로 채취를 해서 좀 벌었는데, 거기서 나온 밑천을 종잣돈으로 삼아 광산으로 진출을 했어요. 황해남도 옹진광산이라고 북한에서 대표적인 국가 광산 중 하나입니다. 거기가 도당 39호실 소속 광산이었거든요. 수익금을 상납하는 조건으로 그 구역 일부를 제가 캘 수 있게 해줬어요.

[기자] 이 사업을 준비하는 데도 꽤 많은 돈이 들었을 것 같은데요?
[김일혁] 2009년 당시에 양수기 값이 엄청 비쌌어요. 3인치짜리 휘발유 양수기가 미화로 340달러였어요. 근데 현장에 나가 보니까 나 같은 사람은 한마디로 ‘개미’인 거예요. 국가에서 운영하는 큰 사업자들이 포크레인까지 가지고 와서 작업을 하는데, 이 작업이 24시간 돌아가거든요. 근데 한번은 그 사업가의 양수기가 고장이 난 거예요. 양수기를 사려면 먼 거리를 나가서 사와야 되는데 걸리는 시간이 하루 이상입니다. 작업이 지연되니까 그 사람이 저에게 ‘네 양수기를 우리가 좀 쓰자’고 제안을 한 거예요. 그래서 같이 일을 하면서 원래 하던 일보다 좀 더 많은 이윤을 벌었죠. 한 달 정도 지나서, 국가 재산으로 포크레인을 가지고 있는 한 외화벌이 기업소를 찾아가서 그곳 지배인과 계약을 맺었습니다. 그런데 기술자가 좀 필요하더라고요. 그래서 기능공을 사는 조건으로 당시 북한 돈으로 50만 원씩 줬거든요. 북한 돈을 달러로 계산을 하면 약 60달러 정도 되는 값이었어요. 실질적으로 일반 주민은 10년 동안 일한 값이 50달러도 안 됩니다. 근데 월에 60달러씩 받는 조건이니까 너도나도 할 것 없이 찾아와서 오히려 일을 하게 해달라고 뇌물까지 줬어요. 그러니까 제가 사금장에서 포크레인과 양수기를 가지고 금을 캘 수 있었고, 이게 활성화 돼서 24시간 주야간으로 하루에 3교대로 일을 했거든요. 그런 식으로 금이 잘 나온다고 하는 지역을 찾아다니면서 한 2년 동안 꽤 벌었습니다.
[기자] 그렇게 북한에서 금 사업을 해서 얼마를 버셨나요?
[김일혁] 전성기라고 할 수 있을 때는 월 수입이 미화로 총 1만 5천 달러 정도였어요. 도당 39호실에 줘야 하는 상납금이 3천 달러였으니까요. 3천 달러를 바치고 남은 1만 2천 달러에서 직원들에게 1천 달러 정도 나가거든요. 그리고 1만 1천 달러 정도를 벌었습니다. 항상 그런 건 아니고요. 금 사업을 한 게 8년 정도 되는데, 그 중에 이처럼 벌어본 기간을 다 합치면 약 1년 정도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고요. 그 외에는 매달 몇 천 달러 정도씩은 벌었습니다.
[기자] 금을 채취하는 작업장의 전반적인 노동 환경은 어땠는지 궁금합니다.
[김일혁] 아주 열악하고 엄청 위험하고 힘든 일이죠. 그러니까 노동 안전과 관련한 대책이 전혀 준비돼 있지 않은 상황에서 일을 하거든요. 사금을 캐는 장소도 그렇고, 또 광석을 채취하는 광산에서는 좀 더한 편인데, 사람의 생명이 오가는 일이 한 달에 한두 건씩은 꼭 있어요. 그럴 때마다 ‘생명 보험료’처럼 피해자 가족에게 보상금을 물어주기도 했고요. 이런 일들이 비일비재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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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다지’ 꿈꾸며 시작한 금광업… 현실은 빚더미
[기자] 김일혁 씨의 말을 들어보면 북한에서 금광업은 ‘노다지 사업’이라고 볼 수도 있을 것 같은데, 금광 사업에 뛰어든 사람이 많았나요?
[김일혁] 그렇죠. 많은데, 금 사업을 시작하는 사람들의 결말은 별로 좋지 않습니다. 하다 보면 거의 대부분 거지가 돼요. 일단 국가가 금 사업을 어마어마하게 통제하니까요. 편법과 불법을 쓰고 (통제를) 빠져나가며 버틴 사람들이 간혹 부자가 됐고요. 그러다가 걸리면 한순간에 역적을 만들어버려요. 북한 당 권력기관에서는 그 사람을 매장시켜야 그 사람의 부를 모두 제 걸로 뺏을 수가 있으니까요. 그러니까 어떤 혐의를 씌워서라도 무조건 뺐거든요. 그러면 하루아침에 거지가 되는 거죠. 그래서 소위 ‘날아가는 돈’에 비유해요. ‘그냥 공짜로 좀 벌어보려 허황된 생각을 했다’는 식으로 표현하기까지 하는데요. 다른 일들은 땀 흘린 것만큼 버는 건데, 금은 노다지를 만나면 땀을 흘린 것에 상상도 안 될 만큼 엄청난 돈이 차려지거든요. 그러니까 대박을 터뜨리는 거죠.
[기자] 그럼 북한 당국의 단속을 피해 금 사업을 계속한다면, 북한에서 ‘일확천금의 꿈을 이룰 수 있다’고 볼 수 있을까요?
[김일혁] 당기관이나 권력 기관에 뺏기고 거기서 끝냈으면 빚을 지지는 않는데, 벌었던 부를 전부 다 뺏기고도 욕심이 생기고, 또 해보고 싶어서 빚을 지는 거죠. 사채를 엄청 꿔서 일을 시작하는데, 시작부터 잘 되는 일은 없거든요. 물론 금이 나오는 맥이 있는 곳을 안다고 해서 정확한 자리를 명중하면 괜찮은데, 다른 자리를 하거나 하면 금이 하나도 안 나오는데 몇 달이 걸릴 수 있고 몇 년이 걸릴 수 있죠. 그래도 노동자들에게 월급 줘야죠, 먹고살면서 사업 유지해야 하죠, 또 당 기관이나 권력층의 간부들에게 계속 뇌물을 줘야 하죠. 벌지는 못하는데 계속 돈이 들어가잖아요. 그러다가 더 이상 대출받을 데가 없으면 그냥 몰락하고 말아요. 사채도 제대로 갚고 활성화를 시키는 사람에게는 계속 돈을 빌려주지만, 약속을 계속 못 지키면 그다음에는 믿질 않잖아요. 신뢰도가 떨어지고 하루아침에 알거지가 되고 빚까지 지는 거죠. 그래서 망하는 사람이 엄청 많아요. 북한에서는 지금 그런 생활이 일상이라고 보면 됩니다.
[기자] 네, [북 압축파일] 오늘은 탈북민 김일혁 씨와 함께 북한의 금광업 실상에 대해 이야기 나눠봤습니다. 김일혁 씨, 오늘 말씀 고맙습니다.
RFA 자유아시아방송 서혜준입니다.
에디터 노정민, 웹편집 한덕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