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 음악 유학생 파견 중단에 악기 밀수도 끊겨”
2024.05.08
앵커: 마키노 요시히로 일본 히로시마 대학교 객원교수 겸 아사히신문 외교전문기자와 함께 북한 관련 뉴스를 되짚어 보는 ‘한반도 톺아보기’입니다. 최근 급변하고 있는 한반도 정세를 분석하고 전망해 보는 시간으로 대담에 한덕인 기자입니다.
[기자] 최근 김정은 북한 노동당 총비서를 찬양하는 목적으로 제작된 선전가요 뮤직비디오에서 고가의 일본산 악기가 사용된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대북 제재 위반 가능성이 제기됐는데요. 북한과 일본 악기 사이에 어떤 역사적 관계가 있나요?
[마키노 요시히로] 말씀하신 대로 북한의 조선중앙TV는 지난 4월 17일 약 4분짜리 신곡 ‘친근한 어버이’를 방영했는데요. 뮤직비디오에서 일본 기업인 '소니' 상표가 새겨진 헤드폰을 비롯해 ‘롤랜드’와 ‘코르그’의 신디사이저 등 일본산 악기가 사용된 것이 확인됐습니다. 이 악기들은 한 대당 10만~30만 엔(미화 640~1천900 달러) 정도로 추정됩니다. 현재 일본 정부는 인도적 지원 등을 제외하고는 북한과 모든 수출입을 금지하고 있는데요. 북한 음악 사정을 잘 아는 한 재일교포에 따르면 북한은 1970년대부터 90년대까지 일본에서 악기를 자주 수입했습니다. 악기 제조는 해당 국가의 경공업 기술에 크게 의존하는데, 북한은 경공업 기술 수준이 낮아 고품질의 악기 제작이 어려운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래서 가야금 같은 전통 악기를 제외한 다른 악기는 주로 해외에서 수입한다고 합니다.
북한의 대규모 관현악단인 ‘조선국립교향악단’ 관계자들이 일본을 방문했을 때 호텔에서 악기업체가 가져온 바이올린, 첼로, 콘트라베이스 등을 직접 연주하며 소리의 질을 확인한 적도 있다고 합니다. 북한도 원래는 ‘스트라디바리우스’(Stradivarius) 같은 유럽의 고급 악기를 선호하겠지만, 비용 문제 때문에 상대적으로 저렴한 일본산 악기를 자주 구매했습니다. 당시 재일 상공인들의 자금 지원과 만경봉호 선박을 이용한 수송을 통해 물품이 수입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기자] 이번 ‘친근한 어버이’ 뮤직비디오에 신디사이저와 같은 전자악기가 등장한 것도 주목을 끌었는데요. 여기에 대해선 어떻게 보셨습니까?
[마키노 요시히로] 과거 김일성 시대에는 사회주의 원칙에 따라 전자악기나 컴퓨터의 전자신호를 사용하는 음악을 거부하는 경향이 있었습니다. 자본주의의 영향이 느껴진다는 이유였죠. 하지만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음악을 선전 선동 수단으로써 중요하게 생각했고, 전자악기와 전자음악을 모두 활용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실제로 1985년에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전자음악을 활용하는 '보천보 전자악단'을 창설했습니다. 다만, 북한에는 전자악기를 생산할 기술이 없었기 때문에 당시 일본의 ‘야마하’ 등 회사에서 많은 전자악기를 수입했습니다. 보천보 전자악단이 수입한 전자악기는 총 1억 엔(미화 64만 달러) 정도에 달했다고 합니다. 또 당시 일본 악기회사의 관계자가 북한을 방문해 악기 사용법을 가르쳐 주기도 했습니다.
[기자] 대북 제재 국면에서 북한은 어떻게 계속 악기를 국내로 들여오고 있는지 궁금합니다. 현재 어떤 방식으로 악기를 수입한다고 보십니까?
[마키노 요시히로] 네, 말씀드렸듯이 북한은 경공업 수준이 낮아 대부분의 악기를 수입해야 하는 상황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특히 전자악기는 최신 성능을 가진 악기들이 빠른 속도로 등장하기 때문에 북한이 이를 시기적절하게 구입하는 것은 매우 어렵습니다. 북한에서는 악기를 국영 악단의 소유물로써 계속 물려받으며 사용한다고 알고 있습니다. 과거에 북한은 음악 수준을 높이기 위해 유럽 등 여러 나라에 약 100명의 유학생을 보내기도 했는데요. 이탈리아, 오스트리아, 프랑스 등 음악이 발달한 국가에 연주, 작곡, 성악 등으로 나눠 파견했습니다. 또 이 학생들은 북한에 귀국하는 과정에서 악기를 수입하는 역할도 맡았습니다.
