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재 대상 북 선박들, 한 달 새 ‘암흑 활동’ 빈번

워싱턴-한덕인 hand@rfa.org
2024.04.09
제재 대상 북 선박들, 한 달 새 ‘암흑 활동’ 빈번 북한에서 중국을 경유해 러시아로 향하다 한국 여수 인근 해상에서 해경에 의해 나포된 3천 톤급 화물선 'DEYI'. 당시 선박에는 중국인 선장을 포함한 중국, 인도네시아 출신 선원 13명이 탑승한 것으로 알려졌다.
/연합뉴스

앵커: 러시아의 반대로 유엔 대북제재위원회 전문가단의 활동이 14년만에 중단을 앞둔 가운데, 이달 들어서도 해상에서 대북제재 선박의 의심스러운 활동은 계속 포착되고 있습니다.

 

미국 워싱턴 D.C. 소재 ‘선진안보연구소’(C4ADS)의 해상 대북 제재 전문가인 앤드류 볼링(Andrew Boling) 국가후원위협 프로그램 담당관은 북한이 불법 선박식별번호를 획득해 선박의 신원을 세탁하는 등 고도의 위장 기법을 이용하고 있다며, 북한 선박의 의심스런 활동이 점점 대범해지고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보도에 한덕인 기자입니다.

 

북한 선박 회령’, ‘천마산’, ‘남산8’, ‘안산1’, 최근까지 암흑 활동

 

유엔 대북제재 선박 명단에 오른 북한 화물선 ‘회령’(Hoeryong⋅IMO 9041552).

 

과거 북한산 석탄 수출에 관여한 데 따라 국제사회의 제재 대상에 포함된 이 선박은 2016년에 채택된 유엔 안보리 결의 2270호 제23항에 따라 자산 동결 대상이지만, 여전히 수상한 행보가 감지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의 해운정보업체인 ‘윈드워드’(Windward)에 따르면 ‘회령’호는 세계표준시(UTC) 지난 3 18 1013, 북한 측 배타적경제수역(EEZ)에서 선박자동식별장치(AIS)를 끄고 6일간 자취를 감췄습니다.

 

그리고 24일 오후 1347분 선박자동식별장치를 다시 켠 회령호는 같은날 2126분 동해 청진항 인근 북한 해역에서 또 신호를 끄고 11일 간 자취를 감췄다가 지난 44일 밤 2114분에 다시 신호가 감지됐습니다. 이른바 암흑 활동’(dark activity)을 이어간 겁니다.

 

암흑 활동이란 선박의 위치와 속력 등 항해 정보를 실시간으로 제공하는 선박자동식별장치를 고의로 끄고 항해하는 것을 뜻하는데, 이러한 활동은 주로 제재 회피와 불법 무역, 밀수 등의 목적으로, 국제 사회의 감시를 피하기 위한 방법 중 하나로 이뤄집니다.

 

사진2-윈드워드.jpg
유엔 대북제재 대상 선박인 북한 화물선 ‘회령’호는 지난 3월부터 한 달 사이 선박자동식별장치(AIS) 신호를 의도적으로 끄는 ‘암흑 활동’을 수차례 했던 것으로 나타났다. / 윈드워드

 

이와 관련해 ‘윈드워드신호 발신이 한동안 끊긴 것은 의도적일 수 있으며, 항해 주기와 소요된 시간, 이동한 거리 등을 고려할 때 의심스러운 활동을 암시한다고 설명했습니다.

 

앞서 회령호는 유엔 안보리 대북제재위원회 전문가단이 2022 9월에 발표한 대북제재이행 중간 보고서에서도 같은해 2월 북한을 출발해 중국의 닝보-저우산 해역에서 선박 간 환적을 통해 석탄을 하역한 것으로 지목된 바 있습니다.

 

회령호뿐 아니라 2017 11월 선박 간 환적 방식으로 석유 운반에 관여했다는 이유로  2018 330일 유엔 대북제재 선박 명단에 오른 북한 유조선 천마산(8660313)도 지난달 31일 러시아의 배타적경제수역에 진입한 뒤 나흘 간 암흑 활동에 들어갔으며, 역시 유엔 대북제재 선박 명단에 등재된 북한 유조선 남산8’(8122347)도 지난달 14일 동해에서 선박자동식별장치 신호를 끄고 암흑 활동에 들어간 지 9일 만에 중국 배타적경제수역에서 확인되기도 했습니다.