5년 전 북한이 대사관 직원들의 연봉을 삭감하면서 가족들도 모두 귀국하라는 명령을 내렸을 때 음악 유학생들도 마찬가지로 귀국 명령을 받았습니다. 이는 서양 문화의 유입을 경계하는 북한의 내부 사정 때문인 것으로 보입니다. 이 때문에 현재는 음악 유학생이 파견되지 않아 악기 수입이 더욱 어려워졌습니다. 이번에 확인된 악기들은 아마 중국을 거쳐 수입된 것으로 추정됩니다.
[기자] 북한 당국은 과거부터 음악을 어떻게 활용해 왔다고 볼 수 있나요?
[마키노 요시히로] 네,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전자음악을 도입하기로 결정한 것도 음악을 중요한 선전 선동 수단으로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북한 사람들은 원래 음악을 좋아하는 민족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저도 1988년부터 1991년까지 함경남도 고원군에서 활동한 기동예술선전대 출신의 탈북민을 인터뷰한 적이 있습니다. 그 탈북민에 따르면, 사람들을 감동시키는 음악은 정치 선전을 위한 북한 당국의 매우 중요한 수단이었다고 합니다.
지역 당 조직뿐만 아니라 군, 기업소, 군부대 모두 자체적인 선전(음악)대를 갖고 있었다고 합니다. 이러한 선전대에는 항상 관악기나 현악기 연주자, 그리고 성악가가 포함돼 있었고, 이들은 김일성 주석의 생일, 모내기, 당에서 중요시하는 건설 작업 등 정치적으로 중요한 행사나 현장에서 음악을 편성해 주민들을 고무시켰다고 합니다. 그 탈북민은 북한 사람들은 순진하고 오락거리가 많지 않아 감동시키기 쉬웠다고 말했습니다.
[기자] 북한 당국의 신곡 ‘친근한 어버이’가 예전과 다름없는 우상화 선전 작업이라는 분석이 나오는데요. 반면, ‘틱톡’과 같은 일부 인터넷사회연결망에서는 이 노래가 재미있는 소재로 인기를 끌고 있다고 합니다. 정작 북한 주민들은 이번 신곡에 대해 어떻게 보고 있을까요?
[마키노 요시히로] 결론적으로는 말도 안되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김정은 총비서가 음악에 힘을 쏟고 있다는 건 사실입니다. 북한이 발표한 자료를 보면, 김 총비서는 음악을 마치 자신의 애정 어린 첫사랑처럼 여기고 있습니다. 1990년대 후반 김정철, 김여정과 함께 스위스에서 공부할 때 서방 국가의 음악에 많이 익숙해졌다고 합니다. 또 김 총비서는 권력을 잡은 직후인 2012년 7월에 ‘보천보 전자악단’ 대신 자신이 지지하는 ‘모란봉 전자악단’을 창설했습니다. 그리고 (김정일의 차남인) 김정철은 영국의 기타리스트인 에릭 클랩튼(Eric Clapton)를 보기 위해 싱가폴이나 영국을 찾아가 공연을 관람할 정도로 열렬한 팬이었습니다. 태영호 전 영국 주재 북한 공사에 따르면, 당시 김정철은 김정은이 참여하는 비공개 연주회도 여러 차례 열었다고 합니다. 또 모란봉 악단의 연주를 들은 전문 음악인은 “북한 음악단의 수준이 높다”고 평가했으며, “악보 없이도 다양한 장르의 음악을 연주할 수 있다”는 극찬도 있었습니다. .
하지만 문제는 연주 기술이 아닌 음악의 내용입니다. 신곡 ‘친근한 어버이’의 가사를 보면 김정은을 지나치게 찬양하는 내용이 주를 이룹니다.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노래는 널리 사랑받지만, 이런 선전가요는 누구도 공감할 수 없어 의미가 없습니다. 또 최근 보도에서 북한이 조선중앙 TV의 카메라 워크(촬영기법) 등을 서방 국가처럼 연출하려고 노력했다는 점이 드러났지만, 여전히 내용은 동일해 사람들의 관심을 끌지 못하고 있습니다. 조선중앙 TV에서는 사람들이 열심히 노래를 부르며 김정은을 찬양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대부분 북한 주민이 당국의 선전가요를 따르지 않고 개인적으로 자신들이 좋아하는 노래를 부르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네, 마키노 기자님. 오늘 말씀 감사합니다. 지금까지 워싱턴에서 RFA 자유아시아방송 한덕인이었습니다.
에디터 노정민, 웹팀 이경하