 

또 유엔 대북제재 지정 선박인 북한 유조선 ‘안산1’(7303803)도 지난달 11일 동해에서 선박자동식별장치신호를 끄고 자취를 감췄다가 약 보름 만에 러시아 보스토니치항에 정박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사진3- 안산1호.jpg
2018년 6월 29일, 일본 해상자위대가 동중국해의 공해상에서 촬영한 북한 국적의 유조선 안산 1호가 국적 불명의 선박과 나란히 정박해 호스를 연결한 모습/ 일본 방위성

 

안산 1호와 국적 불명의 선박이 서로 나란히 정박하고 호스를 연결한 모습 (6 29, 1/ 방위성)

 

이처럼 북한이 유엔 대북제재를 지속적으로 위반하는 가운데 전문가들은 북한의 제재 위반 행위가 국제사회의 안보에 중대한 도전이 되고 있다고 지적합니다.

 

특히 미국 워싱턴 D.C. 소재 민간연구기관인 선진국방연구센터의 해상 제재 전문가인 앤드류 볼링 담당관은 최근 해상에서 북한의 제재 위반 활동이 증가했다며, 특히 '선박 신원 세탁'이라 불리는 복잡하고 정교한 위장 기법을 사용하고 있다고도 말했습니다.

 

다음은 앤드류 볼링 담당관과 회견 내용입니다.

 

제재 위반 북한 선박 활동 횟수 계속 증가

 

[기자] 앤드류 볼링 담당관님, 코로나 대유행 이후 최근까지 나타난 제재 위반 북한 선박의 활동은 어떤 추세를 보이고 있습니까?

앤드류 볼링(Andrew Boling) 미 ‘선진국방연구센터’(C4ADS) 국가후원위협 프로그램 담당관 (Portfolio Manager) / C4ADS
앤드류 볼링(Andrew Boling) 미 ‘선진국방연구센터’(C4ADS) 국가후원위협 프로그램 담당관 (Portfolio Manager) / C4ADS
[앤드류 볼링] , 활동이 증가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북한의 코로나 봉쇄조치가 끝난 뒤, 코로나 대유행 이전에 감지됐던 여러 정황이 재개됐는데, 그중 하나가 석탄 무역의 활동 빈도가 늘어난 겁니다. 유엔 전문가단이 2015, 2016년에 북한의 석탄 수출을 금지하고 제한하는 제재 조치를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상임 이사국의 지지를 받아 통과시켰습니다. 비록 그 체제에 균열이 종종 있었음에도, 중국과 러시아는 대부분 그 제재를 시행했습니다. 하지만 2018년과 2019년에는 뚜렷한 변화가 있었고, 중국이 북한산 석탄을 더 공개적으로 수입하기 시작했습니다. 코로나 대유행으로 이런 활동이 일시 중단됐지만, 코로나가 끝난 뒤 북중 간 무역은 재개됐습니다. 이후 몇 년간 북한이 상당 수의 선박을 자국 소유로 등록하는 것을 목격했습니다. 그들이 어디에서 자금을 얻었는지, 왜 이전에는 그렇게 하지 않았는지는 불분명하지만, 북한이 상당수의 노후화된 선박을 비교적 새 선박으로 교체할 수 있었고, 큰 규모의 선박을 포함해 정제유를 운반하는 유조선 수를 확대했다는 것도 사실입니다.

 

[기자] 최근까지도 대북제재 명단에 올랐거나 주요 감시 대상으로 알려진 북한 선박이 선박자동식별장치를 조작하는 행위가 계속되고 있습니다.

 

[앤드류 볼링] 북한의 위장 기법은 매우 정교합니다. 특히 저희는 지난 보고서(UNMASKED)에서 북한과 관련해 '선박 신원 세탁'이라 불리는 복잡하고 고도로 정교한 현상을 식별했는데, 이는 선박이 새로운 선박식별번호’(IMO)를 불법적으로 획득하는 행위를 말합니다. 선박이 국기를 변경하거나, 이름을 바꾸고, 개조 또는 분해 후 재조립하는 것은 매우 일상적입니다. 하지만 선박의 수명 기간 항상 똑같이 유지돼야 하는 것이 7자리 숫자로 된 IMO 번호, 즉 선박 고유의 일련번호입니다. 이 번호는 선박에 대한 규제와 법률을 제정하고 관리하는 유엔 국제해사기구’(IMO)에서 관리합니다. 따라서 이 선박식별번호는 절대 바뀌어서는 안 됩니다. 특히 해상의 이해관계자들, 심지어 은행과 항구, 법 집행 기관들이 선박을 식별할 때도 이 선박식별번호에 의존하기 때문입니다. 북한과 그의 파트너들이 사용하는 위장 기법은 단순히 이념의 문제가 아닙니다. 이로 인해 해당 지역의 안전뿐 아니라 사람들의 생명도 위험에 빠드린다는 점을 잊어선 안 될 것입니다.

 

유엔 전문가단 해산돼도 제재 의무 여전... 각국 이행 의지가 중요

 

[기자] 아무리 대북제재 위반이라고 해도 버젓이 활동하는 걸 보면, 제재나 처벌이 제대로 이뤄지고 있는 것인지 궁금할 때가 있습니다. 대북제재 위반으로 적발된 선박과 관련 기업, 법인, 중개자에게 부과될 수 있는 처벌에는 어떤 것들이 있나요?

 

[앤드류 볼링] 어떤 제재를 언급하고 있는지에 따라 결과가 달라질 수 있는데요. 유엔 제재의 경우 유엔 자체적으로 이를 집행할 수 있는 직접적인 권한은 없습니다. 실질적으로 개별 유엔 회원국이 유엔 결의안을 반영하고, 이를 집행할 법률을 제정해 시행하는 겁니다. 중국과 러시아를 비롯한 많은 국가가 과거에는 이러한 제재를 이행한 사례가 있습니다. 이 경우 부과될 수 있는 처벌로는 벌금, 징역, 대기업 또는 개별 회사에 대한 해산 등이 있습니다. 또 대북제재 위반과 관련된 활동에 연루됐다는 사실을 공개함으로써, 회사와 개인에게 심각한 손실을 입힐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처벌이 기업이나 개인의 제재 위반 행위를 제지할 만큼 충분하지 않을 때가 많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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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5월 9일에 공개된 미국 법무부의 몰수 소송에 제출된 무기명 감시 위성사진에서 남포에서 석탄을 싣고 있는 와이즈어니스트호. / 로이터

 

[기자] 최근 유엔 대북제재위원회 전문가단의 해산 결정에도 불구하고, 앞서 체결된 유엔 대북제재 결의안은 유효하고, 각국의 의지에 따라 계속 이행할 수 있다는 뜻으로 들리는데요. 2019년 미국 법무부가 몰수했다고 발표한와이즈어니스트’호(Wise Honest)는 미국이 북한 선박을 압류한 첫 사례가 됐습니다. 이런 일이 다시 일어날 수 있다고 보십니까. 한국 정부도 최근 대북제재 위반 활동에 연루된 혐의를 받는 무국적 선박을 나포했다는 소식도 있었습니다.

 

[앤드류 볼링] 역사적으로 다른 나라의 배를 억류하는 것은 매우 공격적인 행위로 간주돼 왔습니다. 미국이와이즈어니스트’ 호를 억류할 때 사용한 법적 체계는 국제적으로도 독특한 상황이었습니다. ‘와이즈어니스트호는 북한 국기를 사용하고 북한산 석탄을 운반하면서, 시에라리온 국적으로도 이중 등록이 돼 있었습니다. 국제 규정상 배가 이중 국적을 갖는 것은 금지돼 있으며, 이는 무국적 상태와 유사하게 간주돼 영해에서 억류될 수 있습니다. 당시 미국은 이런 법적 근거로 선박을 압수하고 화물을 몰수할 수 있었습니다.

 

동아시아의 지리적 특성을 고려할 때 많은 배가 중국이나 북한 영해 안에서 제재를 회피하고 있으며, 선박 간의 위장 수준은 상당합니다. 해상에서의 제재 조치가 법적으로 복잡하기 때문에 관련 회사들과 선박, 그리고 그들의 활동에 대한 증거와 법적 인식을 충족시키는 것이 어려울 수도 있습니다. 물론, 가능성이 작긴 하지만, 정부나 국제법 집행 기관이 개인이나 회사, 선박 등이 의도적으로 제재를 회피하고 있다는 것을 증명할 수 있다면, 그리고 해당 사례가 조치를 취할 수 있는 관할 구역에 있다면, 비슷한 상황이 다시 일어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RFA 자유아시아방송 한덕인입니다.

 

에디터 노정민, 웹팀 이경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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